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 – 베끼기의 달인, 짝퉁 버드와이저 선생!

고상균

맥스_ 체코 필스너와 신자유주의

  베끼기의 달인! 짝퉁 버드와이저 선생!:

제습기 대신 시야시~

덥다. 더운데다가 온 세상이 척척하다. 4일전부터 널어둔 빨래는 아직도 축축한 냄새를 내뿜는다. 피곤한 몸을 누이다 이불의 눅눅함에 화들짝 놀란다. 절대 살 리 만무한, 아니 살 수 없는, 습기는 물론 신발과 빨래도 말려준다는 가전제품을 인터넷으로 기웃거린다. 좀 더 밝은 내일을 기약하며 길바닥에 몸을 누이는 노동자들이 원망스레 하늘을 본다. 장마다.

자고 일어나도 온 몸이 물먹은 솜덩이인 것 같은 요즘, 하루가 끝나고 노곤한 몸과 함께 집으로 향할 때 난, 그저 어서 빨리 시원한 물에 샤워 한 후, 잘 식혀진 맥주 한잔을 후텁지근한 날씨에 시달린 몸속으로 흘려보내주고 싶은 마음뿐이다. 오늘은 이럴 때 생각나는 맥주 베스트10 중 사랑하는 체코맥주들을 소개하려 한다. 물론! 그 시원한 아이들과 함께 나눌 수다도 함께 말이다.

라거와 유리잔의 궁합! 상궁합!!!

오랜 시간 동안 맥주하면 ‘에일’ 즉 상면발효맥주(발효 도중에 생기는 거품과 함께 상면으로 떠오르는 성질을 가진 효모를 이용하여 만드는 맥주. 비교적 고온 18∼25℃에서 2주 정도 발효 후 15℃ 정도에서 약 1주간의 숙성을 거침)였다. 그도 그럴 것이 저온상태에서 장기 숙성을 시켜야 하는 ‘라거(하면발효 맥주: 발효가 끝나면서 가라앉는 효모를 이용하여 만드는 맥주. 비교적 저온 7∼15℃에서 7일∼12일 정도 발효 후, 0℃ 이하에서 1∼2개월간의 숙성 기간을 거침.)’의 특성상 냉장에 필요한 설비를 갖춰야 하는데, 고대로부터 근대이전까지 인류는 그에 관한 기술을 확보하고 있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까지 맥주하면 에일이었던 것이고, 에일에 관한 한, 자타가 공인하는 종주국 영국은 오랜 시간 독보적 위치를 구가했다. 보편적으로 맥주하면 떠올리는 독일도 12~15세기까지는 북부지역을 중심으로 영국식 맥주를 흉내 냈었고, 대륙의 국가들은 영국의 앞선 양조기술을 눈독들이며 줄기차게 산업스파이를 보내곤 하였다.

하지만 이 맛있는 영국 에일도 치명적인 약점을 지니고 있었으니, 실온에 가까운 상태에서 발효와 저장이 이루어짐에 따라 쉽게 ‘산패’, 즉 부패되어 버리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이를 막기 위해 홉을 다량으로 포함시키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상면발표의 특성상 산패를 막을 수 없었고, 이는 유통에 있어 치명적이었다. 하지만 위기는 기회라 했던가? 상면발효의 산패를 극복할 방안을 고심하던 선각자들에 의해 마침내 하면발효 효모가 뮌헨에서 발견되게 되었고, 이를 적극적으로 연구한 필젠 지방 양조가들의 오랜 시행착오와 노력으로 종래 맥주하면 연상되던 탁한 암갈색이 아닌, 투명한 호박 빛에 풍성한 거품이 함께하는 명품 라거 ‘필스너’가 탄생하게 되었다.

아울러 필스너의 탄생은 칼 폰 린데(1848년)의 암모니아 냉동기 발명, 필젠 지방 특유의 연수(軟水) 등의 지역-사회적 기반과 함께 19세기 들어 유럽전역에서 세금이 철폐되면서 대량생산과 유통이 가능하게 된 유리잔과 병의 보급이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 유리가 귀족들만 향유할 수 있었던 당시 맥주는 거의 예외 없이 사기로 만든 잔에 따라 마셨다. 사기잔으로는 속을 들여다 볼 수 없었을 터! 사람들은 빛깔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런데 앞서의 이유로 유리잔이 대량 유통되기 시작하면서 애주가들은 맛, 향과 함께 눈을 시원하게 자극해줄 빛깔에도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배경 속에서 탄생한 신비의 호박 빛 필스너는 곧바로 열성적인 추종자들을 만들어냈고, 불과 수 백 년 만에 에일을 맥주의 주류 자리에서 밀어낸 자리에 라거가 등극하기까지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벽다방(자판기) 커피 한잔에도 가격결정과 원료의 수입 등 정치, 경제적 배경을 지니고 있듯, 한 잔의 맥주가 탄생하게 된 원인에도 역시 이와 같이 다양한 사회적 배경을 가진다.(라고 해야 이 글의 말발, 아니 글발이 서지 않을까?)

벨벳혁명의 성공의 비밀

거기에 빠질 수 없는 원인 하나는! 체코인들은 참 맥주를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체코는 맥주에 관한 한 최초의 기록을 다량보유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경우 일인당 맥주 소비량에서 세계 1위의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으며, 세계 최초의 맥주 박물관을 개관한 나라이기도 하다. 아울러 앞서 설명했던 필스너 맥주의 세계 최초 생산 공장을 설립하기도 했다.

더욱 의미 있는 최초는 맥주 노동자가 대통령이 된 점인데, 체코의 민주화 운동이었던 ‘벨벳 혁명’ 이후 당선된 하벨은 공산당 일당 체제에 저항했던 이른바 ‘프라하의 봄’이 좌절된 후, 6년여의 시간동안 맥주공장 노동자로 일했던 인물이다. 여기에서 그는 종래의 나약한 지식인의 한계를 딛고 운동의 다음을 보았으며, 전국 규모의 맥주 노동조합과 만나게 된다. 이와 같은 기반을 통해 혁명의 과정에서 대중들의 마음을 모아내는데 성공했던 하벨은 마침내 대통령에 당선되게 된다.

만약 하벨이 맥주공장 노동자가 아니었다면, 체코인들이 맥주를 참 좋아하지 않았다면, 전국 도처에 수많은 맥주 양조장이 있지 않았다면 아마도 벨벳혁명은 성공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말로 맥주 사랑을 합리화 해볼까 한다!)

낭만은 개나 줘버리는 세상

아무튼 맥주를 무척 사랑하는 체코에서 오랜 시간 동안 맥주 공장들은 국영기업이었다. 그런데 그 사랑도 신자유주의의 장벽을 넘지는 못했던 것일까? 최근 들어 체코의 휼륭한 양조장들은 대부분 초국적 맥주회사에 매각되었거나 매각이 추진되고 있는데, 대표적인 예가 ‘원조 필스너’라는 의미의 ‘필스너 우르켈’이다. 밝은 호박빛과 그윽한 보리향, 풍부한 바디감과 시원한 목넘김이 일품인 이 아름다운 녀석은 ‘밀러’로 유명세를 탄 초국적 기업 사브밀러(남아프리카공화국)에 매각되었다.

안타까운 것은 매각 직후, 필스너 우르켈의 전통적인 맛을 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오크통들이 ‘대량생산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모조리 알루미늄 통으로 교체되었다는 점이다. 돈벌이, 더 구체적으로 ‘떼돈’을 버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모두 ‘악’이 되어야 하는 것이 자본의 속성이라더라도 오랜 시간 체코의 맛을 지켜갔던 나무통을 일순간에 폐기처분하는 ‘진격’은 정말이지 슬플 따름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필스너우르켈이 사브밀러에게 매각되었을 때 세상 누구보다 광분했던 이가 안호이저부시인베브 회장 부시3세였다는 점이다.

대체 왜! 체코 정부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우리의 성의를 무시하는 것인가? 체코의 사츠 홉 구입을 즉각 중단하라!(<맥주, 문화를 품다>, 무라카미 미쓰루, 이현정, 서울: 알에치코리아, 2012, 278쪽)

체코맥주의 또 다른 한 펀치인 ‘부트바이저 부트바’를 멋대로 ‘버드와이저’라는 이름으로 도용해 놓고는, 오히려 부트바이저는 독일어이고, 이를 영어식으로 부르는 것에 체코가 관여할 사항이 아니라는 식의 논리를 대며 상표분쟁을 벌이고 있는 안호이저부시인베브에게 있어 체코 맥주 회사를 합병하는 것은 자신들에게 없었던 정통성을 확보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문제였을 터, 막강한 자금과 정치력을 동원해 필스너 우르켈을 합병하려 했던 부시3세는 경악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건 아마도 어쩔 수 없는 매각의 상황에서도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려했던 체코인들의 의지가 반영된 것은 아니었을까?

돈이면 뭐든지 다 할 수 있는 돈의 시대지만, 그래도 돈 만으로 될 수 없다는 것, 아니 그럴 수만은 없다는 의지는 이렇듯 미약하지만, 계속 이어진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그러나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를 외치며, 굴복할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그럴 수 없는 어떤 것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셨던 복음서 속 예수로부터 분향소라 말 할 수조차 없는 것들을 차려놓고 함께 공장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계신 대한문 앞 쌍차 형들에게 이르기까지 말이다. 장마다. 이 후텁지근 날에 청량한 체코맥주 한 잔하며, 새로이 시작될 내일을 수다 떨자!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3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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