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 – 봉건 질서와의 한 판 승부에서 피어난 맥주 한 잔!

고상균

건 질서와의 한 판 승부에서 피어난 맥주 한 잔!

가을이다~

미세하게, 아주 미세하게나마 더위의 끝자락 힘이 누그러드는 것을 느끼는 것은 비단 더위에 허덕이는 나의 열망 때문만은 아니다. <갈라진 시대의 기쁜 소식>이 월간지가 되면서 지금까지 7번의 맥주수다를 떨었고 8번째 수다를 준비하며, 문득 2013년이라는 긴 시간도 어느덧 중반을 휙 지나가고 있지 않은가. 하나 둘 빼먹던 곶감 꼬챙이가 갑자기 휑해진 것을 보며 몰려드는 당혹감처럼, 쪼금만 더 자고 일어나야지 하다가 이미 중천에 뜬 태양을 보며 당황해지는 마음처럼, 이맘때의 느낌은 나에게 두둥! 하는 어떤 느낌을 준다. 하지만 뭐! 아직 우리에게는 삼 개월이 넘는 시간이 남아있고, 만나야 할 사람과 재미있는 것들에 대한 희망도 있다. 그리고 마셔야 할 맥주도 아직 많다. 이번 달에는 으레 맥주하면 떠오르는 나라! 도시 숫자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을 것임이 거의 분명한 맥주의 나라 독일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어 보려 한다.

뭉치면 살고 헤어지면…

지금은 독일연방이라는 단일 국가를 이루고 있지만, 중세와 근대를 지나는 많은 시간 동안 독일은 봉건영주 혹은 인근 패권국가의 영향력별로 나뉘어 있었다. 이 가운데 특히나 바이에른 주(주의 중심은 뮌헨)로 상징되는 남부와 브레멘, 함부르크, 도르트문트, 쾰른, 아인베크 등으로 대표되는 북부는 종교적 성향(남부는 가톨릭, 북부는 개신교)도, 정치적 출발과 그 특성도 매우 달랐다.

이 가운데 오늘의 수다 주제인 북부지역을 살펴보자면 봉건영주 혹은 교회와의 협상 혹은 투쟁을 통해 일찍부터 자치권을 획득해 나갔다는 특성을 발견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자유 도시들에는 거의 예외 없이 길드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상공업 종사자들이 중심에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자신들을 ‘한자(Hansa)’라 부르기 시작했다. 우리식으로 표현해 보자면 거대 상단이나 대규모 보부상 정도로 이해 할 수 있는 이들 ‘한자’는 점차 이웃 도시 및 지역, 더 나아가 스웨덴, 덴마크, 영국, 프랑스 등과의 국제 무역으로 그 영역을 확대해 나갔다. 하지만 이와 같은 ‘한자’의 활동이 늘 성공적일 수는 없었는데, ‘한자’상인들은 왕과 봉건영주들이 강력한 상비군을 두고 있었던 이웃 국가들에 의해 애써 조성한 상점과 판로를 몰수당하거나, 무역로가 되는 바다가 이들 국가의 군함으로 막히는 등의 행패에 끊임없이 시달려야 했다.

마침내 이에 대항하기 위해 한자들은 14세기 초반, 자신들이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던 도시들을 규합하며 경제, 군사, 정치 연합체를 구성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저 유명한 ‘한자동맹’이다. 지금이야 독일 갈 때 알아보는 비행기 편의 이름, 루프트한자정도에서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을 따름이지만, 왕이 없는 국가적 자치연대였던 한자는 매우 신선하고 새로운 정치형태였으며, 그 영향력도 2백년이 넘는 시간동안 이어질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라거의 왕좌 등극

한편 이들 ‘한자동맹’의 재미있는 특징 중 하나는 생산 및 교역 물품의 종류였다. 지중해 상인들로 대표되는 당대 유럽의 대규모 상단들은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아시아 지역에서 생산되는 사치품을 취급한 반면, 한자상인들은 모피, 벌꿀, 생선, 곡물, 타르, 목재, 모직물, 양모 등의 생필품을 다루었다. 그런 이유로 이들의 교역품은 유럽 각국 서민들의 먹고사는 생활에 큰 영향력과 변화를 끼쳤고, 당연스럽게도 그들의 주 교역상품에는 ‘맥주’도 있었다.

지난 연재에서 언급한 것처럼 맥주에 있어 당시 최첨단의 기술력은 영국이 지니고 있었던 바, 한자는 맥주시장의 사활을 걸고 품질 향상에 집중하게 되었고, 이는 마침내 북독일 필스너로 상징되는 독자 라거 개발에 성공하게 된다. 맛과 향에서 독보적인 영국 에일이지만, 상면발효의 특성상 산패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던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장기보존과 저장이 가능했던 라거는 국제 무역이라는 상황 속에서 한자에게 매력적인 맥주일 수밖에 없었으며, 이 무역로를 통해 전 유럽으로 퍼져나간 라거 맥주는 불과 이백여년 만에 에일을 맥주의 주류에서 밀어내고 왕좌에 등극하게 된다.

그리고 훗날 왕과 영주들로부터 이들 자유도시들을 중심으로 획득해 나갔던 관세 철폐로 인해 서민들도 자유롭게 사용하게 된 유리제품들과 만나게 되면서 라거는 더욱 확고한 위치를 점유하게 된다. 마트 맥주코너 대부분에 위치하고 있는 벡스, 땀을 철철 흘린 한 여름의 더위를 한 모금에 날려주는 이 브레멘의 명주는 이와 같은 배경 속에서 탄생한 북독일의 대표 맥주 중 하나였던 것이다.

30년 전쟁의 수혜자

하지만 이렇듯 자유도시들을 중심으로 승승장구하던 북독일 지역 전체가 위기에 쳐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되니, 1618년 – 1648년까지 이어진 비극적 종교전쟁 ‘30년 전쟁’이었다. 양조장을 경영하던 아내가 손수 빚어낸 맥주 한 잔의 힘으로 종교재판정에 당당히 들어섰던 루터의 반박문(1517)으로부터 촉발된 기독교개혁 혹은 유럽 기독교 분열의 시기에 북독일의 자유도시들은 신교를 봉건 세력들의 기반이었던 당시의 가톨릭에 대항하는 시대정신으로 인식하게 됨에 따라, 독일 지역은 북과 남의 대립적 종교지세를 이루게 되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벌어진 30년 전쟁은 북독일 지역을 초토화 시켰고, 한자 동맹 도시 기반시설들은 철저하게 파괴되기에 이른다. 양조시설도 예외 일 수 없었던 바, 진한 향과 풍부한 맛을 자랑하던 북독일의 맥주 생산 시설도 결정적 타격을 입게 된다. 역설적이지만 이렇게 한자지역 맥주가 가동되지 못하던 시기, 맥주에 있어서 후진지역을 면치 못하던 독일 남부지역은 가톨릭 영주의 절대 비호 하에 수도원과 귀족을 중심의 양조장들이 규모와 품질 면에서 크게 성장하였고, 이후 가까스로 기반시설을 회복한 북부와 호각지세를 이루게 된다.

이렇듯 독일의 맥주는 중세 이후를 지나면서부터 철저하게 당대의 정치, 경제. 사회, 종교적 배경들과의 연동 속에서 변화해갔다. 뭐 사실 이런 거 몰라도 즐겁게 마실 수 있는 것이 맥주이지만, 뜨거운 여름 벡스 한 잔을 기울이며, 한 물 간 존재들을 함께 연대해 즐거운 자리를 만들어간다는 브레멘 음악대의 이야기가 어디에서, 어떤 배경을 가지고 탄생했는지를 알아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다음호에는 짐작하신 것처럼 남부 독일의 맥주 이야기를 풀어보겠다. 딸꾹!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3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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