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하는 복음 – 예수와 헤로데의 갈등 – 지요하

지요하

생활하는 복음 3

  요한이 지녔던 성령의 눈

지요하

119일 연중 제2주일 / 요한 1,29-34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보다 먼저 세상에 널리 알려진 사람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요한에게로 와서 회개에 관한 가르침을 듣고 그에게서 물로 세례를 받았다. 또 많은 이들이 그의 제자가 되었다. 그는 대중의 주목을 받는 ‘스타’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한계와 본분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은 메시아가 아님을 고백하면서 메시아가 오실 길을 닦는 역할에 충실하고자 했다. 처음부터 자신의 사명을 알고 메시아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그는 ‘성령의 눈’을 지닐 수 있었다. 성령께서 비둘기 모양으로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예수님의 머리 위에 머무르시는 것을 그는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요한은 겸손의 표징이다. 자신의 한계와 본분을 깊이 인식하는데서 우러나는 겸손은 향기를 발산한다. 겸손의 향기 속에서 그는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었고, 사랑하는 제자들을 예수님께로 보낼 수 있었다. 겸손은 그리스도인들의 주요 덕목이다. 그리스도교가 널리 전파되고 서구 문명의 원동력이 되면서, 그리스도교 안에 내재되어 있는 겸손의 덕목은 여러 가지 양태로 발전하여 인류 사회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타협과 관용, 이해와 양보, 화해와 용서 등의 사회 규범은 그리스도인의 근본정신인 ‘낮춤과 비움’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굳이 복음정신을 의식하지 않더라도, 신앙생활을 착실히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사회생활 속에서 알게 모르게 복음정신을 체현(體現)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한계와 본분을 잘 헤아린 나머지 사사로운 이해에 집착하지 않는 슬기로운 처신들도 많이 드러낸다. 어떤 공직의 책임자 자리에 앉아 있는 동안 직무에 최선을 다하면서도 다음 사람을 미리 배려하는 경우도 있다. 과도하게 욕심을 내지 않음으로써 다음 사람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경우도 있고, 자신의 분명한 업적이 될 수 있는 일도 다음 사람과 나누어서 하려고 일정 부분을 남겨놓는 경우도 있다.

그런 배려와 겸양의 미덕, 혜안을 지닌 마음들이 정치권에도 통용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정치인들이 사사로운 이해에 얽매이지 않고 오로지 국가와 국민을 위한 정당한 일에 전력투구하며, 공정한 선의의 경쟁을 통해 다른 정치세력에게도 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기회를 주고, 그리하여 원활하게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참 모습이 아닐까. 사사로운 욕심보다는 대의를 위해 순조롭게 정권을 주고받으면서 다 함께 나라 발전의 정도(正道)를 찾아가는 것은 모든 민주시민의 소망일 터이다.

그런데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와 가치를 무시하고 훼손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국민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집권자나 집권 세력이 지나치게 욕심을 내고 정도에서 벗어나는 방식으로 정치를 한다면, 다음 집권자에게 큰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 또 자신의 과오가 노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자기 세력 안에서만 정권이 이어지도록 갖가지 무리수를 둘 수도 있다.

오늘 우리는 그것의 전형을 심각하게 목도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파괴되는 현상을 보고 분노하며 마음 아파하는 이들도 많다. 그리하여 ‘회개’를 촉구하는 세례자 요한의 목소리가 사회 곳곳에서 들리는 상황이다. 권력자의 독선과 오만, 아집과 불통의 모습들은 자신의 한계를 무시하고 부정하는 데서 나온다. 자신의 인간적 한계를 겸허히 성찰하는 데서 오는 겸손은 타인과 반대집단에 대한 배려도 가능케 한다.

요한의 겸손을 돌아보는 지혜의 눈이 무엇보다도 필요한 시기다. 자신의 한계와 본분을 잘 앎으로써 ‘성령의 눈’을 지닐 수 있었기에 비둘기 모양으로 하늘에서 내려오시는 하느님 성령을 볼 수 있었던 세례자 요한의 모습을 떠올리며, 우리 모두 ‘회개’를 촉구하는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지요하

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추상의 늪」이, 소설문학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충청남도문화상 등 수상했으며, 소설집과 시집 등 저서 15권 출간하였다. 대전교구 태안성당 총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정의평화민주 가톨릭행동’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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