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와 배제의 시설, 벳자타 못가의 들것을 버리라!- 6호 특집원고

소외와 배제의 시설,

벳자타 못가의 들것을 버리라!

  서중원 (구술기록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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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양 문’ 곁에는 히브리 말로 벳자타라고 불리는 못이 있었다. 그 못에는 주랑이 다섯 채 딸렸는데, 그 안에는 눈먼 이, 다리저는 이, 팔다리가 말라비틀어진 이 같은 병자들이 많이 누워 있었다. 그들은 물이 움직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따금 주님의 천사가 그 못에 내려와 물을 출렁거리게 하였는데, 물이 출렁거린 다음 맨 먼저 못에 내려가는 이는 무슨 질병에 걸렸더라도 건강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서른여덟 해나 앓는 사람도 있었다. 예수님께서 그가 누워 있는 것을 보시고 또 이미 오래 그렇게 지낸다는 것을 아시고는, “건강해지고 싶으냐?” 하고 그에게 물으셨다. 그 병자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선생님, 물이 출렁거릴 때에 저를 못 속에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는 동안에 다른 이가 저보다 먼저 내려갑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 그러자 그 사람은 곧 건강하게 되어 자기 들것을 들고 걸어갔다. (요한 5,1-9)

  • ‘희망원’과 ‘나’ 사이

언젠가 공포영화를 보는 쾌감에 대해서 지인이 설명해 준 이야기가 있다. 그이의 얘기로는, 나름의 원인과 결과가 있는 스릴러물에 비해서 딱히 납득할만한 이유랄 게 존재하지 않는 공포물의 충격은 역설적이게도 그것이 영화이기 때문에 적어도 그 영화를 관람하는 동안만큼은 내 얘기가 아니라는 확실한 무의식적 안전막을 형성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면 이런 심리는 비단 공포영화 관람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닌 듯하다. 폭력을 스펙터클의 일종, 즉 오락으로까지 즐기며 사는 현대사회에서는 내 집 소파에 앉아 TV 화면을 통해 접하게 되는 이웃 나라의 전쟁이나 실시간의 재난 뉴스에조차, 그것이 아무리 충격적이라 한들 기껏 ‘내 일이 아니어서 다행’으로 여기게 하는 숱한 무의식적 안전막을 형성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여기에 소위 “욕하면서도 본다”는 막장 드라마의 시청 심리까지 보태보자. 이 심리에 대한 유력한 비평 중의 하나는, 윤리와 공의가 무너진 막장 드라마 속 세상에 대해 끊임없이 개탄하는 것으로 시청자가 얻게 되는 윤리적 우월감, 즉 ‘나는 적어도 그런 나쁜 인간이 아니다’라는 심리를 지적하는데, 바로 이 ‘내 일이 아니어서 다행’인 심리와 ‘나는 적어도 그런 나쁜 인간이 아니다’라는 심리 사이의 진폭만이 우리가 매체를 통해 ‘타인의 고통’을 감각하는 임계치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종종 빠져버릴 때가 있다.

각종 매체의 발달과 함께 어떤 시대적 징후를 읽어낼 수 있는 사건에 대한 정보는 넘쳐나지만, 그 정보가 그야말로 무수히 많은 일 중의 하나에 머물며 쉽게 잊히기도 하는 이유는, 일어난 사건이 현실이더라도 분명 내게 닥친 일은 아니어서 사실상의 비현실인 상태, 곧 ‘내 일이 아니어서 다행’이거나 참극은 안 됐다 여겨지지만 내가 직접적인 가해자가 아닌 이상 ‘나는 적어도 그런 나쁜 인간이 아니’게 되므로, 한 사건의 충격 앞에서 그 피해와 가해 사이를 용케 빠져나간 나에게는 여전히 내 일상을 영위하는 것만이 지상 최대의 과제가 되어 버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최근 연일 충격적인 일로 보도되고 있는 대구 희망원의 인권 침해 사실에 대해서도 같은 우려를 품게 되어 하는 얘기다. 제2의 형제복지원 사건이니, 지옥의 수용, 감금의 시간이니 각종 수식어구가 따라붙지만, 무려 30년이나 묵은 형제복지원 사건이 그 경악할만한 폭력과 인권 침해의 충격에도 불구하고 해결의 실마리가 여전히 안갯속인 이유와 마찬가지로, 대구 희망원 사건 역시 한때의 공분을 사기는 하겠지만 ‘나’와는 거리가 먼 ‘그들’의 일로 인식되는 순간 서서히 잊히게 될지 모른다. 더구나 매체가 사건의 폭력 수위를 기록으로 복원하거나 재현하는 방식이 적나라하면 적나라할수록, 이 전시적인 충격은 가공할만한 것이 되는 동시에 ‘나’의 당면한 문제와는 괴리되고 마는 역설 또한 드러낸다. 그렇다면 ‘나’와 한 사건의 피해와 가해 사이의 연결 고리를 잇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재난과 참사의 역사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이 보여주는 모습에는 확실히 그 이전과 그 이후를 나누는 뚜렷한 분기점이 존재한다. 90년대에 삼풍백화점 붕괴나 성수 대교 붕괴 등을 겪었던 세대가 부모가 되어 세월호라는 또 다른 참사를 겪게 되면서, 이들은 바로 자기 자신을 포함한 무수한 ‘나’와 시대의 사건이라 불리는 사안들의 피해와 가해를 분리 불가능한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둘러싸고 권력과 이토록 지난하고도 욕스러운 싸움을 이어가면서도 이들이 의지를 꺾지 않는 이유는, 한 시대 시스템의 오작동을 목도하고도 바로잡지 않으면 그 피해는 누구나 당할 수 있는 무작위의 참사로 되돌아오고, 그럴 때 그 피해는 진작 바로잡지 못한 가해와 연결되며, 그 피해와 가해 사이의 잠재태(潛在態)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진실을 역사적 체험으로 이들 자신이 현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과 함께 2014년 4월 16일을 대한민국에서 보낸 사람 중에 대체 세월호 사건에서 ‘내 일이 아니므로 다행’이라 느끼고 내가 직접 한 일이 아니어서 ‘나는 적어도 그런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여기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나는 대구 희망원 사건에 대해서도 우리가 동시대를 살아온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마땅한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중 하나가 바로 ‘나’와 이 사건의 피해와 가해 사이의 연결 고리를 잇는 일이라고 본다.

  • ‘희망원’, 나쁜 시설의 문제인가 시설이 나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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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대구대교구에 수탁 운영되고 있는 대구시립희망원에서는 최근 2년 8개월 동안 수용인원의 10%에 달하는 129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각종 인권유린이 자행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전국에서 세 번째로 큰 규모의 사회복지시설인 희망원은 2002년부터 2014년까지 13년간 연속 6회에 걸쳐 우수사회복지시설로 선정되었고, 2006년에는 최우수사회복지시설로 선정되어 대통령상까지 받은 곳이다. 그러나 생활인 사망, 생활인 강제노동, 생활인 폭행, 성폭행, 보호의무 소홀, 급식비리, 부정선거 의혹, 공무원과의 유착관계를 통한 불합리한 종사자 채용 및 생활인 입소, 이중장부 및 횡령 의혹 등 희망원의 감춰진 비리와 인권유린 실태가 최근 내부고발자의 익명 투서를 통해 공개되었다. 지난 2년 8개월 동안 129명이 사망한 사실이 단순사고로 처리되어 은폐되었을 뿐만 아니라 식자재 납품업체 거래장부 내역과 실제 가격 및 수량이 다르게 기록되어 근 3억여 원의 급식비 횡령 정황이 드러난 가운데(전체 횡령 액수의 규모는 더 클 것으로 추정되고 있음), 현재 국가인권위의 조사와 국정감사를 거치고 있다.

1958년 대구시가 부랑인 시설로 설립하고 80년부터 재단법인 대구구천주교회유지재단이 위탁 운영하고 있는 희망원은 대구시 달성군 화원읍 총면적 4만 1884㎡(1만 2,670평)의 부지 위에 노숙인 재활시설(희망원), 노숙인 요양시설(라파엘의집), 정신요양시설(성요한의집), 장애인 거주시설(글라라의집) 등 네 개의 시설을 설립하여 총 1,150(정원 기준)명의 인원을 수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대규모 사회복지수용시설들은 외부 자원봉사자들의 출입 빈도가 큰데다가, 여타 대형 종교가 기득권화되어가면서 보여준 비리와 세속화의 문제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청빈한 이미지로 세간에 곧잘 사회적 약자들 편에 서 왔던 것으로 인식되었던 천주교회에서 운영에 관여하였던 점, 지역 사회에서뿐만 아니라 대통령 표창까지 받을 만큼 전국 사회복지시설의 모범으로 포장되어 왔던 점에서 미루어 볼 때, 단지 일개 시설 내부의 폐쇄적 운영이나 비리 때문이라고만은 볼 수 없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요한다. 그 일환으로 마침 이 사건이 언론에 대서특필되었을 때 인용되었던 30년 전의 ‘형제복지원 사건’과의 유사성을 살펴보는 것은 유의미한 일이 될 것이다.

1970~80년대 국내 최대 규모의 부랑인 임시보호소였던 부산 형제복지원 역시 부랑인에 대한 구제책으로 종교 선도와 숙식제공, 직업재활교육을 행하는 모범 시설로 알려졌으나 실상은 참혹했다. 1987년 3월 22일, 탈출을 시도하던 원생 1명이 직원의 구타로 숨지고, 이에 수용자 35명이 탈출을 감행함으로써 드러난 형제복지원 내부의 참상과 비리의 요체는, 수용자들을 매개로 한 재단의 돈벌이와 그들을 그저 수월하게 관리하기 위해 고안된 강압과 폭력의 시설 시스템으로 정리할 수 있다. 형제복지원에 수용되었던 사람들은 이사장 박인근 집안의 재산 증식을 위한 중노동에 동원되는 것은 물론, 폭압적인 구조 아래에서 일상적인 구타와 감금, 성폭행 등의 고초를 겪어야만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12년간 공식적인 사망자 수는 무려 551명에 달하고, 이들은 야산에 암매장되거나 시신 1구당 200~500만 원 내외의 해부용 시신으로 팔려나가기도 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러나 그 집계란 기록이 남아있는 한에서의 이야기이므로 실제 피해는 훨씬 심각한 수준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부러 반어적으로 지은 이름인 양 형제복지원에는 기실 ‘형제’도 ‘복지’도 없었다는 피해생존자들의 푸념과 마찬가지로, 희망원 역시 희망이 아니라 절망의 수용소였다는 호사가들의 평은 일단 차치하기로 하자. 더 근본으로 들어가 보자. 이 형제복지원과 희망원의 공통점으로 수용자들에 대한 시설 측의 폭력과 인권침해라는 참상, 종교적 자선의 외피를 두른 위선적이고도 부패한 운영 비리, 그럼에도 모범시설로 평가받을 수 있었던 정부·지자체와의 결탁이나 비호의 흔적만을 지적하기에는, 대체 30년이라는 시차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는 시설 비리나 시설 내 인권침해 문제가 ‘형제복지원’이나 ‘희망원’이라는 고유명으로 특정할 수 있는 개별 시설들의 오류와 실책만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할지 모른다. 30년의 세월을 흘려보내고도 동일한 양상의 문제를 반복하고 있다는 것은, 차라리 이것이 대한민국 복지정책과 시설의 역사가 지닌 매우 일반적이고도 총체적인 문제점이라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닐까?

 

  • 시설, 분리와 배제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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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사회복지시설 역사는 한국 전쟁 이후 급증한 전쟁고아 응급구호시설에서 시작된다. 속칭 ‘고아원’이라 불렸던 이들 아동수용시설들은 전쟁의 직접적인 피해가 줄어들기 시작하는 1960년대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번창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이유는 농촌 빈곤 현상으로 이농민이 급증하면서 이들이 도시로 유입되거나 그 후 도시 빈민으로 떠도는 과정에서 가족공동체로부터 이탈하게 된 아동과 청소년들의 수가 상당했기 때문이다. 정부 수립 후 처음 제정된 복지 관련 법령인 〈후생시설설치기준〉(1950년) 역시 아동수용시설에 관한 것일 만큼, 초기의 사회복지법은 우선으로 이 아동시설들을 기반으로 고민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것이 5·16 군정기를 지나면서는 부랑인 단속의 법제화 등을 통해 바야흐로 이들 시설을 이제 아동뿐만 아니라 다양한 층위의 사람들을 함께 수용할 수 있는 여타의 시설로 변경하거나 확장해 가기에 이른다. 기존의 아동시설의 경우 영·육아원, 소년원, 감화원 등으로 분류되거나, 성인 시설의 경우에는 장애인 수용시설, 부랑인 수용시설, 각종 요양원 등이 설립되기 시작하였으며, 나아가 범죄를 미연에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조폭 등을 강제징집해 간 것으로 알려진 그 악명 높은 ‘삼청교육대’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추세는 언뜻 전쟁 직후 고아들을 우선 대상으로 한 지난날 응급구호단계의 복지가, 전쟁의 직접적인 영향에서 벗어나게 되는 1960년대 이후부터는 전 연령대, 전 계층에게 필요한 복지시설의 증가로 그 서비스가 점차 확대된 것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사실 그 배경에는 정권과 시설사업자 양측의 잇속이 겹칠 뿐이지, 정작 시설생활 당사자들의 이해나 욕구가 반영된 결과라고 보기는 어렵다.

우선 1950년대 주로 종교를 매개로 한 외국원조나 사회사업단체들의 노력으로 건립·운영되었던 시설들로서는 응급구호의 시기가 지남에 따라 점차 원조의 규모가 줄거나 아예 철수하게 되는 현실과 맞닥뜨리면서 여전한 사회적 수요를 충족시키면서도 시설의 다양화와 확장이라는 방법으로 앞으로의 제 살길을 모색해야 했다. 한편 5·16군사 쿠데타 이후의 독재권력들은 자신들의 부당한 권력을 합리화하는 방안 중 하나로써 국가 차원의 각종 재건사업을 벌이거나 사회정화를 명분으로 한 부랑인아(성인, 아동 포함) 단속에 들어갔다.

놀랍게도 1960년대 이후부터의 이 부랑인 단속은 해당 정권들에게 대중의 지지와 동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다 준 것으로까지 보인다. 부랑인 단속은 분명 빈곤이라는 지표에서 보는 사회의 소수자나 약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지만, 엉뚱하게도 거리정화와 치안유지의 명분으로 자행되면서 이들을 혐오와 분리, 나아가 탄압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이는 사회의 소수자나 약자들을 적대로 돌리면서 당시 정권들의 폭압성을 교묘히 가리고 정당화하는 동시에, 내부 불순 요소를 걸러내는 거름망으로써 사회 안정에 기여하는 강력한 공권력의 필요성을 재차 대중에게 호소하는 것이기도 했다. 특히 부랑인을 “일정한 주거가 없이 관광업소, 역, 버스정류소 등 많은 사람이 모이거나 통행하는 곳과 주택가를 배회하거나 좌정하여 구걸 또는 물품을 강매함으로써 통행인을 괴롭히는 걸인, 껌팔이, 앵벌이 등 건전한 사회 및 도시 질서를 저해하는” 자로 정의하는 내무부훈령 410호가 발령되는 1975년에 이르면, 주민신고제 등을 통해서 공권력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 스스로 누군가를 ‘건전한 사회 및 도시질서를 저해하는 자’로 지목하고 색출하는 파시즘적 배제의 행위를, 그 어떤 공론화된 윤리적 고찰도 없이 사실상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것은 시설의 역사에서 보면 그렇단 얘기다. 아닌 게 아니라 하필 시설사업은 이러한 정권들과 궤를 같이하며 비대해지는데, 그 직접적인 이유는 정권이 권력유지를 위해 내적불순요소로 지목해 단속해나간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들에 과도한 표창과 특혜, 지원금들을 수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다음과 같은 간접적인 이유도 거론할 수 있겠다. 이 시기에 급증한 장애인이나 부랑인을 비롯한 각종 수용 사회복지시설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사회에서 건강하고 온당하게 여겨지는 ‘표준 노동력 1’로 계산되지 못하는 사람들의 집합소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다. 독재 권력과 ‘표준 노동력 1’에 미달하는 존재, 그 사이에서 사회 일반은 독재정권에게 물어야 할 정당성 대신 엉뚱한 이들에게 정당성을 묻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가령 1970년대 이후 급격한 경제성장의 궤도를 따라 모두들 가난을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현실 속에서, 넝마주이, 껌팔이, 구두닦이 등(고아, 앵벌이와 더불어 당시 부랑인으로 분류되었던 대표적인 직업군이다) 노동을 하더라도 변변찮아 그 가난을 죄업으로 안고 있는 그들, 혹은 장애인처럼 아예 노동을 할 수 없어 가난을 벗어날 가능성마저 없는 그들이야말로 선진사회로 가는 길목의 훼방꾼이며 사회 불순요소라는 인식으로 말이다. 그런 한, 그들은 여기(사회)에 공존하면서가 아니라 영영 거기(시설)에 배제된 채로 정화(소거)되거나 교정되어야 했을 것이다. 그렇게 시설로 내몰리는 순간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이루고 있는 저마다의 사연들은 무시된 채 그들의 존재는 일괄 처벌개념화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독재가 막을 내리고 민주주의의 기틀이 형식적으로나마 자리 잡게 되는 1990년대 이후에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이른바 신자유주의 체제에서는 사회적 비용의 효율을 명분으로 시설은 단 한 번도 정책적으로 포기되지 않았다. 이렇게 본다면 다양한 수용시설들의 존재는 복지서비스의 확산이 아니라 ‘복지=시설’이라는 등식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상상도 해보지 않은 이 나라 복지정책의 빈곤한 민낯일 뿐이다. 집이나 가족이 없어 떠도는 특정 상태만으로도 잠재적 범죄자로 인식되었던 ‘부랑인’에 속한 다양한 사회 극빈곤층들이나, 부모와 집을 잃은 아이들, 장애인 등에게 주어진 이 나라 복지의 우선적 혜택이란 사실상 이들을 각종 시설에 가두어 사회에서 솎아내는 것에 불과하였다. 그렇게 쓸모없는 자로 사회에서 배제된 채 고립되면, 시설 안에서는 또 그 안의 부조리와 폭력의 쳇바퀴가 돌아가는 일상에 무방비 상태로 내몰리게 되는 것이다. 1989년 대전종합복지원 사건, 1991년 신생원 사건, 1998년 양지마을 사건 등을 거쳐, 2000년 이후에도 일명 도가니 사건으로 알려진 광주인화학교를 필두로 인강원, 송전원 등등 수많은 사회복지시설에서의 인권침해 고발이 줄을 잇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각 사건들이 특수한 나쁜 시설의 문제가 아니라, 시설이라는 나쁜 제도의 보편적인 문제라고 볼 수밖에 없는 결정적 증거다. 바로 이것이 1987년의 형제복지원 사건과 2016년의 희망원 사건이 무려 30년이라는 시차를 두고도 동일한 양상으로 반복되고 있는 작금의 사태의 본질이다.

물론 좋은 시설도 있다. 그것을 부인하지는 않겠다. 다만, 그렇다고 그 좋은 시설이 ‘희망원’과 같은 사건의 대안은 아니라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시설이 사회 약자들을 위한 최소한의 보호장치일 수 있었던 시절은 길게 봐야 한국전쟁 직후의 응급구호시절 정도까지였을 것이다. 시설은 대체로 분리와 배제의 오작동으로 얼룩진 프레임이었다. 그 숱한 오작동의 예들을 주워 삼키고도 대안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사회의 최전선인 미래에 여전히 시설을 배치하려는 것은, 시설 안에 사는 ‘누군가’와 시설 밖에 사는 ‘나’의 연결고리를 끝내 잇지 않으려는, 그럼으로써 ‘희망원’이라고 하는 사건의 피해와 가해로부터 안전한 거리를 확보한 채 내 일상에만 골몰하려는 나태한 사회적 상상력과 미적지근한 편의주의의 다른 말이지 않을까?

 

  • 종교의 역할은 무엇인가?

    대구시립희망원 인권유린 및 비리척결을 위한 대책위원회가 7일 오전 대구시청 앞에서 희망원 불법감금 및 추가 납품비리 등 의혹 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지고 있다. 대구천주교회유지재단이 운영하는 대구시립희망원은 최근 2년8개월 동안 수용인원의 10%에 달하는 129명이 사망하는 등 각종 의혹이 제기돼 왔다. 2016.11.7/뉴스1

    대구시립희망원 인권유린 및 비리척결을 위한 대책위원회가 7일 오전 대구시청 앞에서 희망원 불법감금 및 추가 납품비리 등 의혹 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지고 있다.
    대구천주교회유지재단이 운영하는 대구시립희망원은 최근 2년8개월 동안 수용인원의 10%에 달하는 129명이 사망하는 등 각종 의혹이 제기돼 왔다. 2016.11.7/뉴스1

한 가지 우려스러운 점이 있다. 희망원 사건을 두고 해당 종교의 타락이나 위선의 행태를 꼬집는 것은 우물을 좁게 파는 일이다. 반성과 개선은 필요한 일이지만, 냉정하게 말해 희망원이라는 시설의 비리와 참상은 관여되어 있는 종교의 자정 능력 부족이 주원인이 아니다. 종교 아니라 종교 할아버지, 아니 그 종교의 하느님이 오더라도 시설이라는 프레임 안에서는 동일한 양상의 문제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시설은 애초 배제와 소외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대신 종교의 다른 혐의점에 대해서 지적해 둘 필요는 있겠다.

역사학자 윌 듀런트(Will Durant)는 종교의 역할이란 어떤 시대든지 소수에게 편중되고 마는 부와 권력의 격차가 끝내 사회적 불안과 극단적인 분노로까지 이어지는 것을 막아주는 데 있다고 했다. 보다 유명한 대신 오독도 많이 되곤 하는 마르크스의 ‘아편’ 비유만큼 자극적인 것은 아니지만, ‘초자연적인 희망’이 현실의 절망에 근근하나마 대안이 되어 주는 한, 시스템을 갈아엎지 않으면서도 사회 갈등이 극단으로까지 치닫지 않도록 무마하는 종교의 사회적 기능을 꿰뚫는 말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보태지는 것이 자선이다. 자선으로 일컬어지는 행위를 통해 편중된 부와 물질은 거의 연명할 수준에서만 순환하게 되는데(근본적인 대책은 아니라는 뜻이다), 다행히도 자선의 혜택이 약자층에 우선으로 주어지는 까닭에 종교는 소극적인 의미에서의 사회구제책으로서 꾸준히 기능할 수 있었다.

이러한 종교는 근대국가체제로 접어들면서 국가와 함께 사회재생산 기능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된다. 사회재생산 기능이란 다름 아니라 사회 자체의 존속 가능성을 타진할 수 있는 구성원의 안전과 다음 세대 양육과 관련된 프로그램들이라 할 수 있는데, 주로 교육과 복지 영역에서 두드러지는 종교계의 영향력을 생각해 보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2015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사회복지법인은 전국 1,801개가 산재해있다. 이중 사회복지시설을 설치 운영할 목적으로 설립된 시설법인이 1,514개, 사회복지사업을 지원할 목적으로 설립된 지원 법인이 287개다. 지자체별로는 서울 297개, 경기 226개, 부산 149개 순이다. 2016년 3월 서울시가 산하 사회복지법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2015년 기준 거주시설을 운영하는 29개 서울시 사회복지법인의 재산 총액은 6,126억 2,800만 원으로 1개 법인당 평균 재산 약 211억, 평균 18개의 시설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사회복지법인들이 운영하는 시설들은 연간 적게는 수억 원 많게는 수십, 수백억 원의 국가보조금을 지원받고 있다. 대형 종교 사회복지법인의 영향력은 더욱 막강한데,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의 경우 무려 259개 산하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복지정책이 사회의 다양한 약자들을 격리, 배제, 수용하는 시설 중심으로 사고되어 왔음을 상기해 보면, 여기서 복지는 제아무리 종교가 관여한다 한들 사회 취약계층을 담보물 삼은 큰 장사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통감하게 된다. 이럴 경우 사회 재생산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종교가 재생산하고 있는 것은 종교 자신의 이윤일 뿐이지, 사회의 다양한 약자들을 포함한 구성원의 안전과 다음 세대 양육에 기여하는 진정한 의미의 사회 재생산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종교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

서두에 인용한 벳자타 못가의 풍경은 어쩐지 지금 우리 사회의 복지정책이 펼쳐지고 있는 현장과 유사하다. 그곳에서 흡사 이따금 한 번씩 못가에 내려온다는 주님의 천사인 양 자선과 시혜의 전설로 사람들의 마음을 일렁이게 하는 종교는, 그러나 시설이라는 협소한 들것에 사람들을 붙박이처럼 눌러 앉히며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절망케 하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그 절망을 자선의 전설로 환치시키며 고작 들것의 수가 늘어나는 것을 복지의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종교는, 실상은 그 들것에 38년 아니 그보다 훨씬 오랜 시간을 누워 간절함으로 말하고 있는 사람들의 현실이 소외(“저를 못 속에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와 배제(“다른 이가 저보다 먼저 내려갑니다”)라는 것을 애써 눈 감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

진작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당사자 스스로 그 들것을 들고 사회로 걸어가라고. 분연한 그 걸음을 함께 걷지는 못할망정 보호라는 미명하에 여전히 막아서겠다면, 이는 위선이다.

당사자뿐만 아니다. 종교 역시 마찬가지이다. 벳자타 못가의 들것, 즉 시설이라는 프레임을 버리는 것이 급선무이다.


서중원.

구술기록 노동자로 형제복지원 구술 프로젝트 『숫자가 된 사람들』을 공동작업하였다. 현재 ‘장애와 인권 발바닥 행동’에서 탈시설 자립생활 장애인들의 삶을 구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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