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속으로 들어간 본당 – 가톨릭은 왜 스스로 공동체를 파괴하고 있을까

박승옥

 

가톨릭은 왜 스스로 공동체를 파괴하고 있을까

파편화된 사막사회, 홀로 죽는 사람들

2013년 1월 10일, 부산 해운대 한 아파트에서 35살의 여성이 숨진 채 8개월 만에 발견되었다. 수도세, 관리비 등이 몇 개월 동안 연체되자 강제퇴거를 위해 찾아 온 법원 집행관이 아니었다면 얼마나 더 오래 방치되었을지 알 수 없다. 유서에는 15년간 홀로 지낸 자신의 삶에 대한 회한과 세상에 대한 원망이 담겨 있었다. 1천여 가구가 사는 아파트였지만 그녀의 죽음은 반년이 넘도록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부산의 한 다세대 주택 보일러실에서는 백골이 된 시신이 발견되었다. 이 다세대 주택 2층 끝 방에 혼자 살던 50대 남성이 전깃줄로 목을 매 삶을 마감한 것은 이미 6년 전. 방문 앞에는 2006년 11월 이후의 각종 고지서와 독촉장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6년의 세월 동안 아무도 이웃의 죽음을 몰랐다. 먹다 남은 약봉지와 빛바랜 옷가지 몇 벌이 외롭게 살다 숨진 고인이 세상에 남긴 흔적의 전부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 곳곳에서 부지기수의 사람들이 홀로죽음을 맞이한다. 홀로죽음은 수급자나 차상위 등 극빈층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전국의 요양시설이나 요양병원에 있는 노인들 가운데는 경제적 여유가 있음에도 홀로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 홀로죽음의 가능성이 높은 독거노인 수가 이미 무려 100만 명이 넘는다.

자본주의 산업사회의 민낯이다. 자본주의는 공동체를 철저히 해체해야만 존립 가능한 악마의 경제제도이다. 철저하게 고립되고 파편화된 개인들이 있어야 노예로 부릴 수 있는 임금노동자들이 생기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단군 이래 전무후무한 풍요를 구가하고 있다. 4인 가족 기준 월 소득 150만 원이면 한국에서는 차상위 빈곤계층에 속한다. 실제로 자기 집 없이 아이들 학교를 보내려면 이 소득으로는 그야말로 몹시 가난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150만 원이란 소득 자체는 북한과 동남아 노동자들의 2~3년치 연봉에 해당한다. 그리고 한국의 차상위 빈곤계층이 누리고 있는 소비생활은 솔직히 역대 어느 제왕이나 귀족보다도 호화롭다. 네로 황제라고 해서 칠레산 포도주를 마시거나 세종대왕이라고 해서 에어컨 나오는 가마를 타고 출퇴근을 하지는 못했다.

스스로 공동체를 파괴하고 있는 교회

이런 극단의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동시에 우리는 돈이 사람의 주인으로 군림하는 극단의 물신화 시대, 사람의 목숨까지 모든 것이 상품으로 팔리는 극단의 상품화 시대, 만인의 만인에 대한 무한경쟁만 판치는 극단의 불신 시대를 살고 있다. 극단의 개인주의에 갇혀 기댈 언덕 하나 없는 황량한 사막사회에서 모래알 하나로 팍팍한 삶을 살고 있다. 오랫동안 우리는 어려울 때나 슬플 때나 고통과 고난을 함께 나누고 헤쳐 나가는 가족과 마을 공동체가 있었다. 이제 그런 공동체는 붕괴되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어려운 때일수록 서로 돕고 협력해야만 살 길이 열린다. 그리고 그런 기초공동체가 살아 있는 곳이 다름 아닌 가톨릭 공동체다. 한스 큉의 방대한 문헌 섭렵과 조사연구에 따르면 초기 가톨릭 공동체에서는 올바른 교리보다 올바른 삶이 더 중요했다. 무엇을 믿는가보다 어떻게 사는가가 더 중요했다. 고통 받는 사람들에 대한 헌신, 가난한 이웃들에 대한 음식 제공, 병자들에 대한 보살핌, 죽은 자에 대한 매장 등은 그리스도인들의 덕목이었고, 이를 바탕으로 그리스도인들은 강한 우애와 환대의 공동체 생활을 했다. 교회는 비그리스도인들에 대해서도 배척하지 않고 똑같이 잠자리를 제공하고 음식을 제공했다.

이런 강한 공동체성이 중세 내내 이어진 서구의 농촌과 도시 코뮌의 원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교회와 수도원은 꼬뮌의 중심이었고 일상생활에 필요한 각종 기술과 수공업 제품의 근거지였다. 조직이론의 모범이라고 알려진 공산당의 세포 조직론은 그 원전이 가톨릭교회의 기초공동체 조직론이다.

그런데 그런 좋은 전통의 가톨릭 기초공동체가 변질돼 가고 있다.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기득권 수호의 공동체로 전락해가는 경향이야 어제 오늘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어처구니없게도 장례 산업까지 자본주의 상업화에 편승해 교인들의 상부상조 조직인 연령회를 파괴하는 자해 행위까지 서슴지 않고 벌이고 있는 중이다. 평화상조가 그것이다.

극단으로 상업화된 한국의 장례 산업

한국의 장례문화는 불과 10년 남짓 사이에 너무나 급속하게 바뀌어 버렸다. 1990년대 중반만 해도 대도시 아파트에서 가족들과 친지들이 모여 장례식을 지냈다. 그러나 이제 자신의 집에서 장례식을 지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장례

이런 장례문화의 급격한 변화는 공동체의 해체와 극도로 파편화된 개인주의 문화의 확산이 주요한 요인이다. 근대화가 살 길이라고 오직 서구화, 산업화만을 추구한 결과 우리는 이제 사람을 오직 이윤을 낳아주는 노동력으로만 보게 되었다. 그래서 늙고 병들면 쓸모없어진 낡은 부품처럼 폐기물로 처리되는 삭막한 풍조가 고스란히 장례식의 변화로 이어진 것이다.

장례 사업은 크게 3분야로 나뉘어진다. 1. 묘지와 화장-납골당 분야. 2. 장례식장과 음식 분야. 3. 염습과 수의, 관 등 장사물품과 서비스 분야. 문제는 이 세 분야 모든 곳에 각종 리베이트와 바가지, 불법 다단계 영업 등이 활개를 치고 있다는 것이다.

병원에 장례식장이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이제는 병원에서 태어나 병원에서 죽는다. 병원의 장례식장 사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이고, 음식 쓰레기 최다 배출은 병원 장례식장이 담당한다. 장례식장의 주 수입원이 음식이기에 최대한 음식 쓰레기를 많이 만들어야 병원 수입이 더 생기기 때문이다.

상조회사들의 각종 리베이트와 바가지는 워낙 유명해 재론할 필요도 없다. 상포상품 가격의 1/3 정도만 장사물품과 서비스 비용으로 사용되고 나머지는 다단계 영업비용으로 사용되는 현실이 바뀌지 않는 한 상조회사의 비리는 끊임없이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장례업의 가장 큰 핵심 문제는 뒷돈(리베이트) 거래 관행과 수의, 관 등의 폭리 구조로 장례업에 대해 일반 시민들이 갖고 있는 불신의 원천이기도 하다. 장례식 곳곳에 도사린 뒷돈 관행은 장례식 비용 전체의 20~40%로 추정될 정도다.

우애와 환대의 공동체, 한겨레두레공제조합

한겨레두레공제조합(www.handurae.org) 상포계는 이런 뒷돈과 장사물품의 폭리구조를 과감하게 몰아냈다. 대표적인 어느 상조회사의 360만 원짜리 상조상품 원가는 화장의 경우 약 140만 원 정도로 알려져 있다. 한겨레두레공제조합 상포계는 이런 장사물품과 장사서비스를 원가로 조합원들에게 제공하고 여기에 26%의 조합운영비를 붙여 수도권의 경우 최소한 1백만 원 이상의 장례비용을 절약하게 한다. 납골당 리베이트를 비롯한 각종의 (뒷돈)봉투를 없애고, 특히 장례식장의 주 수입원인 음식비를 절약해 최소한 2, 3백만 원 이상을 절감한다.

한겨레두레공제조합 상포계의 핵심은 사람이다. 장례식을 실제 진행하는 전문가들인 장례일꾼도 도우미도 모두 협동조합 정신에 충실한, 양심적인 지역 공제조합의 조합원이다. 내 일인 것이다.

상포계란 예전에 마을에서 동네 주민들이 조직한 계로서 장례가 일어났을 때 서로 상부상조해서 상을 치르는 조직이었다. 이런 전통 상포계를 다시 되살려 조합원들이 서로를 확실하게 믿는 신뢰를 바탕으로 마을공동체 장례식을 치르고 이를 바탕으로 지역공동체를 복원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공동체 사회로 바꾸는 지름길이다. 연령회가 바로 이런 상포계이다. 그런데 이런 연령회를 영리회사인 평화상조가 조금씩 허물고 있다면 이는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미래는 앙시앙 레짐의 기득권자들이 보장해 주지 않는다. 우리 스스로 나서서 대안을 만들고 실천해야만 새로운 미래가 열린다. 경쟁에서 협동으로, 전쟁에서 평화로, 홀로죽음의 사막사회에서 우애와 환대의 공동체 사회로 전환하는 것은 자유인인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지역공동체를 복원하고 마을장례를 복원하는 일은 다른 사람의 일이 아니라 나와 우리의 일이다. 가톨릭 기초공동체 운동이 새로운 한국사회 변화의 주춧돌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박승옥(한겨레두레공제조합연합회 대표)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3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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