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단짝_파트너십을 향한 여정 – 함께 일하는 과정 자체가 파트너십 연습이지요

한국파트너십연구소

/사진 : 이희연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다. 각자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개인화된 사회라고 하지만, 우리가 하는 일들은 점차 혼자서는 할 수 없고 함께 해야 하는 일들로 바뀌어 가고 있다. 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교회는 여전히 사제나 수도자의 권한과 역할이 크지만,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진 평신도와 함께 일하는 것의 필요성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평신도와 사제, 수도자가 동료로서 함께 일하는 모델을 찾기란 쉽지 않다. ‘우리는 단짝’에서는 드물지만 동료로서 함께 일하는 평신도, 사제, 수도자를 찾아가서, 동료가 되어가는 과정과 어려움을 듣고자 한다.

그 첫 시간으로 파트너십에는 서로의 같음보다는 관계를 맺는 방식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국파트너십연구소의 네 파트너를 만났다.

파트너십과의 인연

연신 유쾌한 웃음을 터뜨리던 하유설신부는 유창한 우리말로 한국과의 인연을 들려주었다. 한국에 평화봉사단으로 다녀간 뒤, 메리놀외방전교회에 입회한 하신부는 신학생 때 실습을 위해 다시 한국에 들렀다고 헸다. 그 후 미국에 돌아가서 서품을 받고 1980년에 다시 한국 땅을 딛게 되었다. 당시 머물렀던 메리놀 성남공동체에서 보낸 9년은 하신부에게 파트너십을 몸으로 느끼게 해준 시간이었다. 그 후 미국에서 신학생들을 가르치느라 4년 간 한국을 떠나 있었지만, 1995년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김선실씨와의 인연도 이때 이루어졌다. 천주교여성공동체에서는 여성의 경험이 전례 안에 들어갈 수 있도록 미사를 준비했는데, 미사의 주례를 맡아준 이가 하유설신부였다. 뭐든 자신이 아는 것을 나누는 재능이 있는 하신부는 1997년 ‘파트너십을 향한 여정’ 과정을 이수하고 1998년 3월 시범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그때 함께 한 김선실씨는 프로그램을 접하며 ‘바로 이거다!’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내가 여성적인 관점에서 교회 안의 평등성을 회복하는 것이 천주교여성공동체를 통해 일하는 목표였다면, 그 기반이 되는 의식 변화가 파트너십을 통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꼭 남녀평등이란 말을 쓰지 않아도 훨씬 부드럽게 쓸 수 있는 파트너십이라는 그 용어가 참 좋게 느껴졌죠.” (김선실)

이정희씨, 권오광씨와 하신부님의 인연도 ‘파트너십을 향한 여정’ 프로그램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정희씨는 한국여성노동자회에서 일할 때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개인의 자발성이 살아있는 NGO에서 갈등이 많은데 이 프로그램을 통해 구체적인 변화를 생각해볼 수 있어 매력을 느꼈다. 권오광씨는 인천 실직자 쉼터 ‘희망의 나눔터’에서 사무국장으로 일하던 시기에 실직자들을 위한 파트너십 프로그램을 요청했었다. 놀라웠던 건 프로그램 이후 실제로 변화한 실직자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 후 파트너십의 중요성을 실감하면서 한국파트너십연구소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연구소는 ‘파트너십을 향한 여정’ 프로그램을 통해 깊은 소통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가서 진정성 있는 소통이 가능하도록 돕는다. 최근에는 서로의 에너지가 도움을 주고받는다는 U이론을 통해 수도회 총회에서 깊은 소통이 가능하도록 돕기도 하고, 청소년을 위한 파트너십을 소개하는 『따로 또 함께』를 출간하기도 했다.

파트너십 운동

파트너십에 관해 시선을 열어준 중요한 경험 중의 하나는 ‘메리놀 성남공동체’ 생활이었다. 하유설신부는 사제 서품을 받은 후 한국에 들어와 성남에서 공동체 생활을 시작했다. 메리놀 성남 공동체는 수도자, 성직자, 평신도가 한 집에서 함께 살아가며 도시 빈민, 노동자, 의료 사목, 영성 사목 분야에서 팀으로 일을 했다. 하신부는 공동체에 머물렀던 시간이 정말 아름다웠다고 말한다.

“같이 미사하고 같이 식사하고 같이 일했어요. 그때 처음으로 파트너십이란 걸 경험했어요. 같이 하는 경험. 결정하는 것도 다 같이 결정했어요. 저보다 연세 드신 신부님도 계셨는데 그분이 다 결정하지 않았어요. 식사나 설거지도 돌아가면서 평등하게 하고. 돌아보니 제 인생 안에 큰 경험이었고, 정말 아름다운 시기였어요.” (하유설)

미국에서 신학생들을 지도했던 시기에도 하신부는 새로운 배움을 멈추지 않았다. 자신도 신학생들도 모두 남성이니 남성의 관점은 어떤지, 남성의 역할은 무엇인가 등 남성의 영성을 연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후 1997년에야 접한 것이 파트너십 교육이었다. 남성에 대해서도 여성에 대해서도 연구했지만, 남성과 여성이 따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교회와 사회를 변화시켜야 하는 시기임을 깊이 느꼈다고 한다.

연구소는 한 개인이 세운 것이 아니라, 이렇게 자신의 경험 안에서 파트너십의 중요성을 체감한 이들이 함께 모이면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파트너십에 대한 경험은 연구소 안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파트너십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모두 동의하지만, 각자 개성이 뚜렷하니 여전히 서로 맞춰가는 과정이라 했다. 파트너십 연구소 자체가 하나의 팀으로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구성원들은 프로그램 의뢰가 들어오면 역할을 조정하고 함께 공부하면서 의사소통을 하고, 파트너십 프로그램에서 활용하는 진단지를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고 변화시켜 나가면서 파트너십 운동을 살아가고 있었다.

함께 일한다는 것

함께 일한다는 것은 같은 지향을 가진 동료가 있기에 기쁘지만, 동시에 각자 다른 활동 영역에서 시간을 쪼개 모이고 서로 맞춰가야 한다는 어려움도 있다. 누군가는 일 중심이고 누군가는 사람이 중요하다보면 잦은 갈등을 겪었을 법도 한데, 도리어 균형감을 갖고 함께 일하는 방법을 배우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입을 모았다. 함께 일하기 위한 원칙들을 어떻게 만들었냐는 질문에도 이정희씨는 서로 다르지만 함께 하는 경험이 쌓이니 자연스럽게 의견을 조정하게 되었다는 답변을 들려주었다.

“지도자가 없는데 이 조직이 돌아가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지도자가 없어서 각자 주도적으로 말하고 듣고 하는 경험이 쌓이니 갈등이 생길 때 자연스럽게 조정하는 제 모습을 보게 되었어요. 우리는 완벽하지 않지만, 모두가 이야기하고 모두가 듣는 과정을 거쳐서 결정하는 자체가 우리에게 훈련이 되고 배움이 되죠.” (이정희)

공부해야 할 것도 많고, 강사료를 사정에 따라 받다보니 재정적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가난하고 소박한 것이 다양한 이들과 파트너십을 이루는 데 더 도움이 된다고 말하는 이들. 그래서 어려움보다는 함께 일하기에 경험하는 다양성과 창의성이 기억난다는 이들의 긍정성에서 공동체 안의 기쁨이 느껴졌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과연 한국교회 안에서 사제와 평신도가 팀을 이룬다는 것이 가능한지 궁금해졌다. 이런 질문을 던지자마자 하유설신부의 탈권위적인 모습에 대한 자랑이 이어졌다. 평신도들이 평등을 강조하지 않아도 자신의 권위를 내려놓는 하신부의 모습에 감명을 받았다는 것이다. 동시에 메리놀 성남공동체와 한국파트너십연구소에서 충분히 그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고, 파트너십은 분명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권위주의의 모습을 내려놓았을 때 진정한 파트너십이 만들어집니다. 한국교회는 교구 사제들의 권위주의 모습이 가장 가슴 아프죠. 권위적인 사제도 좋은 사람인데, 파트너십을 경험할 수 있는 구조가 없는 겁니다. 파트너십은 분명 가능하고, 우리에겐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믿어요.” (권오광)

이젠 권위적인 사람과 함께 일하더라도 먼저 좋은 파트너가 되어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이들에게 마지막으로 파트너십의 정의를 내려달라고 부탁했다. ‘성장’, ‘성찰하고 나누고 변화하는 것’, ‘각 사람 안의 소중함을 인정하는 것’, ‘즐거움을 희망하는 것’이라는 4인4색의 답변이 돌아왔다. 이렇듯 각자의 개성이 강하지만 이들이라면 분명 네 가지 개성의 연결고리를 찾아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파트너십연구소의 네 파트너들을 통해, 파트너십이란 단순히 평등이나 같음이 아니라 ‘소통’과 ‘성찰’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 무엇보다도 삶에서 끊임없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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