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운동의 영성을 찾아서 – 포콜라레 운동

이미영

사랑과 일치의 영성을 사는 포콜라레 운동

포콜라레(http://www.focolare.or.kr/)

‘국제 마리아의 사업회’. 이태리어로 ‘벽난로’를 뜻하는 포콜라레 운동은 1943년 이탈리아 트렌토의 초등학교 교사 끼아라 루빅(Chiara Lubich, 1920-2008)과 그 친구들의 공동체 모임으로 시작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삶의 터전과 미래의 희망이 무너져 버린 절망의 한 가운데에서, 끼아라 루빅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 영원한 이상은 오로지 하느님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복음을 따르는 삶을 사는 공동체를 추구한다. 이 운동은 주위를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벽난로처럼 폐허가 된 세상에 사랑의 온기를 불러일으켰고, 급속도로 세상 곳곳으로 확장되었다.

로마에 총본부를 두고 있으며 1962년 교황청으로부터 인준, 전 세계 190여 나라에서 활동 중이다. 한국에는 1969년에 첫 포콜라레 본부를 열였으며 전국적으로 7개의 본부와 1개의 회원 양성을 위한 본부를 갖고 있다.

포콜라레 운동에는 남녀노소, 사회 신분과 성소, 종교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이 참여한다. 그 중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한 사람들로서 소규모의 남녀공동체(포콜라레)를 이루고 생활하며 포콜라레를 이끌어 가는 사람들을 포콜라리니(Focolarini)라 하며,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한 활동은 젠(Gen, New Generation)이라고 한다.(출처 : 가톨릭대사전 참고)

20여 년 전 중고등부 교리교사를 할 때, 대학가 근처에 있는 이웃 성당의 청소년과 청년 미사가 활기차고 흥겹다는 소문을 듣고 그 비법을 배워보고자 찾아간 적이 있다. 그들이 알려준 비법은 젊은이들이 좋아할 만한 노래로 가득한 성가집과 그 성가를 연주하기 위한 그룹사운드 수준의 빵빵한 악기들이었다. 그 성당에서 자체제작하여 사용하는 성가집은 젠(Gen) 노래로 가득했다. 젠이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개신교 복음성가와도 비슷한 밝고 경쾌한 느낌의 성가가 좋아서 <청소년 성가> 책이 나오기 전까지 그 본당의 성가집을 매주 한두 곡씩 복사해서 청소년미사 때 부르곤 했다. 그 젠이 바로 포콜라레 젊은이들을 뜻한다는 것은 아주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다른 평신도 사도직 운동과 달리 포콜라레 운동(마리아사업회)은 신자들에게 비교적 생소한 편이다. 주로 본당을 구심점으로 삼아 활동하는 다른 평신도 사도직 운동과 달리, 지역 포콜라레 공동체를 통해 모임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1967년 한국에 도입되어 현재 약 1500여 명이 이 운동에 참여 중이고, 포콜라레 운동 체험연수인 ‘마리아 폴리(마리아의 도시)’에 참여한 이들은 약 2만여 명에 달한다. 가정과 동네, 학교, 직장이라는 각자 삶의 자리에서 말씀을 사는 영성운동인 포콜라레 운동은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복음적 생활로서 사회의 혁신을 위해 일하는 ‘새 인류 운동’, 가정생활에 초점을 맞춘 ‘새 가정 운동’, 일치된 세계를 위한 ‘젊은이 운동(젠 운동)’, 본당 공동체에 초점을 맞춘 ‘새 본당 운동’ 등 다양한 모습으로 이뤄지고 있다.

일상에서 ‘말씀을 산다’

인도의 성자 마하트마 간디가 “나는 그리스도는 좋아하나 그리스도인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한 말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참 뼈아픈 질책이다. 예수의 삶과 복음은 사랑으로 가득했으나 그리스도인들은 그 사랑을 제대로 살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기 때문이다. 이웃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행위야말로 예수를 닮은 삶, 복음화된 삶, 복음을 전하는 삶이다.

‘모든 이를 사랑하자’, ‘잘못을 용서해 주자’,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자’, ‘서로 사랑하자’, ‘다른 사람 말에 귀를 기울이자’. 포콜라레 회원들은 아침마다 여섯 면에 이런 문구가 각각 씌어 있는 ‘사랑의 주사위’를 던져 나온 메시지를 하루 동안 실천한다고 한다. 지극히 소박하고 단순한 사랑의 실천이지만, 이처럼 포콜라레 회원들은 자신의 일상을 “예수님, 당신을 위한 행위에요.”라고 기도하며 봉헌하고자 노력한다. 세상 안에서 성인이 되는 삶을 지향하는 것이다.

‘말씀을 산다’는 것은 포콜라레 운동에서 중요한 수행과정이기도 하다. 머리로 복음말씀을 묵상하는 것을 넘어서서 그것을 내 삶에서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실천한다. 포콜라레 월례모임은 생활말씀을 통해 복음을 구체적으로 삶 안에서 어떻게 실천했는지를 나눈다. 소공동체 운동의 복음나누기와도 비슷하지만, 자신이 복음화된 것을 나누고 서로 배운다는 점에서 더 실천적이라고 할 수 있다.

포콜라레 회원들은 일상에서의 나눔과 섬김을 통해 초대 교회 공동체의 삶을 현대 사회 안에서 실현하고자 노력한다.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나눔을 중시한다. 이를 위해 ‘새 인류 운동’은 수원의 한 고등학교를 빌려 매월 ‘행복마을’이라는 나눔과 축제의 장을 열어, 이주민과 새터민을 위한 의료봉사와 미용봉사, 생필품과 음식을 나누는 봉사를 진행한다. 또한, 포콜라레 운동 예술인 모임인 ‘모자이크’는 자선 병원이나 장애인복지관 등에서 전시회를 열어, 예술을 통한 나눔 문화를 확산하고자 한다.

이처럼 포콜라레 운동은 세상 속에서 ‘사랑의 문화’를 이루기 위한 수행과 실천의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경계를 넘어 일치를 추구

포콜라레의 핵심 영성은 ‘일치’이다. 포콜라레 운동은 예수의 복음을 생활의 중심이자 생애의 이상으로 삼아 갈라진 형제들과 분열된 이 세상을 사랑의 힘으로 일치시키고자 하므로, 성별, 연령, 인종, 종교, 사회적 지위 등 그 어떤 이유로도 차별하지 않고 세상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실천함으로 하나가 되고자 한다. 회원 역시 반드시 천주교 신자일 필요가 없고, 평신도 사도직 단체이지만 사제와 신학생, 수도자들도 함께 활동하며, 평신도로서 동정생활을 하는 미혼 회원과 가정생활을 하는 기혼 회원, 사회적 신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대중운동을 이끄는 솔선자, 젊은이, 청소년, 어린이 그룹인 젠 등 회원의 구성 역시 경계가 없다.

경계를 넘어 일치를 추구하는데 가장 중요한 도구는 ‘대화’이다. 더불어 사는 사랑의 공동체 세상을 지향하는 포콜라레 운동은, 가톨릭 신자만이 아니라 다른 그리스도 교회 신자들, 다른 종교 신자들, 나아가 종교가 아닌 다른 방식의 신념을 지닌 사람들과도 함께 대화하며 일치를 추구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최근에는 새로운 현대문화와의 대화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강조한 ‘세상과의 대화 정신’을 가장 적극 실천하는 사도직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포콜라레 회원으로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위원회 위원이며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 여성위원회 위원으로 20년째 종교간 대화 활동을 하는 한미숙(코린)씨는 이 땅의 종교들이 사랑과 자비의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일에 함께 협력할 수 있음을 확신하고 실천하고 있다. 다른 종교인들과 서로 가치를 공유하고 이해의 폭을 넓혀감으로써, 모든 종교가 지향하는 인간존중의 관점에서 세상을 사랑과 생명의 문화로 바꾸어나가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초창기에는 서로 밥도 먹고 차도 마시며 함께 정기적으로 만나는 정도였지만, 차츰 각자의 교리를 배우고 나누는 세미나도 열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와 우정이 깊어졌고, 자선행사도 함께하며 사랑이라는 근본적인 가르침에는 경계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특히 한국 사회에서 가장 대화가 필요한 분야는 무엇일까? 아마 ‘정치’를 우선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포콜라레 운동은 분열과 갈등이 일상화된 정치계를 변화시키기 위해, 협력과 대화의 문화를 만들기 위한 정치계 일치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2004년에 시작된 ‘일치를 위한 정치인 모임’은 ‘사랑 중의 사랑’인 참된 정치를 펼쳐가기 위해, 정당이 서로 다르더라도 공공의 권리를 보호하고 사랑의 가치를 발전시키고자 협력하고 있다. 매년 포럼을 열어 함께 정책을 논의하고, 학생들을 위한 ‘일치를 위한 정치인 학교’를 개설하여 교육하며, 서로 존중하며 대화할 수 있는 정치문화를 만들기 위한 캠페인을 추진하기도 한다.

나눔의 경제를 위한 ‘공유경제’

포콜라레 운동 중 ‘새 인류 운동’은 복음적 이상을 인간 생활의 모든 분야에 뿌리내리게 하는 목표를 지니고 전개되는데, 특히 경제생활과 관련하여 ‘공유경제’(economy of communion)를 주창하였다. 경제적 이윤으로 보편적 형제애를 실천하는 공유경제는 그리스도교 초대교회 신자들이 재산을 공유하여 필요한 만큼 나누어 씀으로써 가난한 사람들이 하나도 없었던 것처럼(사도 4,34-35 참조), 경제활동으로 얻는 이익을 개인이 소유하지 말고 세상과 함께 나눔으로써 굶주림이나 가난, 사회 불평등의 문화 구조를 바꿔보자는 발상에서 시작되었다.

포콜라레 운동 창설자 끼아라 루빅은 주식회사든 협동조합이나 다른 형태의 기업이든 간에 사업을 통해 생겨나는 수익의 3분의 1은 기업에 재투자하고 3분의 2는 도움이 필요한 가난한 이들에게, 그리고 ‘주는 문화’를 위해 일할 사람들을 양성할 기관을 위하여 할당하자고 제안했다. 소유의 문화에 바탕을 둔 소비주의 경제와는 달리, 공유의 경제는 기업의 고용주와 피고용자들 사이의 일치를 추구하면서 나눔의 경제를 실현하는 것이다. 공유경제 기업들은 법률을 엄격히 준수하고 근로자들의 권리는 물론 소비자, 경쟁산업, 사회, 그리고 환경의 권리를 존중하는 경영과 생산활동을 통해서 이익을 얻고 있다.

일례로 국내에서도 포콜라레 운동의 공유경제 가치를 표방하는 대표적 제과기업인 대전 성심당은 매일 남은 빵을 지역사회 고아원과 양로원에 무료로 나누는 것을 57년 동안 실천하고 있다. 매출과 이익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사장 월급이 500만 원으로 정해져 있으며, 수익금 일부는 아프리카에 보내는 등 철저한 나눔을 실천하기 때문에 착한 경제를 실현하는 좋은 기업의 대표적인 모델로 소개되곤 한다.

최대한의 이익을 만들어 많이 소유하는 것을 축복으로 여기는 신자유주의 경제질서에 맞서 ‘주는 문화’를 통해 빈부격차를 줄이고 친교의 경제를 이뤄나가는 노력은, 신앙의 가치가 세상을 얼마나 놀랍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입증하고 있다.

젊은이들이여, 갈라진 세상을 위한 일치와 사랑의 다리를!

포콜라레 운동의 영성은 일치와 사랑의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킴으로써, 우리의 신앙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음을 증거하고자 한다. 나와 가족의 행복만을 추구하며 이웃을 돌아보지 않는 경향이 점점 강해지는 요즘 세상에서, 포콜라레 운동은 우리에게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 이상을 일깨워주고 있다.

그러나 최근 포콜라레 운동은 젊은이들의 참여가 예전 같지 않고 젠 운동이 확장되지 않는다는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포콜라레 운동뿐만 아니라 한국 천주교회 전체로 볼 때도 본당이나 학교에서 청소년 사목이 이미 활력을 잃은 지 오래이다.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학업이나 취업 준비에 매진해야 한다는 인식에 신앙생활은 쉽사리 뒤로 밀려 버리곤 한다. 젊은이가 줄어드는 교회의 현실은 우리에게 복음적 가치를 향한 순수한 갈망을 살고자 지향하는지, 또한 우리 자녀에게 그러한 복음적 삶을 북돋우고 있는지를 묻게 한다.

그래도 한국의 젠 운동은 포콜라레 회원들의 자녀를 중심으로 한 지역 모임을 통해 계속 명맥을 이어가고 있지만, 학교나 본당을 통한 확장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운동’은 그야말로 역동적이고 활기가 넘치는 모험인데, 젊은이들이 없는 평신도 사도직 운동의 미래는 앞날이 잘 가늠되지 않는다. 특히 포콜라레 운동에서 젊은이들의 젠 운동은 미래뿐만 아니라 현재 운동의 중요한 한 축이기 때문이다.

포콜라레 운동에 참여하는 회원들과 솔선자들은 젊은이 때 본당과 학교에서 이뤄지는 젠 운동에 참여하면서 그 환대와 사랑의 삶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입을 모은다. 젠 모임에 참여하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가정과 학교에서 예수처럼 사랑을 실천하고자 노력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순수하고 소박한 신앙의 열정에서 사랑의 온기가 절로 느껴진다. 마음이 무뎌지기 전인 청소년기에 신앙의 순수한 열정을 맛보고 체험하기가 더 쉽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을 수 있다. 그러한 체험이야말로 지속적인 성숙과 운동을 가능하게 하는 원천이다.

우리의 신앙은 어떤 삶을 꿈꾸며, 우리의 자녀들에게 어떤 세상을 주려 하는가? <청소년 성가>에 실린 젠(Gen) 노래 ‘다리’는 포콜라레 운동이 지향하는 바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복음적 삶의 이상보다는 경쟁 사회에 살아남는 것이 더 중요해진 오늘의 현실에서 하느님 나라를 이 땅에 실현하고자 하는 그 사회적 영성을 함께 되새겨 보면 좋겠다.

온 세상 곳곳에 수많은 강이 흐른다

길고 깊게 흐르는 강 우리를 가른다

서로 물 건너 마주 바라보지만

아, 만나지 못한 채 그 눈길은 불신으로 가득 차

어찌 강 위로 다리를 우리 놓지 않는가

어찌 강 위로 다리를 놓아 서로 만나지 않는가

어찌 다리를 놓지 않나

– 젠 노래 <다리>

(이미지 제공 : 한국 포콜라레)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3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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