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속으로 들어간 본당 – 우리는 다른 마을에 산다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실

우리는 다른 마을에 산다.

소통이 있어 행복한 집에 사는 사람들

대개의 본당 소공동체는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반공동체로 이루어진다. 한 동네에 살고 있으니 이웃하여 친교를 나누고, 교회공동체를 꾸려갔으면 하는 바람을 담고 있지만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많은 이들에게 집이 삶의 자리가 아닌 경우가 많은 탓이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각자의 일터에서 생활하고, 집은 돌아와 잠을 자고 쉬는 곳이 되어버렸다.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적고, 2년마다 오르는 전세값 부담에 이사 가는 경우가 많다보니 공동체는 이상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지역 중심의 현행 소공동체에는 집이 정말로 삶의 공간인 주부들과 노인들을 중심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지난 달 소개한 ‘아름다운마을공동체’에 이어 이번 달은 서울 마포의 성미산 마을에 자리한 ‘소행주’ 이야기다. 소행주는 ‘소통이 있어서 행복한 주택 만들기’의 줄임말이다. 언론을 통해 여러 차례 소개 된 곳이어서 이미 아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와 상관없는 남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본당에서, 내가 사는 동네에서도 시도해 보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접하게 되면 뭔가 작은 시도라도 생겨날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마음으로 소개해 본다.

마을의 탄생

서울시 마포구 성산동 일대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것은 1993년 즈음이었다. 이때 모인 사람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보육보다 교육에 더 초점을 맞춘 기존의 육아 시설에는 아이를 맡기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공동육아 방식으로 운영되는 어린이집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고, 아이들이 크면서 방과후학교도 자연스레 생겨났다. 육아 문제 해결을 위해 관계를 맺던 부모들의 관계는 자연스레 육아와 교육에서 의식주, 문화생활로 관심이 확장되었다. 이렇게 해서 대안학교인 성미산학교, 마포두레생협, 마을카센터인 차병원, 작은나무 카페, 마을반찬가게인 동네부엌, 유기농 식당인 성미산밥상, 마을극장 등이 만들어져서 운영 중이다. 마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일자리를 만들고 그렇게 생긴 일자리에 마을 사람들이 자리를 잡는 방식이다. ‘소행주’는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운 마을 기업인 셈이다.

소행주가 지은 공동주택은 1호(어른 17명, 아이 20명), 2호(어른 19명, 아이 9명)에 이어 3호(어른 15명, 아이 8명)가 오는 9월이면 완공될 예정이다. 소행주는 새 공동주택 입주자를 모으고 땅을 사들이고, 전문가와 입주자 사이에서 코디네이터 구실을 하는 곳이다. 지난 3년의 기록을 정리한 단행본 <우리는 다른 집에 산다>(현암사, 2013)에서 이들은 ‘감히’ 이렇게 선언한다. “다음의 사람들은 이 책을 사지 말기를 권한다. 빌려서도 읽지 마시라. 첫째, 옆집에 누가 사는지 알고 싶지도 않고 몰라도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 집을 부동산으로만 여겨 프리미엄이 오를 듯한 지역의 아파트만을 살피는 사람…… 이웃집 아이가 어떻든 관심 없고 내 자식이 늘 혼자 놀아도 괜찮다는 사람…….” 이들은 이웃과의 교류가 단절된 집, 소통이 없는 집은 결코 행복한 집이 될 수 없다고 소행주라는 이름에서부터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소행주의 성공 비결?

소행주 내부는 큰 집이라야 122㎡(37평). 작은 집은 50㎡(15평) 남짓하다. 그래도 입주자들은 큰 불편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한다. 비결은 ‘내가 가진 욕구를 내 집 안에서만 해소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고 실제 생활을 통해 입주자들 스스로 깨닫게 된 것이다. 그래서 소행주는 입주 후에 커뮤니티 구성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커뮤니티를 형성한 이후에 입주할 수 있게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집을 짓는다. 일련의 소통 과정을 통해 옆집 아이, 윗집 아저씨, 아랫집 아줌마가 누구고 어떤 사람인가를 알고 그들의 필요에 따라 집(공간)을 짓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지은 집(공간)은 다시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사람이란 공간속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소행주 사람들은 어쩌다 한 번 이용하는 오디오 시스템, 운동기구를 각자의 집에 두는 대신 ‘씨실(1호)’, ‘느티재(2호)’라 불리는 커뮤니티 공간에 두어 공유한다. 입주민들이 한 평씩 비용을 분담해 마련한 10평 남짓한 공동의 공간이다. 웬만한 개인 거실보다 훨씬 크고, 웬만한 개인 주방보다 좋은 시설을 갖춘 이곳에서 입주민들은 영화를 함께 감상하는가 하면, 독서모임, 기타 배우기 모임 등을 갖는다. 손님을 치르는 데도 아주 그만인 공간이다. 무엇보다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은 역시 아이들 놀이터로서다. 아이들은 이곳 말고도 복도, 계단으로 몰려다니며 논다. 육아 부담을 던 부모들로서는 더할나위가 없다. 아이가 어린 엄마들끼리는 품앗이 육아도 자연스럽다. 일주일에 하루, 두세 시간씩 몇 집 아이를 보는 동안 다른 엄마들은 자유 시간을 갖는다. 또한 정기적으로 함께 모여 저녁을 먹는 시간을 갖는데 집집마다 반찬 하나씩만 가져와도 진수성찬이니 가사 부담도 크게 줄었다.

지난 3월 소행주를 돌아본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입주민 윤상석씨는 “내가 11평짜리 집에 사는데 입주시 1억8천만 원이 들었다. 서울에서 이 돈으로 어떻게 내 집을 마련했겠나.”라고 말했다. 게다가 집이 작아졌어도 공동 공간이 있으니 불편함이 거의 없고, 관리비도 훨씬 적게 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박시장은 “공유를 통해 주거비용을 낮추고 행복감은 높이는 모범을 소행주가 보여주고 있다.”고 평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은 있다.

20년이 넘는 한국교회 소공동체 운동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뚜렷하게 ‘이거다’ 하는 사례가 떠오르질 않는다. 소통이 단절된 주거문화는 그대로 두고, 20년간 ‘복음나누기’만을 외친 당연한 결과는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소행주라는 이름에서 ‘행복’ 보다 ‘소통’을 앞에 놓은 것은 소통 없이 행복하려는, 집에 대한 세상의 빗나간 시선을 교정하려는 의도이다. 소공동체의 핵심을 복음을 통한 소통이라고 정의한다면 교회는 복음을 말하기에 앞서 일상에서의 소통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먼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다행히도 소행주 사례가 소문이 나면서 여러 곳에서 코하우징 사례가 생겨나고 있다. 소행주의 경우 기본적으로 공동체 마을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소행주 모델이 안착되기에 좋은 조건일 수 있다. 달리 말하면 다른 지역에서 소행주 모델을 적용하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인데, 박흥섭 소행주 대표는 ‘일단 용기를 내서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거창해보이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라고 잘라 말한다. 이미 앞서 간 사례가 있으니 선배들의 시행착오를 거울삼아 후배들은 조금은 불편을 줄일 수 있으니 다행인 셈이다.

연구소 주관 강연회에도 몇 차례 초대된 적이 있는 건축가 이일훈 선생은 삶다운, 집다운, 일상다운 건축은 건축 자체에 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는 방식에 답이 있다고 말한다. 그의 책과 칼럼들을 읽어 보면, 건축 이야기를 통해 결국 시대를 살아가는 방식을 수정하자고 말하는데, 그가 소행주 건축에도 깊이 관여한 모양이다. 소행주 1호 완공을 기념하는 오픈하우스 행사 때 입주자 가족에게 던진 이야기는 의미심장하다.

“여러분은 이미 운동가이고 사회에 변화를 주는 업적을 이루었습니다. 집에 대한 필요와 요구가 제각각 다름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짜맞춰진 구조의 집에 들어가 사는 현실에 맞서 그것을 거부한 것이 그렇고, 내 집을 늘이려고 하기보다 한 평씩 모아서 더 큰 공간을 만들어 함께 이용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 그렇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에 내가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복음이 성서 말씀으로 된 문자 안에만 갇혀 있다면 그 말씀은 죽은 말씀이다. 그러나 오늘을 사는 우리의 일상에, 우리네 삶에 관계될 때 복음은 살아있는 말씀이 된다. 한국 교회의 소공동체 운동이 역동적인 복음화운동이 되기 위해 소행주의 사례가 작은 밀알이 될 수 있기를 바래본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3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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