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에서 본 일본 가톨릭교회의 평화운동- 5호/ 비평, 시대의 소리

히로시마에서 본 일본 가톨릭교회의 평화운동

이용철 (일본 히로시마대학교 한국어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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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년 8월의 히로시마

올여름 찜통더위 속에서도 연신 손수건으로 흐르는 땀을 닦으며 많은 사람들이 히로시마 평화공원을 찾았다. 8월 6일 아침 8시 15분. 평화의 종과 사이렌이 울리자 평화공원 위령비 앞에서 전몰 유족과 시민들이 모인 가운데 ‘히로시마시 원폭 전몰자 위령식 및 평화 기념식’이 시작되었다. 원폭이 투하된 지 71주기가 되었지만, 히로시마 시민들에게는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 없는 날이 다시 돌아온 것이다. 해마다 8월이 되면 일본 각지와 세계에서 히로시마 시민들을 위로하고 평화를 기원하기 위하여 히로시마를 찾는다. 이들은 평화공원과 주변의 피폭지를 돌아보면서 더 이상은 이 지상에 핵무기가 존재하지 않도록 간절하게 기도한다. 1981년 히로시마를 방문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도 히로시마평화선언을 통해 “전쟁은 인간이 행한 짓입니다. 전쟁은 인간의 생명을 파괴합니다. 전쟁은 죽음입니다. 이 히로시마의 도시, 이 평화기념 성당만큼 강렬하게 이 진리를 세계에 호소하고 있는 곳은 달리 없습니다”라고 했고 많은 세계 각국의 정치․종교지도자들이 찾아와 평화에 대한 메시지를 남겼다. 지난 5월에는 가해국이랄 수 있는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도 “멀지 않은 과거에 우리가 행한 끔찍한 파괴력이 이 도시에 행해진 사실을 반추해 보기 위해” 왔다면서, 짧은 시간이지만 위령탑에 헌화하였다. 그는 원폭으로 숨진 영령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나의 조국 미국과 같이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들은, 위협의 논리에서 빠져나와, 핵무기가 없어진 새로운 세상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라고 했다. 일본 사람들이 기대한 사과 발언은 없었지만, 미국 대통령 중 처음으로 자발적으로 찾아왔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의의를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People carry the remains of a statue of Mary that survived the Nagasaki atomic bomb as they march through the streets Aug. 9, the 67th anniversary of the bombing in Nagasaki, Japan. About 70,000 people died in the bombing. (CNS photo/Kyodo, Reuters) (Aug. 9, 2012) Editors: for editorial use only.

People carry the remains of a statue of Mary that survived the Nagasaki atomic bomb as they march through the streets Aug. 9, the 67th anniversary of the bombing in Nagasaki, Japan. About 70,000 people died in the bombing. (CNS photo/Kyodo, Reuters) (Aug. 9, 2012) Editors: for editorial use only.

  • 일본 가톨릭교회의 평화주간

일본 가톨릭교회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방문 이듬해인 1982년부터 과거의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하여 히로시마 원폭이 떨어진 8월 6일부터 나가사키 원폭이 떨어진 9일, 패전한 15일까지를 ‘일본 가톨릭 평화주간[平和旬間])’으로 정하고 각 교구별로 평화기원미사와 강연, 교류활동 등을 하고 있다. 올해 히로시마 교구의 경우도 8월 5일에 재일교포 신자인 박남주 할머니의 원폭피해 증언을 들은 후 평화공원 내 원폭공양탑 앞에서 전국에서 모임 가톨릭과 성공회의 성직자와 신자들이 함께 ‘합동기도집회’를 열고 노보리쵸(幟町) 세계평화기념성당까지 평화를 외치며 행진을 하였다. 그리고 저녁에는 평화기원미사를 봉헌하고 한국에서 온 청소년들과 함께 떼제의 기도를 올렸다. 6일에는 불교, 신도(神道), 그리스도교 등 여러 종교인이 모여 ‘종교인 평화의 기도’를 하고 평화기념성당에서 ‘원폭· 모든 전쟁 희생자를 위한 추모미사’가 올려졌다. 그리고 ‘2016 피스워크 군도(軍都) 히로시마를 걷는다’라는 행사를 열어 시내에 남아있는 옛 군사시설과 원폭의 현장 등을 직접 걸으며 일본이 옛날과 같은 군국의 길을 걷지 않도록 기원하였다. 올해도 한국에서 가톨릭 청소년들이 방문하여 평화교류와 학습을 하고 돌아갔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원폭으로 히로시마의 도시가 폐허가 되고 이후 재건하면서 그 바탕에 둔 것이 절대 전쟁은 없어야한다는 ‘평화도시선언’이었다면, 어쩌면 일본 가톨릭교회도 전쟁을 통해서 망가지고 굴절된 자신들을 바로세우기 위해 바로 이곳 히로시마를 주춧돌로 삼은 게 아닐까라는. 원폭으로 무너진 히로시마 시내의 노보리 성당을 당시 벨기에인 주임 신부와 신자들의 노력은 물론 세계 각지 교회의 후원에 힘입어 다시 짓고 세계평화기념성당으로 봉헌하였다. 그날의 참상을 고백하듯 전면을 투박한 회색 콘크리트로 지은 성당이다. 나는 이 성당을 찾을 때면 항상 정면에 새겨져 있는 성당기(聖堂記)를 읽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히로시마의 원폭은 도시만이 아닌 일본 가톨릭교회도 무너뜨렸고 부활시켰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 일본 가톨릭교회의 전쟁 책임

니시야마 토시히코(西山俊彦) 신부는 『가톨릭교회의 전쟁책임』(일본 성바오로, 2000)라는 책에서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나쁜 것을 피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행한다면 ‘책임’이 따른다. 부정한 전쟁을 회피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행, 혹은 협력한다면 ‘전쟁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예언자적 증거를 사명으로 사는 종교인이, 그 동기, 목적, 결과, 실태 등 어느 관점에서 봐도 나쁘고 인도(人道)에 어긋나는 부정한 것을 알면서도 전쟁에 반대하지 않는다면 모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1986년 9월 26일, 도쿄에서 열린 아시아주교협의회(FABC) 총회 미사에서 도쿄대교구 시라야나기 마고토(白柳誠) 대주교는 이렇게 발언하였다.

“우리 일본 주교는 일본인으로서 그리고 일본 교회의 일원으로서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안겨준 비극에 대하여, 하느님과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형제들에게 용서를 청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그 전쟁에 관여한 사람들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2천만이 넘는 사람들의 죽음에 대하여 책임을 지니고 있습니다. 나아가 오늘날까지도 이 지역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 등에 아픈 상처를 남기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과거 일본 가톨릭교회가 행한 것에 대한 반성이 시작된 것이다. 그 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런 평화에 대한 메시지가 발표되고 그 내용에는 교회의 고백이 실리고 있다. 그런데 과연 어떤 잘못을 하였기에 반성하고 용서를 청하고 있는 것일까? 크게 나눠보면 국내적으로는 만주사변 이후에 마찰이 심해진 교회가 자신들의 존망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 신사참배를 용인한 것과 국제적으로는 일본의 괴뢰국인 만주국을 교황청이 승인하도록 도운 것을 들 수가 있다. 종합적으로 생각해 볼 때 일본이 행한 침략전쟁 중에서 일본 가톨릭교회는 적극적인 대항이 아닌 침묵을 선택하였고, 더 나아가 위와 같은 부정한 일에 처음엔 적극적이지 않았지만 이윽고 협력의 길을 걸은 것이다. 메이지시대 이후 군사국가의 길을 달려오면서 아시아와 세계에 커다란 피해를 입혔지만 일본 가톨릭교회가 처음부터 잘못을 인정한 것은 아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아오키 시즈오(青木静男) 신부가 일본과 일본 가톨릭교회는 과거 ‘권위적’인 ‘체질’이 같았고 자신들이 범한 잘못을 절대 인정하지 않았다고 비판하였듯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개최되어 교회에 새로운 공기가 들어오고 나서야 비로소 과거의 방침을 크게 바꾸고 교회의 존재를 근본적으로 쇄신하게 되는 기회를 맞이한 것이다.

  • 반성과 성찰

일본 가톨릭 주교단은 1995년에 『평화를 향한 결의, 전후 50주년을 맞이하여』를, 2005년에는 『비폭력에 의한 평화의 길: 지금이야말로 예언자로서의 역할』, 2015년에는 『평화를 실현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지금이야말로 무력에 의존하지 않는 평화를』 등의 메시지를 10년을 주기로 발표하며 평화에 대한 결의를 다짐하고 있다. 그중 최근 2015년 2월 25일에 발표된 전후 70주년 주교단 메시지인 『평화를 실현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지금이야말로 무력에 의존하지 않는 평화를』의 내용을 간단히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교회는 인간 생명과 존엄에 관한 문제에 침묵할 수 없으며 과거 전쟁의 비극을 반성하고 종교적 영역을 넘어서 인류적 문제로 받아들이자고 한다.
  2. 과거 한반도 등에 대한 식민지 지배, 중국이나 그 밖의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침략 행위로 아시아인에게 커다란 고통과 희생을 안겨준 사실을 반성하고, 원폭 후 평화에 대한 갈망이 일어나 주권재민, 전쟁포기, 기본적 인권 존중을 바탕으로 1946년에 일본국 헌법이 공포되었기에 주교단은 헌법에 명시된 부전(不戰)의 이념을 지지하고 존중하는 것은 당연하기에 전쟁 포기를 결의한다.
  3. 일본 교회의 평화에 대한 결의로서 전쟁 전과 전쟁 중에 일본 교회가 취했던 자세에 대한 반성을 바탕으로 평화를 위해 호소하고 일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자각한다.
  4. 특정비밀보호법이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용인하여 헌법을 바꾸어 무력행사를 가능하게 하려는 것은 문제가 있고 일본을 비롯한 각국이 군비증강보다는 관계개선을 위한 대화와 교섭이 필요하다.
  5. 지금과 같은 세계정세의 심각한 위기 속에서 무관심을 떨쳐버리고 인내를 지니고 평화와 상호이해를 위한 견실한 노력을 쌓아가자.
  6.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톨릭교회는 작은 존재이지만 그리스도교 모든 교파들과 더불어, 모든 종교의 신앙인과 더불어, 나아가 전세계의 평화를 기원하는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평화를 위해 노력해 나갈 것을 결의한다.

이런 메시지는 일본 가톨릭 고위층의 그저 그렇게 때가 되면 하는 의례적 언사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이는 일본주교협의회와 그 산하 정의평화협의회가 시시각각 우경화로 치닫고 있는 일본 사회에 과거에 대한 반성을 일관되게 촉구하고 일본이 다시 군국주의 길로 들어서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면서 평화헌법을 지켜나가기 위해서 강력하게 대응하고 있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 평화를 지키기 위한 교회의 역할, 그리고 반대의 목소리

아무래도 지금 일본 가톨릭교회가 가장 관심을 두고 있고 우려하는 문제는 오키나와의 미군 기지를 확장하는 문제, 집단적 자위권 행사와 일명 평화헌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 등일 것이다. 예를 들면 지난 2014년 7월 3일에 발표한 일본가톨릭주교협의회 상임주교위원회가 내각 총리대신 아베 신조에게 보낸 『집단적 자위권 행사 용인의 각의 결정에 대한 항의 성명』과 2015년 9월 19일에 정의평화협의회가 아베 총리와 참의원 의장에게 보낸 『항의 성명』을 보면 일관되게 군비증강과 무력행사에 의해 안전보장이 확보될 수 없고 평화를 훼손하는 위험한 생각이며 더 나아가 무효인 법률이기 때문에, 헌법을 무시하고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실현하는 법률은 입헌주의라고 하는 국가의 근간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비판하였다. 더욱이 정부의 이런 태도는 국제적 긴장을 고조시켜 적개심을 선동하고 사람을 전쟁으로 몰아넣고 독재사회로 길을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올해 5월에는 정의평화협의회가 『교회는 인간의 생명과 존엄에 관한 문제에 침묵할 수 없다』는 소책자를 발간하였다. 무료로 배포한 이 책자는 신자들에게 국회가 개정하려는 헌법의 내용과 문제를 쉽게 알려 주고 교회의 입장이 어떤지, 평화롭게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할지를 설명하였다. 또한 직접적인 행동으로 개신교 및 여러 종교 단체와 더불어 <전쟁법 폐지를 위한 2000만 명 통일서명>을 진행하기도 하였다. 지난 6월 5일에는 7월에 실시될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국회 앞에 시민 4만 명이 모인 집회가 열렸는데 이때 정의평화협의회도 여러 종교단체 등과 함께 참가하여 ‘정치를 바꾸자’, ‘선거하러 가자’, ‘개헌 반대’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 밖에도 3․11 이후 일본 사회의 큰 이슈인 원자력발전소 폐지문제나 아직도 사형이 집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사형제 폐지에 대한 운동도 지속적으로 펴나가고 있으며, 작년 말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한일 간 졸속 합의에 대해서도 비판하는 담화(2016.1.15)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과연 모두 이렇게 반성과 성찰을 바탕으로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전 가고시마교구 교구장인 이토나가 신이치(絲長眞一) 주교는 자신의 개인 블로그에 「교회에게 전쟁 책임을 묻는가?」라는 글에 “교회는 어디까지 종교단체이지 정치단체가 아니기 때문”에 ‘쇼와전쟁’의 책임을 물을 수 없고 오히려 “전쟁협력에 강요된 피해자”다고 하며 앞서 언급한 니시야마 신부의 저서를 비판하였다. 그리고 “일본 가톨릭교회가 역경을 견디며 여러 제약 속에서도 본래의 영적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 전력을 기울여 왔다”고 했다. 이것은 식민지에서 해방된 한국의 전후 가톨릭교회의 입장과 어쩌면 이리 같은지 신기할 뿐이다. 태평양 전쟁 전의 가톨릭에 대한 이토나가 주교의 인식이 얼마나 많은 신자들에게 공감을 사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작년의 ‘전후 70년 메시지’를 두고 주교단이 왜 정치적 발언을 하느냐, 주교협의회나 정의평화협의회의 활동을 두고 ‘정교분리’의 원칙에 어긋난다며 불편하게 생각하는 가톨릭 구성원들이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그래서 인지 이번 2016년 4월 7일에 일본가톨릭주교협의회 상임주교위원회가 『지금이야말로 무력에 의하지 않은 평화를 – 안전보장관련법 시행에 즈음하여』라는 담화를 발표하면서 “‘정교분리’는 ‘정치와 종교의 분리’가 아니라 ‘국가와 종교단체의 분리’를 의미합니다. 특정 종교단체가 국가와 권력 지배·피지배의 관계에 들어가는 것을 금지하고, 종교단체가 국가권력을 행사하고 권력과 유착하거나 편의를 제공받거나 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과 정치활동의 옳고 그름은 구별됩니다”라고 하며 “교회는 인간의 생명과 존엄에 관한 문제에 대해 침묵할 수 없다”는 작년의 메시지를 인용하면서 “주교단은 최근 일본 정치의 흐름이 미래 우리의 삶에서 ‘인간의 생명과 존엄에 관한 문제’가 될 위험을 안고 있음을 신앙인으로서 주시할 필요가 있음을 표명하는 것입니다”라고 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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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가톨릭정의평화협의회

현재 일본 가톨릭교회의 평화운동을 주도하는 것은 일본가톨릭주교협의회 사회사목위원회 산하 ‘정의평화협의회’이다. 잠시 이 협의회에 대해 소개를 하면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1970년에 발족하여 복음의 메시지를 행동의 토대로 삼아 빈곤, 억압, 차별 속에서 인간으로서 당연한 권리를 빼앗긴 채 고통에 절규하는 많은 형제자매들과 연대하며 정의와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활동하고 있다. 활동은 NCC와 같은 개신교 단체와 여러 종교단체와 함께 헌법 9조를 지키는 등의 평화운동과 신앙의 자유를 지키는 운동, 핵을 폐기하는 운동, 환경문제와 사형폐지 등의 생명운동, 그리고 해외와의 연대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정의평화협의회가 속한 사회사목위원회에는 주목할 만한 다른 위원회들이 있는데, 일본가톨릭부락차별인권위원회나 일본가톨릭난민이주이동자위원회 등은 과거부터 뿌리 깊었던 부락(천민집단) 차별문제를 해결하고, 그리고 지금의 다문화 사회 속에서 이주민 등이 겪는 문제들을 교회가 직접 나서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작은 교회의 한계를 넘어서

한때 사제의 길을 걷다가 지금은 세상의 길로 나와 일본에서 살고 있는 모 선배에게 일본 가톨릭교회의 평화운동에 대한 지혜를 빌리고자 하였더니 그의 대답은 냉정하였다.

“물론 전쟁에 대한 반대와 평화에 대한 강론 등을 하지만 본당 일선에서 현실적으로 행동으로 이루어지는 활동은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한국처럼 정의구현사제단이나 천주교인권위원회나 평신도운동단체 같은 것을 별로 보지도 못하였고 정의평화위원회 정도의 수준에서 소수의 엘리트들만의 활동이 아닐까? 더구나 성직자나 수도자 수도 많지 않은데다가 그 성직자들도 고령화되어 현실적으로 활동하기가 어려울 것이고, 운동의 토대라고 할 수 있는 신자 교세도 미비하기에 어떤 활동을 하기에는 제약이 있을 것이다.”

‘엘리트’ 운동에 머물러 있지 않을까 하는 선배의 지적에 대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전후 일본에서는 사회 곳곳에서 풀뿌리처럼 평화를 학습하고 행동하는 많은 시민들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고령이 되었지만 지금도 변함없는 현역이다. 일본 가톨릭교회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일본인의 정서처럼 조용히, 근면하게, 차근차근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보통 일본 인구 1억 2천 명 가운데 그리스도교 신자는 1%라고 알려져 있다. 그 1%도 개신교 신자를 더한 수이다. 그리스도교를 믿는 신자가 많다고 꼭 사회가 더 아름다워지지는 않겠지만 일본에서는 소수종교의 한계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소금이 많아서 소금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닌 그 맛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듯 작은 교회이지만 평화를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역할을 하는 것이라도 본다. 내가 가끔 다니는 성당은 연로한 수녀님들이 머무시는 수녀원 내의 작은 준본당인데 지난 미사에서 보니 제단 옆에 멀리서도 바로 보이게 아주 큰 붓글씨로 <평화의 사도가 되자!>라는 표어가 있었다. 누군가에겐 그저 단순한 표어일지도 모르겠지만 어떤 누군가는 원폭의 재해 위에 다시 세워진 히로시마와 일본을 떠올려보았을 것이고 현재 군사대국으로 향하려는 일본을 위해 기도할 것이다. 전후 71년이 지난 현재의 일본을 보면 그렇지 않아도 평화헌법을 포기하고 군사대국화로 나아가려는 집권 자민당이 중의원 참의원을 석권하였으니 위기라면 위기이다. 하지만 일본 가톨릭교회(더 나아가 전체 그리스도교)에서는 이런 시국일수록 더욱 큰 목소리로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미래를 향해 평화를 실현하는 사람이 되자”고 한다. 동아시아지역의 일원으로서 그리고 같은 가톨릭교회로서 우리 한국 시민, 한국교회가 어떻게 평화를 위해서 노력해야 할지는 모두 답을 갖고 있을 것이다. 전쟁을 반복하지 않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본 시민, 일본 교회와 함께 더 많은 연대와 행동이 필요할 것이다.


이용철. 일본 히로시마대학교 한국어 강사.

박남주 할머니는 당시 중학교 1학년으로 폭심지에서 겨우 1.7km떨어진 전차 속에서 “피카아 똥(번쩍 쾅)”하는 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리고 내려 보니 히로시마 시내는 마치 도시 전체가 사라져 버린 그저 불바다 속의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고 하였다. 미국의 공습에 대비하여 근로 작업에 동원되었다가 건물을 소개(疏開)하는 작업을 하던 중 다쳐서 집에서 며칠을 쉬었다고 한다. 상처가 다 나았지만 그날 아침에는 왠지 꾀병을 부리게 되었고 등교하지 않아서 자신은 죽지 않았다고 한다. 그날 아침 등교한 동급생들의 죽음을 생각할 때 살아남은 것조차 하느님의 축복이라고 차마 이야기할 수 없었노라고, 그래서 오랜 시간 원폭에 대한 경험을 사람들과 이야기하지 않는 것을 불문율처럼 여기며 살아왔노라고 하였다.

《크리스천투데이》 2016년 8월 11-12일, 피폭 71년 기획기사.

평화기념성당 성당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이 성당은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투하된 세계 최초의 원자폭탄으로 희생된 사람들을 기억하고 위령하기 위하여, 또한 만국민의 우정과 평화의 상징으로서 이곳에 세우게 되었다. 그렇기에 이 성당에서 항상 전해야 할 것은 거짓이 아닌 진실, 권력이 아닌 정의, 증오가 아닌 자애, 즉 인류에게 평화를 주신 하느님의 길인 것이다. 따라서 이 성당에 와서 기도하는 모든 이들은 죽은 희생자의 영원한 안식과 인류 상호의 영원한 평안을 위하여 기도하기를 바란다. 1954년 8월 6일”

아오키 시즈오 신부의 「가톨릭교회의 전쟁협력」(1999.10.16 강연)

1946년에 제정된 일본헌법은 그중 제9조에 다음과 같은 조항을 명시하여 스스로 과거와 같은 군사대국화로 가는 길을 차단하였다. “제9조 ①항 : 일본 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평화를 성실히 희구하고, 국권의 발동에 의한 전쟁 및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 영구히 이것을 포기한다. ②항 : 전항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육해공군 및 그 외의 어떤 전력도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 역시 인정하지 않는다.”

《크리스천투데이》 2016. 5. 27.

《크리스천투데이》 2016. 4. 26.

《크리스천투데이》 2016. 6. 5.

이토나가 신이치 주교의 가톨릭 시평. (http://mr826.net/psi/blog/150601)

http://www.cbcj.catholic.jp/jpn/cbcj/comt.htm

2014년 일본의 교세현황은 인구 128,438,368명 중 총신자수 436,291명(약 0.34%)이다. 성직자는 1,406명이다.

2014년 평화순간(平和旬間) 일본가톨릭주교협의회 회장 담화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미래를 향해 평화를 실현하는 사람이 됩시다』(2014. 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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