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Cool – 성인, 다다익선? – 황종렬

황종렬

성인: 교회의 말이자 길

한국 천주교회 시복시성 운동에 부족한 ?

존재는 말이다. 말은 길이다. 존재와 말, 존재와 길이 하나인 존재. 그분이 하느님이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전체는 그분 자신의 말이자 길이고,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말이자 길이다. 사람은 그분의 말과 존재, 그분의 관계에 성찰적으로(reflectively) 참여한다.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말을 따라 하느님의 살림이 우리 가운데 뿌리내리고 뻗어 가게 해온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우리 교회는 시대마다 이들 가운데 성인을 가려서 그분의 살림에 이르는 길로 기린다. 이런 맥락에서 시성은 교회가 세상에 거는 말이요, 하느님의 생명에 이르는 데 쓰이도록 닦아 놓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2011년 10월 31일 우리 교회는 황사영 알렉시오와 안중근 토마스 등 551명을 시복시성 조사 대상자로 검토할 것을 선언하였다. 이후 2013년 2월 5일에 시복 추진 대상자 214명을 확정하였다. 이때 ‘조선 왕조 치하의 순교자’ 133명 가운데 황사영을 포함시키고, ‘한국 교회의 근현대 신앙의 증인’ 81명을 뽑으면서 안중근을 제외시켰다. 이번 선정 작업이 최종적이고 더 이상 변경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또한 이번에 선정되었다고 해서 모두 시복된다는 것을 뜻하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현재 선정한 틀을 기준으로 놓고 볼 때 이것을 통해서 교회가 하려는 말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오늘 우리 교회 지도자들이 이런 말의 구도를 선택하게 한 신학은 또 어떤 것이었을까? 뽑힌 황사영과 안 뽑힌 안중근의 사례를 검토하면서, 성인의 의미를 살펴보기로 한다.

황사영 – 시성은 단순히 지역 교회를 위한 것이 아니다

황사영은 백서에서 조선을 청나라 영고탑에 복속시키고(103-105행, 107-9행) 부마국으로 삼게 하며(백서 106행) 서양의 큰 선박과 군사를 보내어 종교 자유를 얻게 해 달라(109-118행)고 청하였다. 이런 백서 내용을 보고 많은 사람이 그를 매국노라고 비판해 왔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의 생애와 신앙 증거를 보면, 그는 하느님의 신앙의 길을 가리키는 언어가 될 만한 많은 덕을 갖춘 증거자였다.

나는 황사영의 매국적 처신을 비판하는 주체들에게서 그가 이렇게 극단적인 대안을 생각하게 만든 당대 권력자들의 폭력 구조를 철저하게 비판하는 것을 잘 보지 못하였다.

이것은 이들이 이런 비판을 가하는 것이 당대 불의한 권력자의 편에 서게 만든다는 것을 제대로 자각하지 못한다는 것을 드러낸다.

이런 상황에서 주교회의의 이번 결정은 그동안 매국이라는 비판 틀에 갇혀서 그의 신앙의 깊이와 민족의 생명의 길에 대한 고뇌에 찬 성찰을 새롭게 인식하고, 이를 공유하는 기회를 형성하지 못하였던 단계를 극복할 중요한 계기를 열었다고 본다.

그러나 나는 그가 시성되리라고 보지도 않고 또 그래서도 안 된다고 판단한다. 시복시성 대상자로 선정된 황사영의 신앙 행위와 관련하여 시성 절차에서 검사 역할을 할 ‘악마의 변호인’이 물을 것이다. 황사영이 다시 그와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똑같은 대안을 요청했겠는가? 황사영이 당시 역사와 민족의 자존에 대한 성숙한 식별에 도달하지 못한 것을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런 인자를 내포한 그의 삶을 세계민과 함께 하느님의 살림을 향해 걸어갈 한 길로 수락할 수는 없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정하상도, 유진길도, 김대건도, 다블뤼 주교도 그의 교회적 관심과 투신은 높이 사면서도 그가 보인 국내 정치적 폭력에 국제 정치적 폭력을 끌어들여 해결하고자 한 것에 대해서는 비판을 가했던 것이라 본다. 그는 성인이 아니어도 우리 역사에서 이미 한 위대한 믿음의 길이다. 그런 그를 성인이 되게 해서 수치를 안길 이유는 없다고 믿는다. 시성은 단순히 지역 교회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안중근 – 불의한 지배에 대한 가톨릭의 응답이 필요하다

안중근은 어떤가? 그는 독립군 지도자로서 민족의 독립과 아시아의 평화를 위하여 일본 식민 지배 세력에 맞서 투쟁했고,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다. 그 자리에서 체포된 그는 151일을 감옥에서 지내면서 미조부치 검찰관과 사카이 경시에게 심문을 받고 뤼순 지방 법원에서 8일 동안 6차 재판을 받았다. 그는 이 기간에 자서전을 쓰고 동양평화론을 일부 썼다. 정근, 공근, 명근 등 가족과 안병찬 변호사와 외국과 일본 변호사 등 소수의 면회자들과 만났다. 또한 상당수의 서예물과 소회, 편지, 유서들을 쓰는 등 자신의 존재 이유를 식별할 증거를 남기고 다음해 3월 26일 10시경 처형당하였다.

우리 교회가 2011년 10월에 안중근을 시복시성 조사 대상자 후보 가운데 한 명으로 선정했을 때, 교회 안팎에서 비상한 관심이 기울여졌다. 그러나 위에서 본 것처럼, 시복시성 대상자를 선정하여 교황청에 청원할 때 안중근은 명단에서 빠졌다. 절차상의 어려움이나 일본과의 관계, 또 그가 사람을 죽게 하였다는 것도 작용할 수 있다. 아마 이 모두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유가 되었든 이것은 우리 교회가 안중근의 시복시성이 갖는 말의 성격을 신학적으로 정립해 가는 과정에서 아직 충분한 확신에 도달해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해 준다.

안중근의 시복시성은 그가 가톨릭 신앙에 근거하여 살아간 민족과 인류에 대한 사랑과 헌신을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에 동참한 한 모범으로 수락하고 온 신앙 공동체가 그의 증거를 따라 하느님의 영광을 노래할 수 있게 함을 뜻한다. 이와 동시에 이것은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지배하기 위하여 무력으로 침략하면서 수많은 사람을 살해하고, 고문하고, 탄압하고, 착취하며 하느님이 바라시는 정의, 평화, 우애, 생명 살림을 파괴하는 일체의 정치적 행위에 대한 우리 교회의 한 복음적 응답이다. 이것은 우리 교회가 한국과 일본, 아시아와 제3세계, 온 세계, 온 나라 앞에서 하느님의 생명 살림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섬김을 21세기 형태로 다시 진술하는 신학적 자기 선언이다.

‘안중근의 시복시성’이라는 이 언어는 나라들 사이의 불의한 지배를 우리 교회가 어떻게 판단하는가를 온 세계 가톨릭 신앙 공동체와는 물론 인류 전체와 공적으로 공유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 식민지배에 대한 교회의 응답은 미국 제국주의에 대한 응답이고 한국이 가난한 나라들에 대해 보일 수 있는 불의한 지배와 수탈에 대한 응답이기도 하다.

이것은 (한국 교회와 바티칸 지도부의 일차적 연대 속에서) 우리 교회가, 과거 식민 지배를 겪었던 제3세계 여러 나라의 가톨릭교회들에게 서구 식민지배 국가들과 그 국가들의 지역 교회들을 대상으로 자신들의 역사와 관련하여 질문할 전거를 선물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하여 이들이 새로운 세기에 새로운 관계를 맺는 데 요청되는 신학적, 영성적, 사목적 토대를 공유하게 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런 것들이 안중근 시복시성이 갖는 신학적 언어 차원 가운데 일부다.

시복시성을 비판적으로 보는 것은 건강할 수 있으나 그것에 그쳐서는 자기 정체성을 훼손하기 쉽다. 시성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은 이해할 수 있으나 그것에 그쳐서는 자기기만에 빠질 수 있다. 성인은 말이요 길이다. 그런데 말과 길이 언제나 소통을 발생시키고 언제나 목적지에 이르게 하는 것은 아니다. 불통을 유발하여 분노를 폭발하게 하는 말도 있고 헤매게 하여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길도 있다. 시성과 관련하여 우리 교회에 필요한 것은 하느님의 생명 살림, 하느님의 집안 살림에 기여할 말이자 길로써 성인을 참으로 깊게 숙고하여, 단순히 지역 교회 수준만이 아닌 온 교회와 온 인류 사회와 세대를 넘어 공유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황종렬 : 두물머리복음화연구소 소장, 대구가톨릭대학교 겸임교수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3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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