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곡성당의 협동조합 실험이 반가운 이유 – 10호 비평, 시대의 소리

전곡성당의 협동조합 실험이 반가운 이유

 

경동현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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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사람이 바뀌는 대안과 변화를 찾아서

 대안학교, 대안언론, 대안공동체 등 ‘대안’이라는 단어가 앞에 붙으면 기존 질서에 대한 도전과 혁신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대안적인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은 사회의 대안운동처럼 기존 질서에 대한 반발을 넘어서는 의미가 있다. 그리스도교는 처음에 작은 대안으로 시작되었지만, 역사의 큰 물줄기를 만들어냈다. 예수와 그 제자들은 당시를 하느님의 다스림이 부재(不在)한 시대로 간주하고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고대하며 몸소 실천하려 했던 해방적 공동체를 꿈꿨다. 대안으로 출발한 종교 공동체들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종교를 다시 개혁하고자 했던 수많은 대안운동이 끊임없는 출현했다는 점을 잘 알 수 있다. 대안적이고 변방에 머물던 소수 종교가 성장하고 제도화하면서 주류가 되는 과정에서 첫마음을 잃어버린 탓이다.

평신도가 세운 한국천주교회 역시 신분 질서가 엄격했던 당대 가난한 자들의 눈으로 보면 일종의 혁명이자 대안이었다. 이후 한국천주교회는 질곡으로 점철된 한국 근대화의 역사와 함께 부침을 거듭하다 이제는 주류 종교로 자리 잡았다. 우리신학연구소가 1994년 창립한 이후 20여 년간 교회 컨설팅이라는 작업에 공을 들였던 이유는 교회의 시스템을 바꾸는, 다시 말해 평신도가 배제되는 교회 현실을 객관적으로 드러내고 함께하는 교회의 모델을 제시해 보기 위해서였다.

한편, 교회 밖에서도 사회구조가 사람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인식으로 구조의 변혁을 위해 투신했던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구조가 변화된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는 사회의 부조리와 여전히 고통받는 사람들의 모습은 운동의 역사 전반에 물음표를 던지게 했다. 이러한 혼란 가운데 사회경제적 구조의 변화 못지않게 ‘사람’이 변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은 이들도 생겨났다. 구조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그 구조를 만들고 운영하는 주체 또한 사람이라는 자각이었다. 그렇게 변화된 사람들만이 구조를 진정으로 변혁할 수 있으며, 변혁된 구조를 선하게 운용할 수 있다. 변화된 사람들은 거대담론 차원에서 ‘바꾸기’나 ‘만들기’보다는 우리네 일상의 차원에서 ‘살기’가 더 필요하고 시급하며 중요하다는 점을 깨달은 사람들이기도 하다.

전곡성당 협동조합 실험의 중심축 역할을 맡은 김규봉 신부도 그런 사람 중 하나로 보인다. 사회구조의 변화를 촉구하기 위해 거리미사와 기도회, 도보순례 등에 참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작 자신의 삶이 변화되지 않는 사회적 실천은 공허하다는 것이 김 신부의 지론이다. 물과 전기를 아낄 줄 모르고 에너지를 낭비하면서, 4대강 반대운동이나 탈핵운동의 구호만 높이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난한 이들과 나누고 함께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면서, 정작 자기 삶의 자리에서 그렇게 살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냐고 그는 반문한다.

수평적 문화 없이 교회 내 협동조합이 가능할까?

 2012년 국내에 협동조합법이 시행되고, 2013년 늦봄에 개최된 한 토론회에서 나는 “종교와 협동조합”을 주제로 발표한 적이 있다. 멀리는 스페인의 몬드라곤협동조합에서 1960년대 부산과 서울을 중심으로 시작된 신용협동조합운동, 협동조합의 생태계를 일구어가는 원주지역의 사례들을 적시하며 협동조합 사회화의 주역이 가톨릭교회와 깊은 관련이 있음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가톨릭뿐만 아니라 이웃종교들도 협동조합운동에 적극적인 사례를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협동조합운동에서 종교가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이유는 협동의 원리로 운영되는 공동체 운동에서 종교는 전통적으로 강력한 지원 세력이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런데도 협동조합운동이 교회 안에서 널리 확산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가톨릭농민회의 유기농, 도농교류를 통한 생명운동과 도시빈민사목의 영역에서, 그리고 예수살이공동체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공동주거모임과 협동조합 카페 운영 등 협동조합의 정신을 살려내려는 운동들이 이어지고는 있지만 교회 전체로 놓고 보면 비주류 변방에 해당한다. 나는 협동조합이 교회 안에서 확산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1인 1표’로 상징되는 수평적인 협동조합의 문화와 성직자 중심의 교회문화의 차이 때문이라고 본다. 사제 중심의 교회문화에서 협동조합 활동은 사제가 가진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전곡성당의 협동조합을 취재하면서 몇몇 본당의 협동조합 사례를 살펴보았다. 구미의 ○○본당에서도 주도적으로 협동조합을 시도했는데, 확인해보니 앞서 우려했던 걱정이 그대로 드러난 사례였다. 이 본당은 협동조합법이 시행되고 2014년 9월에 본당 협동조합 연구회 모임을 시작했다. 물론 이 모임이 꾸려지기까지 주임신부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상당했다. 연구회 주도로 수차례의 강연과 현장 탐방을 통해 ‘새로운 지역 사회 복음화 방안’으로 이들이 선택한 협동조합은 방과 후 학교였다. 이들은 조합원의 아이들뿐만 아니라 지역 내 소외가정, 다문화가정 아이들도 함께 돌보는 방과 후 마을학교를 추진했다. 조합원을 모집하고, 사업계획서를 작성해 2015년 7월 창립총회를 열고, 8월에 총 14명의 학생으로 방과 후 학교를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처음 협동조합의 길을 걷는 이들에게 본당은 비빌 언덕이었고, 본당신부는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하지만 창립 후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주임신부가 바뀌면서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새로 부임한 본당신부의 눈에 조합원 중심으로 운영되는 협동조합은 본당 밖의 외부 단체였다. 자연스레 본당에서 후원자와 조합원 모집도 어려워지면서 협동조합은 본당과 별개의 조직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협동조합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본당과 관계망이 끊어졌어도 계속 이어나갈 수 있는 조직적 틀이 마련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앞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겠지만, 이 학교가 보란 듯이 제자리를 잡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수원교구에서는 교구와 더욱 긴밀한 관련을 맺는 협동조합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사회적 협동조합 ‘공생공빈 밀알’ 협동조합이다. 조합의 주요 이사진은 모두 수원교구 사제로 구성되어 있고, 정관에 따른 주요 사업은 소액대출, 장학사업, 기부문화 확산과 교육사업이다. 정관과 홈페이지에 공개된 활동 자료로 짐작건대 교회가 가진 사회적 자원을 활용한 협동조합을 모색하는 것으로 보인다. 교회 내의 협동조합 사례로 충분히 의미 있는 시도라고 생각되지만, 기존의 성직자 중심의 문화가 협동조합 추진 과정에서도 그대로 적용된 것처럼 보여 이 운동이 확장성이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그래도 교회의 경제활동이 돈 중심, 무한 경쟁 중심의 방식보다 협동조합의 방식이 복음에 좀 더 부합하기 때문에, 이러한 다양한 방식의 협동조합 모델을 시도해보는 것은 충분히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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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곡성당의 협동조합 실험

 이제 전곡성당의 협동조합 실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전곡성당은 지난해 봄에 진행한 총 14강(탐방 2회 포함)의 협동조합 강좌에 80여 명의 신자와 주민들이 수강한 것을 계기로 협동조합운동이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먼저 노인들이 많은 농촌 지역의 특성을 고려해 요양·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1호 협동조합 ‘우리랑’을 2016년 10월에 설립했다. 이어 2017년 4월에는 두 번째 협동조합 ‘참게여울주가’를 만들었다. ‘참게여울주가’는 로컬푸드로 지역경제와 마을공동체 활성화를 추구하는 일종의 주류협동조합이다. 연천군 농산물의 소비를 촉진하고 전통시장 살리기와 연계해 지역 발전을 도모할 목적으로 창립했다.

김규봉 신부와 인터뷰하면서 가장 걱정했던 것은 지속성의 문제였다. 앞서 구미 ○○본당의 사례처럼 사제의 인사이동에 따라 본당사목의 전반이 요동치는 한국교회의 특성을 고려할 때, 지금은 의욕적으로 새로운 협동조합이 만들어지더라도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다. 지금 전곡성당에서 협동조합운동에 참여하는 신자들과 지역 주민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면서 협동조합운동을 하는 것일까? 마침 인터뷰하러 간 날 저녁, “참게여울주가”의 조합원 회의가 있어서 참관했다. ‘참게여울주가’는 5월 말 현재 40여 명의 조합원이 7,500여만 원의 출자금을 모았으며, 이날은 법인설립에 필요한 절차를 점검하는 회의 자리였다. 또 최근에 조합원 5명이 일본협동조합(요양원, 양조장, 생협)을 탐방하고 온 직후라 이에 대한 보고회를 같이했다. 10명 남짓 모였는데 신자가 아닌 조합원도 있다 보니 회의는 종교색을 싹 빼고 격의 없이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내년이면 서품 20년 차인 김규봉 신부는 이곳 전곡성당이 첫 본당이다. 원래 신학교 시절부터 노동사제의 꿈을 키워왔는데, 사제서품을 받고 보니 노동의 문제보다 농업과 농민을 둘러싼 농적 가치를 회복하는 일에 마음이 끌려 농촌 지역에서만 줄곧 사목하고 있다. 서품 후 군종신부로 지냈던 몇 년간을 제하면 의정부교구에서 유일하게 군 단위 농촌지역인 연천에서 계속 지내왔다. 전곡으로 부임하기 전부터 농민사목 전담신부로 활동하면서, 이 지역 시민단체와 신뢰를 쌓아 온 것이 협동조합을 일구어 가는 데도 큰 자산이 되었다. 김 신부는 앞으로도 연천군을 근거지로 삼아 농적 가치를 회복하기 위한 그의 사목비전을 지속하기 위해 교구와도 긴밀히 논의 중이다.

꼭 협동조합의 형식이 아니더라도 그는 지역에서 본당공동체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데 거창한 수식어보다 구체적 실천으로 드러내는 삶을 추구한다. 2016년 10월에는 교리실로 사용하던 성당 지하 공간을 단장해 어린이와 청소년 전용 도서관인 ‘참게 도서관’을 열었다. 신자들만 사용하지 않고 지역 주민과 공간을 공유한 것이다. 어린아이들과 부모들의 호응이 좋고, 도서관이 생기면서 신자 아닌 아이들과 엄마들이 본당을 찾는다며 교우들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물론 기도하는 공간이 소란스러워졌다거나, 돈 낭비라며 불편해하는 신자도 있지만, 도서관을 찾는 젊은 부모들과 함께 공동육아, 청소년 교육 문제 등을 논의하게 된 것은 소중한 성과라고 말한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지난해 봄 협동조합 강좌가 진행되던 시기에 개봉한 영화 <프란치스코>를 신자들과 보기로 했는데, 시골이다 보니 상영관을 찾는 일이 쉽지 않았다. 고민 끝에 전곡성당이 속한 의정부4지구 지구장을 비롯한 같은 지구 신부들과 상의하였고, 중간 지점에 있는 영화관과 협의해서 저렴한 관람료로 연천지역 본당 신자들이 이용하도록 했다. 신자들은 가까운 상영관에서 좋은 영화를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었고, 시설이 낡고 오래된 시골극장은 활로 모색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었다. 또 이 일이 직간접적인 계기가 되어서 현재 ‘작은 영화관 사회적협동조합’을 추진하는 중이다. 김 신부의 지역활동가 기질이 유감없이 발휘된 경우다. 서울에 주사무소를 둔 이 협동조합은 전국의 상영관이 없는 지자체를 대상으로 정부 지원을 받아 ‘작은 영화관’ 사업을 추진하는 조합으로, 2016년 말 기준으로 전국에 19개의 작은 영화관 조합이 운영 중이다. 이러한 조합이 있다는 이야기를 우연한 기회에 듣게 된 김 신부는 2016년 말 전북 진안에 갔다가 그곳에 작은 영화관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직접 찾아가, 연천에서도 ‘작은 영화관’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방안을 문의했다. 곧바로 전곡성당에서 ‘작은 영화관’ 사업 설명회가 열리고, 연천군 관내 주민과 지자체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2차례의 사업 설명회를 더 추진해 동의를 얻었다. 현재는 연천군 주도로 중앙정부 관계 부처에 지원사업 신청서를 제출하고 심사를 기다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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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몬드라곤을 꿈꾸다

 2015년 말 기준 연천군의 인구는 46,000여 명이다. 김 신부는 협동조합으로 유명한 스페인의 몬드라곤의 모델을 전곡을 중심으로 한 연천 지역에서 만들어보겠다는 큰 꿈을 꾸고 있다. 몬드라곤의 인구 역시 연천과 비슷한 47,000여 명이다. 그곳은 110여 개의 협동조합과 8만여 명의 조합원이 있는데, 스페인에서 매출규모가 7위, 고용규모가 4위일 정도다. 이처럼 튼튼한 협동의 경제 공동체를 꾸리고 있는 점이 그를 설레게 하는 모양이다. “노동이 자본을 통제하고, 일하는 사람들 누구나 똑같이 1표씩의 권리를 행사하며, 이익과 손실을 나누는 협동조합 100개 만들기”가 요즘 구체화된 그의 목표이자, 함께 협동조합을 꾸려나가는 조합원들의 희망이라고 한다.

협동조합에 참여하는 본당 신자의 처지에서 볼 때, 2016년부터 진행된 강좌와 현장 탐방, 그리고 실제 협동조합 설립과정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지역의 문제를 고민하는 과정은 더할 나위 없는 양성의 과정이요, 교회가 사회 안에서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를 자연스럽게 성찰하는 시간이 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전곡성당의 협동조합운동 실험이 2017년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교회가 어떤 공동체로 지역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예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경동현.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실장으로 서강대학교에서 교의신학, 가톨릭대학교에서 사목신학을 공부했다.

 

image1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751251.html

image2 참게 도서관에서 열린 ‘참게여을주가’ 조합원 회의 장면 (2017.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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