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아데 요가 – 고통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으신가요?

장용창

고통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으신가요?

지난번 말씀 중에 환상 너머의 실재인 하느님을 잠시라도 보게 된다면 평화를 얻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평화를 얻는다는 건, 앞에서 말씀하신 인간의 고통에서 잠시나마 해방된다는 뜻이겠죠? 요가하는 사람들은 늘 깨달음이라는 말을 달고 살던데, 그게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이랑 비슷한 말이죠? 그게 과연 가능할까요? 고통으로부터의 해방, 혹은 깨달음이라는 거, 가능한가요? 가능하다면 어떻게 가능한가요? 선생님은 깨달음을 얻었나요?

고통에서 해방되는 깨달음(moksa 또는 nirvana: Eliade, 1969: 6)은 가능한가? 나는 깨달음을 얻었는가? 좋은 질문입니다. 30분만이라도 요가를 해보면, “요가는 개인적인 경험이다”라는 말을 이해하게 될 겁니다. 그러므로 어떤 질문을 하든 저보고 “당신은 경험해봤나?”라고 질문하는 것은 좋은 자세입니다. 비록 제 경험을 당신과 공유할 수는 없지만, 그런 경험이 가능한지를 개인적으로 경험한 사람에게 묻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래서 죽은 부처에게 천 번 경배를 올리는 것보다 산부처를 한번이라도 만나는 것이 더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좋습니다.

우선 요가에서는 언제나 현재에만 집중한다는 걸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일단 한번 깨달음만 얻으면 그 후로 아무 걱정 없이 살게 될 거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바심 많은 사람들은 깨달음 얻어서 세상 편하게 살아보려고 깨달음에 매진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환상인 이유는, 톨스토이가 그렇게도 강조한 것처럼 사람은 미래의 일을 절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좀 더 궁극적으로 요가에선, 존재하는 시간은 오직 현재뿐이며, 과거와 미래는 우리의 상상 속에만, 즉, 환상(마야) 속에만 존재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깨달음을 한번 얻으면 그 이후의 미래에도 계속 깨달은 상태로 있을 거라는 진술 자체가 성립할 수 없습니다.

이제 말씀 드리지요. 그럼 저는 고통에서 해방된 상태에 있어본 적이 있는가? 깨달음을 얻었는가? 과거에 그랬는지 잘 모르겠고, 앞으로도 그러리라고 보장은 못하겠지만, 지금 이 순간 저는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평화롭습니다. 그럼 됐지요?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이 가능함을 믿으시나요? 깨달음이 가능하다는 게 믿어지시나요? 그래도 모르겠다고요? 그럴 겁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저는 의도적으로 노력했습니다. 깨달은 상태를 묘사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고통을 겪을 때마다 공부를 위한 좋은 기회로 삼았습니다. 고통을 겪을 때마다 ‘예수님이 이 상황에 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부처님이 이 상황에 있다면 어떻게 생각했을까?’, ‘한주훈 선생님이라면, 바이런 케이티라면, 사티아난다라면, 에카르트 톨레라면, 이현주 목사님이라면’,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그랬더니 조금 알 것 같았습니다. 하느님(Purusa)은 고통을 겪지 않으므로, 내 안의 하느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고통을 겪고 있다면, 그것은 ‘나’라고 생각하는 어떤 존재가 ‘나는 고통을 겪고 있다’라고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나는 아직 깨달음을 못 얻었다’라고 생각한다면, 그런 생각을 하는 주체도 내 안의 하느님이 아니라 ‘생각의 주체’일 뿐입니다. 파탄잘리 요가수트라의 제2장 3절(Satyananda, 1976: 143)에서도 아예, ‘나라는 생각과 착각, 좋은 것과 나쁜 것의 구분, 죽음에 대한 공포가 바로 고통의 원인’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도 고대 언어인 산스크리트어로는 이런 생각의 주체를 아스미타(asmita)라고 한답니다(Eliade, 1969: 33). 우리 모두의 내면에는 진짜 나인 하느님(jivatma)과 생각의 주체인 아스미타가 들어 있습니다. 진짜 나, 내 안의 하느님은 그 어떤 순간에도 고통을 겪지 않고, 원래 평화롭기 때문에 깨달음을 얻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하느님은 당신에게도 있습니다. 파도가 바다의 일부분이듯, 우리 모두에게 하느님이 있습니다. 깨달음은 성취할 무엇인가가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 고통스럽다고 생각하신다면, 그 고통이라는 생각이 환상(maya)임을, 가짜임을 알아차리면 그만입니다. 그게 바로 고통으로부터의 해방, 즉, 깨달음입니다.

한 줄 명상

미래를 준비하라고? 가짜를 위해 진짜를 포기하라고?

참고문헌

Eliade, Mircea. (1969). Yoga: Immortality and Freedom. second editi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Satyananda, Saraswati. (1976). Four Chapters on Freedom: Commentary on Yoga Sutras of Patanjali. Bihar School of Yoga.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3년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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