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Cool – 교회 내 갑을 문화,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옥자

교회 내 갑을 문화, 어떻게 생각하세요?

2013년 봄, 한국사회는 대기업 임원의 항공기 여승무원 폭행 사건, 남양유업의 밀어내기 영업,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으로 온통 시끄러웠고 이에 각 언론사와 SNS 등에는 ‘갑질’, ‘슈퍼갑’, ‘갑의 횡포’와 같은 낱말들이 넘쳐났다.

갑을관계는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러나 유독 한국 사회는 ‘노예 관계’라는 말이 나올 만큼 유난히 더 심하다. 혹자에 따르면 이런 현상은 조선 시대 관존민비에 뿌리를 둔 갑을관계가 해방 이후 ‘전관예우’, ‘브로커’라는 사생아를 낳고 선물과 뇌물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으며 이런 현상은 한국을 ‘전관예우 공화국’, ‘브로커 공화국’, ‘선물의, 선물에 의한, 선물을 위한’ 나라로 탄생시켰다고 한다.

이렇듯 지속되어온 갑의 현상에 ‘을의 반란’이 시위와 데모로 표출되었고 21세기에 접어들어서는 SNS 등의 활성화로 좀 더 넓게 확장되고 있다. 결국 갑을관계를 지속해나가는 건 을 뿐 아니라 갑에게도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밖에 없음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이에 일부 기업에서는 계약서 등에 갑을 문구를 빼는 등 갑을문화를 타파하려는 자정노력을 보이는데, 결국 갑을문화는 정의와 도덕이라는 관점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이익을 나누는 성장과 혁신 차원에서도 타파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보인다.

그렇다면 교회는 어떨까? 교회 내 갑을관계는 단연 성직자와 평신도다. 가장 작은 단위의 본당에서 평신도는 성직자의 계획과 지시에 따라 움직이며, 교구나 기관 역시 거의 대부분 성직자 수장에 의해 운영된다. 하지만 성직자가 운영하는 만큼 공정과 인권이 지켜지거나 평등과 정의가 구현되지는 않는다는 게 교회관련 종사자들의 전언. 교회기관인만큼 차별화되기를 바라지만 그런 바람은 충족되지 못하고 그에 따른 실망도 크다. 또한 같은 평신도간에도 본당 직원과 신자들 사이, 같은 직원에도 관리직과 사무직의 갑을문화는 사회의 것과 다르지 않다. 이렇듯 예수가 보여준, 차별 없는 정의로운 세상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 지금의 교회라는데 이에 교회 내 갑을 입장에 있는 이들과의 좌담회를 통해 서로의 입장을 들어보고 좀 더 발전된 교회의 모습을 지향해 갈 방안을 찾아본다.

일시 : 2013년 6월 10일, 월요일 오후 2-4시

참석 : 김영숙(CMC 해고 노동자), 이숙희(CMC 해고 노동자), 신성국(청주교구 사제), 허은(서울교구 본당 사무원), 경동현(우리신학연구소 소장)

진행 : 김옥자

안녕하세요. 참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좌담회는 이분법적인 시각에서 어느 한쪽을 성토하기 위한 건 아니고, 저희 모두 그리스도교 신자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교회다운 교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모아 이야기해보면 좋겠다 싶어 마련된 자리입니다. 그럼 각자 체험한 갑을문화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볼까요?

(* 아래 본문에서는 모든 호칭에 경어 사용을 하지 않습니다.)

갑들의 전성시대

허 : 저는 5년간 본당 사무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전에 여러 직장을 옮겨 다니면서 임금체계나 휴가 등이 불안정해서, 좀 안정적이고 휴가도 잘 지켜줄 것 같은 곳을 찾다가 일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근무 기간이 오래되다보니까 임금은 체불되진 않았지만 휴가 같은 건 눈치를 봐야 했어요. 실은 며칠 전부터 육아휴직을 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도 갑을문화를 실감나게 체험했습니다.

김 : 무슨 일이 있으셨어요?

허 : 흔히 교회 내 갑을문화 하면 단순히 신부와 직원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적어도 본당 안에는 신부 그룹과 수도자, 사목회, 열심한 신자들이 갑의 입장이에요. 특히 신자들은 신부 성향에 따라 갑이 되느냐 을이 되느냐 정해지는데 우유부단한 신부일 경우 당신이 불편한 사안은 신자들이 해결해줄 때까지 뒤로 물러나 있죠.

이번에도 필요한 모든 서류와 절차를 밟고 후임까지 결정되서 인수인계하고 막 육아휴직을 하려는 마지막에 사목회장이 느닷없이 인사위원회를 꾸렸다며 막았어요. 표면적인 이유는 후임자가 사무장과 너무 친해 다른 신자들이 반대한다는 거였어요. 결국 다시 후임을 구한다며 제게 두 달 더 다니라 해서 ‘제 육아 휴직은 이미 교구장님 승인이 난 거예요’라고 말하고 시작했죠. 엄밀히는 저희가 교구청 소속 직원이거든요.

김 : 본당 직원 선발을 사목회에서 관여하나요?

허 : 교회법은 잘 모르지만, 사목회 안에 인사위원회가 있기는 해요. 새 직원 뽑을 때 간단한 면접 정도 하는 정도인데, 이번 사목회장은 아예 인사권의 전권을 신부에게 위임받았다면서 적극적으로 나섰어요. 사실 전 연차휴가도 3일이나 포기했어요. 신부는 연차휴가를 먼저 한다고 하니까 1년의 반도 안 지났는데 연차휴가를 다 쓰냐며 질책했지만 사실 연차휴가는 작년 1년간의 근무에 대한 보상이거든요. 요즘 기업에서는 성폭력예방교육이 필수라지만 교회는 근로기준법 교육부터 시작해야 할 거 같아요.

김 : 신부님도 본당 경험이 있으실 텐데요, 허은 씨 이야기 듣고 어떤 생각이 드셨어요?

신 : 예. 저도 본당신부 생활을 했는데요, 지금 말씀 들으면서 안타까운 것이, 7-80년대도 아니고 지금은 기업에서 노동법을 지킬 수밖에 없어요. 지키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거든요. 사실 사회보다 더 솔선수범해서 노동법을 지켜야 하는 것이 교회의 본분이죠. 저를 포함한 성직자 집단이 복음과 사회교리를 이야기하지만 현실적으로 허은 씨에게 한 행위만 봐도 복음정신에 어긋나거든요. 지금은 얼마나 나아졌는지 모르겠지만 과거에 본당 신부가 바뀌면 사무장들이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되는 경우가 허다했지요. 교회가 가장 강조하는 인간 존엄성과 인권은 문서에만 기록될 일이 아니라 실천해야 할 윤리적 의무죠.

김 : 그래서 각 교구(??)마다 본당 사무실 직원들을 교구청 직원으로 등록하게 되었죠.

신 : 안타까운 건, 교구청 소속 직원으로 바꿨다해도 본당 신부가 맘에 안 들면 어떤 식으로든 정리해버린다는 것이죠. 일반 사회보다 심각한 갑을 관계에요. 하지만 가톨릭교회는 교황 회칙과 사회교리를 통해 ‘노동자 문제’, ‘노사관계’ 전반에 대한 가르침을 제시하고 있어요. 어디에 내 놓아도 손색없는 그런 훌륭한 문헌이거든요. 하지만 구슬도 꿰어야 보물이 되는 것처럼 적용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죽은 문헌’일 뿐이죠. 사실 사회교리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교회구성원 모두가 지킬 계명으로서 의무 신앙이거든요.

어느 새 11년~

김 : CMC는 어땠나요?

김영 : 전 11년 전까지는 여의도 성모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했었구요, 병원 분규 일어나면서 해고되어 지금까지 복직투쟁을 하고 있어요. 저희 병원도 허은 씨 말씀과 다를 게 없어요. 처음 들어갈 때는 그냥 대학병원이라는 것만 보고 들어갔는데 막상 들어가 보니 가톨릭의 성향이 강했어요. 보통 사업장에서 노동자 대표와 사업자 대표는 갑을이 아니에요. 그래서 노동자들이 회사 측과 교섭을 할 때 ‘노동자를 대표하는 사람과 회사를 대표하는 사람이 대등한 입장에서 교섭을 진행한다’고 하는데 우리는 지부장들이 교섭을 하면서도 ‘신부님’이라고 하고 요구조건도 우회해서 ‘신부님 해 주십시오’ 하는 거예요. 정말 이해가 안 갔죠.

어찌 되었든, 교회에서야 사제로 존재하지만 병원에는 사업주 역할만 해야 하는데, 굉장히 이중성을 갖고 있는 거죠. 이렇게 노조관계 속에서도 종교가 개입되어 있다 보니, 갑을이 되더라구요.

노조 뿐 아니라 간호 현장에서는 수녀들과의 갑을관계도 심했어요. 학교 다닐 때는 분명 동창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과장이 되어서 나타나는 거예요. 일반 간호사는 밤 근무에 몇 년씩 힘든 과정을 겪어야 겨우 될 수 있는 직급인데, 그분들은 그런 과정을 겪지 않고 낙하산으로 내려오니 업무에 대해 이해도 부족하고 갈등이 심했어요.

참, 한 달 전에 서울 성모병원에서 CMC 산하 병원 소속 노동자 5백 명이 영세를 했는데 대부 대모, 가족들 해서 따라온 사람들이 다 해서 1,000명 넘게 장관을 이루었다고 해요. 서울대교구 지침이었는지 병원장의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가톨릭 사업장에 다니면서도 나이스하다고 생각한 게 동국대병원은 불교 신도증이 있어야만 취업이 되는데 여긴 그렇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교리 듣는 게 팀장의 실적이 되고, 타종교 신자들에게조차 교리 받으라는 강요가 있으면서 또 하나의 갑을이 형성되었어요. 물론 그런 경우 영세하면 바로 냉담하죠.

글쎄요, 언제부터 가톨릭이 이렇게 양적 증가만을 추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전 병원 이념이 적힌 액자를 다 떼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념은 사라졌어요. 18년간 근무하면서 많이 체험했죠. 성직자, 수도자들의 행위들 참 억울한 적이 많았어요.

김 : 같이 공부한 친구들이 승진을 해서 과장도 되고 부장도 되는 거 아닌가요?

김영 : 좀 다른 게 일반 간호사들처럼 신입 근무서부터 밤 근무며 힘든 일을 해본 사람과 학교만 졸업했지 따로 근무하지 않은 사람과는 경험이 다르거든요. 수녀들은 수녀원 규정 때문에 밤 근무를 안 해요. 자연히 리더십도 달라지죠. 예를 들어 평간호사들이 밤 근무를 하면 일반인들은 자겠지 생각하지만, 전혀 아니거든요. 예전에 밤 근무하고 나면 캡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어요. 밤새 뛰어다녀서 수증기가 올라가서요. 아침 되면 정말 지치는데 그런 사람들 세워놓고 억울한 야단을 칠 때가 있어요. 그러면 ‘저 수녀가 밤 근무 경험을 했더라면 이러진 않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요. 확실히 신부, 수녀들도 사회 경험 있는 분들은 다르더라구요.

김 : 일반 병원인 경우 평간호사가 수간호사, 간호과장, 간호부장이 되는 식인데 CMC는 안 그런가 보죠?

이 : 예전엔 그랬는데 요즘엔 달라요. 수녀원에서 일을 하다가 관리자 양성을 위해 간호대학에 보내주는 케이스들이 있거든요. 야간 간호대로 보냈다가 다시 주간으로 편입시키고, 졸업 후엔 1-2년 정도 평간호사들과 업무를 하다가 훌쩍 올리는 거죠. 단계와 경력은 다 무시되고요.

일반 간호사들도 현장에서 아무리 일 잘하고 환자들이 좋아해도 신부나 수녀들에게 미움을 사면 승진이 어려워요. 이번에 500명 영세한 분 중 한 분이 병원장에 대한 꿈이 있는 개신교 의사인데 말 들어보니까 관리자들은 이번에 거의 다 종교를 바꿨다고 해요. 살아남기 위한 개종이죠. 물론 그 신앙생활이 어떨지는 충분히 짐작이 되구요. 아마 앞으로는 가톨릭 신자만 뽑는 그런 병원으로 갈 거 같아요.

이 : 무언의 강력한 지침을 심어준 거죠. 가톨릭 신자가 아니면 가톨릭 사업장에서 일할 수 없다. 병원 내에서도 공공연히 ‘왜 가톨릭 사업장에서 신자도 아닌 사람들에게 월급을 줘야 하냐’는 이야기들이 오고갔나 봐요.

김 : 현재 이사장님은 누구시죠?

신 : 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 주교가 재단 이사장이고 학교법인과 의료법인의 상임이사는 박신언 몬시뇰이죠. 박 몬시뇰이 군종 출신이에요. 군 출신 관리자로서의 장점도 많겠죠. 하지만 무엇보다도 교회 정신에 바탕을 둔 경영자의 자세가 기본인데 그런 측면에서 재단이 교회 가르침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지를 깊이 성찰하고 따져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 그러고 보니 그때 교섭 당시, 노사가 양쪽에 앉아있는데 의료원장님은 항상 앞자리에 앉아 교섭을 관장하는 분위기로 진행이 되었어요. 그 상황은 관례처럼 묵인이 되었고요. 지금은 의사가 맡고 있지만 예전엔 신부님이 맡았거든요. 어디서도 그런 노사협상 테이블은 없어요. 그래서 같은 대등한 자리로 내려와야 하지 않느냐고 이의를 제기했고 나중에는 보건의료 위원장을 양쪽에 앉게 했었죠. 웃지 못 할 해프닝이 많았습니다.

팔은 왜 안으로만 굽을까?

김 : 대부분 병원에서는 의사가 갑인데 CMC는 신부가 갑이군요.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게 일반 사회에서는 작은 일로도 SNS 등에서 난리가 나지만 교회는 전혀 그렇지 않거든요. 그런 현상을 어떻게 보세요?

김영 : 그게 참, 아마 공론화시키면 자기 종교에 대한 위협이 될까봐, 자기 때문에 오랜 기간 좋은 이미지로 형성된 종교를 다른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볼까봐 두려움을 갖고 있는 거 같아요.

김 ; 선생님도 그러세요?

이 : 그러게요.

김 ;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셨을까요?

이 : 생각해보면 그런 의식조차 하지 못한 채 그냥 지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이런 좌담회도 필요하구나 싶은 생각도 드네요.

언젠가 절에 갔을 때 처음 보는 한 스님이 저한테‘가톨릭 신자 아니냐’고 하는 거예요. 20년 넘게 가톨릭 기관에서 생활하다보니 어느 새 분위가가 배었는지, 저도 모르게 순종적이고 기에 눌려 지낸 거 같아요. 제 나름대로는 꽤 싸워왔는데도요.

한번은 저희 기수를 놔두고 아래 기수가 승진이 됐어요. 그 때 승진 못한 이들은 싸울 생각도 안하는데 제가 관리자 수녀에게 왜 승진에서 누락되었는지 이유가 뭔지, 평가기준이 뭔지 따졌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 그 수녀가 본당으로 갔다가 나중에 병원에 왔는데 그때는 갑의 모습이 아니었어요. 전, 신부나 수녀 모두 경영에 참여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허 : 사소한 거지만, 청년 활동할 때 청년담당 젊은 신부와 잘 지냈는데 저한테 SNS 친구신청을 하라는 거예요. 그래서 ‘신부님이 신청하시면 되죠’라고 했더니 놀라는 거예요. 처음에 무슨 영문인가 하다가 ‘아~’ 했어요. 일상이 이런 식이죠. 예전보다 신자들 목소리가 커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신자들은 신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참아요. 사제관 일 도와주시는 어머님들도 서운하고 불편한 게 있어도 ‘이제 얼마 안 있으면 가실 텐데’ 하는데 그 말이 ‘최대한 맞춰주고 피곤하게 안 살 거야’ 이렇게 들리더라구요. 또 신부님과 사목회 간의 보이지 않는 밀당이랄까요, 새로 부임한 신부일수록 그런 게 심하죠. 실제 사목회에서 자기를 길들이려고 해서 피곤하다던가 하는 말은 공공연히 하는 말이구요.

김 : 지금까지는 을의 입장만을 이야기해봤는데요, 갑을문화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것 같아요. 갑의 체험을 이야기해보신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김영 : 언젠가 기가 쎈 분이 입원을 하셨는데 처음 병원에 오셨을 때는 그야말로 지리산 호랑이처럼 보였는데요, 딱 환자복을 입으시는 순간 그저 환자분이 되시더라구요. 그런 경우 간호사가 갑이고 환자가 을이 되는 거지요. 간호사와 조무사들 관계도 갑을이구요.

이 : 조무사들에게 동등하게 한다고 했는데, 어땠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제가 생각하는 갑은 얼마 전 끝난 드라마 ‘직장의 신’에서 미스 김을 가르치고 예뻐 해주던 은행 중간관리자 같은 모습이에요. 병동에서 일할 때 수간호사들이 평 간호사들에게 하는 걸 보면서 답답한 적이 있었어요. 일하다보면 실수도 하고, 또 의사나 환자들이 무리한 요구를 할 때가 있거든요. 수간호사는 그런 걸 막아줘야 해요. 제가 병동에서 잠시 근무하면서 후배들에게 환자나 의사들과 부딪치는 부분을 막아주고 정리해준 적 있는데 간호사들이 굉장히 고마워하며 따랐어요. 그때 후배들과 잘 지낸 것이 2002년 파업에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그때 병동 간호사들이 ‘저 선배면 같이 해도 될 것 같아’라고 하면서 많이 협력했거든요.

김 : 어떤 관리자는 ‘잘해주고 싶다가도 기어오를지도 몰라 안 된다’는 말도 하시던데.

이 : 맞아요. 어떤 의사에게 왜 똑똑한 의사들을 잡아야지, 개업하게 만드냐 했더니 똑똑하면 기어오른다고 그러더라구요.

신 : 전 오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때 CMC가 노사문화의 모델이 되어 다른 병원 노사보다 더 바람직한 사례를 보여주었다면 가톨릭이 사회에 대안적 모범을 보일 수 있었겠구나 싶었어요. 그러나 CMC 사태로 일반 사람들이 교회에 대하여 많이 실망하고 사회 기관과 다를 바 없다는 인식을 하게 되었죠. 이런 구체적 사건들은 교회가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은총의 기회였는데, 서울대교구 재단의 행태는 이런 기회를 모두 놓쳐버린 부정적인 사례 중의 하나라고 보입니다.

김 : 엉뚱할지 모르지만 저는 요즘 사회 현상을 보면서 과연 권력자들의 약점은 ‘맨얼굴’이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요즘은 하다못해 초등학생들도 선생님의 폭력을 고발하거든요. 물론 다 고발되는 것도 아니고 부작용도 있겠죠. 하지만 그런 일들을 통해 분명 어떤 반향들이 일어나거든요. 교회 내 문제에 대해서도 더 이상은 좋은 게 좋은 거라든가 쉬쉬 하며 안으로만 쌓아둘 수는 없을 거 갚아요. 미국의 성추행 문제도 교회 내에서 30년간 쉬쉬하고 해결 못하다가 교회 밖으로 나오고 나서야 문제시되고 정화되기 시작했잖아요. 갑을 문화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허 : 하지만 호응이 없을 것 같아요. 아마 오픈을 하는 사람 못지않게 막으려는 신자들의 반발이 많겠죠. 지식적으로 좀 우위에 있는 신자들이 더 호응을 안 해주고 신앙심 운운하면서 누를 것도 같구요. 2008년 거리미사로 천주교에 대한 환상도 한 몫 하겠죠.

신 : 프랑스 교회를 보면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네요. ‘프랑스의 가톨릭’은 ‘가톨릭의 시녀’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가톨릭 교황에 충성을 다한 교회였죠. 하지만 프랑스 혁명을 거치면서 노동자와 농민, 서민층이 성직자와 수도자들을 불신하고 증오하는 현상이 발생했어요. 오랫동안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가난한 민중들의 삶을 외면하고 상류사회의 귀족처럼 행세하였으니 프랑스 혁명은 사회와 종교 특권층에 대한 불만이 한꺼번에 폭발한 것이죠. 심지어는 성직자들을 ‘까마귀’라고 부르면서 극도의 적대감을 표출하고, 많은 수도회가 프랑스에서 추방당하는 일까지 벌어졌거든요. 그렇게 혁명을 거치면서 프랑스 교회는 수모를 당하고 고통을 겪으면서 자신을 성찰하게 되죠. 교회가 가난한 사람을 외면할 때 사회는 교회를 버린다는 뼈아픈 경험을 거치면서 노동 사제들이 배출되고 복음적 가난을 실천하는 프라도 사제회도 창립되기도 했구요. 지금 한국 천주교회도 프랑스 혁명 전야의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어요. 지금처럼 특권과 기득권을 누리는 교회는 외부 세력에 의해 수술을 받을 수밖에 없죠.

공개만이 살 길?

김 : 지금도 거리에서는 쌍용차나 강정 등 사회적 갑을관계 개선을 주장하는 미사들이 열리고 있어요. 하지만 막상 교회 사업장에서 벌어진 CMC 문제 등에선 침묵인데요. 이유가 뭘까요?

신 : 23명의 자살자를 양산한 쌍용차 사태와 제주 강정 해군기지 건설 문제 모두 교회가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중대한 문제이고 반드시 해결해야 해요. 사회 문제에 대하여 정의를 외치는 만큼 CMC문제도 외면할 수 없고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구요. 하지만 성직자들이 교회 외부의 문제만 목소리를 높이면서 교회 내의 문제에 대하여 침묵한다면 ‘자기식구 감싸기’, ‘너나 잘하세요’라는 냉소적 시각과 비판을 피할 수 없어요. 따라서 교회 내 기관부터 정의와 인권, 노동 문제를 엄격한 잣대로 들이대고 해결해야 교회의 대사회적 목소리가 사회로부터 더욱 호응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저는 신학교 시절에 ‘교황들의 회칙에 나타난 노동관 연구’를 주제로 논문을 썼지만 CMC문제는 교황들의 사회적 가르침을 전혀 실천하지 않은 대표적인 사례로 꼽혀요.

김영 : 제가 볼 땐 두 개의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요, 하나는 교권에 도전했다는 것과 강성노조가 있으면 병원사업이 어려워질 거라는 거죠. 파업으로 인해 가톨릭이 운영하는 사업장에서 노사가 부딪치는 모습이 밖으로 보여지는 게 좋지 않으니 병원사업을 접어야 되지 않나 하는 자성의 목소리도 있었거든요.

신 : 제가 볼 때는 결국 사제인사권과 관련한 문제인 거 같아요. 사회문제에 나서는 사제 중에 불이익을 받는 분들이 있잖아요. 교회 내 문제를 건드리면 더욱 큰 불이익을 받게 되지요. 아무리 생각해도 CMC 문제는 천주교회가 얼마나 건강하지 못한가를 말하는 척도로 보여요.

김 : 10년 넘게 왜 다섯 분만 복직이 안 되는 걸까요?

김영 : 파업 당시 계셨던 신부가 본당 사제로 왔더라구요. 그래서 ‘저희가 용서받지 못할 짓을 한 건가요?’ 했더니 ‘세상에 용서 받지 못할 게 뭐 있겠어요?’ 하시더니 ‘용서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백성이 잘못된 길로 가면 그 본보기로 남겨놓아야 된다. 그게 당신들이다’ 하는 거예요.

김 ; 지금까지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다들 돌아가면서 어떻게 하면 교회에서 갑을 문화를 타파할 수 있을지 의견 좀 나눠주세요.

허 : 이기적이라고 말하는 것에 무심해야 하고, 자기의 권리는 당당하게 말하고, 부당하고 억울한 일은 거절할 수 있어야 해요. 하긴 이번 육아휴직 전 막판에 후임이 없어 더 일하라고 할 때 민노총 법률 상담에 물어보니까 ‘사업자 기분 안 상하게 하고 그냥 잘 휴직 들어가시는 게 좋다’라고 말씀하시더라구요. 노동자는 늘 사용자의 기분을 살펴야 하는 존재라는 거 같아 씁쓸했죠.

이 : 저도 이제는 교회 내부의 일들이 공개되야 한다고 생각해요. 밝혀야 자성도 가능해요. 덮을수록 더 커진다고 봐요.

경 : 얼마 전 사회운동 하시는 신부님과 이야기 했는데 그분도 CMC 다섯 분 복직을 반대하더라구요. 이유가 본보기에 안 좋다며 가톨릭에 도전했고 무례하대요. 생각해보면 교회는 유독 노동조합에 ‘경기’에 가까운 반응을 보여요. 다른 이야기 같지만 ‘종북게이’라는 신조어가 있잖아요. 사실 종북이랑 게이는 서로 아무 연관이 없어요. 결국 한국교회는 공산주의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에 노조에 대한 더 경직되고 인정하지 않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전 요즘 협동조합방식으로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교회가 한국 사회에 협동조합 도입과 활동에 큰 역할을 한 만큼 가능성이 있다고 봐요. 물론 그러려면 성직자들이 자기의 것을 내려놓아야겠죠. 일단 사회운동에 참여하는 신부님들과 실험적으로 해보면, 체험도 생기고 동반자란 의식도 생기지 않을까요? 그런 모습을 보이면서 동의와 공론화 과정으로 가져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김 : 긴 시간 좋은 말씀들 감사합니다. 어쩔 수 없이 갑의 입장보다는 을의 입장이 많이 대변되었는데요, 그건 교회 내 갑보다는 훨씬 많은 을이 존재하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는 갑의 입장만을 한번 모아보고 싶어지네요.

참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3년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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