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있는 종교의 길을 찾아서- 8호 좌담회

2016년 말 통계청이 발표한 ‘2015 인구주택총조사(이하 인구센서스)’ 종교인구 집계결과에 따르면, 믿는 종교가 없다는 인구 비율은 2005년 47.1%에서 2015년 56.1%로 증가했다. 10년 만에 이뤄진 이번 조사에서 종교를 믿는 인구는 270만 명 정도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 감소 인원은 주로 불교(300만 명)와 천주교(110만 명) 신자가 감소한 결과였고, 개신교 신자는 오히려 120만 명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한국 사회의 변화된 종교 현실을 어떻게 읽고 응답해야 할지, 2017년 2월 9일 우리신학연구소에서 좌담회를 진행했다.

사회 이미영_《가톨릭평론》 편집장

좌담 김진호_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박문수_《가톨릭평론》 편집위원장

유승무_중앙승가대학교 포교사회학 교수

윤승용_한국종교문화연구소 이사

탈종교화 현상, 종교인구는 왜 감소하는가?

이미영 : 10년 만에 나온 인구센서스 결과를 보면, 한국 사회에서 종교를 믿는 인구보다 종교를 믿지 않는 인구가 더 늘어난 역전현상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종교마다 약간의 편차는 있지만 전반적인 흐름에서 제도종교의 약화 현상이 체감되고 있습니다. 1월 말에 신대승네트워크 주관으로 열렸던 긴급토론회에서 이미 종교별 증감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분석을 했지만, 이 자리에서는 전반적인 오늘의 탈(제도)종교 현상을 함께 생각해보고, 한국 사회에서 종교가 어떤 길을 가야 할지 지혜를 모아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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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용_한국종교문화연구소 이사

윤승용 : 긴급토론회에서 제가 기조발제를 하면서, 현대사회에서 종교의 흐름을 크게 네 가지 방향으로 소개했습니다. 첫째, 과학이 지배하는 세속의 질주로 인하여 종교에 대한 무관심과 무신론의 확산으로, 과학이 종교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둘째, 종교문화가 상당히 현대의 세속적 대중문화와 닮아가고 있습니다. 종교가 개인성찰을 비롯해 존재론적인 구원의 차원이 아닌, 그야말로 개인의 삶에 보탬이 되고 필요에 따라 표층종교화 되는 현상을 띄며 대중문화와 닮아가는 것이 큰 흐름입니다. 셋째, 비합리적인 근본주의의 확산인데, 제도종교들이 각자도생하는 시대의 흐름처럼 종교인구 감소 시대에 자기 것을 지키기 위해서 자기 종교전통을 너무 절대시하고 외부와 담을 쌓으며 점차 이익집단화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탈근대 영성종교가 유행하는 흐름으로, 어떻든 종교라는 것은 개인의 사적인 욕심이나 탐욕 부분에서 무언가 더불어 살고 공심(公心)을 가질 수 있는 매개체나 기재가 되어야 하는데 이런 가치에는 무감각하고 지극히 개인적입니다. 한국 사회가 신자유주의 혹은 사회적 전환기 속에서 갈등관계가 형성되고 있는데, 이를 해소할 방법을 종교도 함께 모색할 필요가 있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김진호 : 사실 한국 사회에서 종교가 이익집단화 되는데 개신교의 책임이 크다고 하는데, 개신교는 본질적으로 시장적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 사회처럼 개별교회가 많은 곳에서는 시장에서 살아남아야 하니까 점점 자기들끼리 담을 쌓고 생존의 묘수를 찾고 있습니다. 이런 생존전략이 나쁜 것만은 아닐 수 있지만, 성찰의 노력보다는 일종의 기술개발 차원이 훨씬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니 한국 사회의 종교시장화에 대한 자기성찰이 덜 나오고, 한국의 종교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데 개신교가 나쁜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비추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윤승용 : 물론 사회적 상황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한국 종교의 모델 자체가 시장친화적인 개신교로 되어가고 있습니다. 다종교 사회에서 다른 종교와 서로 경쟁하는데 종교 내면적인 힘이나 문화사회학적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 맞는 경제적인 모델을 따르게 됩니다. 대형교회가 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다른 종교도 그런 성장을 바라며 따라가면서 생기는 문제라고 봅니다.

유승무 : 전통종교가 추구하던 길은 세속의 가치와 다른 내적 가치로 호소했습니다. 자신의 본래 가치지향을 잃어버리는 것을 세속화라고 하는데, 종교에서조차도 성장모델을 따라가니 그런 차원에서 보면 세속화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 종교에서 ‘힐링’이라는 움직임이 있는데, 그런 것도 종교 본래의 가치와는 여전히 거리가 멀고 일종의 개인적 만족, 자기 능력개발, 사적 에너지 충족이라는 점에서 산업화되고 있습니다.

박문수 : 종교인구 감소와 관련해서는 천주교가 가장 절박함이 덜한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까지의 교세 성장도 적극적인 선교활동 덕이 아니라 한국 종교문화의 고유한 조건 탓에 얻어진 측면이 크기 때문일 것입니다. 최근 이뤄진 신자의식 조사 결과를 보면 신자들이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가 아주 다양하고 넓습니다. 즉, 가톨릭교회의 울타리가 굉장히 넓다는 겁니다. 하지만 신자 수가 감소하는 위기 상황에서 성사생활이나 미사참례를 강조하는 등 가장 전통적인 방법으로 울타리를 높이며 배타적인 방향으로 가다 보면 자칫 적응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천주교 신자이다가 종교 활동을 그만두거나 소극적으로 돌아선 사람들의 70%는 이유가 ‘귀찮다’는 것이었습니다. 제도가 나에게 간섭하는 것도 귀찮고, 내가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기여하는 것도 귀찮고, 천주교를 떠났으니 나를 빼달라고 말하기도 귀찮은 이런 사람들이 크게 늘어난 것이지요. 이런 이들이 계속 누적되어 인구센서스 결과에서 이탈자로 드러났다고 사료됩니다.

북유럽의 종교현실에 관한 책 『신 없는 사회』는 복지국가로 가면 종교가 없어도 의미를 찾으며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한국 사회도 점점 그렇게 종교가 신자들에게 의미를 주지 않고, 종교적 가치가 무의미해지고 약화되는 모습으로 가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흐름이 지난 10년 동안 진행되었고 지금도 이런 경향이 점점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유승무 : 최근 어떤 기사를 봤는데, 어린이·청소년들의 직업선호도 최하위가 ‘종교인’으로 나타났습니다. 종교인에 대한 관심, 혹은 종교적 세계나 영역에 대한 관심과 의미부여 등이 아랫세대에서부터 약화되는 경향이 있는 듯 보입니다. 삶의 방식이 변화하고 신자유주의와 맞물려 점점 정체성도 유동적이 되다 보니, 제도종교에 대한 관심은 점점 없어지고 기존 제도에서 규정하는 종교가 아닌 자신이 의미부여를 하는 유사종교적 가치 현상이 오히려 광범위하게 늘어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수행종교의 쇠퇴와 당혹스러운 개신교 신자의 증가,

경계를 넘나드는 종교성의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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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_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김진호 : 이번 인구센서스에서 우리가 모두 당혹스러운 것이 개신교의 증가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개신교의 이미지는 더 나빠져서 증가할 수 없다고 모두가 생각했고, 개신교 내의 교적 통계 자료들도 다 감소라고 했는데 인구센서스는 증가로 나왔어요. 그런데 2015년 인구센서스 조사(개신교 신자비율 19.7%)만이 아니라 표본조사로 실시한 2014년 한국갤럽 조사(21%)와 2012년의 한국목회자협의회 조사(22.5%)에서도 개신교 신자의 비율은 비슷하게 나왔어요. 각 교회에서 파악하는 신자 수는 교회에 소속된 신자 수이지만, 인구센서스나 갤럽 조사 등은 자의식을 기준으로 하므로 다릅니다. 이 차이는 종교를 특정 영역으로 보았던 시선이 적절하지 않다고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개신교의 여러 자료를 분석하면서, 최소 500만 명의 신자들이 수평이동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수평이동 신자는 교회만 옮기는 것이 아니라 종교의 경계를 넘는 신자도 있고 종교와 무종교를 넘나드는 사람도 있는데, 이들이 이번 인구센서스에서 개신교를 선택한 경우가 많았다는 건 흥미로운 현상입니다.

2010년 이후 한국 사회 담론화 지형을 보면, 한국인들이 감정적·육체적으로 상처받고, 치유나 위로를 받고 싶은 게 많아집니다. 그리고 1인 가족도 더 많아지고 공동체도 다 흩어져서 어딘가에 속하지 못한 사람, 어딘가에 속하고 싶은 사람도 많아졌습니다. 개신교는 그런 점에서 모임 횟수도 많고, 다양한 형태로 서로 얽히는 기회가 많습니다. 상당수의 이들이 예배에 참여하지 않아도 교회가 제공하는 모임에 공적·사적 멤버십을 갖고 싶어 해요. 자신을 개신교 신자라고 말하는 사람들 속에는 공동체에 속하고 싶은 몸부림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회의 찢어진 공동체와 망가진 위로 시스템 체제에서 개신교는 뜻밖으로 그런 이들을 유인할 수 있는 장치들이 상당히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박문수 : 최근 신자의식조사를 보니 성사생활이나 미사 참여 등의 참여와 의무를 다하지 않아도 신자라는 자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꽤 많았습니다. 이런 이들이 다른 종교도 마찬가지일 텐데, 지난 20년 사이에 이들의 규모가 짧은 시간에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이미영 : 이번 인구센서스에서 개신교 신자 증가의 당혹스러움은 10년 전에 천주교가 교적 신자보다 인구센서스 신자가 더 많아서 당혹스러웠던 상황과 비슷합니다. 당시 10~20대 세례자수와 인구센서스 종교인구의 차이가 큰 점을 분석하기도 했는데, 실제 젊은 사람들은 종교에 거의 무관심합니다. 그나마 개신교는 젊은 신자들은 많은데, 이 젊은 사람들의 공동체적 갈망을 개신교가 수렴하고 있는 걸까요?

김진호 : 연령대별 종교인구 분포는 좀 더 조사가 필요하지만, 수평이동 인구는 40대 연령층, 교회에 대해 열정이 많은 신자가 많았습니다. 예전에는 새로 들어온 사람들이 자기에게 맞는 교회를 찾아 옮겨 다녔는데, 이제는 교회에 오래 다니던 사람들이 실망해서 옮겨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제 추측으로는 10~20대는 사람들이 외로워서 엮이고 싶은 게 많은 것 같고, 30~40대는 외로움보다는 종교가 만들어 내는 사회적 연결망에 대한 바람이 많은 거 같습니다. 이것이 현재 개신교에 남아 있거나 새로 들어오는 청년들의 동기라고 보입니다. 2005년이나 2015년이나 개신교의 이미지가 안 좋은 건 마찬가지인데, 이제는 사람들이 그걸 문제시하지 않는다고 보입니다.

윤승용 : 지금 개신교 이야기를 들어보니, 많은 상황이 이해가 됩니다. 사실 전체적으로 40대 이하가 많이 종교에서 이탈했는데, 물론 먹고 사는 데 바빠서 그런 것 같다고 봤지만, 갤럽조사에서 보면 30~40대 젊은 지식인층이 많이 빠져나갔어요. 나름대로 비판정신을 가진 이들이 종교에서 이탈하는 것이죠.

사실 동양종교는 수련을 통해 성인이 되는 것을 지향하는 수련종교인데, 산업화 과정에서 이런 종교가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경제성장의 근대를 경험하면서 개신교가 그런 성장문화에 맞게 지금까지 잘 관리해온 상황이라면, 자기 성찰의 수련을 강조하는 전통종교의 수행문화는 근대 사회에서 잘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 같아요. 불교는 아무리 간화선(看話禪, 화두를 들고 수행하는 참선법)을 주장해도, 사실 현대 삶의 형식에 잘 맞지 않죠. 소통의 담론이 부족한 탓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동남아시아의 위파사나(Vipassanā, 현상을 관찰하는 명상 수행법)나 서구의 과학적인 명상 시스템 등을 사적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많아졌습니다. 현대인들은 전통불교의 간화선을 잘 수용하지 않습니다. 가톨릭도 한국화 되는 과정에서 동양적인 수행전통을 받아들였는데, 그런 수행전통이 현대화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탈근대 시대에 접어들면서 그런 수행전통의 불교나 가톨릭이 고리타분한 신앙이 되어 버려 쇠퇴하는 현상으로 나타나는 건 아닐까요?

박문수 : 공감이 되는데, 지난 20년 동안 한국인들이 여행도 많이 하고 밖의 넓은 세계를 보면서 견문이 넓어지고 지적 수준이 많이 높아졌어요. 이들 젊은 세대는 엄격한 전통종교보다 세련되고 특정 종교의 외형을 띠지 않는 것을 선호하죠.

유승무 : 현대 사회의 소외나 고독, 인간성 파괴 경향을 해결하고 싶은데, 이를 현대화시켜서 만족하게 해주는 종교는 호응을 얻는 것이죠. 그렇게 본다면 사회적 자본을 제공하거나 종교적 실천을 현대 삶의 조건에 맞게 변형시키는 내적 노력 등이 없으니 신자들이 이탈한다고 보입니다. 개신교는 그나마 사회적 자본이나 복지 등을 확보하고 있으니 소속감이나 사회적 네트워크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장을 마련하여 유지되는데, 가톨릭과 불교는 그런 것도 없으면서 전통적 방식을 완고하게 고수하니 현대 방식과 맞지 않아 이탈자들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윤승용 : 지난 10년 동안 핸드폰과 SNS 문화가 많이 발전하여, 정보나 기본적인 사회 상식을 모든 사람이 쉽게 얻게 되었습니다. 종교에 대해서도 내면이나 본질로 보는 것이 아니라, 정보와 여론을 통해 어떤 종교를 선택할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과거처럼 실존적인 고민, 존재론적인 갈망, 죽음의 문제 등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돈벌이나 세속적인 문제 해결에 더 많은 관심을 보입니다. 종교와 관련하여 단순히 나에게 도움을 주느냐로 판단하는 경향이 생겼습니다.

예전에는 어른들이 “인간이 좀 되라”는 말을 했다면, 현대에는 “돈만 있으면 된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젊은이들이 실존적 고민과 삶의 당혹감을 해결하는 방법론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우리 사회의 여건 자체가 신자유주의 경제 중심의 성장과 세속적 과학의 논리로만 움직이는 사회로 질주하고 있는데, 종교도 그 흐름에 떠밀려 흘러가고 있는 전환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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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수_《가톨릭평론》 편집위원장

박문수 : 사실 미디어의 발달은 공간의 제약을 벗어나게 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 사람들과 연결되고, 상호작용의 범위와 빈도가 높아지고 커뮤니케이션이 많이 이루어지다보니 다양한 변화와 경험 수치들이 높아지는데, 종교는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오히려 적응하라는 식으로 나오니 오만하게 여겨집니다. 그래서 점점 더 외면당하고 소수의 문화로 남게 되리라 보는 것이에요. 이런 변화를 한국의 어떤 종교도 따라가지 못하고 있고, 특히 전통이 오래된 종교는 더 따라가기 힘들지요.

윤승용 : 세상이 달라지면서 세속화되었다는 측면도 중요하지만, 세속과의 종교 간의 중간 지대와 관련해서 검토해 본다면 종교인구의 변동뿐만 아니라 종교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중간지대에서 움직이는 신앙대중들과 점점 모호해지는 종교영역의 경계선을 우리가 어떻게 보아야 할지,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를 이해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영성의 시대, 제도종교는 이 영적 갈망을 어떻게 담아낼까?

이미영 : 제도종교가 담아내지 못하고 있는 영적 갈망과 종교성의 현상이 어떤 것인지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 공통점과 특징을 발견할 수 있을 듯합니다.

김진호 : 근대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많은 것에 경계를 만들어 놓았지만, 포스트모던 사회에서는 다양한 형태로 국경을 넘나드는 존재들이 많은데 종교에서도 그런 것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개신교는 아주 근대적인 종교이지만, 흥미롭게도 개신교의 적응 전략 속에는 영성 프로그램이 많습니다. 일례로 개신교는 가족을 아주 중시하지만, 대형교회에서는 혼자인 사람들을 위해 미국에서 공부한 상담전문가들이 이끄는 프로그램이나 모임이 많아서 영적으로 돌봅니다. 이들은 가족 중심의 신자들과 완전히 별개로 따로 모이니, 예배는 안 나가도 거기에는 가는 거죠. 또 교회끼리 독신자들을 연결해주는 프로그램으로 경계를 넘나드는 것도 제공합니다.

이처럼 개신교는 다양한 세대별·연령별 프로그램으로 사람에게 다가가는 좋은 전략이 많이 만들어지는데, 문제는 그런 것에 대한 성찰의 제도는 없죠. 얼마나 효과를 거두었는지는 검토하지만, 가족주의의 문제점에 대해 비판하거나 성찰하지 않는 그런 결핍된 종교성을 재생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대형교회가 대표하는 종교성에는 한국 사회의 보수주의를 대변하는 것으로 재현되고 있는 겁니다. 성장의 조건은 발달하지만 성찰의 조건은 같이 발전하지 않는 것, 이런 것이 우리 사회에서 종교가 문제점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현 시대가 어려울수록 종교성이 확산될 수 있는 요소가 많은데, 이런 요구에 종교가 어떤 방식으로 재생산되고 있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박문수 : 영성의 본질론적 정의는 종교가 발생하기 이전 마음의 상태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대체로 다원주의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영성이 다원주의에 적합한 것을 제공합니다. 이러한 영성이 범람하는 것은 이미 제도종교의 약화라는 것을 보여주는 현상이고, 이것들이 탈종교적 색채를 띠고 있어요. 원리는 전통종교 안에서 하는 영성인데, 세련되게 바꾸고 섞어 놓은 것이죠. 그런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소위 영성운동 확산과 맞물리면서 영성상품 시장을 확장 시켜놓았고, 그것이 가톨릭이나 불교 같은 수련종교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윤승용 : 종교를 넘어선 종교성 이야기를 하면서 ‘영성’을 많이 이야기하는데, 사실 영성은 다양한 의미가 있기 때문에 딱히 종교성을 지칭하기에는 마땅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다종교 사회에서 많은 사람이 객관적으로 종교적 색채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말이 영성입니다. 그러나 어떠한 영성도 종교적인 배경이 없는 영성은 없습니다. 다만 제도화되지 않아서 종교적으로 얽매이지 않고 활용할 수 있다는 정도로 바뀐 것이죠. 그런 측면에서 우리 사회의 큰 흐름을 영성의 시대라고 이야기한다면, 제도종교들이 자기 나름대로 그런 것들을 현대화·대중화하면서 얼마나 종교적인 삶 속에 녹아나게 하느냐가 가장 큰 과제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유승무 : 저도 영성 흐름에 주목하는데, 영성과 제도종교 사이에 경계를 표시하면 포함과 배제가 형성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 구조가 기존 종교 영역 안으로 재진입을 하죠. 제도종교가 그 경계와 영성적 흐름을 기존에 추구했던 종교성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처리하고 처리하는 능력이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미영 : 종교적 삶을 선택해서 투신하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고, 영적 갈망을 제도종교에서 풀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풀려는 흐름은 늘어나는 듯합니다. 제도종교는 이런 변화에 어떻게 응답할 수 있을까요?

박문수 : 최근에 천주교에서도 수도자와 성직자 지망자가 계속 감소하고 있는데, 이들과 같이 종교적 투신도가 높은 사람들이 줄어드는 이유는 제도종교가 한국 사회에서 힘이 약화되는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례로 과거 천주교에서 고학력 여성들이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나름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며 수도회에 들어왔는데, 1980년대 이후 시민사회 영역이 늘어나고 굳이 종교가 아니어도 그렇게 의미를 추구할 수 있는 영역이 넓어진 것도 수도자 감소의 여러 원인 중 하나일 겁니다. 지금의 상황도 마찬가지로 보입니다. 종교가 아닌 영역들에서도 다양한 체험이 가능하고 종교만 의미를 제공하는 시대도 아니어서 벌어진 현상이라 이해됩니다.

윤승용 : 본래 종교적인 의미 체계는 무게가 있고 묵직한데, 현대 사회의 대중들은 그렇게 실존 문제를 심각하게 해결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다 보니, 종교적 욕구의 내용 자체가 달라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근대종교는 내적 믿음만 강조하다 보니 세속의 삶과는 거리가 생기는 부분들이 많아졌고, 또 현대 사회에 오면서 직접 종교체험하려는 개인들이 자신의 잠재적 능력을 키우려는 경향과 그 과정에서 성직자가 중재하는 근대적인 전통종교들이 가진 모순들이 드러나게 됩니다. 결국 세속권력처럼 종교권력이 존재하게 되고, 종교권력의 민주화를 이야기하게 됩니다. 그런데 종교권력은 종교전통과 지도자의 카리스마가 기본이 된다는 점에서 세속의 민주화와 다릅니다. 실질적으로 평신도들은 그런 것을 요구하는데, 전통종교들은 이런 모순 속에서 방황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근대적인 종교가 새로운 종교 형태로 바꿔 나가는 과정에서 적응하는 방법을 두고 내부 갈등이 공존한다고 보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앞으로의 종교는 이 같은 문화적인 추세를 무시할 수 없을 겁니다. 근대적인 종교와는 조금 다른 새로운 형태의 종교를 제공해야 하는데, 종교전통이나 종교적 카리스마를 담보하면서 현재의 수직적 관계를 수평적 관계로 재편성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합니다.

김진호 : 개신교에서는 제도와 영성 사이의 갈등과 긴장의 역사가 계속 있었는데, 최근에는 과거와 달리 성직자가 아닌 신자들이 주도하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성직자들은 반이슬람, 반동성애를 외치지만 신자들은 이를 별로 귀담아듣지 않아요. 신자들 스스로 열정적으로 성경을 읽고 다른 종교에 대해서 적대적이지 않은 면이 강화되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이 제도화되는 방식으로 나타난 게 1990년대 중후반에 강남·강동 지역에서 부흥한 웰빙-보수주의적 형태를 가진 소위 ‘후발 대형교회’이고, 다른 하나는 ‘작음’ 자체를 의미화하는 ‘작은 교회’ 운동입니다. 이 작은 교회 운동은 경계허물기를 통해 그 지역의 수많은 단체와 관계맺기를 하면서, 어떤 사람이 교회 신도인지 단체 사람인지 모호하게 뒤섞여 모여 있습니다. 지역적 공공성이 신앙 속으로 얽혀가는 이런 형태의 실험이 있는데, 아직 주목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영성은 끊임없이 제도화되면서 제도의 생존 비결들을 발견해 나가고, 개신교는 이런저런 방식으로 생존의 묘수를 찾고자 합니다. 제도화되면서 영이 가진 생명력이 다른 것으로 변질된다고 비판하지만, 개신교는 어떤 점에서는 영을 제도화함으로써 과거 제도가 지닌 폐쇄성에서 벗어나 열린 신앙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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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무_중앙승가대학교 포교사회학 교수

유승무 : 불교는 출가자가 급감하고 전반적으로 기존 불교의 관행에 문제가 있다는 것들에 대해서는 대체로 인식을 하는데, 그런 것을 어떻게 돌파할지를 모르고 헤매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다양한 의미 가치를 추구하는데 기존의 제도종교는 그 의미세계를 다양화하는데 의미부여를 못하고 기존 질서에 안주하는 현상인데 불교도 그렇습니다. 개신교는 탈경계의 움직임과 시도를 자유롭게 하는 것 같은데, 불교는 전통과 승려들의 카리스마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에 의존하고 안주하려는 흐름에서 못 벗어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박문수 : 가톨릭도 마찬가지로 보입니다. 이러한 변화가 있을 때 제도 교회가 전통적으로 선택해왔던 방법처럼, 중세적 방식으로 신자들을 가두고 세속과 접촉을 줄이며 자신의 정체성을 강화하려 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신자들이 변했고 한국에서 종교 역할도 많이 달라졌는데 이 방식을 취하면 결국 소수만 남게 될 것입니다. 이 때 남은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성스러움을 극대화하려 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교회의 적응력은 떨어지고 울타리만 높아져서 가뜩이나 대중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져 가는데 더 멀어질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김진호 : 천주교나 불교는 변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하죠. 개신교는 끊임없이 적응하려고 하는데 2005년은 변하지 않으려는 종교가 성공한 것이고, 2015년에는 변화하는 종교가 성공한 것입니다. 이 문제는 종교와 시대가 어떻게 접속하는가의 문제이고 종교가 제도적 쇄신을 의미 있게 하느냐의 차원이죠. 또 하나 제가 주목하는 것은 개신교의 수평이동 신자들이 다 개신교 신자가 아니라는 거예요. 과거에는 경계가 있었지만 지금은 여러 종교, 비종교가 다 뒤섞여 있는 일종의 공론 장이 우리 사회에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죠. 그런 장에서 이런저런 활동을 만들어내면서 제도화되지 않는 종교성의 담론 지형을 만드는 거 같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종교는 어떤 의미로 존재할 것인가?

이미영 : 앞으로 한국 사회에서 종교는 어떤 자리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그 지향점은 무엇이 돼야 할까요?

유승무 : 우선 새로운 종교적 욕구들이 등장하고, 여러 종교를 경계 없이 넘나들며 믿는 이들이 등장하면서 그들이 만들어가는 담론의 공간들이 만들어지는 현상이 일어나겠죠. 이런 상황에서 제도종교의 길은 저항하거나 수용하든지 혹은 기존 것에 섞는 등의 방법이 있겠지만, 공론의 장에서는 참여하는 사람들의 의사소통 양식이 미래를 만들어가는 방식이 되리라 봅니다.

향후 한국 사회의 종교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불교 입장에서 이야기한다면, 불교는 자기반성부터 시작해서 범계(犯戒)에 대한 내부 반성이 필요하고, 공공에 대한 관심이나 사회참여, 시민운동에서의 역할을 조금 더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지점이 현재 사회로부터 비판받는 것이고, 다른 종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약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변화와 그 계기들은 사회와의 접점 지점에서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박문수 : 사회가 변할지라도 종교가 변함없이 할 수 있는 역할 중 하나는 국가의 손이 미치지 않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이고, 다른 하나는 가장 진지한 사람들에게 의미체계를 제공하는 거라고 봅니다. 천주교에서 60대 이상 신자 수가 계속 증가하는 점을 보면서, 고령화 시대에 어르신 세대에게는 종교가 여전히 의미가 있고 일종의 유사 공동체(가족)의 기능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국가의 빈자리를 찾아 그곳에 집중하며 기여하는 것이 가장 큰 역할로 보입니다. 이미 시민사회가 가지고 있는 가치와 잠재력을 보았을 때, 과거 70~80년대와 같은 역할은 하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합니다.

김진호 : 종교인 신뢰도 조사를 보면, 목사와 달리 사제와 스님들은 50% 이상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런 사회적 신망도는 종교가 가진 자산이자 자원입니다. 종교가 한국 사회의 공공성에 기여할 요소는 많다고 보입니다. 지금의 주말마다 촛불을 들고 모이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어떤 구체적인 사회에 대한 설계로 모이는 것이 아니라 염원을 표하는 종교성을 보이고 있어요. 한국의 종교들이 자신의 종교공간에 갇혀서 시민성을 못 밝히고 있었을 때, 시민들이 그런 공간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죠. 시민종교, 종교가 아닌 시민들이 만든 종교입니다. 사람들이 종교별로 활동하지 않아도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공간과 무대가 형성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일종의 종교적 공론의 장, 종교-비종교의 어울림 장이 커지고 있습니다. 종교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는데, 아직 주저하고 있다고 봅니다. 공론의 장에서 이런저런 활동을 하는 단체들이 많은데, 그런 단체들에 힘을 실어주는 활동을 제도 안팎을 둘러싸고 종교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유승무 : 기존 종교들이 어떤 방식으로 의미부여하고 참여하느냐에 종교 자체의 공공성이 표명되는 것인데, 그동안 그것을 종교단체나 성직자들이 주도했더라면 최근에는 신자들 자신이 만들고 있죠. 종교에서 제공하고 성직자가 구성해주는 의미를 수용하는 수용자적 위치였는데, 이제는 자기 삶의 질을 직접 추구하는 의미의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지 않나 싶어요. 이번 촛불 경우에도 과거 카리스마를 갖는 지도자나 단체가 이슈화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이 구성하고 만들어갔죠. 사회운동론으로 본다면 이런 것은 조직 없는 운동 형태로 만들어져서 쉽사리 사그라든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기존 시민단체, 종교조직 단체들이 얼마나 이를 잘 결합해서 의제로 끌고 가주느냐가 중요합니다. 의미의 구성이나 물음들을 기존의 종교적 카리스마나 교단에서 뿌리고 확산하는 방식이 아니라 시민들이 스스로 묻고 자기 스스로 행동하는 현상들이 보이고 있습니다. 앞으로 종교 현상에서도 중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윤승용 : 이번 촛불을 대중이 모여서 만들어가는 사회현상으로 읽는다면, 우리 전반적인 문화양식이나 생활문화도 그런 방향으로 나가지 않겠냐는 차원에서 전환기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종교로서는 새로운 종교욕구들을 제도종교에서 어떻게 수용하는가가 문제인데, 종교적 전문성과 대중성이 양극화되며 사회적 역할도 분화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어요. 한국 사회에 종교인구가 48% 정도 된다고 이야기하지만, 인적 자원·물적 자원을 보아도 종교는 시민단체에서 가장 큰 세력입니다. 종교가 시민단체에서 시민의 공공성을 담보하는 역할만 해준다면 우리 사회의 큰 버팀목 역할이 될 거 같습니다. 또 제도적인 영역과 개인 간의 매개적인 역할을 잘 할 수 있다면 매우 큰 도움이 됩니다. 사실은 종교단체가 그렇게 자리 잡는 게 가장 바람직합니다. 그래서 종교단체가 자기집단만을 위한 이익집단이 되지 않고 시민의 공적인 자산으로 자리 잡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종교의 경계를 넘나드는 신앙인이 500만 명 정도 된다고 이야기하시지만, 실제로 그 정도는 안 되는 거 같아요. 한국 개신교의 친미분단 보수체제는 너무 견고합니다. 그리고 공공적이지 않은 부분도 많습니다. 제도교회의 측면에서 영성을 어떻게 할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우리 사회의 틀을 이루고 있는 근본주의적인 보수대형교회의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야합니다. 종교가 항시 인간과 공동체와 관련된 비전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시대정신이나 한반도의 장래와 같은 문제를 우리 사회 최대의 시민단체인 제도종교권에서 담아내지 않으면 우리 사회의 개혁이 너무나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유승무 : 종교는 사회적 동원 능력을 갖추고 있는데, 이들의 사회적 역할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내부 개혁과 민주화가 있어야 사회체제를 바람직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밀어줄 것인데, 종교가 그런 역할을 하려면 보수 단체의 각성을 종교가 어떻게 해야 하나 그것이 과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보수 단체 구성원들도 이데올로기 빼고 마음의 구조는 유사한 부분이 있어요. 한국인들의 심층에 깔린 정서가 작용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것의 지형을 어떻게 바꾸어 나가느냐에 주목해야하는데, 기존의 제도종교가 바뀌지 않으면 역할이란 게 제한적일 것입니다.

김진호 : 사람들이 바라는 변화의 갈망에 비추면 제도종교는 바뀌는 속도가 느립니다. 500만 명이라고 얘기한 사람들의 상당수는 자신의 이념적 지향과 종교적 지향과 다르게 행동하는 게 많아졌어요. 근본주의적 교회를 다니지만, 법륜스님이나 프란치스코 교황을 존경한다고 말하고 불교와 천주교 프로그램에도 참여합니다. 근본주의적 신앙의 힘이 이완된 거예요. 보수주의라는 것에 동요되거나 결박되지 않는 모순적 행동 계층이 늘어났어요. 우리 사회 종교의 완충지대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특징이죠. 우리가 노력하지 않았는데도 자동으로 얻어진 기회의 장입니다.

이미영 : 경계를 넘나드는 유동하는 종교성을 제도종교가 어떻게 응답하고 또 우리 사회의 공공성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가 앞으로의 과제로 보입니다. 긴 시간 함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2017년 1월 25일, 신대승네트워크·우리신학연구소·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공동주최로 “‘한국의 종교, 탈종교화에 대응할 수 있나?’-2015 인구센서스의 종교인구 변동이 던지는 의미와 과제”라는 특별토론회를 열었다. 이 토론회의 자료집 전문은 신대승네트워크에서 발간하는 <신대승 e-매거진>(http://webzine.newbuddha.org) 2017년 제8호(2월호)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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