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아데 요가 – 아사나

장용창

질문: 요가의 단계적 수행과 지금 이 순간을 위한 수행이 모순이 아니라는 설명은 참 좋았습니다. 이제 아사나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려 주십시오. 우리가 흔히 요가원에서 하는 육체 훈련을 아사나라고 한다면서요? 요가 아사나를 수행하는 사람들이 알아두면 좋을 것은 무엇인가요?

<답>

요가 아사나(Asana, आसन)를 수행하는 사람들이 알아두면 좋을 것이요? 좋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여러분의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하면 됩니다. 이게 허망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요가 전통에선 요가를 가르쳐주는 선생님을 구루(Guru, गुरु)라고 부르는데, 구루를 하느님이라고 찬양하는 노래가 있을 정도입니다. 선생님의 지도를 절대적으로 중요시하라는 뜻입니다.

요가 아사나와 에어로빅이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둘 다 하고 나면 재미도 있고, 유연성이니 근육의 힘도 길러지는 것 같은데, 같은 걸까요, 다른 걸까요? 다르다면 어떻게 다를까요?

첫째, 앞에서 말씀 드린 것처럼 반드시 지도자로부터 배워야 한다는 점이 요가 아사나가 에어로빅과 다른 점입니다. 책이나 비디오로는 절대로 배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파탄잘리의 요가 수트라에도 요가 자세의 각각에 대한 설명은 자세히 없습니다(Eliade, 1969: 53). 저는 선생님께 간단히 배운 다음 혼자서 오랫동안 수련을 했는데, 그 과정에서 몸을 다친 적도 많습니다. 혼자 수련하다보니 욕심을 잘 조절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으로는 요가도 밀교와 비슷한 성격이 있어서 매우 폐쇄적인 집단이었는데, 20세기 이후에야 대중화된 것 같습니다.

둘째, 에어로빅의 목표는 몸을 움직이는 것이지만, 요가 아사나의 목표는 몸을 안 움직이는 것입니다. 이것은 요가 아사나가 5단계 이후의 집중 훈련을 위한 예비적인 훈련이라는 성격에서 나옵니다. 몸이 움직임에 따라 생각은 여러 가지로 나타나기 때문에, 생각을 집중하는 훈련을 하려면 몸을 움직이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몸은 본능적으로 움직이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몸을 가만히 있으려면 마음을 자꾸 거기에 써야 합니다. 요가 아사나의 목적은 몸을 가만히 두려고 마음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가만히 있을 수 있는 육체적 자질을 달성하는 것입니다(Eliade, 1969: 53). 그래야 5단계 이후의 집중 훈련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현대적인 요가 아사나는 집중 훈련을 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집중 훈련을 강조하는 요가 선생님들은 아예 요가 아사나의 목표 자체가 관찰과 집중에 있다고 가르치기도 합니다. 그러니, 아사나를 잘 하는 가장 간단한 요령은 이렇습니다. 예를 들어 앉은 채로 상체를 앞으로 굽혀 손을 발로 뻗는 파스치모타나아사나(paschimottanasana, पश्चिमोत्तानासन)를 한다면, 자신이 굽힐 수 있는 만큼만 굽힌 다음, 그 자세를 그대로 5분간 유지하면서 호흡을 편안히 쉬고, 그 호흡을 의식으로 바라봅니다. 에어로빅이라면 더 유연해지려고, 더 많이 뻗으려고 노력하겠지만, 요가는 반대입니다. 요가는 가만히 있기를 연습합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자세를 완성한 다음, 그 완성된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요가 아사나의 핵심입니다. 그럼 자세를 유지하면서 뭘 하냐고요? 바로 의식을 집중해서 호흡을 관찰합니다.

넷째, 바로 이런 점에서, 에어로빅이나 무용은 남들이 보기에 더 아름답고 유연한 동작을 “보여주는 것”이 잘 하는 것이라면, 요가 아사나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잘 “보는 것”이 잘 하는 것입니다. 보여주는 것과 보는 것의 차이입니다. “보는 것”이야말로 요가의 처음과 끝입니다.

<참고문헌>

Eliade, Mircea. (1969). Yoga: Immortality and Freedom. second editi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한 줄 명상>

지금 이 순간, 자신의 호흡을 보십시오. 애쓰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숨이 들어갔다 나옵니다. 아, 하느님의 은총이 없다면 이 숨이 어찌 쉬어지겠습니까?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3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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