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톡톡 – 연극 <해피투게더>

강경희

무대에 불이 켜지고 말쑥하게 차려입은 한 점잖은 남자가 관객 가까이 다가와 제안한다. 우리 모두 가슴에 손을 얹고 마음의 깊은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자고. 그리곤 이 남자의 긴 독백이 이어진다. 신이 창조한 우주와 세상 만물에는 질서가 있으며 우리는 신의 창조질서를 잘 보존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그는 계속하여 사회의 정의와 질서, 그리고 신의 축복에 대하여 열변을 토하며 하루하루 성실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없는 불안한 세상을 탓한다. 독실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한 이 남자의 언변에 관객들은 자신도 모르게 그의 말에 동의하여 고개를 끄덕거린다.

하지만 부랑자, 노숙인, 거지들은 사회의 정의와 질서를 저해하는 ‘쓰레기’이며 자신은 사회의 정의와 질서를 바로잡는데 일조하고 있다는 그의 궤변이 시작되면서 이 남자의 민낯이 드러난다. 부랑자, 노숙인, 거지들을 위해 공짜로 먹여주고, 재워주고, 입혀준 것이 무슨 잘못이냐고 소리를 높인다. 시(市)로부터 지원받은 돈 20억 원으로 3000여 명이 1년간 먹고 입는 데만도 빠듯하고, 비록 ‘약간’의 빼돌림이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설거지 하다가 접시 몇 장 깨진 것’이라는 논리를 편다. 너희들이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는 부랑자, 노숙인, 거지들을 거두어 사회복지법인을 어렵게 운영하다보면 작은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 거 아니냐는 항변이다.

박인근 원장은 관객들에게 가슴에 손을 얹고 마음의 소리에 솔직히 귀를 기울여보라는 말을 잊을만하면 반복한다. 너희들은 아니라고 하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 않느냐고. 아무리 인권과 복지를 얘기해도 막상 너희들이 나 같은 상황이라면 나와 다를 것 같으냐고. 내 안의 박인근을 들여다보게 하는 불편한 초대였다.

이렇듯 연극은 부산형제복지원을 운영하며 감금과 폭력을 일삼았던 개신교 신자인 박인근 원장의 마음과 심경을 들려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곤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찬양하고 신의 축복에 감사하던 그의 입에서는 욕설이 튀어나오고 기도를 위해 모았던 손에는 몽둥이가 들린다. 시설에 수용된 이들은 구타와 폭력 속에 강제노역을 하며 시설 안 교회에서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를 한다. 많은 신앙언어 가운데 ‘하느님’만큼 오염된 낱말이 있을까하는 생각과 역겨움이 올라온 대목이었다.

박정희 군사독재정권 시절인 1975년, 내무부 훈령 410호 ‘부랑인 신고, 단속, 수용, 보호와 귀향 및 사후관리에 관한 업무처리 지침’에 따라서 부산 ‘형제복지원’이라는 부랑인 수용시설이 설립된다. 전두환 정권 말기인 1987년 세상에 알려질 때까지, 12년 동안 시설 안에 총 3,500여명이 수용되어 구타, 폭행, 암매장을 당하다 513명이 사망했다. 이 시설은 부랑인 선도를 목적으로 해마다 국고 지원을 받았으나, 실제로는 고아, 장애인, 길 잃은 아동, 2주 뒤에 결혼을 앞둔 청년, 아내 없는 집이 적적하여 역내에서 잠시 잠든 세일즈맨, 사소한 말다툼으로 신고당해 들어온 사람 등 평범한 사람들도 속해 있었다. 박인근 원장은 강제로 사람을 가두고 살인을 저지르고도 2년 6개월의 형밖에 받지 않은 채 현재 1,000억원대의 자산가로 사회복지사업가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고 한다.

연극은 감정을 자극하려 하지도 비장하게 고발하려 하지도 않는다. 당시 뉴스, 신문 스크랩 영상, 구석에 나란히 앉은 두 여배우의 노래와 추임새를 통해 있었던 일들을 덤덤히 재현해 낸다. 혹시나 싶어 연극이 시작되기 전 손수건을 꺼냈지만 쓸 일은 없었다. 당시 국가정책의 야만성, 종교의 탈을 쓴 사회복지법인의 탐욕, 실적에 눈먼 구청과 경찰, 사건을 축소하려는 검찰의 행태는 모습만 달리했지 지금도 벌어지는 일이기에 공연 내내 참지 못할 분노가 목구멍을 치고 올라왔다.

연극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마지막 눈 내리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관객들은 숨죽이고 그들의 소리 없는 절규를 바라보게 된다. 하얀 휴지로 된 눈을 들어 세상을 향해 던지듯 관객을 향해 전력을 다해 던지지만 그들을 외면하는 세상처럼 눈은 힘없이 제자리로 떨어지고 만다. 그래도 온몸으로 다시 던지고 또 던지기를 반복하는 그들의 격렬한 몸짓과 살아있는 눈빛은 자신들의 고통과 절규에 귀를 기울여달라는 무언의 외침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우리 모두 ‘해피투게더’한 세상이어야 한다는 외침으로….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생생한 영상, 이마에서 목덜미까지 타고 흐르는 땀줄기가 보일 정도의 열정적인 퍼포먼스로 1시간 50분이 지루한 줄 모르게 지나간다.

강경희

영어선생으로 일하다 스스로에게 안식년을 주고 싶어 잠시 일을 놓고 그간 해보고 싶던 공부를 하고 있다. 뛰어난 미모와 지성으로 주위에 남성들이 끊이지 않지만, 아직은 마음을 빼앗길만한 남자가 없다는 것이 요즘의 고민이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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