민족의 화해와 형제애의 회복을 위하여-5호/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의정부교구장 이기헌 주교

민족의 화해와 형제애의 회복을 위하여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의정부교구장 이기헌 주교

2016-11-30-17-40-22

올해 초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로켓 발사에 대한 제재조치로 남북 경제협력의 상징인 ‘개성공단’이 전격 폐쇄된 이후 반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남북 간의 교류는 중단되고 한반도의 긴장이 계속 고조되는 상황에서, 휴전선과 맞닿은 의정부교구의 교구장이며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인 이기헌 주교를 만났습니다.

  • ‘자비의 희년’에 맞는 민족의 명절 한가위를 앞두고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한가위는 이산가족들에게 큰 아픔과 그리움이 담긴 명절입니다. 저도 평양 출신인데 네 살 때 남한으로 내려와 북한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두 명의 누나가 북한에 남아 있어서 명절 때면 특히 누님들 생각이 나서 슬픕니다. 어린 시절 방학 때면 친구들은 시골 고향으로 가는데, 저는 고향에 갈 수 없는 분단의 현실을 많이 느꼈습니다. ‘언제 고향에 돌아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명절을 맞이할 때마다 분단의 서러움과 통일의 간절함을 느낍니다.

저희 집안은 북한에 살다가 신앙적인 이유로 1·4 후퇴 때 남한으로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병인박해 때 가족 중 세 분이 순교하신 순교자 집안으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던 가정이었는데, 북한에서 공산정권이 들어서며 종교탄압을 하고 평양교구 사제이셨던 작은아버지도 순교하시게 되면서 남쪽으로 피난을 오게 되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한가위가 되면 이산가족의 서러움과 고향을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아왔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과월절(파스카) 축제를 할 때 온 식구들이 모여, 가장이 자식들에게 역사를 알려주는 관습이 있습니다. 고향의 선조들과 그들의 신앙, 고생하며 이집트를 탈출하던 역사의 뿌리를 알려주듯, 저희 부모님도 우리 조상들은 하느님에게 의지하고 살았고, 고향을 버리고 왔지만 우리의 신앙 고향은 북한이라며 이를 저희에게 심어주셨습니다. 부모님이 남한에 처음 와서 마음의 위안을 받았던 곳은 평양교구 신자들의 모임이었고, 저도 어머니를 따라서 그 모임에 자주 가곤 했습니다.

저는 통일의 문제는 정치지도자들만의 일이 아니라 민족적인 문제를 뛰어넘는 형제애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북녘에 고향을 둔 사람들에게는 고향을 찾아 돌아가게 되는 일, 돌아가신 부모님들이 평생 가고 싶어 했던 고향을 대신 찾아가는 일, 북녘에 남아있는 형제자매들을 만나고 도와주는 일입니다. 설령 형제 친척이 아니더라도 같은 말과 같은 문화를 가진, 거슬러 올라가면 한 형제이기에 그렇습니다. 따라서 통일문제는 정치지도자들만의 일이 아니라 우리 모든 국민들의 일입니다. 따뜻한 마음으로 모든 이산가족들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신중하게 긍정적으로 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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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적으로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정서도 분단 기간이 길어지고 세대가 바뀔수록 한민족이라는 유대감이나 통일을 바라는 간절함은 점점 사라지고 있는데, 민족화해를 위해 교회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한국천주교회는 지난해 분단 70주년을 맞이하면서 민족의 화해를 위한 교회의 역할에 한창 고무되어 있었습니다. 기도운동뿐 아니라 연말에는 민족화해주교특별위원회 주교님들의 북한 방문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올해 초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로 인해 남북관계가 경직되면서 남북 교류의 마지막 보루였던 개성공단마저 폐쇄되고, 이어진 북한 핵에 대한 조치로 북한에 대해 경제적인 제재가 심하게 가해지고 있습니다.

자비의 희년을 맞아 남북화해를 위해 특별히 우리 사회에서 뿌리 뽑아야 하는 것, 제일 큰 문제로 삼아야 할 것은 ‘적대감’을 해소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요즘 핵문제 이후 남북 정치 지도자들 사이에서 유지되는 적대감이 사회로 확산되면서 신자들에게 가는 영향이 큽니다. 얼마 전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에서 북한과 통일에 관련된 교회 구성원들의 의식을 조사한 바 있었습니다. 2005년 조사 이후 10년 만에 사제, 수도자, 신학생, 평신도들을 대상으로 조사하였는데, 10년 전에 비해 남북이 같은 민족임을 느끼는 의식이나 통일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현저하게 줄어들었고, 특히 사제나 수도자들에 비해 평신도들이 더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 10년 사이 정부의 대북정책이 신자들의 의식을 부정적으로 변화하게 했습니다. 성직자와 수도자는 90% 이상이 북한 주민들을 우리의 동포라 생각하지만, 신자들은 약 70%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통일에 대한 필요성도 평신도에게는 현저히 낮은 편이었습니다. 이를 보면서 국민의식이 정부의 정책에 큰 영향을 받는구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사회는 6·25 전쟁과 그동안의 남북관계 안에서 적대감이 많이 쌓여있고 예전부터 반공교육으로 북한과의 적대감을 계속 유지해 왔지만, 자비의 희년을 지내면서 우리 사회 안에서 그리고 우리 교회 안에서 적대감 해소가 이루어진다면 참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교황님께서 2014년 방한 때나 작년 초 한국 주교단 사도좌 방문 때도 한결같이 말씀하신 것은 남북의 화해와 통일에 대한 당위성이었습니다. 같은 말을 쓰고 같은 문화를 가진 한 형제인 남북이 화해하고 용서를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데 왜 이렇게도 못하고 있는가에 대한 호소와 격려였다고 봅니다. 남북 정치 상황과 지도자들의 완강한 모습을 보면서 점점 더 대화와 화해의 길이 멀어져 감을 느끼지만 그래도 우리 교회가 해야 할 일을 적극적으로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실 상황은 대화와 화해에 대해 언급조차 하기 어려울 만큼 분위기가 냉각되어있지만, 그래도 이런 분위기를 해소하는데 교회와 언론들도 목소리를 높여야 할 것입니다.

남북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형제애 회복이며 앞으로 교회가 해야 할 역할 중에서 중요한 일도 이와 관련된 교육과 기도임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교육과 기도와 함께, 지금 당장은 힘들더라도 기회가 닿을 때마다 북한과 교류하고 지원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이러한 시기에 지난 춘계주교회의에서 모든 교구 각 본당에 민족화해분과를 설립하기로 결정한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늦은 감은 있지만 이번 기회에 모든 교구, 모든 본당에서 민족화해분과를 만들어 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

남북 정치 상황과 지도자들의 완강한 모습을 보면서 점점 더 대화와 화해의 길이 멀어져 감을 느끼지만 그래도 우리 교회가 해야 할 일을 적극적으로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실 상황은 대화와 화해에 대해 언급조차 하기 어려울 만큼 분위기가 냉각되어있지만, 그래도 이런 분위기를 해소하는데 교회와 언론들도 목소리를 높여야 할 것입니다.

남북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형제애 회복이며 앞으로 교회가 해야 할 역할 중에서 중요한 일도 이와 관련된 교육과 기도임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교육과 기도와 함께, 지금 당장은 힘들더라도 기회가 닿을 때마다 북한과 교류하고 지원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이러한 시기에 지난 춘계주교회의에서 모든 교구 각 본당에 민족화해분과를 설립하기로 결정한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늦은 감은 있지만 이번 기회에 모든 교구, 모든 본당에서 민족화해분과를 만들어 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

  • 의정부교구가 휴전선을 마주한 접경지역이라 정치적으로 민감할 수 있는데, 2012년 10월 말 교구 정의평화위원회가 창립된 이후 정의평화 활동이 아주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교구 정평위 활동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교회가 해야 할 활동 중에 사랑을 실천하고 정의와 평화를 실현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몫 중의 하나입니다. 역대 교황님들은 문헌들을 통해서 이를 강조하셨고, 보편교회는 이를 바탕으로 교회 신자들이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지침을 제시하였습니다. 이것을 쉽게 정리하고 이해할 수 있게 한 것이 사회교리입니다. 따라서 사회교리는 우리 시대의 사회, 정치, 경제, 환경, 생명, 인권문제들에 대한 교리적 해석과 행동에 대한 안내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최근 우리 한국사회에서도 정의나 평화, 생명과 환경과 같은 사회교리에서 강조했던 이들에서 큰 문제가 될 사건들이 일이 있었으며, 이에 대해 교회는 문제를 제기하고 반대를 표명한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해 정부나 일부 보수언론을 비롯하여 심지어는 일부 신자들 안에서도 교회가 정치에 간섭한다고 못마땅하게 여기기도 하였습니다.

천주교회 대표기관인 주교회의에는 정의평화위원회가 있으며, 이 위원회의 역할이 교황님의 가르침이나 사회교리에 따라 문제가 생긴 사안에 대해 필요할 때는 담화문을 통해 교회의 견해를 밝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불만을 표시하는 신자가 있음은 이해는 되지만 유감스럽습니다. 약자의 편에 서서 정의와 사랑을 외치시고 계시어 온 세상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교황에 취임하시면서 보여주신 행보나 가르치심은 모두 이러한 것들이었습니다. 특히 지난 한국 방문 때 교황님께서 세월호 가족을 만나서 위로해 주시는 모습은 많은 국민들에게 감동을 줬으며, 일본 정부로부터 제대로 된 사과를 받지 못해 슬픔을 안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나주신 일 또한 아름다운 일이었습니다.

우리 의정부교구는 특히 젊은 사제들이 많아 사회정의 문제에 열정을 가지고 참여하고 있는 사제들이 많이 있습니다. 때로는 이 사제들이 본당 신자들과 마찰을 일으킬 때도 있으며, 화가 난 신자들이 저에게까지 편지를 보내거나 이메일을 보낼 때가 있습니다. 저는 얼마 전 교구 사제들에게 서신을 통해서 사제들의 사회 참여에 대해서는 근본적으로 찬성하고 격려를 보내지만, 본당에서 교우들에게 시국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는 지혜롭게 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교회공동체야말로 진보와 보수가 공존하는 곳이기에 모든 가르침은 교황님들의 가르침이나 사회교리를 바탕으로 차근차근 말해주고 때로는 들어주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실제로 본당에 따라 신부님들이 어떻게 설득하고 가르치는가에 따라 본당의 분위기가 달라짐을 볼 수 있습니다. 어느 시골 본당은 신자들 대부분이 어르신들인데도, 함께 버스타고 팽목항을 갔다 오기도 합니다. 나와 다른 것을 서로 이해하고 존중할 때 평화는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요한 바오로 2세께서 말씀하신 평화의 원리인 존중과 다양성 안에서의 일치가 교회 안에서도 이루어지기 바랍니다.

2016-11-28-17-24-38

  • 의정부교구는 사제들의 평균연령이 가장 낮은 젊은 교구인데도, 교구장과 사제단 사이의 관계가 좋다고 들었습니다. 교회 리더십에 대한 주교님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저는 주교직에 임명받고 결심했던 것 중의 하나가 주교의 우선적인 임무는 사제들을 돌보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주교가 해야 할 임무로 아버지의 부성애도 중요하지만, 사제들과 형제처럼 지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제들을 더 많이 만나고 자주 대화를 하는 시간을 갖고자 했습니다. 의정부교구 사제들은 다행히 제가 서울대교구에서 만났던 후배들이었습니다. 후배들 대하듯 친근하게 해주려 노력하였고 이야기를 들어주려고 마음을 썼는데, 그렇게 소문이 났다 하니 다행스럽고 기쁜 일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해야겠지요.

주교가 되어 사제들 개인 면담을 한 사람당 한 시간씩 했습니다. 그 사제가 자라온 이야기, 집안 이야기 등 여러 가지 가벼운 이야기로 시작해서, 하고 싶은 사목이 있는지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인사권과 관련해서는 본당에 대해서는 누구나 똑같이 원칙대로 합니다. 그리고 저는 사제들에게 해외선교를 많이 장려합니다. 사제들이 가난한 삶을 살아가길 바라서이기도 하고, 실제로 다녀온 사제들은 건강해져서 돌아옵니다. 의정부교구 안에서 해외선교를 나간 신부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인사권 문제로 원하는 것이 있으면 참고하는 편이고, 청소년사목이나 환경사목을 하고 싶다는 등 여러 제안을 하는 신부가 있으면 많이 들어주는 편입니다. 지구장 신부들을 통해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경향도 있습니다. 각 부서의 일을 맡아서 하는 사람들이 추천하기도 합니다. 각 지구장도 사제들의 투표로 정합니다. 지구 사제들이 모두 모여서, 8개 지구의 지구장을 투표수대로 임명합니다. 지역 사목은 지구장 중심으로 합니다.

  • <가톨릭 평론> 정기구독자 중 첫 번째 주교 독자이십니다. 독자로서 어떤 잡지가 되길 기대하시는지요.

사실 저에게 온 《가톨릭 평론》을 처음 대하는 순간 뭔가 내가 기대했던 잡지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독자층에 따라 우리 교회 잡지도 다양해야 하는데, 깊이 있으면서도 읽기 쉽게 교회의 문제들을 표현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아주 크기에 구독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나온 글들을 읽어보니, 기대한 만큼 좋은 잡지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요즘 인문학이 대세인데, 인문학과 신학, 사회정의 문제를 통합해 다루어주면 좋겠습니다. 신학적 면만은 어려울 수 있으니, 인문학과 신학적 요소가 함께 맞물려 시대의 흐름을 함께 따라갔으면 좋겠습니다. 평론이니만큼 정의 문제, 평화 문제, 인권 문제 등에 날카로움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다만 반교회적인 비판으로만 흐르지 않았으면 합니다. 신자들이 교회를 부정적으로 볼 우려가 있으니 피했으면 합니다.

우리 사회가 책 읽는 문화가 많이 사라지고 SNS 이용을 많이 합니다. 《가톨릭 평론》과 같은 책들을 사제들, 신자들, 지성인 계층들이 많이 읽기 바랍니다. 또 교회 안의 좋은 필자를 발굴하여 그들의 글을 소개하는 것도 《가톨릭 평론》의 큰 역할이라 생각됩니다.


이기헌 주교의 고조할아버지인 이의송 프란치스코와 고조할머니, 증조할아버지 모두 병인박해 때 순교하여 복자품을 준비하는 하느님의 종에 올랐다. 또한 평양 기림리 본당신부였던 작은아버지 이재호 알렉시오도 하느님의 종으로 근·현대 신앙의 증인 시복시성 추진 중이다.: 이기헌, 「우리 가족 이야기」, 〈의정부주보〉 2016년 7월 31일자 참조.

2016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심포지엄 자료집 〈한국천주교인통일의식, 무엇이 변했고 어디로 갈 것인가?: “2015년 북한 복음화에 대한 교회 구성원 의견조사” 발표〉,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2016 참조.

이 서신의 내용은 아래의 글에서 볼 수 있다.: 상지종, 「“신부님, 시국 이야기 어떻게 나누시나요?”」, 《가톨릭 평론》 제2호, 44-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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