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이 사라진 시대, 그리고 구악(舊惡)의 세상 – 8호 특집원고

부끄러움

세월이 거칠어지고 무도가 활개를 치다 보니 어느덧 부끄러움을 아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조금씩 관심들이 생겨나고 있다. 특히 공자가 부끄러움(恥)을 자주 말했고 맹자가 수오지심(羞惡之心)을 사단(四端)의 하나로 제시했기 때문에 유교적 전통에서는 유달리 부끄러움이 강조됐다. 어떻게 보면 부끄러움 자체가 독립된 가치처럼 여겨질 정도다. 그러나 부끄러움은 중요한 심리현상이기는 하지만 그 자체가 도덕적 가치라고 할 수는 없다. 이를테면 공자가 제자 자로(子路, 由)를 칭찬하여 “해진 솜두루마기를 입고 여우나 담비 털옷을 입은 자와 함께 서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을 사람은 바로 유(由)일 것이다.”(衣敝縕袍,與衣狐貉者立而不恥者,其由也與. 『논어』 9/26)고 했을 때의 부끄러움은 결코 바람직한 가치로서의 부끄러움은 아니었다.

따라서 모든 부끄러움이 긍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부끄러움 자체를 추구할만한 가치처럼 여기는 다수의 일반적 경우를 보면 대개 부끄러움에 앞서 바람직한 그 어떤 가치가 명시적 혹은 묵시적으로 전제되어 있다. 따라서 그런 경우에는 부끄러움 자체를 높은 가치처럼 여기더라도 굳이 그것을 잘못이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공자가 부끄러움을 이야기한 다른 여러 경우가 대개 그러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옛사람들이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은 자신의 됨됨이가 그 말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했기 때문이다.”

子曰:古者言之不出,恥躬之不逮也. 『논어』 4/22

사실 자신의 실제와 자신의 말 사이의 간격을 인식하고 그 차이를 부끄러움으로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매우 순수한 도덕적 감수성을 지닌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말은 드러나 있지만 실제는 적어도 말과 같은 방식으로 드러나 있지는 않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실제와 말 사이의 간격을 인식하고 부끄러워할 수 있는 사람은 그에 앞서 자신의 실제를 있는 그대로 투시해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닐 수 없다. 반대로 거기서 어떠한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실제가 자기 자신에게도 온전히 감추어져 있다는 뜻일 것이다. 물론 그것은 자기기만의 형태로 전개되기 때문에 끝까지 완전하게 감춰질 수는 없고 그 점에서 대부분 불행한 파행을 보이게 된다. 또 다른 언급 하나를 보자.

자공(子貢)이 물었다.

“어떠하여야 선비라 할 수 있겠습니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자신을 행함에 부끄러워함이 있고 각국에 사신으로 나가 군명을 욕되게 하지 않으면 선비라 할 수 있다.”

子貢問曰;何如斯可謂之士矣?子曰;行己有恥,使於四方,不辱君命,可謂士矣. 『논어』 13/20

“자신을 행함에 부끄러워함이 있다”(行己有恥)는 말에는 그 부끄러움이 지향하고 기피하는 바가 생략되어 있다. 그런데 생략되어 있다는 말은 동시에 그것이 전제되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전제되어 있지 않다면 생략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전제된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공자는 아무런 설명이 없다. 그러나 행기유치(行己有恥)라는 말에서 우리는 이미 그것을 느낀다.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君子恥其言而過其行(『논어』 14/29)에 나오는 “군자는 자신의 말을 부끄러워한다”는 표현은 전제를 전제할 때에만 가능한 표현이다. 그 전제를 깨닫지 못하면 다수의 학자들처럼 而를 之로 임의로 바꾸는 무리한 짓을 한 후에야 겨우 겉치레 해석이라도 가능했던 것이다.

 모든 부끄러움이 다 바람직한 것은 아니면서도 일련의 긍정적 부끄러움은 거의 인간 존재 그 자체에로 무한수렴하는 단순성(簡)을 보인다. 우리는 이미 부끄러움과 관련한 많은 말들을 그런 무한수렴된 전제 위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부끄러움을 잃어버리고 그 감각이 마비된 경우를 ‘몰염치(沒廉恥)’ 또는 ‘파렴치(破廉恥)’라고 부를 때도 우리는 역시 마찬가지의 차원을 배회한다. 그 차원은 은미하고 내밀하다. 형상이라면 잘 보이지 않는 차원이고 소리라면 잘 들리지 않는 차원이다. 그러나 그 내밀한 형상과 소리는 인간의 삶을 도도히 규율하는 특별한 힘을 갖는다. 공자도 말하지 않았는가. 행기유치(行己有恥)가 바로 사어사방,불욕군명(使於四方,不辱君命)의 근거라고. 부끄러움은 일체의 근거가 된다. 다시 공자의 말 하나를 보자.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정령(政令)으로 이끌고 형벌로 다스리면 백성들은 겨우 따르게는 되겠지만 부끄러워할 줄 모르게 된다. 덕으로 이끌고 예로 다스리면 부끄러워할 줄 알게 되고 또 저절로 갖추어 갈 것이다.”

子曰;道之以政,齊之以刑,民免而無恥.道之以德,齊之以禮,有恥且格. 『논어』 2/3

정치를 명령(政)과 형벌(刑)로 하는 것과 덕(德)과 예(禮)로 하는 것에 따라 백성들은 부끄러움이 없어지는 것(無恥)과 부끄러움을 갖게 되는 것(有恥)으로 나뉜다. 전자는 단지 겉치레만 갖추겠지만 후자는 저절로 내실을 갖추어 간다는 것이다. 이는 매우 중요한 진술이다. 그러나 중요하다는 느낌은 받지만 뭐랄까 모든 것이 온통 안개 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은 느낌도 동시에 받는다.

내밀한 소리

우리는 바야흐로 무중력지대에라도 들어선 것일까? 그렇다. 내밀하고 은미한 것은 바로 진실의 표징이기도 하다. 비록 위고문(僞古文)으로 판정되기는 하였지만, 일찍이 주자를 포함한 수많은 유학자들을 얼어붙게 만든 『서경』의 저 유명한 구절, “인심은 실로 위태하고, 도심은 실로 은미하니”(人心惟危,道心惟微)는 진실의 운명적 모습이 그만치 내밀함을 말했다. 공자가 부끄러움을 말하고 한 꺼풀 아래의 진실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그런 내밀하고 어렴풋한 지대를 지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그 한 꺼풀 아래의 안개지대, 일찍이 공자가 경건히 걸어 들어갔던 그 만만치 않은 지대로 들어가 보기로 하자.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옛날에는 사람들에게 세 가지 병통이 있었는데 오늘날에는 그것이 없어지지 않았나 한다. 옛날의 급진적인(狂) 이는 스스럼없었으나 오늘날의 급진적인 이는 배타적이다. 옛날의 자만하는(矜) 이는 고지식했으나 오늘날의 자만하는 이는 성내고 대든다. 옛날의 어리석은(愚) 이는 솔직했으나 오늘날의 어리석은 이는 기만하려 든다.”

子曰;古者民有三疾,今也或是之亡也.古之狂也肆,今之狂也蕩.古之矜也廉,今之矜也忿戾.古之愚也直,今之愚也詐而已矣. 『논어』 17/16

옛날(古) 사람들에게 있었던 세 가지 병통(三疾)과 오늘날(今) 사람들에게 있는 세 가지 병통이 조목조목 비교되고 있는 단편이다. 급진성(狂)이든 자만(矜)이든 어리석음(愚)이든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인간이 가진 공통된 병통이다. 그런데 그 양상은 예와 지금이 다르다. 급진성과 관련하여서는 스스럼없던 예전과 배타적인 오늘의 차이가 있고, 자만과 관련하여서는 고지식하던 예전과 성내고 대드는 오늘의 차이가 있다. 또 어리석음과 관련하여서는 솔직하던 예전과 기만하려 드는 오늘의 차이가 있다.

문제는 그 차이다. 그 차이는 뭘까? 그 차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주자를 비롯하여 전통 유학자들은 그것을 ‘정도의 차이’로 보았다. 주자가 “스스럼없음(肆)은 작은 범절에 구애받지 않는 것(不拘小節)이고 배타적인 것(蕩)은 큰 한계를 넘는 것(踰大閑)”이라 한 것도 결국 크고 작은 정도의 차이를 말하고 있다. 또 범조우(范祖禹)가 “말세로 갈수록 거짓이 늘어난다(末世滋僞)”고 한 것도 역시 옛날과 오늘을 정도의 차이로 본다.

그러나 공자의 안목에 인도되어 옛날과 지금(古今)의 사이를 가르고 들어가면 거기에는 정도의 차이를 넘어 완전히 다른 두 세계가 전개된 것을 발견한다. 옛날의 세계에도 급진성(狂)과 자만(矜)과 어리석음(愚)은 있었다. 그런데 그것들은 고요히 있었다. 달리 말하면 그것들은 부끄러움 속에서 고요히 자신들을 다잡고 있었다. 그런데 공자가 말하는 오늘날(今)의 그것들은 다르다. 그것들은 바야흐로 거친 자기주장에 떨어져 있다. 급진성은 걸리적거리는 다른 입장들을 배척한다. 자만은 여타의 주장을 타도하려 든다. 어리석음은 자신의 둘레에 폐쇄적 장막을 친다.

이것은 완전히 다른 두 세상이다. 이것은 정도의 차이가 아니다. 하나는 동쪽을 향해 있고 하나는 서쪽을 향해 있다. 작은 범절(小節)과 큰 빗장(大閑)으로 병렬된 것도 아니고 작은 거짓과 큰 거짓(滋僞)으로 나열된 것도 아니다. 공자는 너무나도 다른 두 세상, 상반된 세상을 설파하였던 것이다. 이제 공자의 그 안목과 사유가 얼마나 엄청난지, 그가 헤집고 들어갔던 두 세계가 얼마나 팽팽히 대치하고 있는지 그 극단적인 모습을 또 다른 한 단편을 통해서 보기로 하자.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백이와 숙제는 구악(舊惡)을 생각했던 것이 아니라 그것이 드물게 쓰이는 것을 원망하였다.”

子曰;伯夷叔齊,不念舊惡,怨是用希. 『논어』 5/23

백이숙제가 누구인지는 잘 알 것이다. 은(殷)나라의 마지막 왕이자 희대의 폭군이던 주왕(紂王)을 보다 못해 타도한 것이 무왕(武王)이었다. 그 무왕을 주(紂)와 똑같이 무도하다고 비난하였던 사람들이 백이숙제였다. 심지어 그들은 무왕이 세운 주나라의 곡식은 먹지 않겠다고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만 캐 먹다가 죽은 두 노인이었다. 그들을 두고 공자가 제자들에게 들려준 이 미묘한 말은 역대 학자들에 의해 한결같이 “그들은 옛날에 누가 자신들에게 악행을 했더라도 그것을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에 남을 원망하는 일이 없었다”고 해석됐다. 한마디로 공자의 인식수준에 현저히 미달하는 속된 해석이자 억지 해석이다. 공자는 그들이 “구악을 염두에 두었던 것이 아니라 그것이 드물게 쓰이는 것을 원망하였다”고 말했던 것이다.

이 얼마나 역설적인 말인가? 백이숙제는 구악이 싫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구악이 너무나도 드물게 쓰이고 있음을 원망하여(怨是用希) 고사리만 캐먹다가 굶어 죽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구악(舊惡)의 통용을 간절히 염원하였다는 말이다. 이제 그들의 말이 이해가 되는가? 그렇다면 구악은 무엇인가? 여기서 앞서 이야기하였던 『논어』 17/16의 저 옛 병통(古之疾)으로부터 우리는 도움을 받게 된다. 구악(舊惡)은 고질(古疾)과 통하고 (문장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신악(新惡)은 금질(今疾)과 통하는 것이다.

아무런 부연설명도 없이 거두절미된 『논어』 5/23은 그렇게 공자의 입에서 발설된 이후 2500여 년 동안 제 뜻을 잃고 종이 위의 한갓 먹물로만 유전됐던 것이다.

구악(舊惡)의 역설

『논어』 17/16에서 고질(古疾)을 언급할 때와는 달리 『논어』 5/23에서 공자는 바야흐로 구악(舊惡)을 언급하며 실로 누구도 감히 시도하지 못한 엄청난 역설을 담아내고 있었다. 그래. 우리가 회복해야 할 세상은 일찍이 백이숙제가 간절히 희망하였던 저 ‘구악의 세상’인 것이다. 우리가 회복해야 할 세상은 판단과 자세와 행동이 완성된 세상이 아니었다. 완전무결의 세상, 선(善)의 세상이 아니었다. 부족한 인간이 만드는 여전히 부끄럽고 불완전한 세상, 그렇지만 그 완성을 향하여 오롯이 두 손을 모으고 있는 고질(古疾)과 구악(舊惡)의 세상을 그들은 그리워했던 것이다. 그리고 똑같은 세상을 공자도 희망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도 희망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의 세상은 금질(今疾)과 신악(新惡)의 세상이다. 아무런 부끄럼도 스미지 못하는 불모의 땅, 걸리적거리는 모든 것들을 걷어 치고 나가는 끝없는 자기 변명과 마이동풍의 세상이다. 공자도 그 앞에서 단지 이의호(已矣乎)만 발할 수밖에 없던 절망의 땅이다.

하늘과 땅처럼 벌어지는 두 세계 앞에서 예나 지금이나 우리의 선택은 그 은미하고 내밀한 차이를 우리가 느끼고 알아채는 수밖에는 달리 도리가 없다. 백이숙제에게 어떤 기발한 방안이 있었던가? 공자에게 남다른 비방이 있었더라면 그 역시 무력하게 탄식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 또한 모든 것 앞에서 조용히 그 내밀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

시선을 돌려보면 일찍이 예수도 그러했다. 그는 한 명의 세리와 한 명의 바리사이를 두고 그들의 마음에서 어마어마한 차이를 보았다(루카 18,9-14). 예수만이 그 은미한 두 세계의 차이를 헤집고 볼 수 있었다. 예수는 세리에게 의인(義認, justification)을 부여했지만 바리사이에게는 그리 하지 않았다. 그들의 하는 양을 보고 하는 말을 듣고 판단하는 데에는 우리의 세속적 보고 들음과 판단에서와는 다른 순결이 필요했다. 유독 예수와 공자에 있어서만 그것은 엄청난 차이로 다가왔다. 그냥 보아서는 보이지 않고 그냥 들어서는 들리지 않지만, 부끄러움을 유발하던 그 파장 속에서 보고 들을 경우 보이고 들린다. 확연히 보이고 확연히 들린다.

나는 지금 공자와 예수의 이름을 팔아 교묘하게 두 개의 세계를 나누어 연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모두 그런 구악의 세상이 임재하기를 희망하여 그들 생애의 모든 것을 걸었던 사람들이다. 백이숙제가 굶어죽었던 자리도 거기였다. 결코 가벼운 세계가 아니다. 나는 그들이 보았던 세상을 보고 있지는 않다. 다만 그들의 마지막 뒷모습, 그들이 종적을 감추던 자리를 더듬거리며 가리켜 보일 뿐이다.

그리하여 한 가지만 유의했으면 한다. 우리가 인간의 원초적 조건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은 어쩌면 축복이다. 부끄러움이 또한 그러하다. 부끄러움은 마치 얼어붙은 동토에도 봄이 오면 새싹이 돋듯 언제나 새롭게 시작하는 가능성이라 할 수 있다. 그 옛날 맹자가 수오지심(羞惡之心)에 각별한 의의와 기대를 부여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바라건대 부끄러움이라는 이 영구신생(永久新生)의 기제만큼은 제발 함부로 거론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른 용어들은 거짓되게 쓰더라도 최소한 부끄러움이나 치욕, 자괴감 등의 용어만큼은 아무런 부끄러움도 없는 상태에서 함부로 남용하지 않아야겠다. 왜냐하면 그 용어는 우리 영혼이 숨 쉴 마지막 통로를 뜻하기 때문이다.

그 숨통이 작게나마 트여 있던 그 옛날에 두 노인이 불렀다는 슬픈 종명(終命)의 노래가 있었다. 그 노래를 다시 들어보자. 그리고 그 가물거리는 은미함 속에서 또 다른 세상, 구악(舊惡)의 그리운 세상이 오늘날에도 선연히 떠오를 수 있을는지 한 번쯤 가늠해보자.

저 서산에 올라

고사리를 캐노라

(무왕은) 폭력으로 폭력을 바꾸되

그 그릇됨을 모르는구나

신농(神農), 우(虞), 하(夏)의 세월은 어느덧 사라졌으니

나는 어디로 가야할까?

아아 가리라.

명(命)도 이미 쇠하였나니.

登彼西山兮.

菜其薇矣.

以暴易暴兮.

不知其非矣

神農虞夏忽焉沒兮

我安適歸矣.

吁嗟徂兮

命之衰矣


이수태. 칼럼니스트며 저술가로 활동한다. 저서로 『논어의 발견』, 『새번역 논어』, 『공자의 발견』, 『어른되기의 어려움』, 『상처는 세상을 내다보는 창이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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