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수전 – 로사의 장밋빛 인생~ 거창하진 않지만 위대한 로사의 인생 도전기!

인터뷰 사진 김옥자

처음엔 솔직히 좀 걱정했다. 청각장애가 있지만 상대방의 입술을 읽고, 수화 없이 말할 수 있는 분이란 이야기를 실감되지 않았다. 그래서 며칠간의 고뇌와 갈등 끝에 ‘그래 믿어보자’ 소개해 주신 분의 <기쁜소식>에 대한 애정과 그간의 믿음을 믿어보기로 했다. 청각장애를 갖고 있지만 수화를 하지 못하고, 그 어떤 연줄도 배경도 없지만 거대한 ‘병원’이란 곳을 상대로 노동 소송을 해서 이긴 분, 허드렛일을 했지만 그 어떤 고위직보다 당당한 분. 오늘 생수전의 주인공 안순자 로사 씨(이하 로사)다.

출입문만 열린 병원

로사 씨는 작년 9월까지 6년간 고양시의 한 치과 소독실에서 진료에 필요한 기구 소독, 수술기구 패킹, 각종 소모품 정리와 준비 등의 일을 보조했다.

로사 씨가 다녔던 병원은 지역사회에 열린 병원을 표방하는 곳으로 이전에 공부했던 직업능력개발원 선생님이 추천해주셔서 가게 되었다. 사실 로사 씨는 그 당시 일하던 한국학술정보원에서 계속 일하고 싶었다. 하지만 열린 병원을 표방하는 좋은 취지가 있고, 로사 씨 같은 조건의 장애인을 원한다는 말씀에 병원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평소 믿고 존경하는 선생님이 주선하는 곳이라면 믿을 수 있겠구나 싶어 간 곳에서 처음부터 왕따를 당했다. 장애인에게 열려있다는 말은 적어도 로사 씨에게는 ‘대외용’이었다.

“처음 병원에 와서 충격을 받았어요. 하지만 소개해주신 선생님 입장을 생각해서 참았죠. 이전에 공부할 때 선생님께서 늘 그러셨거든요. 장애인들은 취업을 해도 힘들다며 그만 두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다고요.”

하지만 병원과 처음 맺었던 계약 조건이 점점 달라졌다. 사람에 대한 예의나 장애인에 대한 배려는 둘째 치고 근무시간도 잘 지켜지지 않았다. 나중에는 전문직이 해야 할 업무까지 시켰고, 이는 정말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에 로사 씨는 근무 시간 초과분에 대한 수당을 요구하고, 보조직이 해야 할 일에 대한 선을 그었다. 그때부터였다. 막연한 차별은 구체적인 차별로 바뀌었고, 은따는 왕따로 변했다.

로사 씨의 반발에 병원은 ‘경영진이 알아서 하는데 참견하지 마라’며 압력을 가했다. 행정직의 부장은 거칠게 화를 내고 욕하며 볼펜을 던지기까지 했다.

“부장님은 제가 허드렛일을 하니까 막 대한 거예요. 그러면서 말끝마다 ‘내가 부장인데’를 외치셨어요. 사실 부장님은 아침마다 자신이 성당에 다니고 미사 독서 봉사한다고 자랑하는 분이거든요. 하루는 제가 ‘부장님 왜 성당에 다니십니까’라고 물었어요. 전 정말 궁금했거든요. 그러니까 그분이 자신에게 상처를 주었다며 더 화를 내더군요.”

이후 로사 씨는 몇 년 간의 초과수당에 대해 노동청에 문의, 자신의 당연한 권리임을 확인했고, 병원에 노동청의 이야기를 전했다. 그러자 부장은 초과수당을 받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취지서를 써오라 했다. 로사 씨는 굴욕적인 요구를 거부했지만 함께 일하던 파트너가 ‘성질 건드리지 말고’ 써주라 해서 ‘나는 이렇게 이렇게 일하고 초과 근무를 했으니 수당이 지급되어야 한다고’ 썼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부장은 또다시 서류를 내밀며 ‘병원에 어떤 책임도 없다’는 문구에 서명할 것을 요구했고, 1년간 긴 투쟁의 시간이 괴로웠던 로사 씨는 이의 없다는 사인을 했다.

물론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괴롭힘은 계속되었다. 하루는 로사 씨에게 “내가 직원들에게 물어보니 병원에서 로사를 좋아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이야길 했다. 헐~ 참 놀라우신 분. 로사 씨는 직원들에게 부장이 한 말에 대해 확인했다. 짐작대로 직원들은 부장에게 그런 질문은 들어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자 부장은 오히려 자신을 망신시켰다며 불같이 화를 냈다. 이 정도면 적반하장의 끝장판!

중간관리자는 직원들과 경영진 사이에서 서로의 입장을 잘 이해하도록 조율하는 역할이다. 하지만 부장은 직원이 조금만 잘못하면 그걸 다 자료로 모아서 원장에게 보고하곤 했다. 자연히 원장이 직원들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질 수 없다.

로사 씨 해고의 결정적인 사건은 임플란트 시술과 관련하여 보조직이 할 수 없는 작업을 로사 씨가 거부한 일이었다. 다른 직원은 원장의 강권에 의해 했지만 로사 씨는 끝까지 안했다. 이후 원장은 직원들에게 로사 씨를 하더니 하루는 메일을 보내왔다. 내용은 장애인을 채용해 놓고 진료하기 바빠서 아무런 배려해주지 않아 미안하다, 계속 올라오는 보고를 보면 안 소독사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뿐이다 좀 더 발전된 병원을 위해 이야기 좀 해야겠다로 시작하여, 지시한 임플런트 최종패킹도 안 하고, 노동청에 가서 이야기도 하고, 하극상에 대해서 징계위원회 열겠으니 소명자료 제출하라는 압박의 내용이었다.

그래도 로사 씨는 원장의 메일에 감동했다. 바쁜 중에도 직원과의 소통을 위해 메일을 보내다니…… 그래서 자신의 마음, 노동청에 간 이유 등을 하며 이 단계를 넘어 더 좋은 사이가 되면 좋겠다는 답장을 보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건 합법적인 해고를 위한 수순이었던 것. 얼마 후 2012년 9월 15일, 토요일 퇴근시간에 로사 씨를 부른 원장은 ‘월요일부터 나오지 마세요’라고 했다. 이미 사람도 뽑아놓은 상태였고, 덩달아 로사 씨와 일하던 파트너도 해고했다.

이후 로사 씨는 1인 시위를 하고, 노무사를 통해 부당해고 소송을 했으며 승소해 복직과 보상 중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병원에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아 보상을 택했다. 그래봐야 세 달치 봉급분이다. 그간의 정신적 피해보상으로 치면 코끼리 눈물 격이지만 이것 역시 병원에서는 한 달 치만 주겠다는 걸 세 달치로 겨우 늘린 것이다.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로사 씨가 가장 불쾌했던 건 약자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이기심이었다. 당연히 이행하기로 했던 계약마저 파기한 것은 둘째 치고, 일부러 로사 씨 같은 장애인을 채용해놓고 아무런 배려도 하지 않았음에도 문제가 생기자 직원들 입에서 ‘못 들어서 일 못하겠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게 해 비참하게 만든 건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저도 아무 목소리 안 내고 다녔다면 해고는 안 당했을 거예요. 하지만 부당한 대우와 옳지 못한 행동을 묵인하는 건 아니다 싶었어요. 비록 병원 원장은 저를 이용해 공익을 위한 병원인 듯 홍보하려고 한 것이지만 전 이번 일을 통해 하느님의 정의는 살아있구나 하는 걸 느꼈어요. 노무사가 일반인도 이기기 어려운 일을 해냈다고 했어요. 처음엔 뭐 꼭 잘되려고 한 게 아니라 내 명예를 지키고 싶었던 것이었지만요.”

좀 놔둬봐라~”

로사 씨는 태생 장애인이 아니다. 열 살 때 알 수 없는 병명으로 3일간 의식불명에 빠져있었다. 자연스레 식구들은 아이의 장례를 논의했지만 할머니만은 좀 더 기다려보자고 했다. 그리고 기적처럼 아이는 깨어났다. 열 살이면 이제 막 청소년기의 황금 같은 시간을 시작하는 시간이다. 하지만 로사 씨에게는 환청뿐이었다. 아프기 전에는 분명히 들을 수 있던 모든 소리들이 아프고 난 후에는 들리지 않는 기막힌 상황이 아이는 이해할 수 없었다.

자연스레 집에만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외로웠다. 그렇게 무미건조한 시간이 계속되다 친구네 집에 다니면서부터 천주교 신앙을 만났다. 신학생이던 친구의 오빠 그리고 엄마는 마치 친 동생, 친 딸처럼 아껴주셨다. 아이에게는 새로운 세상이었다. 긴 잠에서 깨어난 이후 처음으로 ‘알고 싶은 게’ 생긴 소중한 시간이었다.

로사 씨는 영세 후 꽃동네에서 한동안 지내며 중환자실 봉사를 했고 직업전문학교에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로사 씨가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수녀로서의 삶. 그래서 한 수녀원을 찾아갔고 수련장 수녀님께 같은 식구가 되어서 살면 좋겠다는 말도 들었다. 그렇게 2년간 성소모임을 다녔고 꿈에 부풀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같이 지내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수녀님들의 의견에 꿈은 좌절되었다.

“세상이 다 끝난 것 같았어요. 할 수 없이 마음을 접었죠. 그때부터 나는 이 길이 아닌가 보다. 아무래도 나는 다른 일을 해야 하는구나 했어요. 하느님 원망도 많이 했죠. 하지만 원망해봐야 뭐하겠어요. 그래도 그런 경험을 통해 하느님이 한결같다는 생각은 했어요. 내가 화를 내든 투정을 부리든 삿대질을 하던 다 받아주셨거든요. 사람이 누군가 자신이 하는 말을 받아줄 때부터 치유가 되는 것이잖아요. 또 제가 만나는 많은 사람들을 통해서 하느님이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로사 씨는 현재 엄마와 둘이 산다. 간암이 걸리신 이후 많이 쇠약해지신 엄마와 가장 맘 편히 지낼 수 있는 딸이 로사 씨였다. 사실 로사 씨는 늘 맘속으로 엄마와 같이 성당에 가는 꿈을 품고 있었다. 그래도 억지로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함께 지낸지 얼마 안 있어 엄마가 먼저 성당에 가고 싶다고 하셨다. 로사 씨의 바람이 통한 걸까?

“그때 엄마는 움직일 수도 없는 상태였어요. 꼼짝없이 침대에만 계셔야 해서 구역장님이 신부님을 모시고 오셔서 영세를 받으셨어요. 그런데 참 희한한 게 영세 후 얼마 있지 않아 엄마가 일어나신 거예요. 전 정말 어리둥절, 어안이 벙벙했어요. 제 평생 마음속으로만 꿈꿨던 엄마의 영세도 그렇지만 수술 이후 집 밖을 나가보지 못한 분이셨는데. 사실 예비자 교리도 제대로 못해서 교리도 잘 모르지만 엄마는 미사시간에 뭐가 뭔지 몰라도 힘이 나고 좋다고 하세요.

세상은 다 연결되어 있는 거 같아요. 옛날에 성서공부 할 때 만난 분이 로마 8, 28을 알려주셨는데, 정말 살아보니까 그런 연결을 통해 하느님이 날 도와주는구나 하는 걸 느껴요. 살면서 막히는 일에 그때그때 지혜가 떠오르고, 다른 사람 통해서 길을 알게 해주세요. 우리는 각각 하나의 섬이지만 언젠가 다 연결되는가 봐요. 그래서 전 언젠가부터 어렵고 힘든 일이 생겨 걱정을 해도 그때뿐 곧 잊어버리고 겁도 안 나요. 남들은 저보고 겁이 없다고 하는데 전 정말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뒷감당? 이런 것도 생각하지 않아요. 어떤 문제가 생기면 ‘이 일을 통해 하느님이 나한테 바라시는 게 뭐지?’ 하고 지금 내가 할 일만 생각해요.”

로사 씨는 현재 사회복지사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언젠가 평생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이 뭘까 생각하다 생각한 일이다.

“꽃동네 중환자실에서 봉사를 하면서 보람과 행복을 느꼈어요. 내가 도움이 된다는 것도 기뻤고요. 그리고 병원에서 근무하면서 사각지대가 너무 많다는 걸 알고 사회복지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몰라서 불이익을 겪는 부분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리곤 그렇게 맘속으로 품고 있던 생각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게 된 건 성서공부를 같이한 지인이 보태준 학비 덕분이었다.

“제가 인복이 있는 것 같아요. 원하는 게 있으면 그걸 들어줄 사람을 보내주시더라구요.”

자신의 목소리를 듣다

로사 씨에겐 자신의 목소리를 들었던 특별한 경험이 있다.

“꽃동네 살 때였어요. 어느 날 저녁 미사 중에 쓰러졌어요. 원장 신부님과 수사님, 수녀님들이 다 모여서 절 주무르고 기도를 하는 게 다 보이고 들리는데, 움직일 수도 소리를 낼 수도 없었어요. 그렇게 진이 다 빠진 상태로 잠이 들었고, 꿈속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너무 아름답게 들리는 거예요. 전 원래 꿈에서도 못 듣거든요. 이게 웬일인가 싶어 전 막 노래하고 사람들이 너무 아름답다면서 울고, 참 환희에 찬 시간이었는데 깨어나니까 꿈이었어요. 나중에 신부님께 ‘나 노래 불렀어요’ 하니까 한번 해보라고 하셔서 불렀어요. 무슨 노래인지도 몰라요. 그때 신부님이 뭐라고 하신지 아세요. ‘로사야 너 머지않아 들릴 거야’라고요. ㅋㅋ 재미있죠.”

로사 씨는 수화를 안 한다. 기본만 배워서 잘 모르기도 하지만 활용할 데가 없었기 때문이란다. 예전과 달리 지금은 미사시간에도 수화가 진행되지만, 수화를 보다보면 집중이 안 된다. 비록 신부님 말씀은 잘 모르지만 고요히 집중하고 묵상할 수 있어서 좋다. 생각할 시간이 있어서 좋다. 아~ 좋다.

20대 때 로사 씨는 청각장애를 갖고 살아가기가 힘들어 농약을 먹으려고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이 듣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의 자신이 있고, 하느님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 사회복지사 공부를 한다고 하니까 사람들은 사회복지사가 포화인 상태에서 무슨 공부냐며 부정적이었지만 로사 씨는 분명 하느님이 날 필요로 하실 거라고 생각했다. 엄마와 같이 살게 되었을 때도 하느님께 어떻게 할 줄 모른다고, 알아서 해주시라고 말하며 하느님이 자신에게 엄마를 부탁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이 못하는 부분은 알아서 해주실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일까? 병원을 그만 두고 수입이 다 끊어지고 생활비도 바닥났을 때 본당 사무장님이 빈첸시오회에 이야기해서 도움을 받도록 해주셨다. 하느님이 엄마를 부탁한 만큼 살 길을 만들어주셨다고 믿었다. 그래서 놀고 있어도 굶어죽을 걱정 없다는 로사 씨는 이제 8월이면 당당히 사회복지사가 된다. 하지만 로사 씨의 최종 목표는 호스피스다. 꽃동네 시절 중환자실의 환자들이 세상을 떠날 때 처음엔 무서웠지만 점점 사람이 어떻게 사느냐에 못지않게 잘 죽는 것의 중요성을 생각했다.

로사 씨는 지금 행복하다. 장애와 가난은 한 소녀를 소외되고 낮은 이가 아닌, 공정하지 못한 세상에서 내 권리를 찾고, 자기 배만 불리려는 기득권에게 할 말 하는 당당한 여인으로 만들었다.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을 당당히 할 수 있는 사람은 사실 생각보다 많지 않다. 드라마 ‘직장의 신’의 미스 김 정도랄까? 게다가 지금 이곳에서 잘 사는 방법, 안분지족에 남과 더불어 사는 방법, 미래의 꿈까지 갖췄으니 그야말로 더 바랄 것이 없다. 그래서 로사의 인생은 그야말로 장밋빛 인생이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3년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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