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_긴급공개잡담회 – 종교, 한국 정치를 말하다

이희연

종교, 한국 정치를 말하다

최근 가톨릭 사제들의 정치적인 문제 제기가 이어지면서, 불교와 개신교에서도 이러한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다. 바야흐로 종교가 정치를 말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러한 말들이 과연 대중에게 종교성을 성찰하게 하고, 그들의 아름을 치유할 수 있을까.

이번 특집에서는 종교가 말하는 정치의 적실성을 점검하고, 우리 사회의 소통 문화와 구조를 살펴보고자 마련된 3대 종단 공개집담회의 주요 내용을 요약해서 소개하고자 한다. 종교의 입이 트인 것을 반기기만 한 것이 아니라, 트인 입으로 무엇을 말해야 할지 치열한 논의가 오간 현장의 느낌이 독자들에게 가닿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일시 : 2013.12.10.화 오후 4:00-6:20
  • 장소 : 불교시민사회네트워크 회의실
  • 패널 : 박문수(우리신학연구소 연구이사), 이원영(가톨릭평화공동체 공동대표), 정윤선(참여불교재가연대 사무총장), 정웅기(불교시민사회네트워크 운영위원장), 김영철(생명평화마당 집행위원장), 김진호(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박문수 : 오늘은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박창신 신부님의 발언으로 촉발된 천주교와 정부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에 대한 각 종단의 분석을 듣고, 3대 종단의 NGO를 대표하고 있는 단체들이 협력할 수 있는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우선 집담회를 주관하셨던 김진호 목사님께서 배경에 대해 소개해주시겠습니다.

김진호 : 박창신 신부님의 발언 이전부터,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심화되고 그 부분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의견을 피력해왔습니다. 그중 천주교 성직자들의 활동이 가장 두드러졌던 거 같아요. 민주주의가 침해되고 있으니 종교인들이 무엇인가 해야겠다는 문제의식이 생겨나는 데 천주교 성직자들의 문제제기가 하나의 물꼬가 되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종교 NGO단체들이 모여서 이 현상을 비판적이고 분석적으로 다루는 모임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종교의 정치참여

김진호 : 저희보다 먼저 이러한 논의를 시도했던 언론이나 종교 단체들이 있었습니다. 그 모임들을 살펴보니 종교의 정치참여가 타당한가에 대한 찬반토론이 되고 있었는데 저희는 그것이 적절한 문제제기가 아니라고 봅니다. 전 세계의 종교인들이 이미 정치에 참여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고 정당도 만드는 상황이니까요.

박문수 : 종교가 사회에 참여한 역사는 굉장히 오래 되었습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입장에서도 40년 동안 늘 해왔던 일이고, 그럴 때마다 사제단은 정치적인 집단이라고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단지 천주교 내에서 반대 의견을 시위로 표출하는 것은 이번 사태가 처음이어서 조금 특별하다고 봅니다.

문제는 정부가 자신의 정책을 옹호하거나 지지하는 시도에 대해서는 정치참여라고 이야기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정책에 반대하는 것만이 정치참여라고 하는 이중 잣대가 있는 것이죠. 실제로 정치참여는 침묵을 지키는 것부터 찬성이나 반대 의견을 내는 것까지 모두 정치적인 행위입니다.

김영철 : 개신교는 70년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중심으로 민주화 운동에 참여를 하면서 종교와 정치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상당히 정리가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인명진 목사님 등 몇 분이 조계종에서 크게 토론회를 하셨는데 거기에서도 종교인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서는 크게 이견이 없어요. 70-80년대 보수적인 분들이 왜 목사가 정치에 대해서 자꾸 이야기를 하느냐 하시더니, 노무현 정권 때 보니까 거의 저주에 가까운 설교를 하셔서 깜짝 놀라기도 했고요.

박문수 : 그리스도교 입장에서 보면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한 이론적인 연구들은 80년대에 다 정리가 끝났습니다. 역사적 고찰에서부터 다른 나라와의 비교사적 고찰에 이르기까지 이미 정리가 되어서, 다시는 그런 논의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많은 종교인들이 생각했을 겁니다. 낡아서 폐기될 정도의 개념이 다시 언급되는 상황에 이번 사태의 위중함이 들어있다고 봅니다.

이원영 : 정부가 이런 것을 이야기 할 때 가장 먼저 내세우는 게 정교분리인데 그러면 박창신 신부님의 말씀을 문제를 삼으면 안 된다고 봅니다. 신부님이 개인적으로 기자를 만나서 이야기를 하신 것이 아니라 종교행위인 미사에서 강론을 하신 것이지요. 강론의 내용에 반대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강론 때 정부에 대해 비판하는 행위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정부 스스로가 정교분리라는 자신의 논리 자체를 부정한 것이라고 봅니다.

정웅기 : 지금 가톨릭이 대통령 사퇴라는 주장을 하는데 신부님, 수녀님들이 그런 주장을 하실 자격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삶의 현장에 함께 하면서 가장 치열하게 민중의 고통을 안아주고 계신 분들이라는 생각이 드니까요. 하지만 사퇴 주장이 과연 최선인가 하는 부분에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왜 박근혜 대통령이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하는 상식적인 행동을 못 할까 생각해보면, 박대통령 자신은 법대로 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억울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법대로만 해결되지 않는 여러 문제들에 대해 민중의 고통을 풀어주어야 하는 게 정치인데, 대통령은 자꾸 법대로 하고 있다는 핑계를 대는 상황입니다. 이런 문제는 박근혜 개인이 책임질 부분도 있겠지만 구조가 책임져야 할 부분도 상당히 크다고 봅니다.
박근혜 정부가 4대강 사업이 총체적인 부실 사업이라고 지적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1조원 이상을 들여서 내성천을 4대강처럼 개발하고 있습니다. 부실 사업이라는 지적은 과거에 대한 정치적 심판일 뿐이고, 개발 이익을 내서 소수 업체들의 배를 불리는 데에 국가 재정을 동원하는 이 구조에 대한 성찰이 이루어지지 않은 겁니다. 대통령 하나를 바꿔서 해결하기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이 문제를 받치고 있는 겁니다.
물론 정치권과 각을 세워서 성역 없이 비판하는 것에 종교의 역할과 소명이 있습니다. 그러나 드러난 문제만 비판할 것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와 다수의 탐욕에 대한 각성을 촉구해야만 근본적인 해결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박문수 : 80년대 이후로 종교와 국가 간의 갈등은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었죠. 이제 자본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면서 본격적으로 구조의 문제를 건드려야 될 시점인데 돌발적인 사건이 발생한 것이죠. 종교가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분석 없이 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고, 정치적인 변수에 발목을 잡혔다고 봅니다. 이렇게 역행하는 고리를 끊어야 본래 관심을 가져야 하는 부분까지 나갈 수 있는데 멈춰있는 상태인 것이죠.

김진호 : 한국사회는 굉장히 빠른 속도로 종교적 성향이 강화되는 거 같아요. 다들 너무나 힘든 상황으로 내몰리는 가운데 여기서 벗어날 수 있는 계산 가능한 미래가 안 보이는 거죠. 이럴 때 사람들은 종교적인 열망을 갖게 되는데, 그런 열망에 대해 답을 주지 못하는 것이 한국 종교의 위기라고 봅니다. 기성종교가 외면하는 사이에 대중들은 갈팡질팡하면서 종교성을 발현시키고 있고, 최근에는 정치적으로도 표현되고 있는 거죠. 동시에 정부는 대중들의 종교성을 이용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많은 문제들이 종교적인 방식으로 처리됩니다. 정치가 종교화되는 거죠.

현 정부의 통치방식은 두 가지 성격으로 요약될 수 있을 거 같은데, 하나는 법치의 문제고 다른 하나는 정치의 종교화의 문제입니다. 법치는 일어난 사태를 어떻게 법률적 언어로 만들어 낼 것인지의 문제라서 자신의 법적언어를 관철시킬 수 있는 권력의 문제와 맞닿아 있습니다.
정치의 종교화 문제로 인해 두드러지게 나타난 현상은 반공주의의 강화입니다. 한국사회에서 반공주의는 지속적인 통치의 양식이었습니다. 반공주의가 행동성을 동반하면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한 시기가 해방직후부터 50년대 말이라면, 다른 시기가 바로 지금인 거 같아요. 반공주의를 통해서 정부가 일종의 공포 마케팅을 하고 있는 것이죠. 반공을 통한 정치의 종교화는 반공에 관련된 용어가 어떻게든 튀어만 나오면 바로 증오의 감정이 작동합니다. 시민단체들의 합리적 방식으로는 이런 상황에 대한 적절한 문제제기 지점을 못 찾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럴 때 종교 전문가인 가톨릭 사제들이 발언하기 시작했던 것이죠. 그것은 MB정부 때 4대강이나 강정 문제를 통해 숙성되어 온 가톨릭 성직자들의 체험이 누적된 결과라고 봅니다. 이런 종교인들의 발언은 합리적 계산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고 불쑥 튀어나온 말, 굉장히 종교인들다운 말이죠.

박창신 신부의 발언

이원영 : 사실 박창신 신부님의 강론은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닙니다. 잘 아시겠지만 국정원의 불법적인 대선개입 문제가 불거지면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이라고 하는 단체에서 여러 천주교 단체를 모아, 이를 규탄하는 성명서를 냈습니다. 군종교구를 제외한 우리나라의 모든 교구가 돌아가면서 신부님들이 시국미사를 했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평신도들도 9월에 1만 명 시국선언을 제안했는데, 시작할 때는 진짜 만 명 넘길 거라고 확신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저희도 깜짝 놀란 게 삽시간에 만 명이 넘어서 만 이천 명에 도달할 정도로 많은 분들이 시국선언에 동참을 해주셨어요. 이 흐름이 이어지면서 전주교구에서 시국미사가 다시 한 번 있었고, 이때 박창신 신부님의 강론이 있었던 거죠.

박문수 : 평신도 활동가들도 잘 안 쓰는 강한 표현들을 왜 사제들이 먼저 했을까, 왜 그렇게 행동하게 될까하는 것이 연구자의 한 사람으로서 늘 궁금한 주제죠.

이원영 : 아마 예언자적 전통 때문이라고 봅니다. 성서에 보면 예언자들이 하느님의 말씀과 정의에 입각해서 왕을 꾸짖는 역할을 해왔죠. 신부님의 발언은 그런 전통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사제로서는 당연한 일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 사제단은 보수적인 정권일 때만 목소리를 냈느냐 하면 그건 아닙니다. 참여정부 시절에도 퇴진하라는 표현은 안 했지만 거의 퇴진에 준할 정도로 정부를 꾸짖는 활동을 했습니다. 신부님들이 특정한 정파에 치우쳤다기보다는 양심의 소리와 하느님의 정의에 따라서 행동하시기 때문에 자신들이 생각하시는 바를 바로 표현하시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정부가 박신부님 강론에서 가장 심각하게 받아들인 단어는 이거였던 것 같아요. ‘박근혜 대통령 퇴진’. 술자리도 아니고 많은 사람이 모인 공식적인 자리에서 처음 이야기 한 분이 박창신 신부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굉장히 불쾌하고 위기를 느끼지 않았을까 싶고요. 이럴 때 박근혜 정부가 했던 것이 종북몰이인데, 정부의 이런 대응은 종교를 대하는 기본적인 자세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거죠.

김영철 : 정치적 계산이나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겐 보편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발언인가 하는 부분이 중요한 전술적 선택이죠. 그러나 종교인이 이야기하는 부분들은 그런 걸 계산해서 나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고, 정말 답답하고 뭔가 해결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큰 사회적 화두를 던져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박창신 신부님의 이야기 중에서 앞의 전반부 70-80%가 국정원 사기나 종교와 정치의 관계를 이야기 하고, 후반부 30%에 가면 연평도 문제와 천안함 사건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저는 후반부가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공식적으로 이야기하기가 상당히 어렵지만 사람들이 얘기하고 싶었던 부분들을 화두로 던져준 것이 아닌가 싶어요. 종교인의 정치참여를 정권 비판의 차원이 아니라 기본적인 도덕률과 진리의 관한 문제로 승화시킨 거라고 봅니다.

이 시대 종교의 역할

김영철 : 덧붙여서 소개하고 싶은 연구가 있습니다. 미국의 신학자 한 분이 911사태 문제를 조사해서 책을 9권 쓴 적이 있습니다. 911을 이슬람이 일으킬 수 없다고 보고 시작한 연구인데, 결국 미국이 만든 거라는 결론을 내린 겁니다.

이렇듯 신학자들이 천안함 같은 문제 하나를 붙들고 해결해 나가다 보면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저런 이슈가 터지는 걸 계속 따라가면서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노신학자의 작업을 보면서 하나의 사건을 다루더라도 사회적 진리에 대해 심도 깊게 들어가 보자는 생각이 들었죠.

정윤선 : 하나의 사건 속에 그 사회의 모든 문제가 집약되어 있을 때 우리가 정말 철저하게 분석을 하면 뭔가 답이 나오거든요. 그런 주제 하나를 정해 가지고 이런 후속작업을 하는 것이 종교 NGO의 역할이지 않을까 합니다. 사회적인 구속에서 자유로운 성직자들이 화두를 던져주는 역할을 한다면, 평신도들의 모임인 NGO단체들은 그 후속작업으로 이 시대의 종교의 역할에 대해 심도 있고 조직적으로 연구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마르틴 니묄러라는 유명한 목사님이 나치 시절에 유대인들이 끌려갈 때 ‘내 일이 아니니까’ 침묵하고 있었다고 하죠. 공산주의자들이 끌려갈 때도 ‘내 일이 아니니까’하고 또 침묵하고. 나중에 보니까 ‘나만 남았더라.’는 목사님의 말씀이 종교인들에게 굉장한 성찰을 던졌죠. 그때 성찰이 수십 년 동안 독일 개신교가 진보적인 행동을 하는 바탕이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는 불교도들이 이 부분에 대해 생각해봐야 되지 않을까 싶네요.

김영철 : 지난 정부 이후로 다양한 차원에서 이야기가 이루어지고 있고, 그저 침묵하기보다 공격이든 찬성이든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물꼬가 터졌다고 표현 할 수 있겠네요.

정웅기 : 저는 종교가 민주주의를 질적으로 심화시키는 역할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첫 번째 제안하고 싶은 역할은 불교식으로는 공의제라고 하는데, 대중들의 의견을 물어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도록 하는 거예요. 민주공화국이라 할 때 민주주의와 공화제를 합친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절차적 민주주의만 강요하지 공화제, 즉 공의를 모아서 하는 것은 너무 후진적이죠. 실제로 대중의 의견을 잘 물어서 운영될 수 있도록, 종교가 가진 공의제의 전통들을 살리는 게 필요하겠죠.
두 번째는 영성과 심성이 사회가 질적으로 변화하는데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죠. 이를테면 종교의 전통인 청빈이나 나눔이 생활윤리 같지만, 이렇게 기본적인 것이 사라지면 우리 사회는 바뀌지 않는다고 봅니다. 노동자부터 대통령까지 다들 ‘나부터 살고 보자.’, ‘내가 일단 살아야 되겠어.’, ‘내 거 먼저 챙겨야 되겠어.’하는 마음이 있죠. 그럴 때 어렵게 이야기 할 것도 없이 ‘좀 나누고 살자.’, ‘좀 가난하게 사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들을 종교인들이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는 특정 계급과 계층의 편인 국가를 어떻게 공정한 중재자요 집행자로 만들 것인가 하는 부분입니다. 국가가 공정한 중재의 역할을 하려면 이해 당사자들을 불러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심판할 것은 엄정하게 하고 해야죠. 국가가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이야기하는데 종교의 역할이 있다고 봅니다.
그럼 종교 스스로는 이런 세 가지 전통에 맞춰 잘 운영되고 있느냐 되물을 때 종교 내부도 돌아볼 점이 있겠습니다. 안팎을 아울러서 이런 전통을 생각해 나가면 종교도 좋아지고 우리 사회도 좋아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박문수 : 가톨릭에서는 사회영성을 이제 막 강조하기 시작하는데, 구조의 문제를 건드리지 않고 계속해서 전통적인 수덕생활이나 청빈에만 머물게 되면 자칫 지금과 같은 사태가 계속 벌어지지 않을까요. 가톨릭에는 공동선이라는 이론이 있어요. 공동선은 단순히 다수의 이익만이 아니고, 소수자의 이익도 침해당하지 않으면서 전체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죠. 바로 그 공동선을 관리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인데 지금 국가는 공동선을 위해서가 아니라 특정 계급과 계층들을 위해서 일하는 국가라서 문제가 되는 겁니다. 이런 다양한 함의들을 내포하지 않고 전통적인 부분만 강조하면 추상화될 위험이 있다고 봅니다.

가톨릭 사회교리에는 ‘종말론적 상대주의’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종말론적 상대주의에 따르면 이 세상에 완벽한 체제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체제와 구조에 대해서 상대적인 입장을 취할 수 있습니다. 본인이 그렇게 살고 있느냐와 별개로 상대적인 입장에서 비판을 할 수 있다는 것이죠. 종교 NGO들이 한국 사회에서 금기시 되고 있는 부분을 건드려서 계속 담론화 해가는 과정에 힘을 합치면 좋은 대안이 나오지 않을까 합니다.

김영철 : 7년마다 한 번 열리는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가 이번에 부산에서 있었습니다. 이번 주제가 ‘생명의 하느님, 정의와 평화로 인도하소서.’였습니다. 저희는 한국 교회에서 생명과 평화라는 주제가 별로 연구되지 않았다고 생각해서, 2년 동안 그 부분을 준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생명과 평화를 이야기하니까 개신교인들 몇 명이 그건 복음적 가치가 아니고 세속적 가치가 아니냐고 하던데, 생명과 평화는 분명한 복음적 가치죠. 종단 간 생명-평화 네트워크를 이루어서 생명과 평화라는 가치가 깊은 성찰로 자리 잡게 되면 정치적인 프레임을 뛰어 넘을 수 있는 내적인 힘이 생길 것 같아요.

이원영 : 한국사회를 보면 워낙 갈등이 첨예합니다. 갈등의 수준도 비난하는 정도가 아니라, 상대방을 적으로 보고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존재처럼 대합니다. 결국 국가도 공동체인데, 공동체의 유지를 위한 종교의 역할이 정말 중요해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가장 첨예하게 갈등이 이루어지는 부분이 남북관계입니다. 실제 남과 북의 갈등이 심각하기도 하지만, 남북의 갈등이 국내 정치를 하는 굉장히 강력한 기제로 작용을 하고 있습니다. 남북의 평화와 화해에서 종교인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민주정부 10년을 겪으면서 평화라는 메커니즘으로 남북관계를 대해보기도 했는데, 종북이나 안보 프레임이 나오자마자 힘없이 휩쓸려 간 부분은 성찰해볼 필요가 있겠죠.

박문수 : 커뮤니케이션 이론이 발화자 중심으로 발전하다가 어느 순간 ‘수용자 이론’이 나왔어요. 듣는 사람도 자기 나름의 생각을 한다는 겁니다. 종북 프레임을 걸었을 때 많은 신자들이 쉽게 거기에 동조했다는 데 문제의식을 느낍니다. 집단주의가 갖는 속성이라고 보는데, 이런 집단주의 사회에서 종교가 할 수 있는 일은 소수자들의 의견이나 사회적 약자들의 의견이 자유롭게 표출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 거죠, 이것이 집단주의가 몰아가고 있는 우상을 상대화시킬 수 있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진호 : 합리적인 진단을 못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많은 말을 하지만 그 말들이 특정한 단어 하나에 의해서 무의미해지는 상황이 된다는 것이 문제예요.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루마니아 출신의 유대인 시인 파울 첼란(Paul Celan)이 쓴 시구 중에 ‘단어 하나에 죽음 하나’라는 표현이 있어요. 한 유대인의 삶과 고뇌, 열망, 모든 노력들이 단어 하나에 의해 무의미해진다는 거죠. 지금 저희가 그런 상황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반공주의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반공주의라는 거짓된 종교가 문제인 거예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함께 이야기하기 위해 우리 종교인들이 반공이라는 종교와 싸워야 된다고 봅니다.

박문수 : 마무리하겠습니다. 이런 문제들이 쉽게 분석이 되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국내 문제라고 볼 수 없는 다양한 차원들이 중층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오늘의 논의는 낡았지만 새로운 과제이고 오래되었지만 새로운 방향에 대한 제안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계속 만나는 과정에서 함께 논의해가도록 하겠습니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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