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신연의 시대 읽기 – 두려움 없는 신앙

이미영

갈라진 시대의 교회 풍경

최근 여러 본당에서 소위 진보적이라는 사제들과 소위 보수적이라는 신자들의 갈등 사건이 심심찮게 터지고 있다. 그동안 신자들이 사제에 대해 불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본당에서 독재자처럼 행세하며 신자들을 무시하거나 사치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사제를 만날 때면 신자들은 당연히 그런 사제를 좋아하지 않았다. 뒤에서 흉을 보거나 그 사제와 거리를 두면서 애써 신경 쓰지 않으려 하고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이런 문제들을 공개적으로 문제제기하거나 교구장에게 탄원하는 신자들도 일부 있긴 했지만, 대부분의 신자는 ‘신부님도 사람이니 어쩔 수 없지.’하면서 개인의 허물로 덮어주려는 분위기가 강했다.

그런데 요즘 신부님 말씀이나 결정에는 무조건 순종적으로 따르던 신자들이 참 많이 변했다. 미사 중에 정치적 발언은 하지 마시라고 사제에게 따로 요청하는 것은 그나마 양반이고, 강론 중에 벌떡 일어나 큰 소리로 호통 치거나 나가버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신자들이 싫어하는 그런 ‘나쁜’ 신부님도 아니고 오히려 복음적 삶을 고민하며 열심히 살려고 애쓰는 분들이다. 그러나 신자들, 특히 본당 사목을 함께 논의하는 사목회 임원급의 신자들이 격렬한 반감을 드러내면서 강압적이고 무례한 태도로 사제를 제지하곤 한다.

이러한 일을 겪은 사제들은 큰 상처를 받고 도망치듯 다른 본당으로 떠나거나, 신자들 눈치를 보며 입을 닫고 그들과 더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임기가 끝나길 기다리게 된다. 신자들은 누가 옳고 그름을 떠나 이런 일이 본당 안에서 일어나는 것 자체가 곤혹스러워 문제의 소지가 될 만한 일들이 교회 안에서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교회 어르신들도 평신도를 대표자들과 갈등을 빚는 것은 교회가 분열되는 모습으로 보고, 일치를 위해서라도 사제들은 정치적 발언을 삼가라는 당부를 한다. 그럼 ‘문제를 일으키는’ 사제나 수도자가 침묵하면 교회 일치가 이뤄질까?

침묵을 요구하는 두려움

교회 안에서 정치적 침묵을 통해 일치를 바라는 일련의 흐름을 보면서, 과연 무엇이 이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일까 생각해 보게 된다. 지금 교회 안에서 나오는 사회적 발언은 평범한 개인보다는 사회 지도층의 문제나 한국 사회가 나아가는 방향에 대한 문제 제기의 성격이 짙다. 그럼에도 많은 신자가 반발하는 것은 한국교회 구성원들이 중산층화 되면서 그 비판을 직접 받는 사회 지도층의 자리에 있는 이들이 많아져서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도 지금도 이미 불안한 한국 사회가 더 불안해질까봐 두려워하는 평범한 이들의 걱정이 더 커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한국 사회가 불안한 요소는 여러 가지이지만, 특히 한국전쟁과 IMF 경제 위기는 우리가 쉽게 극복하기 힘든 큰 두려움을 심어 주었다. 거리 미사에 참여하거나 사회 문제에 대해 강론을 하는 사제와 수도자들에게 ‘종북 사제’, ‘빨갱이 수녀’라는 낙인을 너무나도 쉽게 찍고 그것이 예사롭게 여겨지는 것을 보며, 한국 사회가 여전히 전쟁의 기억에서 벗어나 있지 않음을 새삼 실감한다. 6.25 전쟁 때 북에서 내려온 성직자와 수도자 중에 간첩이 있었다느니, 80년대 대학에서 주사파에 세뇌된 이들이 사제나 수도자가 되어 지금 저렇게 날뛰는 것이라느니 하는 얼토당토 않은 유언비어가 떠돈다. 그리고 그러한 말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힘을 가진 채 퍼져나간다.

비교적 사회 참여에 적극적인 한 수도회의 수사님께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수도회의 젊은 형제들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회 참여에 더 적극적이기를 바라지만, 6.25 전쟁을 겪은 선배들은 “너희는 안 겪어봐서 모른다.”라며 마땅찮아 하신다는 것이다. 전쟁 중에 북한 공산당이 저지른 살인과 강간 등 참혹한 현장을 직접 목격한 그분들은, 국가 체제에 대한 비판은 그야말로 전쟁이 다시 일어날 가능성이 커지는 것처럼 불안해하신다고 했다. 전쟁은 인간성이 철저히 파괴되는 비극이다. 전쟁을 겪은 세대들은 극한 생존의 위협을 마주하였고, 또한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한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전쟁의 기억이 점점 옅어지고 경제적으로도 삶이 나아지고 인간다운 삶에 대한 갈망이 깨어나면서 한국 사회는 민주주의도 이뤄냈다. 그런데 이제 겨우 살만해졌다고 느낄 때, IMF 경제위기가 닥쳤다. 누가 죽을지 모르는 전쟁과 달리 힘 있는 자는 살아남을 수 있다는 IMF 경제위기는 살아남기 위해 애써야 한다는 더 큰 두려움을 우리에게 안겨 주었다. 최근 방영된 <응답하라 1994>라는 드라마가 추억하듯 IMF 이전의 90년대 한국 사회는 젊은이들이 거대한 시대 담론이나 사회적 요구에 짓눌리지 않고도 미래를 낙관하며 자유와 문화를 누릴 수 있는 여유로움이 있었다. 그러나 IMF는 그러한 여유와 안정을 송두리째 빼앗아 버렸다. 경쟁력을 갖추지 않고서는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없는 비정한 현실을 우리에게 각인시키며, 살아남기 위해선 자신의 존재 가치를 스스로 증명하도록 요구한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불안한 미래가 지배하는 것이다.

교회 안의 예언자적 발언들은 이런 역사적 비극과 체제의 불안을 넘어서도록 우리에게 요청하지만, 깊게 새겨진 두려움에게 새 하늘 새 땅의 삶은 너무 아득하게 느껴진다. 유대 사회를 유지해 온 율법을 뛰어넘는 새로운 가르침을 전하는 예수가 너무나도 위험하게 여겨졌던 것처럼, 오늘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은 우리의 두려움을 자극하여 불편하게 만든다. 누군가 고통 받고 있다는 사실을 돌아보기엔,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이 고통이 더 크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신앙, 두려움에 맞서는 힘

교회의 좀 더 적극적인 사회 참여를 원하는 이들은 ‘가난한 이들을 돕는 교회’를 넘어서서 ‘스스로 가난한 교회’가 되어 가난한 이들에게 고통을 주는 사회 구조를 변화시키는데 영적인 힘을 불어넣길 기대한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나를 성자라 한다. 그러나 가난을 만드는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나를 빨갱이라 한다.”는 돔 헬더 까마라 대주교의 말처럼 우리의 두려움은 교회의 역할을 제한하고 있다.

여성신학자 도로테 죌레는 하느님을 깊이 만나는 신비 체험이 우리의 삶을 저항으로 이끈다고 말한다. 신비주의를 이해하는 사람들은 굳어진 사회 순응적 제도들에 맞서서, 고통 가운데 하느님을 찾아간다는 것이다. 죌레는 『신비와 저항』이라는 책에서 수많은 신비주의자의 삶을 소개하며 그들이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똑바로 서서 행동했음을 보여준다. 신비 체험, 곧 우리의 신앙은 두려움에 억눌려 ‘나’만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이웃’에게로, ‘세상’으로, 결국 ‘하느님’께로 이끌어 줄 것이다. 지금 이 시대, 우리의 신앙이 요구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것이 아닐까.

  왜 내가 걱정해야 하는가?

나를 생각하는 것은 내가 할 일이 아니지 않은가.

내가 할 일은 하느님을 생각하는 것이다.

나를 생각하는 것은 하느님이 하실 일이다.

  • 시몬느 베이유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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