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위한 기도와 투신, 함께 사는 기적을 만드는 교회 – 11호 신한열, 『함께 사는 기적』

세상을 위한 기도와 투신,

함께 사는 기적을 만드는 교회

신한열, 『함께 사는 기적』

 

프랑스 동부의 작은 시골마을 떼제(Taizé)에는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공동체가 있다. 떼제공동체는 1940년 개신교 출신의 로제 수사가 제2차 세계대전을 피해온 난민들을 맞으면서 시작되었다. 극단적인 분열과 증오, 폭력이 가득한 전쟁 한복판에서 탄생한 이 공동체는 현재 30개국 출신 80여 명의 가톨릭과 정교회, 개신교 등 그리스도교 여러 교파 출신의 형제들이 함께 살고 있다. 한국에도 1979년 김수환 추기경의 초대로 진출해서 서울 화곡동 재래시장 골목 안에서 이웃과 소박하게 어울려 살며 일치와 평화의 기도를 이어간다.

떼제공동체의 유일한 한국 출신인 신한열 수사가 『함께 사는 기적』(신앙과지성사, 2017)을 통해, 갈라진 그리스도인들의 화해와 일치를 증거하는 떼제공동체의 삶을 소개했다. 지난여름 한국을 잠시 방문한 신한열 수사를 만나서,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이 시기에 되새겨볼 수 있는 교회쇄신의 의미와 교회일치운동의 과제를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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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며 세상에 투신하는 초교파 수도공동체 떼제

 Q. 떼제공동체의 유일한 한국인 수사께서 내신 첫 책입니다. 이번에 책을 낸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요?

한국 출신은 혼자입니다만, 저희 안토니(안선재) 수사님이 한국에 귀화하셨기 때문에 한국인이 저 혼자라고 하면 섭섭해하세요. 저는 한국인 최초의 떼제 수사도 아닙니다. 지금은 공동체를 떠나셨지만, 저 이전에 두 분이 공동체에 먼저 사셨어요.

사실 안타까운 일을 계기로 이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떼제공동체의 묵상노래책을 오래전 가톨릭출판사에서 펴내서 쓰고 있습니다. 많은 개신교회도 이 책을 이용하는데, 일부 교회에서는 가톨릭쪽 출판사에서 나왔다는 이유로 잘 이용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공동체의 허락을 얻어 한국에서는 개신교용으로 따로 내보려고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일치운동을 하자는 공동체의 책인데, 세계적으로 이런 경우가 없죠. 그래도 한국에서는 사목적 배려로 내게 되었습니다.

신앙과지성사라는 곳에서 출판에 관심 있다길래 찾아가 봤는데, 그분들의 관심은 노래책이 아니라 제 이야기더라고요. 떼제 노래책을 내주시면 생각해 보겠다고 했더니, 그 출판사에서 노래책(『함께 부르는 떼제 찬양』, 2013)과 기도책(『함께 드리는 떼제 기도』, 2013)을 출간해주었습니다. 개신교용으로 달라진 것은 용어를 ‘하느님’에서 ‘하나님’으로, 성경구절을 개신교 표준 새번역 성경 중심으로 바꾼 것이 전부입니다. 이 두 책을 낸 뒤 출판사에서 다시 제 이야기를 책으로 내보겠냐고 제안했습니다. 그런데 제 책보다는 공동체 창설자인 로제 수사님 책을 먼저 내고 싶었어요. 정식 출판 전에 제가 편집을 맡아 임시로 냈는데 여러 나라 독자들이 좋아한 책이 있어 그것을 한국어로 내면 좋겠다고 했더니 또 내주었어요(『사랑을 선택하다』, 2014). 요즘 출판사들 사정이 어려운데, 고맙고 많은 빚을 졌지요.

그즈음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떼제공동체에 관한 칼럼을 연재하기 시작했는데, 출판사에서 그 칼럼을 모아 편집하기 시작했어요. 떼제공동체를 소개하는 형식인데, 주제가 좀 딱딱할 수 있으니 자기 체험을 덧붙이면 좋겠다고 해서 작년 여름휴가 때 틈틈이 글을 써서 책을 완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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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izé im Burgund. Das Gelände der de:Communauté de Taizé befindet sich auf dem Hügel oberhalb der Ortschaft

Q. 책 앞부분에 수사님 개인 성소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천주교에도 수도회가 많은데 왜 초교파 수도공동체인 떼제라는 낯선 곳을 선택하셨는지요?

제가 공동체를 비교하면서 선택한 것은 아닙니다. 제가 잘 알고 가까웠던 수도회는 예수회였고, 많은 것을 대학(서강대학교)에서 배웠어요. 예수회 신부님들이 가르치는 과목뿐 아니라 사람을 통해 더 많은 것을 배웠지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수도생활을 거의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어린 시절 잠시 성소를 생각했지만, 그저 하나의 가능성 정도로만 생각해본 것이죠. 사실 떼제를 만난 것도 수도생활이 아니라 기도생활을 발견한 것이 결정적 계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단순하지만 깊은 기도의 기쁨이랄까요. 저는 대구 출신으로 기도와 관련한 전통적인 신심이 있었는데, 대학을 다니던 1980년대에 한국의 사회 현실과 맞물려 사회적 관심이 커졌어요.

1980년대 억압적인 사회 상황 속에서 본회퍼의 옥중서간 『저항과 복종』을 읽었습니다. 신학자 본회퍼가 사회적 투신을 하면서도, 신학생이나 신자들과 공동생활을 하며 전례를 따라 기도하는 모습이 상당히 수도자처럼 느껴졌어요. 전통적 신앙과 사회적 투신의 삶이 결합된 모습을 볼 수 있었죠. 떼제공동체와 로제 수사에 관한 1970~80년대 책에서도 그런 것이 이어져 있지요. 『투쟁과 묵상』으로 번역되어 나왔는데, 저에게는 수도생활보다도 그런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투신, 사회정의를 위한 투신과 깊은 신심의 접점이 떼제공동체에 있는 것처럼 여겨졌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집단문화, 군대나 위계적인 선후배 문화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했기에 수도생활을 처음에는 생각하지 않았지요. 그런데 떼제에 가서는 평화로움 안에 있었어요. 강요하지 않았고 자유로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제가 어떻게 견딜까 싶었다고 하는데, 저 자신도 몰랐어요. 모험이었죠. 제가 떼제에 간 지 올해 30년째이고, 공동체에 입회한 것은 27년이 되었습니다. 이번 여름이 제가 서약한 지 25주년이 되는데, 공동체에서는 그런 기념일을 따로 챙기거나 축하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의미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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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청과 신뢰, 젊은이들의 영적 갈망

Q. 떼제공동체에는 수많은 젊은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들이 어떤 영적 갈망 때문에 떼제를 찾는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청년은 어느 나라든 어느 시대든 새로운 것을 추구합니다. 모든 종교에서 전통이 계속 이어진 것은 그대로 반복해서 지켜진 것이 아니라 항상 새로워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복음은 과거나 현재나 똑같지만, 세상과 시대는 끊임없이 바뀌기 때문에 신앙언어나 표현도 바뀔 수 있지 않나 싶어요. 인위적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신앙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기 문화 안에서, 자기 시대에 맞게 스스로 표현하겠죠.

떼제는 젊은이들을 부르려고 일부러 그들에게 맞는 음악을 찾지는 않아요. 그런데 젊은이들이 단순하면서도 거룩한 떼제의 음악에 매력을 느낍니다. 떼제기도는 성무일도를 단순화한 것입니다. 전례의 핵심이나 본질을 유지하면서 간소하게 바꾸는 것, 한편으로는 대담함이고 담대함이죠. 제 생각에는 청년들이 이 모습을 보는 눈이 있어요. 순수하고 인위적이지 않은 모습, 핵심은 있지만 단순한 모습, 청년들이 그런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닐까요?

만약 청년들에게 어떤 해답을 주겠다고 접근했다면, 아마 청년들은 도망갔을 거예요. 비결은 없습니다. 그저 젊은이들에게 귀 기울이는 것이죠. 우리 수사들은 나이가 들수록 젊은이들에게 더 귀 기울이게 됩니다. 오히려 저희가 배울 점이 더 많아요. 젊은이들이 떼제로 모이는 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모이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우리 수사들도 그들의 이야기를 듣지만, 젊은이들끼리 서로 들어주죠. 자기 생각을 누군가 들어주고, 그러면서 자기 생각이 확인되고 더 넓어집니다.

청년들은 신뢰를 바랍니다. 신뢰란 믿고 맡기는 것이죠. 저는 떼제에서 18년 동안 독일에서 오는 사람들을 안내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데, 모임에 가장 먼저 온 사람에게 회비 받는 것을 맡깁니다. 한번은 한 청년이 왜 자신에게 돈 관리를 맡기냐고 묻길래 믿을 만하니까 맡겼다고 했습니다. 그 청년은 그 한 마디가 확 와 닿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믿어줄 때 젊은이들이 성장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위에서 관리하고 통제하면 책임감이 자라지 않고 사람의 성장이 어렵습니다. 좀 조심스러운 말이지만, 우리 교회 문화가 순종을 강조하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교회제도나 구조가 일반사회보다 자율성이 후퇴하거나 부족하다고 생각해 매력을 별로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닌가 싶어요. 공동체 생활도 자유와 자율성이 동반되지 않으면, 맹목적으로 되기 때문에 사람이 건전하게 성숙하거나 성장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웃과 더불어 사는 교회

Q. 조용한 시골마을에 외지에서 수천 명의 사람들이 들락거리면 마을 주민이 달가워하지 않을 것 같은데, 지역 사람들과는 어떻게 관계를 맺으시나요?

떼제공동체의 구조가 마을은 언덕 아래쪽에 있고, 공동체와 사람들이 머무는 공간은 언덕 위에 있기 때문에 마찰이 생길 일은 크게 없습니다. 물론 마음에 들지 않는 분도 있겠지요. 예를 들면, 떼제공동체 50주년이었을 때 프랑스 방송에서 뉴스에 소개하려고, 마을주민의 이야기를 영상에 담았다며 저희에게 보여줬어요. 그런데 주민 중 한 분이 자신은 떼제공동체가 싫다고, 가게를 열려고 했는데 수사들이 장사를 못하게 방해했다고 비판하더라고요. 사실 우리 공동체만 반대했던 것은 아니었거든요. 마을의회 차원에서 동네의 상업화를 막는 결의를 했어요. 프랑스는 ‘코뮨(commune)’이라는 마을자치공동체가 다 조직되어 있는데, 9~11명으로 구성된 마을의회 의원 중 우리 공동체 수사가 3명 들어가 있어서 저희 의사를 표현할 수 있습니다. 떼제에 10만 명 이상의 순례자가 찾아오지만, 마을에 어떤 상업적 분위기도 만들지 않겠다고 했어요. 한 집에서 가게를 열면 다른 집도 열 테고, 마을 전체가 상업화되겠죠.

사실 공동체가 마을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때가 더 많습니다. 코뮨 상부조직(Communauté de communes)이 있는데, 거기에서 우리 수사 중 컴퓨터를 잘 하는 수사들이 지역 쓰레기 문제를 책임지고 처리하기도 했습니다. 마을에서는 아예 유급직원으로 전담해 일해주기를 바라기도 하지만, 저희는 그저 봉사로 하지요. 우리 수사들은 정당에 가입하지는 않지만 지역에서 많은 활동을 합니다. 그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마을의회에서는 수도자가 아니라 시민으로서 함께 활동합니다.

Q. 최근 떼제공동체에서 무슬림 난민들을 맞으셨다고 하는데, 지역주민들이 테러 등을 우려하며 걱정하진 않았나요?

떼제공동체는 초창기부터 난민을 맞았는데, 그동안 맞이했던 난민은 다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유럽에 들어오는 난민은 수단,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출신의 무슬림이에요. 무슬림 난민을 공동체 집에 맞이할 때 마을사람들에게 동의를 구했죠. 그리고 난민들에게 프랑스어를 가르칠 봉사자를 찾는다고 알리니 그 시골마을에서 40명이 모였습니다. 비신자이거나 교회와 관계가 없던 분들, 심지어 교회에 반감이 있는 마을주민들이 아주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도와주셨어요. 저희가 떼제에서 오래 살아왔으면서도 그동안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던 분들이었어요. 어찌 보면 난민들이 우리 교회의 시각을 더 넓히고, 복음적 환대를 통해 교회 밖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준 셈입니다.

무슬림을 테러랑 연결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고, 그런 두려움을 정치적으로 자극하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물론 실제로 테러가 일어나기도 합니다만, 대부분 테러범들은 난민이 아니라 오래전 유럽에 들어와서 사는 사람들의 2, 3세입니다. 이들을 사회에 어떻게 통합해야 할지, 그들의 문화를 어떻게 이해하는지 등 복합적인 문제가 있죠.

신자 중에서도 잘 몰라서 또는 어떤 편견 때문에 난민을 두려워하는 정서가 있지만, 직접 사람을 만나고 마주하다 보면 익숙해지고 곧 두려움도 사라집니다. 난민들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도망 온 이들이고, 열심히 살아보려고 온 이들이에요. 떼제에 온 무슬림 난민이 공부나 직업훈련을 통해 직장을 구해 독립하게 되었는데, 이 난민 청년들이 아주 성실하게 일을 잘 해서 그들을 고용한 사람들이 아주 좋아합니다. 인간 안에는 선함이 있는데, 그런 선함을 일깨워주는 계기를 만들고 함께 나누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역할입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고요.

가난한 형제를 대하는 우리의 모습

Q. 유럽사회의 난민문제를 생각하니 우리 사회가 북한 이탈주민을 대하는 모습도 돌아보게 됩니다.

만약 북한이 남한보다 경제력이 뛰어난데 정치적 문제로 이탈했다면, 그들을 대하는 태도가 달랐을 겁니다. 사회주의 나라에서 왔다고 경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보다 못사는 가난한 형제가 온 것이라 무시하는 것이죠. 그렇게 보면 우리 사회 안에 깊은 속물성이 있어요. 이런 정서가 요즘 왜 이렇게 더 심해졌을까요? 옛날에는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고 배웠는데, 요즘은 가난이 부끄러운 것이 되었어요. 눈에 보이는 것으로 사람을 판단합니다. 일종의 폭력성과 배제논리가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고요.

제가 10대 때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성당 앞에서 구걸하는 사람에게 수녀님이 “성당에 한 번 들어오시죠”라고 했더니, 거지가 정색하고 “제가 정말 들어가도 됩니까?” 하고 물었대요. 그래서 수녀님이 남루한 기색의 냄새 나는 사람, 보잘것없는 차림을 한 사람이 미사시간에 옆에 앉는다면 신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생각해보게 되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얼마 전 베이징에 있는 성당에서 미사를 드렸는데, 거기서는 이런 경험을 흔히 해요. 정말 거지로 여겨지는 분이 미사에 왔어요. 처음에는 저도 냄새가 나니까 흠칫하다가, 그런 분을 아무도 쫓아내지 않고 함께 미사드릴 수 있다는 것이 감사했어요. 저에게는 감동이고 은혜의 순간이었죠. 하지만 교회로서는 어떻게 반성해야 할지, 어떻게 바꿔야 할지 우리의 숙제겠죠.

북한을 방문한 떼제 공동체 신한열 수사와 알로이스 원장 수사가 평양 장충성당에서 기도하고 있다. (사진 제공 / 신한열/ 가톨릭 뉴스 지금여기)

북한을 방문한 떼제 공동체 신한열 수사와 알로이스 원장 수사가 평양 장충성당에서 기도하고 있다. (사진 제공 / 신한열/ 가톨릭 뉴스 지금여기)

Q. 떼제공동체가 북한에 식량이나 의약품 지원도 하는데, 최근에도 북한에 가셨나요?

작년에는 못 갔습니다만 이번 가을에는 가야죠. 남북한 관계가 지금 많이 위축되었습니다. 인도적 지원이 다른 용도로 쓰이지 않을까 걱정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지혜로운 방법을 찾으면 그런 우려는 충분히 해소할 수 있습니다. 책에도 소개했듯 미국에서 보낸 쌀을 원산항에서 군용 트럭으로 옮기는 것이 위성사진에 찍혀서, 원조한 쌀이 군량미로 빠진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당시 북한은 군용 트럭 외에 다른 트럭이 없었습니다. 그런 것을 서로 물어보고 해명하는 노력은 없었죠. 북한의 특성도 있는데, 편견이 굳어지니 자꾸 그런 식으로 생각해 안타깝습니다.

오늘도 마취제나 진통제, 거즈, 수술용 장갑 등 의약품 지원 요청을 받았는데, 이런 것은 식량이 아니니 보내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북한 쪽도 원조물자가 시장으로 흘러 들어가서 경제혼란이 생길까 봐 원조를 거절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남는 식량을 많은 비용을 들여 보관하는데 이것을 아주 지혜로운 방법으로, 북한경제를 흩트리지 않으면서 나눌 수 있는 좋은 방법을 찾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면에서 언론이나 정부의 역할이 필요합니다.

개신교 개혁, 쇄신과 일치를 향한 요구

Q. 올해는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해인데, 가톨릭교회는 이를 교회일치운동 차원에서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요?

당시의 개혁자들이 교회를 교회답게 만들려고 했던 것이지, 교회를 분열시키려고 시작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옛날에는 개신교를 열교(裂敎), 찢겨나간 교회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개혁자들을 단순히 교회를 뛰쳐나가서 돌아와야 하는 탕자로 보는 시각은 잘못되었다고 생각됩니다. 개신교 개혁 덕분에 더 본질적인 것을 되찾고 간직할 수 있게 된 것은, 우리에게도 감사할 측면이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유럽에서 개신교 500주년을 축하했습니다. 분열을 경축하는 것이 아니라 일치를 향해 나가는 디딤돌로 본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일부 개신교가 사회로부터 비난받으니 가톨릭교회로서는 어떤 반사이익을 볼 수 있다고 심하게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태도나 상대적 우월감은 그리스도인의 애덕도 아니고 옳지 않은 태도, 성숙하지 못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안 믿는 사람들에게는 가톨릭이나 개신교나 다 똑같습니다. 개신교가 겪는 문제가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쇄신되어야 합니다. 개혁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쇄신,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교회는 늘 새로워져야 한다”는 말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도 한 말입니다. 공의회 개막식에서 요한 23세 교황은 “교회의 가르침이란 박물관의 보물처럼 보존해야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대로 탐구하고 해석해야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창문을 열어서 교회 안에 신선한 바람이 들어오게 했는데, 지금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문을 열고 교회가 나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이야말로 새로워지는 교회, 경계가 없는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가톨릭교회가 보편적 교회라고 할 때 모든 이를 위한 교회, 경계가 없는 교회, 경계가 점점 넓어지고 확장되는 의미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양의 냄새가 나는 목자”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양의 냄새는 향기가 아니라 별로 좋지 않은 냄새입니다. 그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함께 하는 일입니다. 세월호나 강정마을, 성주, 밀양 등에 신부님과 수녀님들이 찾아가는 모습은 정말 감동적입니다. 모든 신자가 그것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어찌 보면 냄새나는 일이거든요. 그리스도를 교회 안에 가두어 두지 않고 나가시게 하는 신학적 응답이라 여깁니다. 교황님의 그런 말씀이 있기 전에 이미 고통받는 사람들 곁으로 나간 평신도들이 있었죠. 교회에는 그런 태도가 필요하겠다 싶어요.

Q. 앞으로의 어떤 계획이 있으십니까?

중국과 홍콩 교회를 방문하고 청년들을 격려한 후 떼제로 돌아갈 계획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초대교회 때 여러 교회를 방문했듯, 저희도 지역 교회를 방문하며 같이 기도하고 함께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그곳 교회의 어려운 사정도 듣고요. 내년 8월에는 홍콩에서 아시아 청년들과 함께하는 모임을 할 예정이라 여름부터 그 준비를 시작합니다. 홍콩에 있는 지역 교회, 성공회와 개신교, 여러 성당에서 5일 동안 인원이나 종교에 제한 없이 함께 기도하고, 성서와 영성적 주제도 있고, 사회적 이슈를 가지고 청년들과 만나 대화하고자 합니다. 한국에서도 청년들이 많이 오면 좋겠습니다.

noname01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서로 좋아하는 사람, 우리하고 비슷한 생각과 태도, 성향을 가진 사람들과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가족도 마찬가지고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죠. 서로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과제이고 숙제입니다. 어려운 과제가 아니라 아름다운 과제에요. 다른 사람과 살아가는 것이 어려울 수 있지만, 그것을 발견하면 재미있고 삶이 훨씬 더 폭이 넓어집니다. 그런 노력 가운데에서 진짜 우리 가톨릭교회가 그리스도의 마음에 더 다가간다고 생각합니다.

함께 살아가는 것, 제가 책 제목에서 얘기했지만 이는 기적입니다. 기적은 우리의 뛰어난 능력이 있어 이루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함께 계시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교회는 생각이 다름에도 우리가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기적을 발견하는 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함께 사는 기적은 그리스도 안에서 가능합니다.


image 1. 가톨릭 평론 출처

image 2. wikimedia

image 3. 가톨릭 뉴스 지금여기 연재

image 4. 가톨릭 뉴스 지금여기 연재

image 5. 가톨릭 평론 편집자 촬영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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