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새 추기경 청원운동과 교회 쇄신 – 김연수

김연수

청년의 눈으로 본 추기경 청원운동

김연수

  김수환 추기경은 교회가 사회의 어두움을 밝혀 주는 빛의 구실도 생명을 부패에서 보호하는 소금의 역할도 하지 못하고 오히려 부패를 연장시키는 방부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했었다. 불행히도 작년 염수정 추기경의 발언이 이러한 역할을 하고 말았다. 불통 정권 아래서 고난을 겪어온 사람들은 천주교 정의구현 전주교구 사제단이 봉헌한 박근혜 퇴진을 위한 시국미사가 전국으로 번져 나가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이틀 후 염 추기경은 이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사제의 정치 개입 불가’ 발언은 박근혜 정부와 보수언론들이 박창신 신부를 종북몰이하는데 정당성을 부여했으며 보수적이거나 사회교리를 접하지 않은 신자들을 눈멀게 했다. 더 많은 사제와 신자들의 사회 참여를 이끌어 내야 하는 시국에 오히려 현 정권과 기득권층을 득의양양하게 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한국에 새 추기경이 서임 된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어떤 분이 추기경이 되실 것이냐에 대한 평신도들의 우려가 커졌다. 나 역시 이러한 염려와 절박함으로 가톨릭행동의 청원 운동에 참여했다. 교황께 가난한 이들을 위한 추기경을 청원하는 일이 교회 역사상 없었던 일인 만큼 청원 운동에 대한 기대와 염원은 더욱 컸다. 그러나 청원문과 서명자 명단을 교황청에 전달하기 직전, 우리는 염수정 대주교가 한국 가톨릭교회의 새 추기경으로 임명되었다는 소식을 들어야 했다. 신자들의 간곡한 청원이 서임에 반영되지 못한 것은 통탄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온전히 절망적이지만은 않다. “교회는 스스로 더 가난해지고 가난한 사람들이 편히 쉴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라는 염 추기경의 14일 인터뷰 내용으로 미루어 보아 우리의 염원이 조금은 전달되지 않았을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나는 이 청원운동이 예상치 못한 소중한 성과들을 가져왔음에 감사하고 있다.
청원서에 서명하고, 또 다른 신자들에게 청원 운동을 알리는 과정에서 우리는 나와 내 이웃이 ‘안녕’한 세상을 갈망하고 이를 위해 ‘행동’하는 서로의 존재를 확인했다. 온라인에서 그리고 현장에서 만난 평신도들은 ‘세상 속으로 가 힘없는 사람들과 고통을 나누는 교회’를 향한 목마름이 이 얼마나 깊고 뜨거운지 확인했고 서로가 서로에게 희망이 되었다. 서명 시작 하루 만에 1,700여 명이 참여했고 평신도들이 자발적으로 홍보에 나선 것이다. 청원 취지에 공감하는 평신도들은 SNS와 카카오톡으로 서명을 알렸을 뿐만 아니라 차가운 거리로 나섰다. 한 활동가는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5일 동안 1인 시위를 했고 명동예술극장 앞에서 새 추기경에 대한 염원의 메시지를 적는 시민 캠페인을 했다. 온 가족이 모여 앉아 자녀들에게 서명의 의미를 설명하고 서명을 받으셨다는 분, 수원교구 기산성당 시국미사와 인천교구 노동자 센터 등에 찾아가 청원운동을 알렸다는 분들, 온라인 서명 참여가 어려운 어르신들의 서명을 받아 모아 팩스로 보내오시는 분들이 계셨고, 교도권 침해라는 신부님의 전화를 받으면서까지도 꿋꿋이 교우들에게 서명을 부탁하는 자매님도 계셨다. 또 가톨릭행동이 주최한 시국미사에 왔던 대학생들도 청원운동 홍보에 참여했다.
이렇듯 청원 운동 홍보에 개개인이 자발적으로 나서면서, 평신도들은 스스로 교회쇄신에 주체적으로 참여해야 함을 온몸으로 자각했다. 우리는 예수님이 권위적인 제도와 율법 전통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시고 저항하신 분임을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겼고 초대교회에서는 교회직무를 교회 공동체 구성원의 인정에 기반을 두었다는 사실을 기억했다. 그러면서 평신도가 교회 공직자 임명에 영향을 끼칠 수 없는 제도교회에 대해 비판적 성찰을 하기도 했다. 청원문이 본래 바라던 성과를 내지 못했고 서임 후에야 전달되었지만, 나는 이 청원운동이 일회적으로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한국과 전 세계의 가톨릭 신자들은 교회에 청원할 수 있을 것이며 교회 구조 개혁에 참여할 다양한 방법을 논의하고 실행할 것이다. 교회가 고위 성직자들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의견을 수용하고 쇄신을 이루도록 하는데 이 청원운동으로 하여 첫걸음을 내디뎠다고 생각한다.
서명운동에서 주목할 만한 또 한 가지는 청원운동에 대한 관심이 비단 가톨릭 신자들뿐만 아니라 일반사람들에게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천주교의 시국 관련 행사가 주로 교계 언론에만 보도되었다면 이번 청원운동은 일반사회 언론들에 잇따라 보도되었다. 또 비신자들도 참여 문의가 끊이질 않았다. 교회가 정직한 목소리를 내어 비상식적이고 부정부패한 한국사회의 정화에 이바지하기를 바라는 수많은 이들의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의 행보로 보아 보수적 성향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염 대주교가 새 추기경으로 서임되며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벗이 될 수 있는 사목자, 어려운 시기의 지도자’ 에 대한 기대는 어려워졌을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더 무거운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이 길을 갈 것이다. 일주일간 개혁적 추기경님을 희망하며 걸어온 길에서 우리는 가난한 교회를 희망하고 하느님 나라를 꿈꾸는 실천적인 형제자매들을 만났다. 그동안은 개혁적 평신도 운동에 소수의 평신도만이 참여해왔지만, 이번 청원운동이 연대의 끈이 되어 전국의 더 많은 평신도들이 교회 쇄신과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새로운 평신도 운동에 동참해 주시리라 생각한다.

김연수

정의, 평화, 민주 가톨릭 행동의 실행위원으로 간호학과 재학중인 21살 대학생이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2월호

%d 블로거가 이것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