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속으로 들어간 본당 – 뚝딱 뚝딱 일구어가는 마을공동체

연구실

뚝딱 뚝딱 일구어가는 마을공동체

  • ‘삼각산 재미난 마을’의 마을 목수 공작단

삼각산(북한산) 재미난마을이 자리한 강북구 우이동, 인수동 일대는 아파트가 일상인 도시의 풍경과 달리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이다. 서울 강북 권역에서도 집값이 비교적 싸고, 개발 바람이 비껴간 서민 주거지역이다. 이번호에 소개하는 ‘마을 목수 공작단’의 터주대감인 이상훈(다니엘, 삼각산재미난마을 사무국장)씨를 만나기 위해 목공 작업실에 도착한 것은 수유역에서 마을 버스를 갈아타고 한참을 들어가서였다. 목공 이야기를 듣기에 앞서 먼저 마을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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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만들기 사례로 소개되는 다른 마을과 마찬가지로 저희 마을은 1998년도에 공동육아를 계기로 만난 가족들이 출발점입니다. 그때 어린아이들이 자라고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자 공동육아 조합원, 교육에 관심 갖는 주민들과 지역의 학부모 단체 등이 초등 대안학교를 제안해서 2003년에 삼각산 재미난 학교를 만들게 됩니다. 학생수가 50여명으로 어린이집보다 규모도 크고, 대안학교 보내는 부모들이다보니 생각이 상대적으로 다른 면들이 있었어요. 그 분들 서로의 관계망이 촘촘해지고 이 지역에서 이런저런 사회단체 활동을 하시는 분들도 많고, 외부에서 자영업 하시던 분들, 특별히 위치에 구애받지 않으시던 분들은 자신의 회사를 마을이나 지역으로 옮겨오고 하면서 관계망들이 더 확장됐습니다. 그러면서 2011년 사단법인 ‘삼각산 재미난 마을’이란 법인도 만들게 된 것입니다.

마을 법인 산하에 일종의 마을 기관인 대안학교, 목공소, 카페가 있고 그 외에 마을 배움터, 동아리 활동, 마을 동아리 지원사업이 운영된다고 한다. 법인 설립은 제도적 차원에서 마을 기관을 지원하기 위한 고민의 결과였다. 배움터 운영이 궁금해 물어보니 재미난 이야기들이 쏟아진다.

배움터는 프로그램입니다. 성당에서 여러 종류의 신자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목공소가 있으니 목공입문교실이 두 달 간격으로 열려요. 기타를 잘 치는 사람이 있다면 기타교실을 열어요. 그게 다 마을 배움터 강좌들이죠. 나눔 강좌, 기획 강좌, 전문 강좌 등 성격을 달리하는 3개의 강좌가 있어요. 전문 강좌는 삼각산 재미난 마을에 와야 배울 수 있는 강좌인데 다른 곳에서 배울 수 있더라도 가격이 저렴하죠. 타로강좌나 목공강좌가 전문 강좌인 셈이죠. 전문 강좌가 조금씩 늘고 있어요.

나눔 강좌는 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재능 기부형태로 주민 센터에서 하는 수강료 정도를 받고 서로 재능을 주고받는 거죠. 서로의 필요성을 갖고. 풍물강좌, 기타강좌, 미술치료, 별자리를 통한 명상 등등 그런 것들을 좋아하는 이들이 같이 하자하면 나눔 강좌로 하는 거죠. 자기네들끼리 돈을 모아서 외부에서 전문가 선생님을 모셔 올 수도 있고 마을에 어떤 것을 전문으로 잘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그걸 재능으로 기부하고 그분에게 식사 값이나 차비 정도를 주고 같이 배웁니다.

마을 배움터 강좌들은 마을 동아리와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어요. 동아리들이 그런 강좌를 개설하기도 하고 왜냐하면 동아리들은 자기네 동아리 회원들을 계속 재생산해야 되니까요. 마을 배움터를 통해서 새롭게 동아리가 생기기도 하고 그렇죠. 배움터에서 배웠는데 그 시간외에도 서로 교류를 하다 보니 동아리가 되기도 하죠. 서로 영향을 주는 거죠. 마지막으로 기획 강좌는 마을 사무국에서 마을주민들과 향후 마을 공동체의 전망을 바라보면서 기획한 강좌입니다. 예를 들어 에너지 자립마을 만들기 프로젝트. 이건 도시 속 재생에너지나 에너지 절약, 탈핵 등 주제를 가지고 주민들의 교양과 의식을 높여내고 삼각산 재미난 마을 추구하는 가치지향을 확산시키기 위해 기획한 강좌들이죠. 마을 미디어를 만들기 위해 마련한 기자학교도 열렸는데요, 올해는 그렇게 두 가지네요.

일과 놀이의 경계를 없애다

현재 사단법인 삼각산 재미난 마을의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이상훈 씨는 마을에서 목공일을 하느라 보내는 시간이 너무 행복하다고 말한다. 마을 목공소를 시작한 건 2011년인데 2009년과 2010년 우연한 기회에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지방에 내려가 목공일을 배울 기회가 있었고 그 일을 하면서 즐겁고, 재밌고 계속 하고 싶다는 생각에 사고를 쳤다고 한다.

2년간 프로젝트를 마치고 다시 서울로 돌아와 보니 거리에 버려진 가구, 나무들이 눈에 들어오더라구요. 아깝다는 생각에 모아 쌓아두었는데 도시에선 한계가 있더라구요. 인터넷을 통해 목공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협동조합 방식으로 공간과 장비를 마련해 운영하는 동호회 모임을 알게 됐고 그 분들이 용기를 주셔서 일을 저질렀습니다. 당장 차를 팔고, 서울로 이사 오면서 반지하방을 얻고 남은 여윳돈을 합쳐 보증금 500에 월세 40만원하는 지하 작업실을 덜컥 계약했습니다.

그는 목공일을 직업이 아닌 취미이자 과외활동으로 하고 있다. 처음 목공소를 제안한 3명 모두 상훈 씨처럼 본업은 따로 있고 과외로 이 일을 꾸리고 있다. 작업장을 마련하고 소문을 냈더니 마을 주민 8명이 나서서 각자 집에 있는 장비들을 갖다놓고 목공소 현판을 내걸었다. 2011년 10월부터 마을 배움터를 통해 2주간의 목공입문 교실을 여는데 2013년 10월 현재 생활가구만들기 기초과정 11기를 진행 중이고 총 200여명의 주민들이 입문 교육을 수강했다고 한다. 지금은 마을 사업단의 대표격인 사단법인을 통해 예비 사회적 기업으로 선정돼 상근 목수 1명의 인건비를 정부로부터 지원 받고 있다. 정부지원은 매년 마다 계약을 갱신하는데 목공소의 경우 모든 물적 자산들을 주민 자발적으로 모으고 운영하고 있어서 계속 지원을 받고 있다고 한다. 인건비 지원 외에 목공소 운영에 필요한 경비는 정회원들의 가입비(20만원)와 월회비(6만원), 200명 가량의 교육회원들의 사용료로 충당한다.

예비 사회적 기업으로 선정되면서 지역사회를 위한 목공 프로그램도 운영하는데 초등하교 목공수업,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목공 수업 등을 하고 있고, 하반기에는 10대 아이들과 그 부모, 2인1조 네 가족을 공개 모집해서 9주간 목공 수업을 한다고 한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 목공 수업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작업 과정에서 대화도 하면서 소통이 가능하니 교회가 강조하는 가정사목을 위해 이만한 프로그램도 없겠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과연 본당에도 만들 수 있을까?

목공일이 생각만큼 쉽지는 않아 정회원 3명 중에 한 명만 창립 회원이고 다른 둘은 마음을 접었다고 한다. 스스로 목공 기계를 다룰 정도의 실력이 되려면 대략 기초 과정 8주를 배우고 주 2~3회 정도 작업해 작품 3~4개 정도는 만들어 봐야 한다. 직접 장비를 사용하면서 자꾸 손에 익어야 하는데 많은 이들이 그 시간을 견디지 못한다고 한다. 남성보다 여성 회원이 많은 이유는 은근과 끈기가 필요한 작업의 특성 탓이다. 삼각산 마을의 목공소를 본당에서 실험해 보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물었다.

성당에서 작업장을 만들 수 있다면 아주 좋겠죠. 유휴 공간이 있으니 좋은 여건의 공간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고, 목공하시는 분들도 신자들 중에 한 두 명은 꼭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분들이 팀을 짜서 목공소 운영관리도 하고, 일찍 퇴직하시는 분들도 많으니 약간의 수고비를 드리고 성당에 와서 관리 운영하라면 아주 잘 운영되지 않을까 싶어요. 중요한 점은 목공소가 됐건, 카페가 됐건 그러한 공간에 참여하는 분들과 관계 맺는 방식, 태도의 문제가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철학의 문제입니다.

저희가 지금 같은 나눔과 교류를 하기까지 공동육아 이후로 15년이 걸렸거든요. 안전한 먹거리를 먹이고, 자연에서 가까운 곳에서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교육시설에 대한 엄마아빠들의 절실함이 출발점이었습니다. 본당 공동체에, 신자들에게 어떤 절실함이 있는지 스스로 물어보아야 합니다. 저희 마을에도 열심히 하시는 회원 중에 천주교 신자분들이 있는데 본당과 마을을 연결시키는 데에는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있는듯합니다.

저는 본당이건 마을이건 관혼상제(冠婚喪祭)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면 공동체가 유지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요람에서 무덤까지 모든 일이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해야 하는 시대인데 대표적인 사례가 상조회사죠, 저희 마을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3년 전에 상조 협동조합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예전에 할머니 장례 때 성당에서 교인들, 주민들이 같이 와서 음식하고 위로해주고 다 해주셨는데, 어느 날 보니 성당 장례도 상조업체가 와서 하더라구요. 공동체를 말하는 교회가 오히려 거꾸로 가는듯해 안타까웠습니다.

상훈 씨는 본당과 마을공동체를 위해 목공소도 할 수 있고, 카페도 할 수 있고, 도서관을 할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남이 하니까 나도 하는 게 아니라 참여하는 신자들이 진짜로 하고 싶어하는 일을 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귀뜸한다. 다들 본당 문화에서는 힘들 거라 생각했던 일인데 ‘저게 되네?’하면서 입소문이 돌면 그렇게 좋은 기운은 퍼져나가는 게 아닐까. 말은 많은데 실천이 없는 세상이다. 머리는 엄청난데 몸과 손발이 작동을 못한다. 행동 없는 믿음, 실천 없는 기도, 증거 없는 삶, 희생 없는 제사가 꽹과리처럼 요란하다. 어려운 것은 세상을 바꾸는 혁명이 아니라 자기 쇄신을 위한 작은 노력과 실천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부터 마을 속 본당 이야기는 꿈이 아닌 현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3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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