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이되 혼자이지 않은 청년들의 삶을 위하여 -7호 특집 강수언 (혼자 사는 ‘1인 가구’ 청년)

혼자이되 혼자이지 않은

청년들의 삶을 위하여

 

강수언 (혼자 사는 ‘1인 가구’ 청년)

 

 

수능이 끝난 후, 나는 안락한 부모님의 보호가 있는 집과 익숙한 친구들이 있는 동네를 떠나 홀로서기를 선택했다. 그때는 큰 고민 없이 한 결정이었지만, 그 순간의 선택이 내 20대 삶의 방향을 바꾸리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혼자 사는 삶을 선택한다는 것은 생각처럼 마냥 낭만적이고 자유로울 수만은 없는 일이다. 내가 처음 막연하게 상상했던 싱글족으로서의 삶은 주거공간을 혼자 쓰겠다는 것 이상의 의미로 다가오지 않았다. 하지만 독립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혼자 산다는 것은 누군가가 정해준 틀 안에서 보이지 않게 나를 지탱해주고 있던 보호의 장벽을 벗어나는 일임을 실감하게 되었다. 완전히 바뀌어버린 내 삶의 터전을 하나부터 열까지 새로 구축해야 하는 외로운 과정이었고, 내가 누릴 자유의 틀을 스스로 만들어 그것이 함부로 깨지지 않도록 자발적으로 지켜나가야 하는 어려운 일이었다. 내 삶과 관련된 모든 것을 혼자 책임지고 결정하는 무게를 견딜 정도로 단단해지기 위해, 혼자 지독히 외로워도 보고 누군가에게 의지해 보기도 하며 9년이라는 시간을 지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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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려하거나 혹은 비루하거나, 혼자 사는 청년들의 자화상

내가 혼자 사는 삶에 익숙해지는 동안 한국 전체의 가족 구성도 많이 변했다. 교과서에 나오던 가정의 모습이나 광고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족의 전형적 모습이었던 엄마, 아빠, 자녀로 이루어진 가족구성이 이제는 표준이 아니게 되었다. 2천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전체 가구 수의 15.5%에 불과했던 ‘1인 가구’의 구성이 2016년 현재 전체 가구 수 대비 27.2%로, 4인 가구의 비중보다 높아졌다.

4인 가구에서 1인 가구로의 중심이동은 ‘솔로 이코노미(Solo Economy)’로의 급격한 변화를 만들어 냈다. 1인 가구의 불편함을 해결해주는 온·오프라인연계(O2O, Online to Offline) 서비스는 지루한 저성장 시대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보이고, 1인 가구를 타깃으로 만들어낸 제품들이 하루가 멀다고 쏟아져 나온다.

1인 가구의 라이프스타일을 분석하는 연구자료와 기사들도 이제는 새롭지 않다. 그 속에 비치는 청년 1인 가구의 모습은 화려하거나 비루하거나 그 중간 어딘가쯤에 있는 듯하다. 고소득 전문직이라는 안정적인 사회적 기반과 경제력을 갖춘 1인 가구들은 자신이 가치 있다고 느끼는 것에 아낌없이 지갑을 여는 소비주체로 주목받으며, 온전히 자신의 의지로 독신을 선택한 자발적 싱글로 간주된다. 그리고 다른 한쪽, 아직 안정된 직업을 갖지 못한 채 열악한 주거환경을 전전해야 하는 1인 가구들은 가정을 이루는 미래를 꿈꾸지 못하는 임시적인 독신상태이자 우울한 ‘N포세대’의 단면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1인 가구에 관한 글을 읽다 보면 실제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이 시대의 싱글 청년으로서 공감이 되는 부분도 있지만, 단편적인 접근이라고 느껴지기도 한다. 청년 1인 가구가 실제 겪고 있는 현실의 문제는 단지 안정적인 경제력을 갖추었느냐로만 구분짓기 어려운, 물질적·정서적 문제를 비롯한 기타 여러 문제가 복합적으로 관계되어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혼자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의 삶을 구조적으로 분석한다기보다는, 프레임을 씌우는 순간 솔직하게 풀어내기 어려운 청년 1인 가구로 살아가는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모습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리고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1인 가구로 살아가면서 나에게 신앙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돌아보며, 다인가구 중심의 사목 체계로 이뤄지는 교회에 편입되기 어려운 싱글 청년들의 신앙생활에 관해 나누려 한다.

  • 생각보다 비싼, 혼자 누리는 ‘집밥’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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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취를 처음 시작하고 나서 가장 놀랐던 부분은 그저 숨만 쉬어도 나가는 돈이 너무나 많다는 점이었다. 집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는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매달 월세를 내야하고, 여기에 덧붙여 가스비, 수도세, 전기료 등등 각종 공과금도 오롯이 내 몫이었다. 집에서 요리라도 한번 해보려고 하면 잔뜩 산 식재료는 남아서 버리기 일쑤였고, 1인용으로 포장된 재료들은 묶음 판매하는 것들에 비해 항상 비쌌다.

그렇다 보니 직접 ‘집밥’을 차려 먹는 경우가 거의 없이 레토르트 식품이나 인스턴트용 음식, 편의점 도시락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나마도 바쁘고 귀찮다는 핑계로 식사를 거를 때도 잦았다. 불규칙하고 부실한 식사가 이어지다 보니 나는 독립 후 위장병을 달고 살며 자주 아팠고, 병원출입이 잦아졌다. 집밥의 가치는 단지 집에서 식사를 해결한다는 의미를 넘어 건강한 삶을 영위하는 기본이 되는 것이었지만, 혼자서도 따뜻한 집밥을 누리기 위해서는 직간접적으로 지출해야 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통계적인 수치로 봐도, 실제로 1인 가구는 함께 사는 가구에 비해 더 많은 생활비를 부담하고 있다. 서울연구원에서 서울거주 가구의 한 달 생활비를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절대적인 소비 금액은 4인 가구가 많지만, 이를 1인당 액수로 환산해 보았을 때 1인 가구는 4인 가구에 비해 16% 정도 더 많은 비용을 생활비로 지출한다. 이는 혼자 살 때 감수해야 할 고정비에 비해 여럿이 같이 살 때 늘어나는 변동비의 폭이 크지 않기 때문에 비롯되는 문제다. 또한 학생 때는 체감하지 못했지만, 직장인이 된 이후에는 혼자서 산다는 이유로 소득공제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해 알게 모르게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하게 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이렇듯 혼자서도 다인가구와 동일한 수준의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누군가와 함께 살 경우에 비해 경제적으로 더 많은 직·간접적인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 어디에도 정착할 수 없는 민달팽이

혼자 살면서 경제적인 부분을 해결하는 것보다도 더 어려운 점은 정서적인 고립감을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 처음 집에서 나와 독립하고는 매일매일 외로웠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갈 때 어두컴컴한 방에 불을 켜고 들어가는 것이 싫어서 아침에 불을 켜놓고 나오기도 하고, 뭐라도 소리가 나지 않으면 텅 빈 공간을 견디기가 힘들어서 언제나 라디오를 틀어놓곤 했다. 쓸쓸한 공간이 싫어서 부모님 집에 가고 싶다가도, 부모님 계신 집에 가면 또 혼자 있는 공간이 익숙해졌는지 혼자 사는 자취방이 그리워졌다. 집에 있는데도 집에 가고 싶은, 내 삶의 중심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는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그래도 혼자 사는 공간에 익숙해지는 건 금방이었다. 그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던 건 나를 지탱해 줄 정서적인 기반이 그 어디에도 없다고 느껴질 때의 막막함이었다. 함께 서울로 상경한 친구들과는 한 학기에 한두 번 보기도 어려울 만큼 멀어졌고, 통학하는 학교 친구들은 수업이 끝나면 집으로 사라졌다. 이웃과의 교류라는 건 찾아볼 수 없는 방 한 칸뿐인 집에 돌아가면, 벽 옆에 누가 살고 있는지도 모른 채 살아갔다. 그 어느 곳에도 의지할 곳 없이, 이 세상에 홀로 던져진 듯한 외로움을 견디는 것이 무엇보다 힘들었다.

물리적으로도 환경의 변화가 잦았다. 부모님과 함께 산 20년 동안은 한 자리에 그대로 살았지만, 독립 이후에 나는 경기도로부터 서울까지 세 번의 이사를 했다. 정을 붙이고 살 만해지면 전세금이 올랐고, 나의 진로는 한 치 앞을 알 수 없게 변했다.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캄캄한 미래에 맞추어 내가 정착할 곳을 찾아서 계속 이사 다녀야 한다는 압박감이 늘 나를 따라다녔다. 나만의 공간이지만 한시적 공간이라는 생각에 원하는 대로 꾸미지도 못했고, 읽고 싶은 책을 사고 싶어도 이삿짐이 늘어날 거라는 생각에 몇 번을 망설이곤 했다. 나뿐만이 아니라 주변의 상경한 친구들도 학기마다 기숙사, 하숙방, 자취방, 고시원, 원룸 등을 전전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상경한 우리들은 모든 삶의 터전을 서울에 두고도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는 정서적인 난민이었다.

 

  • ‘나 홀로서기’의 중심이 되어 준 신앙생활

그럭저럭 ‘혼자살이’에 익숙해진 후에도 채울 수 없었던 정서적인 안정감을 찾기 위해 나는 신앙에 기대는 방법을 선택했다. 오랜 냉담자였지만, 어릴 적 엄마의 손에 이끌려 다녔던 성당이 기억 한 구석에서 왠지 모르게 의지가 되는 기억으로 남아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우연히 학교에 붙어있던 가톨릭학생회 포스터를 보고 개강미사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오랜 냉담의 고리를 끊고 신앙인의 삶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가톨릭학생회에 가입한 이후로 나에게는 새로운 생활의 기반이 생겼다. 그곳에는 나처럼 지방에서 올라와 비슷한 정서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가톨릭학생회의 친구들과 선배들은 매일 점심을 함께 먹고 함께 수업을 듣는 생활공동체이자, 1주일에 한 번씩 신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신앙공동체로서의 역할을 해 주었으며, 정서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바탕이 되어주었다.

또한, 각 학교 가톨릭학생회의 연합체인 서울대교구가톨릭대학생연합회(서가대연)에서도 활동하게 되면서, 가톨릭 신앙을 가진 청년으로 성장하는 시간의 대부분을 그곳에서 보냈다. 다른 친구들이 이력서에 추가할 한 줄을 위한 대외활동과 수상경력에 매달릴 때, 나는 세상이 유능하다고 인정해주는 객관적 스펙쌓기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만 같아 보이는 활동들에 매달렸다. 여름방학엔 토익학원을 가는 것이 아니라 2주라는 긴 시간 동안 농활을 떠났고, 휴학을 하고는 서가대연 중앙집행부 활동을 하면서 수많은 회원을 만나고 대중사업을 기획하며 1년을 보냈다.

이력서에는 한 줄 적을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었지만, 가톨릭 신앙을 가진 청년으로서 하느님 보시기 좋은 정의로운 세상을 위해서는 어떠한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가야 하는지 치열하게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그 시간 속에서 옳다고 믿는 가치를 관철하는 용기, 그 가치를 실제로 행동으로 이어내기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끈기가 결과보다 소중함을 배웠다. 이를 통해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받은 내 삶의 소명, 내가 진정 살고 싶은 삶의 모습에 대해 고민하며, 인격적으로도 신앙 안에서 성숙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학교 안에서만 갇혀 있었다면, 또 스펙쌓기에만 매달렸다면 할 수 없었던 인생의 중요한 고민들이었다. 그 안에서 겪었던 시행착오의 과정들은 주체적인 성인으로 홀로 설 수 있게 나를 단련시켜주었던 중요한 사건들이었다.

  • ‘따로 또 같이’의 공동체가 필요한 이 시대의 청년들

20대 후반의 사회인 2년차가 된 지금, 주위 대부분의 친구들은 연애를 하고 있고 결혼하는 친구들도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지만, 나는 혼자서도 잘살고 있고 별다른 불편함을 느끼지도 않는다. 한때 그렇게나 못 견뎌 했던 텅 빈 집을 마주하면, 이제는 외롭다는 생각보다는 나 혼자만의 공간에 돌아왔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든다. 어쩌다 일찍 퇴근하면 맥주 한 캔과 함께 좋아하는 영화를 보며 하루를 마무리하거나, 늦잠을 자고 일어난 주말에 집 근처의 좋아하는 카페에서 사 온 커피를 마시며 혼자 책을 읽는 시간으로부터 다시 한 주를 열심히 살아갈 에너지를 충전한다.

혼자 살아가는 것의 즐거움을 깨닫게 되기까지, 나의 일상적인 생각과 삶의 고민을 함께 나눌 공동체가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이제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즐거운 시간과 조용히 혼자 보내는 시간 사이의 균형이 나에게 더 없는 행복감을 가져다준다. 서로 만나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하는 것이 진정한 인간적인 삶이기에, 혼자 사는 사람들에게는 ‘따로 또 같이’ 정서적인 교감을 나눌 공동체의 존재가 혼자 있는 시간만큼이나 절실하게 필요하다.

이를 반증하듯, 혼자 사는 삶을 선택하겠다는 1인 가구가 급증하는 시대에 역설적이게도 삶의 공동체를 찾는 것을 도와주는 서비스들도 함께 성장하고 있다. 함께 모여서 집밥을 먹을 사람들을 찾는 것으로부터 시작한 ‘소셜다이닝 집밥’ 서비스, 공통의 관심사를 공유하고 취미를 함께 즐길 사람들을 찾도록 도와주는 커뮤니티 애플리케이션 소모임 등 ‘따로 또 같이’의 삶의 방식을 누리고자 하는 사람들을 이어주는 서비스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이라는 삶의 큰 변곡점을 한번 넘고 나니, 20대 초반에 겪었던 것과 비슷한 혼란기를 다시 한 번 겪게 됐다. 맨 처음 독립했을 때처럼 혼자 있는 시간을 못 견뎌 하진 않지만, 사회인으로서 새로운 자아를 형성해 가야 하는 중요한 시기를 그저 정신없이 흘려보내고 있다는 생각에 요즘 새롭게 ‘청년성서모임’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바쁘게 지나가는 일상을 보다 의미 있게 살아내기 위한 중심이 필요했고, 가톨릭학생회에서 그랬듯 정기적으로 성경말씀을 읽고 그 속에서 나를 돌아보고 기도하며 내 생각을 함께 나눌 공동체가 이를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본당이 아닌 소규모 공동체에서 신앙의 중심을 찾게 된 이유는, 본당 중심의 신앙생활이 신앙적인 성장의 경험을 제공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학교 졸업 후에 이사했던 집들이 모두 도보로 10분 이내에 본당이 가까이 있었지만, 본당의 문턱을 넘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보통 본당은 그 지역의 토박이로 자라온 사람들의 공동체라는 느낌이 강했기 때문에, 나처럼 다른 지역에서 이사 온 사람으로서는 배타적인 분위기를 견디기 힘들었다. 청년들이 본당에서 활동할 수 있는 영역도 교리교사나 성가대, 전례부처럼 기능적인 영역에 그칠 뿐, 신앙적인 성숙을 위해 할 수 있는 활동들은 지극히 제한적이어서 선뜻 본당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해야겠다는 용기를 내기가 어려웠다.

또한, 본격적으로 본당공동체에 편입되기 위해서는 교적을 옮겨야 했지만, 이는 교무금을 내야 한다는 것과도 맞물리는 경제적인 문제와도 연관되어 있어서 직업적 기반이 완전히 갖춰지지 않은 채 교적을 옮기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집 바로 앞에 있는 동네 본당에서는 미사를 보되,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유령 같은 신앙생활을 해야 했다. 매주 형식적으로 미사에만 참여하고 집에 돌아와야만 했던 본당은 나에게 신앙적으로 더 깊어지고 넓어질 만한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주지 못했다.

 

  • 본당이 홀로 서는 청년들의 성장 공동체가 되어주길

다시 스무 살의 나로 되돌려 다시 독립할지 말지를 선택하라고 하면, 나는 주저 없이 홀로서기를 택할 것이다. 처음엔 얼떨결에 했던 선택이지만, 그 후로도 계속 혼자 살 것을 결정한 것은 결국 온전한 나의 의지로 비롯된 선택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삶을 우선순위에 두어서이든 경제적인 이유로든 1인 가구의 삶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더욱 많아질 것이고, 우리 사회를 이루는 보편적인 삶의 형태가 될 것이다. 이제는 기존의 고정관념처럼 1인 가구를 4인 가구로 가기 위한 중간 단계가 아닌, 항구적인 삶의 선택일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시스템 상에서는 여전히 1인 가구를 위한 정책적 뒷받침이 전혀 없다시피 하고, 혼자 사는 이들의 삶은 외롭고 불안하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각자도생’의 삶을 이겨내고 있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정서적 지지와 삶의 경험을 나눌 수 있는 공동체다.

2014년 서울 강동구에는 ‘청년 아지트 강동팟’이 문을 열었다. 같은 동네의 청년들이 가끔씩 모여 서로 안부를 묻고 공통된 무언가를 시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된 청년 커뮤니티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함께 식사하며 소소한 생활의 이야기를 나누는 소셜다이닝 ‘화요식탁’, 누구나 가르치고 누구나 배울 수 있는 공유학습플랫폼인 ‘누구나 학교’ 등 청년들의 삶을 지속적으로 연결하고 공유하도록 묶어낼 수 있는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들이 시도되고 있다.

이 커뮤니티 공간이 지향하는 바는 그저 언제 어떤 이유로라도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있고, 공통된 관심사를 나눌 사람이 있고, 서로의 안부를 지속적으로 걱정해 줄 수 있는 ‘사회적 자본’으로서의 공동체다. 나는 이러한 공간이야말로 이 시대의 청년들이 원하는 ‘따로 또 같이’ 할 수 있는 형태의 공동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각 지역의 본당도 가톨릭 신앙을 가지고 뿔뿔이 흩어져 살아가는 청년 신앙인들에게 이런 역할을 하는 신앙공동체의 중심공간으로 기능할 수 있지 않을까?

수많은 선택의 순간들을 지나오는 동안 함께했던 신앙적인 경험들은 내 선택의 기준으로서 가장 큰 우선순위를 차지해 왔다. 나에게 그러했듯, 신앙으로 모인 공동체 속에서 나눌 경험과 생각들이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도 주체적인 인격으로서 오롯이 설 수 있도록 청년들의 자양분이 되어 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암흑이 가득한 터널을 걷는 듯한 이 시대의 청년들에게 본당이 정서적 지지와 대안적 삶의 실천 공동체로서의 허브가 되길 바란다.

 


강수언. 마케팅과 PR 그 사이 어딘가쯤에서 소셜미디어로 먹고사는 2년 차 광고인이다. 얕고 넓게 세상에 관심이 많아 9년째 혼자 살아도 심심할 틈 없이 잘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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