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교회는 지금 – 프란츠-페터 테바르츠-판 엘스트 주교 스캔들에 대하여

이승희

프란츠페터 테바르츠판 엘스트 주교 스캔들에 대하여

2013년 10월 23일 교황청은 독일 림부르크 교구장 프란츠-페터 테바르츠-판 엘스트 주교에게 한시적 정직 결정을 내렸다. 교구 신자들의 대표체인 림부르크 총회는 이 결정을 환영하면서 그의 복귀를 원하지 않는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새로 임명된 교구 총대리 신부도 새로운 출발을 희망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주교는 교구민과 교구 사제들의 신뢰를 이렇게까지 잃게 되었을까?

  테바르츠판 엘스트 주교는 어떤 교구장이었나?

2008년 테바르츠-판 엘스트 주교가 교구장으로 올 때, 신자들은 40대 젊은 교구장의 임명을 반기며 교구에 활력을 가져다 줄 거라는 기대를 했다. 그러나 그 기대는 곧 실망으로 바뀌게 되었는데, 특히 일방적인 본당 통폐합 작업과 엄격한 전례 규정의 도입 및 실행은 신자들의 큰 반발을 일으켰다.

그의 사목과 언행은 교회 밖에서도 관심거리였다. 동성애자 부부를 축복한 본당 주임 신부를 본당에서 물러나게 한 일, 교구 산하 청소년 회관장을 불법 해고했던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주교관 건축 스캔들과 인도 일등석 여행

이번 정직 결정에는 두 가지 사건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하나는 잘 알려져 있는 주교관과 교구 센터 건축 스캔들이고, 다른 하나는 위증죄 기소 사건이다. 두 사건 모두 투명하지 못한 행정과 끊임없는 거짓말로 사태를 키웠다는 공통점이 있다.

주교관과 교구 센터 공사는 2010년에 시작되었고, 처음 예산은 약 5백만 유로(약 72억 원)였다고 한다. 3년의 공사 후에 건물들은 완공되었고, 2013년 6월, 교구는 총 건축비가 약 9백만 유로 정도라는 발표를 하였다. 그러나 완공된 건물을 보고 이 공사비를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9월 1일 슈피겔은 전체 공사비용이 2천만 유로에 이를 것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이 기사 이후 교구 안팎의 여론이 악화되었고 교황 특사까지 파견된 상황에서 9월 14일 테바르츠-판 엘스트 주교와 교구 참사회는 모든 공사비용을 공개하고 독일주교회의의 감사를 받겠다는 결정을 발표하였다. 10월 7일, 3천1백만 유로(약 4백4십억 원)라는 공사비가 발표되면서 비판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는데, 지금껏 알려지지 않았던 주교관 내부의 사치스러운 공사가 알려졌기 때문이다.

여섯 배로 늘어난 공사비에 놀라고 있던 10월 10일, 함부르크 검찰은 테바르츠-판 엘스트 주교에게 위증죄를 적용하여 벌금형을 요청했다는 기자회견을 연다. 이 결정으로 인도 일등석 여행 논란은 종지부를 찍게 되고, 테바르츠-판 엘스트 주교는 더 큰 타격을 받게 된다.

2012년 1월, 테바르츠-판 엘스트 주교가 교구 총대리 신부와 함께 빈민 사목 현장을 방문하기 위해 인도로 갈 때 이들은 일등석을 타고 갔다. 슈피겔지는 관련 기사를 내보내며 테바르츠-판 엘스트 주교가 자신들에게 일등석이 아닌 비즈니스 클래스를 타고 갔다는 거짓말을 하게 했다고 비판한다. 주교는 자신이 그런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며 소송을 했지만, 이 과정에서 주교가 그 말을 했다는 사실이 비디오 증거자료로 밝혀진다. 결국 그는 위증을 한 혐의로 고발당하게 되었으며 함부르크 검찰은 그 결과를 2013년 10월 10일에 발표했다.

이 발표가 있은 후 그의 사퇴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이 발표 전까지만 해도 그를 옹호하는 목소리가 존재했었고, 좀 더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는 여론 또한 적지 않았다. 쾰른대교구의 마이스너 추기경, 신앙교리성 장관인 독일 출신의 뮐러 주교가 대표적인 경우였다. 그러나 함부르크 검찰의 발표 이후 이런 목소리는 점차 수그러들었고, 독일 교회 안팎에서 교구장 사퇴 압력은 더욱 커지게 되었다. 결국 보름 후 교황청이 테바르츠-판 엘스트 주교의 정직을 발표하게 되었다.

교구 사제들과 신자들의 반발

테바르츠-판 엘스트 주교의 교구장 재임 기간 동안 림부르크 교구는 늘 시끄러웠다. 신자들과 사제들의 불만과 항의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주교에게 대화를 요구했지만, 그 요구는 늘 무시당했다.

2009년 6월에는 교구 사제 11명이, 2012년 9월에는 교구 사제 21명이 주교에게 공개편지를 보내어 대화를 요청했지만 주교는 이를 무시하였다. 주교관과 교구센터가 완공된 후에도 의혹은 해명되지 않았고 결국 신자들의 집단행동이 일어난다. 2013년 8월 프랑크푸르트 지구 신자 4400명이 교구사목의 변화를 촉구하는 공개편지를 발표하고 이를 주교에게 전달하였다.

이후 테바르츠-판 엘스트 주교는 신자들에게 유감을 표시하고 자신에게 다시 신뢰를 보내줄 것을 요청했지만,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할 시간은 그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독일 언론의 역할

교구 사제들과 신자들의 반발이 워낙 컸고, 교회 문제를 사회 문제의 일부로 여기는 독일에서 이 스캔들이 조용히 묻힐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언론의 치열하고 집요한 취재가 없었다면 이번 스캔들이 주교의 정직까지 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특히 주간지 슈피겔은 2010년부터 3년여 동안 지속적인 취재를 하면서 인도 일등석 여행, 숨겨진 공사비 내역 등을 밝혀내어 진실에 다가가는 데 큰 기여를 했다.

  31백만 유로는 어디서 나온 돈일까?

테바르츠-판 엘스트 주교는 건축비가 공개된 후 건축비 운용은 합법적이며 교구 재산을 낭비하지도 않았다는 항변을 했는데, 이번 공사비 중 2백만 유로만 교구 예산에서 사용하고 나머지 비용은 ‘주교좌(bischoflicher Stuhl)’라고 불리는 주교 개인이 운용할 수 있는 돈에서 사용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독일 가톨릭 교구의 재산은 교회세를 통해 매년 들어오는 돈과 원래 교구가 갖고 있는 재산으로 나뉘는데, 교구가 원래 가지고 있는 재산을 ‘주교좌’라고 부르며 그 운용에 대해선 공개할 의무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재정이 부족하여 본당을 통폐합한다는 교구에서 주교 개인을 위해 그렇게 큰 돈을 쓴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정당화하기 힘들다는 여론이 강했고, 독일의 몇몇 교구는 주교좌 운용을 독립된 기구에 맡기거나 그 운용을 공개까지 하는 상황에서 이런 변명으로 도덕적 비난을 피하기는 힘들었다.

또한 뮌스터 대학의 토마스 쉴러 교회법 교수는 주교좌 운용 또한 주교좌관리위원회의 감사를 정당하게 받아야 하는데, 테바르츠-판 엘스트 주교는 이 위원회 기능을 완전히 마비시켰기 때문에 그의 항변은 법적으로도 올바르지 못하다고 비판하였다.

  교황 프란치스코의 개혁 의지가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을까?

2013년 7월, 교황 프란치스코는 슬로베니아 마리보 교구 교구장과 루블라나 교구 교구장의 사임을 받아들였다. 형식상 사임이지만 내용상으로는 경질에 가까웠는데, 두 주교는 교구 재산으로 부동산과 여러 사업체에 투자했다가 8억 유로를 날려 교구 재정을 거의 파탄에 빠뜨렸다고 한다.

쉴러 교수는 이 사건의 처리과정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회의 돈은 주교의 돈이 아닌 신자들의 돈이며, 신자들의 돈을 무책임하게 다루는 사람은 제재를 받을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전 세계에 알렸다고 평가하였다.

이승희

종교학과 신학을 공부했고, 가톨릭대학생연합회와 우리신학연구소에서 일했다. 독일 뮌스터 대학에서 가톨릭사회회칙의 인류가족개념을 세계시민주의 논의 안에서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박사논문을 쓰고 있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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