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하는 복음 – 예수와 헤로데의 갈등 – 윤성희

윤성희

생활하는 복음 4

낚였네 낚였어!

126일 연중 제3주일 / 마태 4,12-23

20년 전, 서울의 작은 성당에서 주일학교 교사를 시작했다. 중고등부 주일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교사회 문턱을 넘었고, 이런 저런 교육을 받으며 교사 임명장을 받았다. 그 즈음 마태복음을 읽었다. ‘어부 네 사람을 제자로 부르시다’라는 내용이었다.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고 하신 말씀에 밑줄을 그었다. 나도 교사로서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본당에서 3년 동안 열심히 일했다. 중고등부 아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성가대를 맡고, 교감을 맡으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봉사했다. 그리고 서울대교구 본당 중고등학생 사목부(지금의 청소년국 중고등부)로 건너와 그 곳에서 9년 동안 ‘하늘마음’을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교사 연수에 동반해 떼제 기도를 이끌었다. 하느님께서 주신 글 쓰는 달란트로 원고를 쓰고, 떼제 기도 노래를 부를 때마다 정말 사람 낚는 어부가 되어가는 것 같았다. 나의 글과 노래 속에서 하느님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오래 전에 꿈꾸었던 그 어부가 되어 간다고 믿었다.

그러나… ‘결혼’이 복병으로 작용했다. 나름 성가정을 꿈꾸며 결혼했지만 시댁과 친정, 남편과 아이에게 충실하면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게다가 나는 ‘일하는 엄마’였다. 주일에는 나도 쉬고 싶었고, 가족들과 단란하게 여행을 떠나 맘껏 즐기고 싶었다. 첫 아이를 임신하자마자 사목부를 떠났다. 그리고 나는 ‘발바닥 신자’가 되었다. 아이를 낳고 미사를 드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칭얼대는 아이를 안고 유아방에서 드리는 미사는 참혹했다. 미사를 드리러 온 건지, 동네 놀이방에 온 건지 가늠할 수 없는 공간에서 미사를 한다는 것은 우울한 일이었다. 주일마다 ‘차라리 미사를 드리지 말까?’하는 유혹에 빠졌다. 그러나 나는 혼배성사를 하면서 ‘자녀들을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교회의 법에 따라 올바르게 교육하겠다.’고 선언한 사람이었다. 유아방에서 드리는 미사가 참혹하고 우울해도 아이를 데리고 미사를 드려야 했다. 나는 비참할지언정, 그 안에서 아이들은 보고 배우는 것이 있으리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흘러 큰 아이가 초등부 주일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아이가 묵주기도를 하자며 묵주를 찾기 시작했다. 이게 웬 일인가 싶어 서둘러 묵주를 찾아다 아이에게 건네주고, 함께 기도를 시작했다. 잠도 자야하고 피곤하니 한 1, 2단만 하겠지 싶었는데, 아이가 5단을 다 하자고 제안했다. 어쩔 수 없이 큰 아이와 함께 빛의 신비를 시작했다. 우리가 기도하는 동안 세 살 배기 작은 아이는 1단 묵주를 팔에 끼고 ‘성모님은 엄마예요’라는 책을 보았다. 기도를 시작한 김에 기도서에 있는 ‘자녀를 위한 기도’를 드렸다. 그랬더니 큰 아이가 그럼 자기는 ‘부모를 위한 기도’를 하겠다며 성호경을 그었다. 느낌이 참 묘했다. ‘부모를 위한 기도’를 마친 아이는 기도서를 펼치고 ‘병자를 위한 기도’를 시작했다. 요즘 엄마가 아프니까 빨리 낫게 해달라고 기도를 해야겠다는 것이다. 순간 울컥했다. 아픈 엄마를 위해서 기도를 하겠다는 그 마음에 감동했기 때문이다. 엄마를 위한 기도를 마친 아이는 다시 본당 보좌 신부님을 위해 ‘사제를 위한 기도’를 드렸다.

정성껏 기도하는 아이를 보면서 나는 깨달았다. 하느님이 만드신 사람 낚는 어부는 내가 아니라 우리 큰 아이라는 것을. 시끄럽고 정신없었던 시간들이었지만, 그 유아방에서의 미사를 통해 아이가 사람 낚는 어부가 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마침 큰 아이의 세례명이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이니 큰 아이가 사람 낚는 어부가 되었음은 분명하다. 그리고 아가다 엄마는 사람 낚는 어부인 야고보 아들에게 낚이고 만 것이다.

새해가 시작되고, 아홉 살이 된 야고보 아들은 오늘도 낚싯줄에 걸린 아가다 엄마에게 말한다. “엄마! 우리 기도해요.”라고

윤성희

프리랜서 작가. 과거에는 주일학교 교사를 하며 방송작가, 웹 카피라이터, 노랫말 작사가, 컨텐츠 기획자 등으로 일했다. 현재는 진심이 담긴 편지 한 통이 사람과 세상을 바꾼다는 믿음으로 ‘손편지 쓰기’ 강의를 기획해 진행하고 있으며 프리랜서 작가와 글쓰기 강사로 활동 중이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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