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하는 복음 4 – 나의 공짜 친구인 미가에게

윤성희

나의 공짜 친구인 미가에게

223일 연중 제7주일 / 마태 5,38-48

미가야 안녕? 그 동안 잘 지냈니? 창원에 있는 본당은 어떠니? 신자들하고는 많이 친해졌니? 너의 따뜻한 마음을 그 곳 신자들도 알아챘으리라 믿어. 가까이에 있을 때 한 번 보고 싶었는데, 또 다시 멀어져버렸구나. 그래도 마음의 거리는 여전히 가깝다는 것. 너도 알고 있지?

난 요즘 편지쓰기 강의를 하고 있어. 작가로 글만 쓰면서 살다가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게 참 재미있어.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나눌 수 있다는 게, 그 나눔으로 한 사람이 조금씩 변해간다는 게 참 뿌듯하거든. 주로 기업체와 학교에서 강의를 하는데 내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주는 사람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그런데 가끔 나를 곤란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단다. 작년 8월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어. 그 날은 비가 엄청나게 내리는 날이었어. 이 비를 뚫고 사람들이 얼마나 모일까 걱정스러운 날이었지. 다행히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즐겁게 강의를 할 수 있었단다. 이론 강의가 끝나고 실습 강의를 할 때였어. 어떤 사람이 내게 와서 말을 하더구나. “오늘 강의에 늦어서 앞부분을 듣지 못했어요. 그러니 강의안을 좀 주세요.”라고. 아! 또 강의안을 달라는 얘기였어. 강의를 하다보면 꼭 그런 사람들이 있어. 내가 강의 때 사용하는 강의안을 달라는 사람들 말이야. 그런데 그걸 주는 일이 쉽지가 않단다. 그 강의안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내가 몇 달을 공부하고 고민해서 만든 결과물이거든. 아직 편지라는 걸 강의 콘텐츠로 하는 사람도 없어서 좀 특별한 콘텐츠이기도 하고. 내가 고생해서 어렵게 만든 걸 아무렇지도 않게 공짜로 달라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솔직히 화가 났어. 자기들이 나한테 준 게 뭐 있다고, 나더러 자꾸 달라고 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단다. 그래서 ‘이것은 나의 지적재산권이다. 그리고 출판하기로 계약이 돼 있어서 저작권 문제 때문에 드릴 수가 없다.’고 대답을 했지. 그랬더니 기분 나쁘다는 표정으로 홱 돌아서 가버리는 거야. 아무리 강의 시간에 분위기가 좋으면 뭐하겠니. 그런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마음이 불편해지는 걸. 그 날도 그랬어. 집으로 돌아와서도 내내 마음이 불편했단다. 그래서 잊어버리려고 책을 펼쳤지. 그런데 오 마이 갓! 내가 펼친 책 속에 이런 구절이 있는 거야.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

으악! 난 비명을 지르고 말았단다. 하느님은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시는 거니? 내가 얼마나 힘들게 강의안을 만들고 준비했는지 당신이 제일 잘 아시면서 그걸 공짜로 주라고 하시냔 말이야. 아흑! 그런데 그 말씀에 난 심하게 흔들렸단다. 그래서 결국 강의안을 출력해서 자세한 설명을 썼지. 그리고 편지 한 통을 함께 써서 등기로 보냈어. 강의안을 받은 사람이 기뻐하며 고맙다는 연락을 할 거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그 사람에게는 아무런 연락이 없는 거야.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니? 최소한 고맙다는 인사 정도는 해야 하는 거 아니니? 난 무척 실망했어. 그리고 다시는 누구에게도 강의안을 주지 않기로 결심했단다.

몇 달 후, 마리안나 언니의 권유로 ‘나눔’에 대한 강의를 듣게 됐어. 아이들에게 ‘나눔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하는 내용이었지. 내게 많은 도움이 되는 내용이었어. 그래서 강의를 듣는 내내 저 자료를 가질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하지만 내색 할 수가 없었어. 내가 겪어봐서 알잖니. 강의안을 달라고 하는 건 별로 기분 좋은 일이 아니라는 걸. 그래서 열심히 필기를 했단다. 하지만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는 도표와 이미지들은 그릴 수가 없었어.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지 뭐. 그런데! 그 분이 이러시는 거야. 강의 자료가 필요한 분들은 언제든지 연락을 하라고. 자신이 지난 8년 동안 모아놓은 자료와 만들어둔 자료들을 모두 나누어주겠다고 말이야. 순간, 나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어. 난 겨우 2년 동안 모은 자료를 손에 쥐고 놓지 않고 있었는데, 그 분은 8년 동안 모으고 만든 자료들을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겠다고 하시잖아. 게다가 그 말을 하는 선생님의 얼굴이 얼마나 평화로워 보이던지 하마터면 울컥 할 뻔 했다니까.

집으로 돌아와서 난 많은 생각을 했어. 그리고 내가 가진 것을 공짜로 나눠 줄 수 있는 용기를 청하며 깨달았지. ‘달라는 자에게 주는 것’은 친구가 되는 첫 번째 단계라는 걸 말이야. 하느님께서는 내게 많은 사람들과 친구가 되는 법을 알려주고 싶으셨나봐. 그래서 난 결심했단다. 앞으로는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않기’로 말이야. 어때 멋지지? 그런데 미가야! 네가 나를 위해 기도를 좀 해줘야겠어. 물론 공짜로 말이야. 33년이나 공짜로 나와 친구가 되어주고, 수녀가 된 이후에도 나를 위해서 공짜로 기도해주는 너에게 오늘도 공짜로 부탁할게. 내가 나누며 살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기도해줘. 우린 하느님이 맺어주신 친구니까 기도해 줄 거지? 하하하. 그럼 잘 지내고 있어. 다음에 또 소식 전할게. 안녕!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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