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톡톡 1- 영화 <변호인>

제갈준

영화 <변호인>

영화가 가장 빛나는 순간은 감독이 연출한 의도된 메시지를 찾아낼 때이다. 이는 때때로 생략되고 숨겨진 장면과 장면 사이에서 관객이 그들만의 질문을 찾아내면서 시작된다. 바로 그 순간이 영화를 통해 감독과 관객이 소통하는 지점이다. 관객이 그 질문에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동안, 영화는 영화로서의 품위를 유지한다. 그것은 영화가 가지는 보석 같은 매력이다. 그러나 ‘변호인’에서는 그런 장면을 찾아보기 힘들다. 윽박지르는 느낌을 받는다면 비약일 수도 있지만, 뭔가를 강요받고 있는 듯한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자연스럽지 못한 연결을 쉽게 간파당하고 있다.

영화 ‘변호인’의 송우석은 돈 없고 빽 없고 가방끈도 짧은 변호사지만 어수룩하면서도 끈질기고 진실에 집착하는 캐릭터가 돋보인다. 영화는 권력의 그늘에서 신음하는 젊은이의 고뇌와 정신적 붕괴를 담았지만, ‘변호인’이 추구하는 진실게임은 바위와 계란으로 압축된다. 바위는 무생물이지만 계란은 작아도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항변은 설득력이 있다. 관객을 압도하는 잔잔한 목소리이자 이 영화의 빛이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송우석의 정체성은 일관성이 부족하다. 변신에 대한 충분한 설득력도 미흡하다. 우선 그가 속물적인 세금 전문 변호사에서 이상주의 인권변호사로 변화하는 과정이 급진적이다. 영화의 초반부에서 송우석은 아내의 출산 비용도 벌지 못하고 괴로워하며 공사판을 돌아다니는 신세였다. 가족에 대한 애정이 그의 성공가도에서 중요한 원동력이 되었음은 분명하다. 한 가정의 가장인 그가 해동 건설의 스카웃 제의마저 뿌리치고 이상주의적 영웅으로 변신하면서 가족은 신변의 위협까지 받게 된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변하게 하였을까. 이 간극은 너무나 멀다. 학력 콤플렉스를 극복하고자 물불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돈을 벌었던 그가 아닌가.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떠들던 그가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정의의 투사로 순식간에 변하는 과정은 쉽게 납득할 수 없다.

차동영 경감의 캐릭터도 다소 억지스러운 면이 있다. ‘악인을 위한 악인’을 만든 것처럼 보인다. 무고한 사람들을 빨갱이로 만들면서 아무런 내적인 갈등도 없다. 그것을 진정 국가에 대한 충성이라고 믿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6.25가 다 끝난 것 같지? 나 같은 사람이 빨갱이들 다 잡아주니까 니네가 발 뻗고 편히 자는 거야.”라고 말하는 장면은 온당한 정신소유자로 보이지 않는다. “국가란 국민입니다!”를 부르짖는 송우석의 사자후에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차갑게 맞서는 차경감은 어쩌면 불온한 정부의 상징이 아니라 깊은 상처를 숨기려고 으르렁거리던 우리자신의 또 다른 모습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상처 입은 짐승은 더욱 잔인하지 않은가. 이렇듯 국가가 거대한 괴물로 변질되면 진실은 자취를 감추고, 변호인의 유창한 언변으로도 이를 드러내기에는 역부족이다.

공권력이 자행하는 폭력을 포커스에 맞추면 개인은 무력하고 순수하다. 불온서적을 읽었다는 이유로 시국사범으로 몰아간 것도 지나치다. 영화는 변신한 정의의 투사 송우석 변호사와 불온한 정부를 상징하는 차동영 경감을 선악의 축으로 몰아가는 분위기다. 그러나 영화의 시작과 함께 보여줬던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된 내용’ 이라는 자막-실제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신의 수기를 통해 이 사건의 변호를 맡았다고 밝혔다-은 플롯의 약점을 보완하는 기능도 있지만, 한 편으로 후반부에 새롭게 등장한 자막과 함께 치명적인 약점이 되기도 한다. 영화로서의 품격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각종 언론사에서는 부림 사건 공판 당시의 기록과 인터뷰 자료를 정신없이 쏟아내고 있고, 영화를 어디까지 신뢰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개인들이 판단해야 하는 당혹감이 있다. 영화가 끝내 노무현에 기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변호인’의 에필로그에 ‘140여명의 부산지역의 변호사들 중에서 99명이 변호를 맡았다.’는 자막이 뜬다. 송우석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들의 이름이 호명되자 방청석을 가득 메운 이들이 하나 둘씩 기립한다. 이 장면은 무척 아름다운 연대로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선동적이고 불편함마저 느끼게 한다. 나도 저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이 돼야 하는 걸까.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날 일으켜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에필로그 장면의 자막이 뜨는 스크린에는 노무현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다. 관객들은 영화 속에서 그 어떤 질문도 찾지 못한다. 다만, 배우들의 혼신의 힘을 다한 연기만이 눈시울을 뜨겁게 했을 뿐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 ‘변호인’에서 인생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 송강호의 사자후는 대한민국 천만 관객을 흥분시켰지만, 이 명대사는 끝내 송우석의 것이 되지 못했다. 노무현이란 ‘블랙홀’로 빨려들었을 뿐이다.

제갈준

좋은 질문에 목이 말라서 영화를 봅니다. 그 속에서 나를 만나고, 세상을 이해하고, 그분의 살아계심을 느낍니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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