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운동의 영성을 찾아서 – 상부상조의 공동체 정신을 일깨우는 사도직 운동, 연령회

이미영

한국 천주교회 안에서 활발히 전개되는 평신도 사도직운동 중 가장 한국적으로 토착화된 사도직운동은 단연코 연령회(선종봉사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령회는 이 세상을 떠난 신자들을 위해 기도해 주고 장례에 필요한 봉사하는 사도직 활동이다. 1648년 로마에서 설립되어 1827년 이후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선종회(善終會)와도 비슷하지만, 선종회가 개인 회원들이 선종의 은총을 얻기 위해 기도와 선행을 행하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하면서 선행의 일환으로 장례봉사를 하는 것과 달리, 연령회는 상(喪)을 당한 이웃의 장례를 돕고 죽은 교우의 영혼과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는 봉사를 하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하면서 회원들을 성화시켜가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선종회가 ‘나의 죽음’을 위한 선행이라면, 연령회는 ‘이웃의 죽음’ 그 자체를 위한 선행에 더 방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연령회는 한국 천주교회 고유의 위령기도인 연도(煉禱)를 연구하여 전수하는 역할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환난상구의 공동체 정신과 연령회

한국 천주교회에서 연령회가 단체로 성립된 것은 1886년 한불조약으로 신앙의 자유를 얻은 이후이지만, 신자들의 장례를 돕는 전통은 그 이전 박해시대까지 올라가는 것으로 여겨진다. 관혼상제를 중시하는 유교 문화 안에서 특히 효(孝)와 연관된 장례(喪)와 제사(祭) 문화는 다른 어떤 의례보다도 중시되었다. 초기 교회의 기록을 살펴보면, 신자들 사이에서 임종에서부터 장례까지에 관련된 기도문이 수록된 기도서가 널리 읽힌 것으로 알려져 있고,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박해의 상황에서 신자들은 ‘어려울 때 서로 구해 주는(患難相救)’ 전통을 중시하며 교우들의 죽음을 돌보았다고 한다.

다블뤼 주교의 편지에 따르면, 천주교가 신앙의 자유를 얻기 전인 1863년경에도 이미 신자들은 천주교식 장례를 대중 앞에서 공공연히 치러, 외교인들이 그 예절이 매우 점잖고 아름답다고 인정하며 개종했다고 한다. 연령회원들이 위령기도에 가락을 넣어 시조처럼 부르는 연도의 장엄함은 고인을 위한 애통함과 간절함이 느껴져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지금도 연령회는 죽음이라는 큰 고통과 슬픔에 처한 교우와 그 가족을 따뜻하게 돌보면서 신자들뿐만 아니라 비신자들도 천주교 신앙을 새롭게 만나도록 이끌고 있다. 가족의 장례를 돕는 연령회원들의 헌신에 감동하여 세례를 받게 되었거나 오랜 냉담을 풀었다며 연령회가 신앙인의 참된 표양을 보여주고 있음을 칭송하는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 것은, 연령회가 신앙 안에서 어려울 때 서로 돕는 공동체 정신을 살아내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신자들의 장례를 돕는 노력 봉사 성격의 연령회는 1910년대에 접어들며 금전적인 부조가 강화되었다. 몇몇 본당에서는 상여계(喪輿契)나 상장계(喪葬契)를 운영하거나, 1912년에는 ‘천주 교중 보험회(天主敎中保險會)’라는 단체를 조직하여 회원 가운데 상을 당한 사람에게 금전적인 보상을 해주기도 했다. 언뜻 보면 현재 교회 안에서 운영되는 모 상조회사와 유사해 보이나, 당시의 모임들은 상장례를 천주교식으로 제공해 줄 뿐만 아니라 교우의 고통을 함께 나누며 신자들의 공동체성을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천주 교중 보험회의 회칙에는 비신자나 먼 지방에 사는 사람을 들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이 명시되어 있어, 신자 공동체 안에서의 상부상조로 운영되는 것임을 분명히 했다.

한편, 경제적인 측면과 함께 연령회에서 점점 강조되기 시작한 것은 기도와 미사 봉헌이었다. 1910년대부터 몇몇 본당의 연령회는 매월 회비를 적립하여 그 이자로 각 회원이 죽었을 때나 기일에 미사를 봉헌해 주기도 하였다. 최근의 연령회 역시 경제적인 도움보다는 기도나 연도, 미사 봉헌 등 영적인 돌봄을 강조하며, 기부금이나 식사접대 등을 받지 않으며 경제적으로 상가(喪家)에 부담을 주지 않고 재정적으로 투명하게 운영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장례문화의 변화와 연령회가 마주한 도전

한국 사회는 199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장례문화가 급변하고 있다. 매장 문화가 화장 문화로 급속히 바뀐 것뿐만 아니라, 장례를 치르는 곳도 가정이 아니라 병원이나 전문 장례식이 더 보편화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본당 영안실에서 장례를 치르는 경우도 많았지만, 최근에는 영리 장례업체의 견제나 지역 주민들의 반발로 본당 영안실 신설은 거의 불가하고 있던 기존의 본당 영안실도 점차 사라지는 추세이다.

또한, 과거 연령회원들이 담당하던 염습(殮襲, 죽은 사람의 몸을 씻긴 뒤 옷을 입히고 염포로 싸는 일)이나 입관 예절은 이제 병원이나 상조회사의 장례지도사가 담당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연령회원과 장례지도 직원 간에 역할분담 문제로 갈등을 빚기도 한다. 연령회원이 봉사로 행하는 염습 입관을 병원이나 상조회사 직원은 비용을 받고 처리하니, 장례비용에 포함된 서비스의 이행 여부가 중요한 영리업체 직원으로서는 연령회원의 자원봉사가 달갑지 않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최근에는 자격이 있는 사람만 장례절차를 진행하도록 장례지도사 국가자격증 제도가 시행됨에 따라, 연령회원들이 실질적인 장례 봉사를 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교육을 받아 자격증을 취득해야 한다.

한편, 최근 교회 내 평신도 사도직 운동이 대부분 고령화되고 있는 것처럼, 연령회원의 고령화 현상 역시 심각하다. 특히 연령회는 죽음이 멀지 않은 어르신들에게나 의미 있는 사도직처럼 여겨지는 신자들의 인식 때문에 고령화가 더욱 심각한데, 상가를 돌보고 장지 수행까지 맡는 고단한 활동을 어르신들이 수행하기에는 버거운 현실이다. 2002년 주교회의에서 통일된 <가톨릭 상장례 예식서>를 인준하였지만, 오랫동안 연령회 활동을 한 연령회원들은 이전의 구연도 방식을 고집하는 경우가 있어 불협화음을 내기도 한다.

공동체 문화의 회복을 위한 연령회의 역할

이처럼 한국의 장례문화가 급변하는 현실에 대해, 수원교구 능평성당 연령회 전승호 프란치스코 회장은 신자들이 태어나서 성당에서 세례 받고, 교회 안에서 성장하여 활동하다가, 죽음 역시 성당에서 맞이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은가 하고 반문한다. 50대 젊은 연령회원들이 주축이 되어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능평 성당 연령회는 회원들의 교육 참여도 적극적이라 장례지도사가 21명, 연도 전수교육 이수자가 16명일 정도로 활성화되어 있다.

전승호 회장은 최근의 장례문화가 병원이나 상조회사의 주도로 이뤄지는 현실에서 연령회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한다. 영리업체들이 최대한 많은 이익을 내기 위해 호화스러운 물품이나 불필요한 의식을 첨가하여 유족들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횡포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상황에서, 전문성을 갖춘 연령회원이 이를 막아 유족들이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교우의 마지막 가는 길을 영리업체에 맡기지 말고 신자들이 천주교 의례대로 정성스럽게 보내는 것과 연도를 드리며 함께 기도하는 전통이야말로 소중하다고 강조하였다.

한편, 영리 장례업체가 주도하는 도시지역의 장례문화와 달리 여전히 연령회의 활동이 중요한 시골에서는 젊은 연령회원들을 양성하는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광주대교구 평생교육원에서 장례지도사 교육 봉사자로 활동하는 정석원 사도 요한 씨는 각 본당에서 최소한 5명 이상의 연령회원이 장례지도사 국가자격증을 취득하고 활동할 수 있도록 교회에서의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죽음이라는 극심한 고통의 현장에서 연령회의 활동은 가장 의미 있는 선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함께 사는 삶이 사라지고 모든 가치가 물질적으로 환산되어 죽음마저도 그 존엄함을 잃어가는 시대에 상부상조의 공동체 정신을 이어가는 연령회는 우리가 지향하는 신앙과 교회의 모습을 다시 한 번 일깨우고 있다.

[참고자료 : 방상근, ‘연령회’, <교회와 역사> 제308호(2001년 1월), 8-12쪽]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3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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