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수전 – 여신을 그리다, 화가 김용님

김옥자

여신을 그리다, 화가 김용님

–에코페미니즘에서 여신 영성으로

“내 그림의 화두는 ‘생명’이예요. ‘생명’은 제가 의식하기도 전부터 시작해서 그 동안 쭉 정신적으로, 또 신학적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사회운동에 참여하면서도 부여해온 키워드였죠.”

용님을 만나기 전 가장 궁금했던 건, 미대출신이 아닌 화가라는 점이었다. 게다가 국문과 학부와 신학대학원의 이력이라니, 흔히 예술계하면 학연, 지연 등이 강력히 작용할 거란 선입견 때문에 더 낯설게 느껴졌다.

“왜 미대에 가지 않았냐는 질문을 받으면 따분해요. 어릴 때부터 늘 그림 그리는 아이였거든요. 고 3때까지 화실 수업을 했어요. 그리고 저는 워낙 정신적 편력이 있었어요. 정체성에 대한 방황이었겠지요. 그림은 굳이 배울 것까지는 없겠다 생각했어요. 늘 그려 왔으니까요. 어떻게(형식)보다 무엇을(내용) 그리느냐가 나의 그림을 이끌어 왔고 내게 있어서 그림은 내용에서 형식을 창출해 왔다고 할 수 있어요. 철학, 심리학 등을 공부하고 싶어서 고민하다 일단 문학을 택했죠. 대학에서 문학을 한 건, 아주 좋은 선택이었어요. 문학의 주제는 인간이잖아요. 국문학이니까 한국적인 기원, 정체성을 알 수 있었거든요. 그림과 시는 제게 있어 동전의 안팎과 같아요. 그림과 시, 둘 다 이미지를 추구하니까요.”

과연 문학은 용님의 감수성을 더욱 깊고 풍부하게 했고, 용님은 그 후 긴 정신적 편력의 시간을 가진다. 그리고 한신 신학대학원에서의 민중신학과 여성신학, 특히 안병무 박사를 만나면서 용님에게는 그야말로 문화충돌의 빅뱅,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민중 가운데 민중은 여성’

당시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은 민주화 투쟁의 연속선상에서 현실 속 문제들이 터져 나오던 시기. 민주화라는 용광로의 철물이 들들 끓던 때였다.

한신 신학대학원 2학년 2학기, 용님이 사목실습을 나간 성남은 신명나는 운동판이었다. 당시 성남은 노동운동의 메카역할을 한 곳으로 철거민들, 노동자들, 여성문제 등 삶의 총체적인 문제들이 함축된 곳이었다. 온갖 종교 종파 문화들이 하나가 되고, 뜨거운 가슴들이 훨훨 뛰는 현장 속에서 용님은 어느 새 민중미술가가 되어 있었다. 성남 주민교회 지하작업실에서 시작한 작업은 구로동의 여성노동자 공간으로 이어졌고, 민우회, 또 하나의 문화 등 여성운동단체, 그리고 여성교회 등 온갖 민중운동의 현장을 누비고 다녔다.

이후 공해추방운동연합 안에 화실을 갖게 되면서, 환경운동은 마치 오래된 옷처럼 용님에게 찰싹 달라붙었다.

“환경운동은 그간의 제 활동을 종합할 수 있는 주제였어요. 1990년 지구의 날 원년, 한국 행사 포스터를 그리고, 첫 미술전인 저의 첫 개인전, ‘환경과 생명전’은 각종 언론에서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죠. 그즈음 김학순 할머니의 고백으로 정신대 문제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정신대대책협의회가 발족하면서 그림전을 제안해 왔어요. 민중신학을 알게 되면서 인상깊게 기억하던 ‘민중 가운데 민중은 여성’이란 이야기가 더더욱 가슴 절절이 와닿은 사건이었죠.”

정신대에 대한 자료를 공부했고, 임종국의 정신대실록을 밤새 읽으며 용님의 머릿속엔 이를 세상에 알릴 그림들이 떠올랐다. 늘 그렇듯 그림이 시리즈로 나왔고, 해외에 알리기 위한 전시회가 준비되었다. 윤정옥 선생님과 정신대 할머니들과 함께 독일에서의 홍보전, 그리고 세 차례의 일본 전시, 그 외 미국 케나다 등지에서의 정신대 그림전이 이어졌다.

민중운동에서 환경운동, 정신대 문제까지 쉼 없이 달려온 시간들은 용님을 소진시켰다. 한창 엄마의 손이 필요한 아이들을 돌보기위해서도 더 이상의 활동은 불가능했다. 아마도 대부분 결혼한 여성의 삶이 그렇듯 결혼생활과 아이들의 육아는 용님에게도 꽤 많은 시간과 노력, 어려움을 겪게 했다. 그리고 택한 강화도로의 귀향, 따뜻한 하느님 어머니의 품, 자궁에로의 귀환이었다.

강화도, ‘오래된 어머니’와의 해후

용님은 집안의 막내다. 흔히 막내하면 늦둥이 개념으로 집안의 사랑을 듬뿍 받는 막내가 있는가하면, 거듭된 삶의 지난함에 지쳐 더 이상의 애뜻한 돌봄을 줄 수 없는 안타까운 경우도 있다. 자유롭고 지적인 여성이었던 용님의 어머님은 결혼 후 현실적인 문제들에 부딪쳤고, 오래 전 많은 한국사회의 가정들이 그랬듯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신의 꿈을 내려놓아야 했던 어머님께 4형제의 육아는 힘든 일이었다.

“형제들 역시 열정이 많은 사람들이라 어린 저는 늘 뒷전이었죠. 생각해보면, 그때부터 일종의 애정결핍을 겪었던 거 같아요. 그런 환경이니, 나는 누구일까, 왜 엄마의 사랑을 받을 수 없을까 궁금했겠죠. 아이에게는 엄마와의 애정이 곧 자기정체성의 확인이잖아요.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알게 됐어요. 흔히 아이는 3살 때까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하는데 확실히 그렇더라구요. 제가 추구해 온 어머니 하느님의 이미지, 모성은 저의 개인 가족사에 깊은 뿌리를 두었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기억나는 어릴 때의 한 장면이 있어요. 저와 형제들은 강화에 있고, 엄마는 서울로 가서 지내셨어요. 어느 정도 자란 형제들은 잘 지냈지만 저는 아직 어리니까 엄마가 그리웠죠. 맨날 엄마를 찾고 울었는데, 하루는 낮잠 자고 일어나니까 집에 아무도 없더라구요. 밖으로 나갔죠. 꽤 넓은 집 주변에 동네 사람 하나 없이 덩그라니 혼자였어요. 천지간에 홀로라는 느낌이 뼈가 시리게 번져오는 듯 했어요. . 그때가 네다섯 살 때였어요.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는 그렇게 엄마와 떨어져 살았어요. 그렇게 느껴온 외로움과 공허감, 그리움이 지금까지 내 마음의 풍경이 되어 왔어요.

강화도로 들어 온지 10여 년, 노을 젖은 갯벌은 내 마음의 풍경을 바꿔 놓았어요. 석양과 노을빛이 내 영혼의 색이 되었고, 생명의 밭 갯벌의 부드러움은 제 빈 마음 가득히 어머니의 이미지를 그려 놓았어요.

매일 일몰의 바다를 만나러 나가는 건 저의 빼놓을 수 없는 일과 중 하나에요. 석양녘 대자연은 빛의 향연을 벌이죠. 날마다의 대자연의 축제 속에서 눈부신 생명의 어머니를 만났어요.

노을빛이 내리고

마리아

오래된 미소가

잔잔히 대지를 적십니다.

가문 자궁에 피어 난

아기처럼

내 가슴에

해가 돋아납니다

– 김용님, ‘해를 안고 돌아 오는 여자

강화가 주는 갯벌의 차오름, 일몰의 아름다움 속에서 용님은 부활하는 여신을 만난다.

“하늘과 바다가 노을빛으로 환해 오면

여자들 속 깊이 정박해 있던

조각배들마다 일렁거리고

오래된 꿈의 추억으로

여자들은 노을 젖은 바닷가를 서성입니다.

평생을 지펴 온

여자들의 꿈의 불씨들은

저녁마다 불질러져

온 천지를 환히 물들입니다.

날마다 태양은

여자들 속으로 지고

내일 태양은

여자들 속에서 다시 피어 날 것입니다.“

-김용님, ‘여자들의 노을’

배

여신들의 바다에 이르다

용님은 요즘 ‘여신영성운동(이하 여신운동)’에 푹 빠져있다. 지난 6월 처음 만난 여신운동이지만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듯 편안하고 친근했다. 그동안 용님이 생각하고 추구하던 것들이 모두 다 통합되는 듯했다.

‘여신운동’이란 여신을 중심 상징으로 채택해 영성을 추구하는 운동으로, 1970년대 초 미국에서 시작돼 전 세계적으로 확산 중이다. 여성의 자기정체성, 주체성 형성과 권능화에 긍정적으로 기능할 뿐 아니라 가부장 사회의 폐해들을 치유할 수 있는 대안문화를 제시하면서 새로운 영성운동 혹은 종교현상의 하나’로 각광받고 있다. 자기 자신이 곧 ‘여신’이고, 자신의 운명 역시 자기 손안에 있다는, 자기 스스로의 에너지 부여, 동기 부여가 가능하며 가장 중요한 건 스스로를 믿는 것이다.

용님의 기나긴 편력의 여정은 마침내 영성의 바다, 여신들의 바다에 이르렀다.

“저는 강박관념이 심했어요. 관념과 현실, 여성과 남성, 하늘과 땅, 영과 육 등 이분법적인 것에 대한 갈등이 심했죠. 몸의 한계들, 욕망들, 실수들 그런 것에 대해 죄의식 때문에 ‘나는 구원받지 못할 존재야, 다른 존재야’ 하면서 소외감을 느껴왔거든요. 또 하느님 아버지라고 부를 때의 막막함, 심판, 엄격함, 잣대, 도달하지 못할 거룩함 등등의 느낌과는 달리, 하느님을 어머니라 부르니 전혀 다른 느낌이 들고 마음이 편해졌어요. 나의 어떤 잘못이나 부족함에 대해서도 괜찮다 괜찮다 하는 거 같고, 뱃속에서부터 나를 아신 어머니이니,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계신 어머니잖아요. 여왕인 엄마의 딸이라는 자존감은 참 멋진 거예요. 주위를 한번 둘러보세요. 태어나고, 꽃피우고 열매 맺고, 여성에게서 태어나 어머니인 대지로 돌아가는 생명들 모두가 여신을 품고 있죠.

에코페미니즘에서는 인간이 자연을 개발착취해 온 역사와 남성이 여성을 억압해 온 역사를 같은 줄기로 보고 이야기해요. 그래서 억압의 대상이었던 자연과 여성을 하나로 봐서 생명운동의 주체를 여성으로 보는데, 여신영성운동은 그보다 좀 더 힘이 있죠.

고고학 자료를 보면, 오래 전 모계사회에서 다양한 여신상들이 출토되었는데 발견된 도구에는 전쟁무기는 없고 일상에서 필요한 도구들만 있었다고 해요. 그 토기들은 실용그릇이면서 동시에 제기였구요. 가부장제 이전의 평화로운 시대, 밥이 곧 제사인 성속일치의 시대, 무엇보다 전쟁이 없었던 시대, 조화롭고 이상적인 세상이었죠. 그때가 여신문명시대였어요.

그리고 신기한 건, 여신이야기라고 제목을 정해서 제 지난 그림과 글들을 편집해보니까 몇 십 년 전 그림들도 다 한 주제로 편집이 되더라구요. 내가 한 맥 속에서 작업을 해왔구나 하는 게 확인이 되었어요.

결국 제 그림의 여정이란, 어머니 하느님을 향한 그리움의 여정, 내 안의 여신을 만나기 위한 기다림의 여정임을 알게 됐어요.”

영성으로서의 예술이 우리를 푸르게 하리라

용님은 요즘, 여신영성을 주제로 11월에 있을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일 년간 토머스 머튼의 ‘침묵’에 매료되면서, 지난 겨울은 깊은 침묵과 사색 속에 푹 잠겼었어요. 토마스 머튼이 27년간의 수도원 생활을 접고, 타종교 선의 대가들과 만나고 새로운 길을 떠났는데 거기서 공감이 됐어요.

침묵은 개인 속으로의 침잠은 아니에요. 만물과의 ‘오래된 일치’를 회복함이라 여겨요. 침묵 속에서 깨달은 영성은 여신 영성과도 통하죠. 여신 영성이란, 모든 이 안에 깃든 어머니, 여신을 깨닫는 거예요. 모든 생명있는 것들은 다 한 어머니의 자녀이며, 따라서 모든 생명들은 연결되어 있음을 알아 각 생명들마다 자존감을 회복할 뿐만 아니라 서로를 존귀히 여기게 되는 일이지요.“

용님은 모험가요, 구도자로서 그림을 그린다. 삶이 자신에게 준 도전을 받아 기꺼이 스스로를 던져 소화해내고 창조적인 결과물을 내놓는다. 거기엔 늘 기도와 묵상이 함께 했다. 3-4년 전에는 연이은 어려움으로 모든 삶의 의욕을 잃고 우울증을 앓았지만 작업은 멈추지 않았다. 처음으로 십자가의 길을 그려 마을 성당에 기증하고, 성화를 그려 두 차례 그리스도교 미술전을 열었다. 또한 이미지로 드리는 기도로서, 교회와 모임에서 그리스도교미술의 다양한 가능성들을 시도하기도 했다. 용님은 평생 늘 성경을 읽어 왔다. 죽음과 부활에 관한 성경, 예수에 관한 복음서들은 늘 거듭해서 읽곤 한다. 하루 세 번의 기도, 십자가의 길, 경배기도, 침묵기도를 계속했다. 그러다 어느 날 기도 중에 예수님의 존재가 느껴졌다.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의 체험이었다. 당시 용님은 계속되는 불안과 스트레스로 가슴에 혹 하나가 생겼었고 자포자기 심정이었는데 예수님을 만나는 체험 속에서 그 혹이 떼어지는 강렬한 느낌이 들었다. 강렬한 부활의 체험, 아주 긴 시간을 돌아 비로소 예수와 관계를 맺는 느낌이었다.

이후 용님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성경 구절을 계속 되뇌이면서 재갈 물 듯 암송을 한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문제 자체는 없어지진 않지만 더 이상 문제로 여겨지지 않는다. 여신과 예수, 아니 여신 안의 예수가, 예수 안의 여신이 함께 용님을 진정한 자유인으로 부활시킨 걸까?

용님과의 시간을 지내며 시대를 앞서간 많은 여성이 생각났다. 힐데가르드, 버지니아 울프, 나혜석…… 시대는 그녀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용님 역시 늘 저만치 앞서 가고 있다. 환경운동도, 정신대문제도 그림으로는 용님이 처음이었다. 신학과 영성을 화폭에 담은 것 역시 이전에는 보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새롭지 않으면, 창조적이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용님, 멈추지 않는 그녀의 지적편력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하느님을 향한 여정 속에서 에피파니(현현)로서의 이미지들을 끊임없이 펼쳐내는 그녀에게서 여신을 본다.

오는 11월에 있을 그녀의 개인전에서, 용님의 여신이 어떤 모습으로 세상에 나올지 기대한다.

“만물 안에 깃들어, 만물과 더불어 아파하고 치유하며, 만물을 완성해 갈 깊고 아늑한 가슴, 어머니의 품”에서 길어 올릴 여신들을 기대한다.

명상으로서의 예술이 우리를 다시 푸르게 할 수 있다는 힐데가르트의 말처럼, 생명고갈의 이 시대에 영성으로서의 그녀의 그림들이 우리를 푸르게 하기를 기대한다.

그녀의 평생의 화두인 ‘생명’이 ‘푸르름’으로, 여신의 몸을 입고 우리와 만나게 될 것을 미리 반가워하며…….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3년 10월호

%d 블로거가 이것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