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신연의 시대 읽기 – 프란치스코 교황과 가톨릭교회의 방향

박문수

프란치스코 교황과 가톨릭교회의 방향

새 교황의 파격적 행보가 세계인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종들의 종인 교황이 낮은 이들을 섬기는 일이 당연할 진대 이를 언론에서 파격이라 하는걸 보면 역대 교황들이 그리 살지 않았다는 말이겠다. 어떻든 그의 행보가 신자들은 물론 일반인들한테도 신선하게 받아들여지는 건 반가운 일이고 교회 쇄신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과연 그의 최근 모습들이 우리 교회에서 일어날 긍정적인 변화를 예고하는 표지일까, 아니면 일시적 해프닝일까?

사실 난 영웅주의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우연한 계기에 한 사람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에게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건 반대한다. 아마 이렇게 말하면 교황 요한 23세 같은 이도 있지 않았는가하고 반문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일이 불가능한 건 아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교회가 변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절박한 외부압력과 교회 내 요구가 존재하고 있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 정도의 변화 압력이면 성령께서는 그분 말고도 누군가에게 이 일을 맡기신다. 그러니 특정 개인보다 전체 맥락에서 사태를 바라보는 게 중요하다.

먼저, 1981년에 가톨릭교회에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던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이 해 전후로 유럽과 유럽계 백인 중심이었던 가톨릭교회의 인종구성이 근본적으로 변화하였다. 가톨릭이 비유럽지역으로 선교를 시작한 지 오백년이 다 되어 갈 즈음인 이 시기에 남반구 거주 신자수가 북반구 거주 신자수를 추월하였던 것이다. 이후 두 지역 간 신자 수 격차는 더 벌어져 현재는 남반구가 북반구 신자의 두 배를 넘었다. 그러나 이러한 신자 수 역전에도 불구하고 추기경단 내 남반구 출신들의 구성비나 교황청 정치 안에서 이들 지역의 영향력은 그리 커지지 않았다. 이천년 역사를 가진 유럽이 신자 수 역전에도 고위성직자들의 숫자를 통해 교회 안에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는 탓이다. 그런데 이 숫자가 현 교황 재임 중에 역전될 가능성이 있다. 물론 교황은 아직 기반이 튼튼하지 않은 까닭에, 급격한 변화를 추구하진 않을 모양이다. 다만 큰 변화를 추진할 수 있는 인적 토대들을 구축할 것으로 보인다. 향후 10년이 기대되는 이유이다.

두 번째로,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가톨릭교회의 흐름을 개관할 때 지난 오십여 년간은 교황청으로 권력을 집중하려는 흐름(구심력)과 토착화를 매개로 중심을 분산시키려는 흐름(원심력)이 내적으로 갈등한 역사로 볼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쇄신 적응과 복고 반동이 충돌한 시기이기도 하였다. 공의회는 원심력과 쇄신· 적응의 지향성을 가졌는데, 요한 바오로 2세와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이 지향성과 다소 엇갈리는 행보를 보여주었다.

이 때문에 새 교황은 이러한 전 세대의 퇴행적 흐름을 거슬러 공의회 정신과 지향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최근의 파격적 행보가 일시적 해프닝이 아니라면 이러한 변화를 예고하는 징표로 볼 수 있다. 당연히 그동안의 관성 때문에 이러한 방향 전환이 쉽게 탄력을 받지는 않을 터이다. 오히려 심각한 도전에 직면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큰 흐름은 교회 외부의 압력, 교회 내부의 요구에 비춰볼 때 이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세 번째로, 현 교황이 남반구 출신이라는 사실이 암시하듯 그동안 신학적으로 쟁점이 돼온 사안들에 대하여 전향적인 입장을 보일 수도 있다. 다른 영역들에서도 변화가 활발할 수 있다. 일각에서 전망하듯이 그가 가난하게 살았고, 또 빈민사목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사회사목 영역에 많은 관심을 기울일 가능성도 있다. 그만큼 교회가 가난을 지향하도록, 그리고 사제들의 자기 비움도 강조하실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역할들을 NGO의 역할로 간주한다. 이런 일들을 교회가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일로 본다는 점이다. 사실 전임 두 교황들은 ‘새로운 복음화’를 통해 교회가 직면한 내적 위기를 해결해보고자 하였다. 이 내적 위기는 교회/신자가 세속주의에 물든 점이다. 이를 되돌리는 방법은 겉으로 드러나는 사목활동이 아니라 신자들 스스로, 그리고 각 지역 교회 안에서 치열하게 안팎으로 복음 정신으로 무장하고 또 그렇게 사는 일이다. 아마 이 점이 그에게는 더 큰 관심사일 터이다. 그는 이 점을 다원주의 사회 안에서 가톨릭교회의 고유성을 드러낼 수 있는 과제이자 방향으로 보는 듯하다. 그런 면에서 바깥으로 드러내는 일보다 대내적인 과제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나는 갑작스러운 변화를 예고하는 이들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우선 새 교황이 교황청 안에서 입지를 굳혀야 하고, 자신이 원하는 변화를 가능케 할 만큼 인적 물적 여건을 갖출 시간이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더욱이 당신이 쇄신 의지가 있다면 신중에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본인 자신이 더 잘 알기 때문에 뜸을 들이리라 본다.

그렇긴 하지만 그가 보여 준 행보에서 나타난 개혁성, 청빈정신, 개방성을 고려할 때 쇄신 의지를 가진 것만큼은 분명해보인다. 물론 그렇다고 그가 이 변화를 홀로 주도할 수 있다고 보진 않는다. 지지 세력이 필요하다. 해서 지역 교회에서 그에 호응하는 적극적인 신호를 보내는 일이 중요하다. 또한 지역교회가 솔선해서 쇄신의 행보를 이어가는 일도 이러한 쇄신 과정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후자의 노력이 쇄신을 위해서는 더 절실하고, 또 교황청의 변화와 무관하게 교회를 쇄신하는 길이 될 터이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3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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