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운동의 영성을 찾아서 – ME를 통해 본 가정 살리기 운동과 교회의 미래

경동현 우리 신학 연구소 소장

ME (Marriage Encounter)

1950년대 말 스페인의 가브리엘 칼보(Gabriel Calvo) 신부에 의해 시작했다. 청소년 비행을 선도할 목적이었으나 이 문제의 출발이 가정의 불화에서 비롯된다는 인식에 따라 가정 안에서 부부관계가 원만할 때 청소년 선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전환된 운동이다. 한국에서의 ME운동은 1975년부터 준비기간을 거쳐 1977년 시작했다. 현재, 15개 교구에서 독립적으로 시행되고 있으며 1년에 140여 차례의 주말강습 피정 형태로 진행된다. ME 한국협의회의 통계에 따르면 운동이 시작된 이래 지난해 말까지 주말강습 피정에 참여한 부부는 87,584쌍이고 사제와 수도자 포함 178,518명이 참여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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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운동에 대한 오해(?)

나 자신을 포함하여 이른바 천주교 사회운동에 참여하는 천주교 진보운동 그룹은 교회에서 주관하는 가정 관련 프로그램이나 입장에 대해 삐딱한 시선이 깔려 있는 게 사실이다. 구조적으로 개선해 가야 할 산적한 문제들이 넘쳐나는데 개인이나 확장된 개인에 해당하는 가정을 회복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인식 탓이다.

좀 비약해서 말한다면 교회와 사회의 모든 문제는 가정에서 나오고 가정 내 모든 문제는 낙태와 같은 반생명적 행태에서 나오니 이를 위해서는 개인의 도덕적, 종교적 회개가 필요하다는 문제 설정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결국 가정의 회복을 통해 사회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은 사회 구조악과 아무런 관계 설정을 하지 않음으로써, 가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천도 사회구조적 대응보다는 개인의 도덕적 차원에 머물 가능성이 높기에 운동의 필요성마저도 평가 절하하는 경향이 있는 듯 보인다. 과연 그럴까?

이 궁금증을 풀어볼 요량으로 천주교 사회운동 경험이 풍부하면서 동시에 ME운동에도 적극 관여하고 있는 정재돈 선생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30년 넘게 가톨릭농민운동에 몸담았고, 가톨릭농민회장을 끝으로 현재는 (사)국민농업포럼 이사장, (사)한국협동조합연구소 이사장을 맡아 가톨릭 농민운동의 경험을 사회화하기 위한 일로 분주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ME운동 관련해서는 1991년 처음 주말 교육을 이수하였고, 2003년 2004년에 인천교구 대표 부부를 지냈으며, 2011년부터 3년간 한국 ME연구소를 이끌었다. 이 글은 지난 8월 7일 오후 국민농업포럼 사무실에서 가진 인터뷰 내용을 중심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 사회운동 그룹에 더 필요

천주교 진보 운동그룹이 ME운동에 대해 가졌던 삐딱한 생각은 인터뷰 초반부터 무너졌다. 그는 아내의 권유로 처음 주말 교육을 받고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일수록 이걸 경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한다. 정 이사장은 1979년 결혼, 1983년부터 농민회 지역 조직을 지원하는 일을 맡으며 아내와 떨어져 살기 시작했는데 한두 주 동안 집에 못 들어가는 일이 다반사라 당시 유치원생이었던 딸아이가 아빠 직업을 ‘출장’이라고 적어 낸 웃지 못 할 일도 있었다고 한다.

“출장이 잦아 결혼하고 떨어져 지낸 날이 많다보니 부부인데도 혼자 사는데 익숙해지더군요. 얘기도 사소한 일상에 대한 이야기는 없고, 오랜만에 만났으니 중요한 얘기만 하게 되고 그래서 별로 싸울 일도 없긴 했지만. … 중략 … 나를 포함해 운동권들은 항상 해결사의 관점에서 문제 해결식 대화에 익숙한 사람들이죠. 헌데 살다보니 오히려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일을 망칠 때가 더러 있는 거 같더군요. 자부심이나 고집만 있지, 실제 자기 자신을 변화시켜야 될 것들이 많아요. 합주를 잘하려면 독주 능력도 있어야 되는데 독주 능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그냥 묻어서 합주를 하다보니까 이런저런 불협화음이 난다던지 자기가 상처를 받는다던지 하면서 트러블메이커가 되는 경우도 종종 있더라고요. 이런 고민을 하던 차에 ME 주말교육을 받았는데 가장 가까이 있는 배우자를 통해 나를 돌아보고, 하느님을 만나고 하면서 부단히 관계능력을 훈련하고 향상시켜주는 프로그램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사회 운동하는 사람들일수록 이걸 경험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이렇게 ME 전도사(?)가 된 그는 적지 않은 운동권 후배들에게 ME주말 프로그램을 권유했다고 한다. 하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대개의 단기 교육프로그램들이 그렇듯이 교육 한 번의 효과는 단기간에 사라지기 마련이다.

“단기적으로 보면 고무줄을 당겼다가 금방 쉽게 제자리로 돌아가듯이 일상으로 돌아오면 세상은 그대로인 걸 느낍니다. 하지만 주말교육의 관계 훈련을 일상에서 조금씩이라도 꾸준하게 하다보면 상당히 많이 바뀐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원래 사회운동을 하던 사람들은 모든 사물을 볼 때 문제점과 대책으로 구분해 생각하는데 전반적으로 사고체계가 부정적이에요. 그런데 제 경우는 바뀐 거 같아요. 장점이나 가능성을 주목하게 되고 그걸 통해서 관계를 회복하게 되니 활력이 생겨났습니다. 배우자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주말교육의 메시지는 ‘나는 배우자를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데서 출발합니다. 결국 나를 변화시킬 수밖에 없으니 나의 느낌과 욕구를 들여다보고 상대방의 입장에 서보는 훈련을 하는 과정이 ME교육인 셈입니다.”

최근 교회 가정회복 운동의 흐름

지난 15년간 교세통계에 나타난 대표적인 평신도 사도직 운동의 최근 동향은 ‘레지오마리애’, ‘성령운동’, ‘포콜라레’, ‘꾸르실료’는 현상유지인 반면 ‘ME운동’은 정체 혹은 감소로 드러난다. 현장에서 체감되는 상황이 궁금했는데 정이사장은 참가 부부 수가 최근 줄어든 건 사실이지만 눈에 뜨일 정도는 아니라고 한다. 이는 최근 들어 ME와 유사한 지향을 갖는 가정회복운동의 유행 흐름과도 관련이 깊어 보인다. 대표적인 것이 2005년경부터 시작된 아버지학교다. 성요셉학교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이 운동은 아버지가 바로 서야 가정이 바로 선다는 모토로 각 교구로 확산되고 있다. 아버지학교의 출발은 1991년 개신교의 두란노교회에서 시작돼 일종의 사회운동처럼 번져나간 것에서 영감을 받은 듯 보인다. 건강한 가정을 지향한다는 면에서 이 운동은 ME와 겹치는 면이 있다. 정이사장은 “서울교구의 경우에는 부부여정, 아버지여정, 어머니여정과 같은 유사 가정회복 프로그램들이 대대적으로 생겨나고 있고, ME 관계자 중에서는 중복돼 활동하는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에 ME 운동의 정체나 감소 현상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대부분의 교회 가정회복 운동은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이른바 ‘정상 가정’의 신화에서 자유롭지 못한 게 현실이다. 글로벌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가 더해지면서 중산층을 기반으로 하는 핵가족 모델이 무너지고 있다. 1인 가정, 이혼 가정, 조손 가정, 다문화 가정, 비혈연 가정의 비율이 많아지면서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없어지는 상황에서 정상 가정이라는 이상형에 현실을 맞추다 보면 상당수의 비정상 가정은 가정 이야기에서 소외될게 분명하다. 가정의 건강성을 좌우하는 것은 가족 형태가 아니라 가족 관계의 질과 소통을 중시하는 삶의 과정이어야 한다는 지적은 ME를 포함한 교회의 가정회복 운동 그룹이 귀 기울여야 할 대목이다.

“ME 운동의 초창기부터 가정의 평화와 이웃의 평화, 나라의 평화, 세계의 평화로까지 가족에서 출발해 범위를 확장시키려는 지향들이 분명했는데도 실제로 해보니까 자꾸 내 가정 안에 매몰되는 경향은 개선할 점으로 이야기됐어요. 그래서 1990년대 후반, 2000년대 들어서면서 노인들을 위한 주말 교육, 노동자부부를 위한 주말 교육, 다문화 가정이나 장애인 부부를 위한 주말 교육 등을 교구마다 사정에 맞게 준비해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시아의 어려운 나라들에 대한 주말 교육 지원도 하고 있고요.”

부부, 가정은 이웃 사랑의 출발점

우리는 예수 자신이 전통적 의미의 가족을 더 좋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성서에서 본다. 그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그를 보러 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대답한다.

“누가 내 어머니며 내 형제들입니까?” 그리고 당신 주위에 둘러앉은 사람들을 돌아보시며 말씀하셨다. “보시오. 이들이 내 어머니요 내 형제들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받들어 행하는 사람이야말로 내게는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입니다”(마르 3,33-35).

또 루카 복음서(루카 11,27-28)에서 예수가 자신의 어머니를 축복한 것은 생물학적 어머니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지켰기 때문이다. 예수는 혈연 가족이나 가까운 친척의 한계를 넘어 하느님 나라의 보다 확장된 가족이 되기를 원했다.

정이사장 또한 이웃 사랑이라는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일은 우리 부부만이 아니라 다른 이웃한테로 눈을 돌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한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부부, 가정에 대해 말할 때 나 자신의 확장된 개념으로 볼 것인지,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 볼 것인지에 따라 생각과 실천은 사뭇 달라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혈연적 가족이 아니라, 대안적 관계 맺기를 통한 관계적 가족들이 대안운동, 공동체운동의 현장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전통적인 가족의 눈으로 보면 이상한 가족, 비정상 가족인데 예수께서 말한 확장된 가족의 모습은 이렇게 준비되고 있는 게 아닐까? 내 가족의 경계를 넘어서는 가족의 기쁨과 슬픔, 타인의 기쁨과 슬픔이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감각을 갖는 일, 이러한 신앙 감각을 나누고 공감하는 곳으로 ME운동이 자리매김 되길 바란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3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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