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A – 직장을 그만 두어도 될까요?

이현주

직장을 그만 두어도 될까요?

Q

40대 중반 직장인입니다. 열심히 일했습니다. 일이 재미있었습니다. 일을 하다보면 제 자신이 발전하는 것 같기도 하고, 성취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지겹습니다. 일도 사람도 다 지겹습니다. 그렇다고 그만둘 수도 없습니다. 그간 쌓은 경력과 급여, 위치가 아깝습니다. 다른 재주라곤 없어서 어디 다른 곳에 가기도 어렵지만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건 또 자신이 없습니다. 1년 정도 모두 손 놓고 놀아보고 싶지만 그럼 당장 먹고살 일이 요원합니다. 어떻게 지내본다고 해도 1년 뒤 일구하기가 힘들까봐 두렵습니다. 하기는 제가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결단하지 못하고 상황에, 사람에, 시간에 끌려가는 제가 한심합니다.

모든 일이 지지부진, 재미도 흥미도 없습니다. 누군가가 말한, 생각한대로 사는 게 아니고 사는 대로 생각합니다. 죽지 못해 산다는 이야기가 남 얘기 같지 않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그런 삶의 연속입니다. 선생님도 그러신 적 있으신가요? 저는 어찌해야 할까요?

A

오래 전에 한 선생님한테서 들은 얘기가 생각나네요. 일정 말기, 학생 신분으로 독립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갇혔는데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음식이 나오더랍니다. 몇 끼니 굶은 끝에 그마나 주는 것을 먹지 않으면 굶어죽을 것 같아서 입에 억지로 넣고 씹자니, 처음엔 톱밥을 씹는 맛이었지만, 침에 섞여 물이 되도록 씹고 또 씹으니까 글쎄 그 맛이 달착지근하게 바뀌더라는 거예요. 그때 그 경험으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이면 그게 무엇이든 간에 맛있게, 말 그대로 맛있게, 먹는 비결 아닌 비결을 깨쳤고 덕분에 한평생 소화불량을 모르고 사셨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음식의 맛은 음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먹는 사람한테 있다는, 아니, 그것을 물이 되도록 씹고 또 씹는 데 있다는, 그런 얘기지요.

예, 옳은 말씀입니다. 정말로 음식의 맛은 음식이 아니라 그것을 먹는 사람 혀에 있더군요. 한번은 치과진료를 받을 때인데 혀와 입천장의 마취가 아직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식당엘 갔지요. 깜짝 놀랐습니다. 냉면을 먹는데 맛은 관두고 내가 지금 무엇을 먹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겠는 거예요. 예, 맞아요, 혀가 마비되니 음식에 아무 맛도 없더군요. 아니, 음식에 왜 맛이 없겠어요? 분명히 있는데 그걸 내가 ‘볼’ 수 없어서, ‘보지’ 못해서, 그래서 맛이 없는 겁니다.

질문하신 분은 내가 시방 무슨 얘길 하려는 건지 아시겠지요? 그렇다고 해서, “일도 사람도 지겹다”고 말하는 당신한테 모든 책임이 있으니 아예 그런 말은 꺼내지도 말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예요. 한 중년 남자가, 지금 자기가 하는 일에 재미도 보람도 못 느끼겠고 그렇다고 해서 다른 일거리를 찾기도 어렵고 얼마 동안이라도 일손을 놓고 쉬면 좋겠는데 그랬다가 생계수단을 잃을까 겁이 나고, 이런 나를 어찌해야 하는지 묻고 있는 사실에 대하여 축하하고 싶은 겁니다. 무슨 엉뚱한 소리냐고요? 이제 그 이유를 간단히 말해보겠습니다.

실은 이 글을 쓰기 직전, 가랑비 내리는 들판을 우산도 없이 좀 걸었어요. 부드러운 빗줄기가 바람에 날리면서 왼쪽 뺨을 적시는데 오른쪽 뺨에는 닿지 않더군요. 음, 내 코가 대관령만큼 높아서 가랑비가 넘지를 못하는구나, 이런 웃기는 생각을 하며 걷는데 진짜 웃음이 빙그레 떠오르는 겁니다. 그때 까치 한 마리 전봇대 위에서 꼬리를 까불며 까앗― 까앗― 울더니 내가 가까이 가자 앉은 자세 그대로 허공에 몸을 던지고는 우아하게 날개를 펼쳐 논두렁 위로 내려앉더군요.

아하, 새가 높은 데서 낮은 데로 내려올 때에는 먼저 날개를 펼치고 몸을 던지는 게 아니라 몸을 허공에 던진 다음 날개를 펴는구나, 그러니까 허공이 말 그대로 텅 비어있는 게 아니라 제 몸을 실어줄 공기로 가득 차 있음을 알고 있구나! 그래서 저렇게 맘 놓고 제 몸을 허공에 던지는구나? 음, 맞아, 저게 진짜 ‘믿음’이지, 믿음이란 저 까치처럼 보이지 않는 허공에 자기를 내어맡기는 거지, 이런 생각을 잠시 하다가 뽕나무 곁을 지나는데 검게 익은 오디가 보여서 “딱 한 알만 먹자.” 속으로 말하고는 한 알을 따서 입에 넣고, 계속 가랑비에 왼쪽 뺨을 적시며 집으로 돌아오자니 공군 제트기가 초음속으로 머리 위를 날아가는 겁니다. 별로 시끄럽지 않았어요. 제트기가 날아갈 때는 본디 저런 소리가 나는 법이거든요. 그런데 같은 소리가, 내가 누구하고 얘기를 나눌 때에는 시끄럽고 불쾌한 소리로 되는 겁니다.

무슨 괜한 말을 늘어놓는 거냐고요? 흠, 그러니까 내 말은 이 글을 쓰기 전에 한 삼십 분쯤 꽤 ‘맛있는’ 산책을 했다는 얘기올시다. 오디가 그렇게 맛있는 열매인 줄, 소월의 말투로,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공자님이 그러셨지요. 마음이 거기 없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고 먹어도 맛을 모른다고. 붓다님도 사람이 깨어있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 하셨답니다. 예수님도 사람이 천하를 얻고서 자기를 잃으면 그게 모두 무슨 소용이냐고 하셨지요.

사람이 맛볼 수 있는 쾌락이면 무엇 하나 빠뜨리지 않고 모조리 맛보았을 솔로몬이 말년에 뭐라고 했던가요? “세상만사 겪어보니 모두가 헛되고 헛되더라.” 허, 무슨 말씀? 온갖 경험을 하면서 마음이 딴 데 있어서 그 경험이 주는 독특한 맛을 보지 못한다면, 그러니까 달리 말하여 자기가 시방 무슨 일을 겪고 있는 건지 모르면서 겪는다면, 그렇다면 아무리 별난 삶을 살았어도 말짱 헛것이라는 그런 얘기를 시방 하는 겁니다.

질문하신 분은 바야흐로 눈길을 주변에서 거두어 본인한테로 돌릴 때가 된 것 같네요. 내가 먹는 음식에서 음식을 먹는 나에게로, 내가 처한 상황에서 상황에 처한 나에게로, 관심을 모을 때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삶을 가능케 하는 유일한 시공간인 ‘지금 여기’로 돌아와 그것이 주는 온갖 별미를 맛볼 수 있으면 무궁무진으로 인생의 참맛을 즐길 수 있다는 게, 우리보다 먼저 길을 가신 믿을만한 선배들의 충고입니다.

질문하신 분의 말을 곱씹어보면, 지금 하고 있는 일 말고 다른 무슨 재미있는 일이 없을까 하여 두리번거리는 것은 괜한 시간낭비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하느님은 당신의 비밀을 저기 히말라야 높은 산꼭대기가 아니라 우리의 사소한 일상생활 속에, 밥 먹고 똥 싸고 사람 만나 부대끼며 사는 하루하루에 감추어두셨습니다. 예, 그래요, 하느님 나라는 여기 또는 저기가 아니라 하느님 나라를 찾는 사람의 가슴 깊은 곳, 그가 처해있는 삶의 현장,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참고로 ‘지금 여기’로 돌아오는 명상수련에 도움이 될 만한 책들은 많이 있지만 틱낫한, 에크하르트 톨레, 토머스 머튼, 앤소니 드멜로, 헨리 나우웬 같은 분들의 책을 추천합니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3년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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