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여기 돋보기 – 가정 문제에 평신도 목소리 직접 반영해야

황경훈(아시아 평화 연대 센터장)

교황 프란치스코는 즉위 후 첫 주교시노드의 주제를 ‘가정’으로 정하고 오는 10월 로마에서 개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아무래도 인공피임과 이혼자 냉담 등의 문제가 그만큼 시급했다고 보인다. 이번호 지금여기 돋보기는 이 주교시노드가 한국천주교회에서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소개하는 기사를 골라 그 의미를 짚어보고 관련된 이야기를 평신도의 시각에서 얘기하고자 한다.

교황청 가정생활 실태조사, 한국에선 어떻게 진행됐나?

(기사 전문 : 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561)

한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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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잉글랜드-웨일즈 주교회의의 경우 전 신자를 대상으로 한달 간 온라인 설문조사를 벌여 교구별로 답변을 취합했다. 이곳 주교회의 홈페이지에는 세계주교대의원회의와 주제에 대한 설명도 자세히 실려 있다. (출처: 영국 잉글랜드-웨일즈 주교회의 홈페이지)

지난 10월 8일 교황 프란치스코는 ‘가정 사목과 복음화’를 주제로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3차 임시 총회를 오는 10월 소집한다고 발표했다. 곧이어 교황청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사무국은 각국 주교회의에 임시 총회를 위한 예비 문서를 전달하면서, 문서에 담긴 질문을 “교구와 본당에 가능한 널리” 배포하고 그에 대한 응답을 정리해 1월 말까지 보낼 것을 요청했다. 교황청이 세계주교대의원회의에 앞서 주교들에게 지역 교회의 현실을 묻는 것은 통상적인 일이었지만, 의견 수렴 대상을 교구와 본당으로까지 확대한 것은 처음이다.

특히 언론은 동성애와 이혼, 피임 등 민감한 주제가 포함된 설문 내용에 주목했다. 주요 국내외 언론은 이를 교황 프란치스코가 그간 보였던 개방적인 행보의 일환으로 해석하며, 여론에 따라 교회가 고수해온 입장을 바꿀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내놨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홈페이지에 게시한 예비 문서 한글 번역본을 보면, 예비 문서의 질문은 가정과 결혼, 이혼과 재혼, 동성 결합 등으로 태어난 자녀, 피임 등 8개 주제로 나뉘며, 이들 주제와 관련한 사목 프로그램의 효과와 신자들이 처한 현실을 묻고 있다. (중략)

12개 교구 중 각 본당으로 설문을 보내 조사를 벌인 교구는 없었다. 나머지 교구 3곳 중 2개 교구는 설문 답변을 누가 작성했는지, 혹은 어느 부서에서 실무를 담당했는지 확인할 수 없었고, 1개 교구는 “교구장 주교가 직접 작성해 보낸 것 같고, 별다른 공유가 없었다”고 밝혔다. (중략)

예비 문서의 설문이 근본적으로 신자 전체의 의견을 골고루 반영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향후 교회의 사목 방향을 논의하기 위한 실태조사이므로 사목자의 의견뿐만 아니라 교회의 구성원인 평신도의 의견 또한 반영되어야 하며, 특히 이번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주제가 가정인 만큼 가정생활을 실제로 경험하고 있는 신자들의 의견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중략)

외국에서는 이번 설문의 대상을 전 신자로 확대하고 신자들의 가정생활 실태를 파악하는데 적극 활용하는 사례들이 있었다. 영국 잉글랜드-웨일즈 주교회의의 경우 전 신자를 대상으로 한달 간 온라인 설문조사를 벌여 교구별로 답변을 취합했다. 이곳 주교회의 홈페이지에는 세계주교대의원회의와 주제에 대한 설명도 자세히 실려 있다. 벨기에 주교회의는 홈페이지에 예비 문서 원문을 게시하고, 이메일로 설문에 대한 답을 받았다. (후략)

본당 신자도, 사제도 모르는 가정에 관한 세계주교시노드

방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질문지를 본당으로 내려 보내지 않고 교구단위에서 답변을 정리했으니 본당 사제나 평신도가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이와 관련해 두 가지가 문제로 드러난다. 하나는 전달하는 방식, 곧 ‘민주적’ 절차의 문제다. 가정 안에서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이루고 그 테두리에서 일생을 사는 것은 평신도이다. 그렇기에 가정과 관련한 것이라면 마땅히 평신도의 의견을 수렴하여 ‘한국천주교회 평신도가정이 처한 현실은 이렇다.’고 대답해야 한다. 그러나 위 기사가 보여주듯이 군종교구를 제외하고 14개 교구를 확인한 결과 전 교구가 예외 없이 예비문서(질문지)를 본당에 내려 보내지 않고 교구에서 처리했다. 내용도 인공피임, 이혼, 동성결합과 같은 현재를 반영해야 하는 민감한 것들이어서, ‘기존 설문결과를 정리하여 답변을 작성했다.’고 해명한다고 하더라도 오늘의 현실을 반영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를 현재 한국 평신도의 의견이라고 한다면 그건 참이라고 보기 어렵다. 가정 문제를 경험차원에서 체득할 수 없는 주교들이기에 배워야 하는 것이라면, 어떤 이유가 있든 우선 평신도의 의견을 직접 듣는 일이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마땅한 순서가 아닐까? 그러나 아쉽게도 주교회의나 어느 교구에서도 평신도의 의견수렴을 위한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다.

또 다른 문제는 교회기관에서 심심치 않게 목격하는 관료주의다. 시간이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위 영국 주교회의 홈페이지의 예처럼 주교회의나 교구 웹사이트를 이용해 인터넷이 가능한 곳이면 어디서든 개인이 답할 수 있게 한다면, 한 달의 시간으로도 의견을 직접 수렴하는 데 크게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또 미국의 한 교회 소식통에 따르면, 11월 26일 현재 미국 46개 교구의 웹사이트에서 이 질문지를 포스팅해 신자들의 의견을 받고 있다. 그밖에 여러 서구권 나라 주교회의와 교구들도 이런 간단하고도 효과적인 방법을 택했다. 상황이 이러하다면 한국 교회는 정녕 이를 못하는 것인가, 아니면 안하는 것인가? 한국 교회가 이러한 생각을 하지 못했다면, 그 자체가 하느님 백성의 대다수를 이루는 평신도를 안중에 두지 않는 성직자의 무지와 무관심을 드러내는 것이요, 알고서도 안 한 것이라면 성직자가 관리로 있는 기관의 관료주의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성직자의 무지와 무관심에 관료주의까지 더해진 한국 교회에 쇄신이 절실한 이유를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이번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미 2012년 세계주교시노드, 1996년에 열렸던 아시아주교시노드 때에도 지금과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직접 경험한 기억이 있는 아시아주교시노드 이야기를 해보기로 하자.

아시아 주교 시노드의 전철 되밟아

아시아주교시노드 당시 14개 질문이 포함된 개괄적 안내서라고 할 수 있는 <의제개요>가 1996년 9월에 나왔고 1998년 4월 19일부터 5월 14일까지 로마에서 시노드가 열렸다. 당시에도 아시아의 여러 주교회의나 교구에서는 토론회를 여는 등 <의제개요>에 대해 적극적인 준비를 했다. 그러나 한국교회에서는 교구나 본당 차원에서도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사안의 중대함을 인식했던 ‘우리신학연구소’와 ‘새 세상을 여는 천주교 여성 공동체’는 답변서를 만들어 직접 교황청으로 보내기도 했다. 따라서 아시아 교회의 현실 문제를 다루는 주교시노드 때에도 제도 교회를 통한 한국 천주교 평신도의 목소리는 거의 수렴되지 않았고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아시아 교회 차원에서 보자면 의견수렴 절차의 문제보다도 <의제개요>의 서구적 관점에 대한 아시아 여러 주교회의의 비판이 더 두드러졌던 점이 기억에 생생하다. 베트남 주교단의 응답문을 간단히 소개하면 이렇다. 베트남 주교단은 고대 종교전통이 아시아인의 삶에 깊이 자리 잡고 있기에 교회의 복음화 방법을 재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한 이들은 <의제개요>가 지난 25년 동안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의 작업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았고, 교회를 이미 완성된 하느님 나라로 보는 등 ‘가부장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여전히 공산권에 있는 교회임을 생각하면 놀라운 발언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어쨌든 교황 요한바오로 2세는 그 이듬해 11월에 교황 권고 <아시아 교회>를 발표했으나, 베트남 주교단의 우려대로 권고문 안에는 FABC에서 발표한 수많은 문헌 가운데 단 하나도 인용되지 않았다.

지금여기다시 보기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의 이 기사는 타 교계 언론과는 다르게, 시노드의 의미를 균형 있게 다양한 각도에서 다루려한 의도와 전 교구에 직접 연락해 본당까지 설문이 내려갔는지 확인한 성실성이 돋보인다. 그러나 기사가 너무 늦어 ‘교회의 약’의 구실을 할 이슈메이킹의 타이밍을 놓쳤다. 그 전은 아니더라도 ‘예비문서’가 번역되어 주교회의 웹사이트에 올라간 시점(2013.10.29)에 이 기사가 나왔다면, 이 문제에 관한 여론 형성의 기능을 충실히 해낼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기사는 시노드를 소개하면서 예비문서에서 설문의 주제들은 언급하고 있는데 단 몇 개라도 주요 질문이 무엇인지 예로 들어 주었다면 독자들이 시노드 성격을 더 쉽고도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도 있다. 보충취재가 필요해 보인다.

기사는 본당으로 설문이 내려가지 못한 이유를 ‘시간이 없어서’라고 쓰고 있는데, 시간이 없다는 것은 상대적인 말이고, 더욱이 그러한 판단은 독자가 내려야지 기사가 직접 말하는 방식이어서는 곤란하다. 신문을 미디어로 부르는 것은 신문이 매개하여 전달해주는 구실을 하는 ‘매개자’이지 ‘판단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부연하면, 직접 판단했을 때 그와 다른 생각을 가진 독자를 잃을 수 있기에 주장하는 바가 있더라도 기사는 늘 ‘인용’을 통해 자신의 말을 해야 하는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일반기사 제목에 ?, ! 같은 부호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언론계에서는 상식으로 통한다는 점에 유의하길 바라며 후속기사를 기대한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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