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 vs Cool – 청년, 교회를 말한다 – 차진태

차진태

잠겨진 교회, 사라진 예수

나는 ‘안티 가톨릭’이었던 기간이 있다. 모태신앙으로서 어렸을 때에는 성당에서 복사를 하면서 어머니와 매일 미사를 다녔던 기억이 유년기의 가장 아름다운 기억 가운데 하나로 각인되어 있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이것은 객관적으로 드문 일인 것으로 보인다. 단순한 ‘냉담’이 아닌 ‘안티 가톨릭’이었다는 것은, 하느님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교회에 대한 불만이 폭발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 천주교회들 안에 예수님이 계신가? 의문이다. 성체 안에 예수님이 계신다는 점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성당은 더 이상 ‘기도를 하고자 하는 모두를 위해 개방된 공간’이 아니다. 서울시내 아무 성당이고 미사 시간이 아닌 시간에 가서 문을 열어 보라. 얼마나 많은 본당들의 문이 잠겨 있는지. 언제부터 성당 문이 항상 잠겨 있었는지?

한국 개신교회들이 사회적 지탄을 받는 근본적 이유는 대개 그 교회의 형태가 ‘비법인 사단’이라는 점에서 출발한다고 본다. 한마디로, ‘작은 회사’라는 것이다. 장로 몇이 모여서 일정 금액을 출자해서 교회를 세우고 목사를 초빙해서 월급을 주고 신도들에게 십일조를 받아 그 수익을 분배하고, 교회를 이전하게 되면 때로 다른 교회로부터 ‘권리금’까지 받는 ‘기업형 교회’의 행태는, 널리 알려져 있다.

천주교회는 어떠한가? 노숙자들은 늘어가고 자살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며 특히 그 가운데 2, 30대 여성 자살률은 세계 최고인 이 나라의 천주교회들이 주로 관심을 갖는 것은, 1) 성당 재건축 혹은 신축, 2) 조선시대 순교성인 추가 인정과 같은 것으로 보인다. 물론 4대강 사업에 대한 반대, 제주 해군기지 반대, 국정원 선거개입 반대 등의 “정의로운” 목소리까지 부정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교회를 사랑하면서 복음 정신을 가지고 살고 있는 숨은 사람들의 진정성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존중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적하고 싶은 것은, 바로 한국 천주교회의 ‘중산층화’이다.

복음 말씀 어디에서 도대체 예수님이 ‘중산층의 친구’ 였나? ‘무지개’ 어쩌고 하는 책의 광고를 보고 나는 책을 던질 뻔했다. 책 내용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국민소득 3만불 시대 행복 지침서”라는 모 신부님께서 쓰신 그 책의 광고를 본 나의 의문은 이것이었다. 도대체 ‘예수 부활’과 ‘대한민국 국민소득 3만 불’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가?

복음말씀에서 분명히 예수님은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약자’들의 친구이셨다. ‘돈 많은 돼지’들을 만나게 되면 예수님은 가차 없이 “너는 천국가기 어렵다”고 일관되게 말씀하셨다. 곧, 우리, ‘한국 돼지’들은, “천국가기 매우 어려운 상태”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예수님 운운하면서 세속적으로 성취도 하고 돈도 많이 벌고 천국도 가자는 이 따위 광고를 천주교회의 이름으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대한민국 천주교회의 중산층화라는 것은, 곧, 한국 천주교회들이 ‘한국 돼지들’의 영적 위로, 친목 도모를 위해 활용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비겁하게 그 틈에 끼어들기 싫었고, 그러한 장이 되어버린 교회를 경멸했다.

나는 교회에 나간다

하지만 ‘안티 가톨릭’이란 쉬운 것이 아니었다. 나는 가톨릭을 부정/비판하는 거의 모든 사조들을 혼자서 연구하였고, 내가 얼마나 가톨릭에 대해 무지한지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가톨릭교회 교리서’와 ‘가톨릭 성인전’부터 교황 회칙, 공의회 문헌들을 차근차근 읽기 시작했다. 결론을 요약하면, 그 안에서 내가 마주한 진리 앞에 나는 무릎 꿇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한 사람의 의인이 대부분의 죄인을 구원으로 이끄는 사건(예수님의 십자가)이 성립한다면, 교회(하느님)를 떠나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것보다, 그 안에서 더 충실히 의롭게 살아가야 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따라서 나는 교회에 나간다. 단, 혼자 나간다. 예수살이공동체 금요미사 혹은 FIAT 미사와 같은 공동체 미사를 제외하면, 나는 대개 아무도 모르는 본당에, 혼자 나가서 미사를 참례한다. 감히 말하건대, 매일 새벽미사에 나가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 아직 많이 어린 유치부 초등부 어린이들, 공부를 해야 한다고 주위에서 닦달함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곳곳에서 지키고 있는 중고등부 학생들 및 청년들, 정의감으로 불타오르는 성직자 및 수도자 등 성당 내 ‘소수자’들을 제외한 90%의 천주교회 구성원들에게 신앙이란 ‘악세사리’가 아닌지 묻고 싶다. 30년 가까이 살면서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서 펴낸 ‘가톨릭교회 교리서’ 한 번 제대로 읽는 ‘어른’을 나는 본 적이 없다. 천주교회 구성원들 가운데에서 겸손과 사랑에의 의지로 가득찬 평신도를 마주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 것인가?

예수님을 눈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만일 예수님을 누구나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이미 돼지들의 천국인 한국 천주교회는 그야말로 돼지우리가 되고야 말 것이다. 나는 예수님, 당신, 단 한 분에게 기대어, 교회에 나간다. 예수님, 당신이 계시지 않다면 진작에 망했어야 할 가톨릭일 것이나, 당신 한 분이 그곳 천주교회 안에 계시기에, 모든 부당함과 더러움에도 불구하고 나는 천주교 신자로서 살고자 한다. 항상 하느님 당신의 의로움을 먼저 생각하게 해 주시기를 예수님께 간구하며, 교회에 대한 나의 사랑을 고백한다.

차진태 ‘예수살이공동체’ 42기 배동이. 평신도 신앙 공동체 운동과 인권 문제에 대한 관심이 크다. 현재 대학원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청소년 인권 문제를 다룬 <존댓말로 읽는 헌법>(퍼플, 2012)의 저자.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3년 8월호

%d 블로거가 이것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