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A – 하느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이현주

하느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저는 그리스도교 신자입니다. 하지만 신자로서의 의무는 이행하지 않습니다. 기도도 안하고 장례식 같은 우울한 분위기가 싫어서 교회에도 나가지 않습니다. 기도를 하느냐 안하느냐에 따라 일의 성사여부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하느님께 바라지도 않고, 안 되었다고 원망하지도 않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하느님은 기도를 한다고 들어주고 안 한다고 안 들어주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흔히 ‘하느님의 뜻’인 것 같아 어떤 일을 선택했다든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어찌어찌했다면서 그 일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저는 그럴 때마다 그 사람들이 ‘하느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는 건지 의아하고 궁금합니다. 그래서 물어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고 하고, 때론 ‘하느님의 뜻’이라고 하지만 그 일이 결코 누가 봐도 선(善)한 일이 아닐 때도 있어서 하느님의 뜻이 이현령비현령 이용되고 있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과연 하느님의 뜻은 어떻게 알 수 있고, 그 구분은 어떻게 할 수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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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요? 제 답은 간단합니다. 모릅니다. 정말 모릅니다. 누가 그 방법을 가르쳐주겠다고 해도 그 말에 귀 기울일 마음조차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것이 하느님의 뜻이다.”라고 말할 수는 있겠지요. 그건 그의 자유니까 다른 사람이 간섭하거나 못하게 막을 건 아니라고 봅니다. 하지만, 누가 어떤 말로 하느님의 뜻을 규정한다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그의 생각일 뿐입니다. 그것이 과연 하느님의 뜻인지 아닌지를 누가 나서서 가려낼 수 있단 말입니까?

시인 루미가 이런 말을 했더군요. “내가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안다면, 이 붓이 제가 시방 무엇을 쓰고 있는지를 아는 그만큼 알 것이다.” 요컨대 자기는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얘기올시다. 나는 이것이 그나마 정신 맑은 사람다운 고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이것이 하느님의 뜻이다!”라고 단언하는 사람은 일단 제 눈에 수상쩍어 보이지 않을 수 없는 거지요.

질문하신 분은 딱히 하느님한테 구할 것도 없고 그래서 기도를 안 한다고 하셨는데, 좋습니다, 그럼 하지 마십시오. 괜찮습니다. 보살의 열 가지 경지 가운데 ‘무망(無望)’이 있다던데, 그러니까 모든 것이 두루 갖추어져 있어서 도무지 바랄 것이 없는 그런 경지에 도달하신 거라면 그냥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축하받을 일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하느님의 뜻을 안다고 하는데 실제로 사는 모습을 보면 아무래도 그게 아닌 사람들의 존재가 시방 질문하신 분 마음에 거슬린다는 말인가요?

예, 세상에 그런 사람 드물지 않게 있지요. 실제로 기도 많이 한다고 소문난 사람들한테서 종종 그런 모습을 보곤 합니다. 하지만 어떡합니까? 그것도 그 사람 사는 방식일 터인즉 크게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면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내버려둡시다. 왜냐하면 누가 하느님의 뜻에 대하여 어떤 견해를 가졌고 그리고 그것이 과연 옳은 견해인지 아닌지―보다 훨씬 더 중요한 진실은, 견줄 수도 없을 만큼 중요한 진실은, 하느님의 뜻에 대한 나의 생각이 무엇이냐에 있거든요. 내 말은 그러니까 이러저러하게 살아가는 다른 누구한테서, 그를 바라보며 그와 함께 살아야 하는 나 자신한테로 관심을 돌리자는, 그게 실속도 있지 않겠느냐는 얘깁니다.

부디 제 말을 오해하진 말아주십시오. 사람이 하느님의 뜻을 가려내는 법을 모른다는 거지 아예 그런 게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런 말이야말로 제가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지요. 하느님의 뜻이 따로 있는지 없는지 그걸 저 같은 바보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입니까?

예수님도 당신 뜻대로 살지 않고 아버지 하느님 뜻대로 살겠다고 늘 말씀하셨고 실제로 그렇게 사셨습니다만, “이것이 하느님의 뜻이다.”라고 말씀하신 적은 한 번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것 말고.) 새벽에 체포당하시던 전날 마지막 밤에도 “내가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다.”라고 하시지 않고 그냥 아버지 뜻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이 당신한테서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하셨지요.

따라서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가 있다면 그것은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보는 게 아니라, (예, 그건 정말 아닙니다!)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과연 있기는 있는 건지 아무것도 모르지만 아무튼지 간에 내 뜻 아닌 하느님의 뜻이 나한테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찌지를 달고 사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리스도께서 몸소 그렇게 하셨는데 그분을 좇아 산다면서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게 무슨 그리스도인입니까?

언젠가 읽은 요한 23세 교황님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그분이 추기경으로 계실 때 고향의 조카(?)에게 이런 편지를 보내셨다지요. “아무개야, 많은 말로 오래 기도할 것 없다. 성모님이 가브리엘 천사한테서 수태고지를 받으셨을 때 ‘그 일이 저한테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하셨는데, 그 한 마디면 충분하단다.”

예, 저도 동감입니다.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 뜻이 저한테서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처럼 이 한 마디 기도로 평생을 사신 분들이 바로 성인들 아니신가요?

그런 뜻에서 질문하신 분에게 삼가 한 마디 드리고 싶습니다. 뭘 요구하는 기도를 드릴 마음이 없어서 드리지 않는 건, 아까도 말씀드렸습니다만, 괜찮습니다. 좋아요. 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방금 말씀드린 성모님의 기도, 제 몸에서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그 기도만큼은 잊지 맙시다. 우리가 누굽니까? 오직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살겠다는 그리스도인 아닙니까? 이 한 마디 기도를 가슴에 새기고 그 기도로 하루하루를 사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마땅한 임무이자 특권 아닌가요?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3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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