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톡톡 2 최현숙, 『천당허고 지옥이 그만큼 칭하가 날라나?』 – 왜 우리는 흔해빠진 할머니들의 말을 들어봐야 할까

육진선

최현숙, 천당허고 지옥이 그만큼 칭하가 날라나?

왜 우리는 흔해빠진 할머니들의 말을 들어봐야 할까

『천당허고 지옥이 그만큼 칭하가 날라나?』는 거친 세월을 표류하기도 하고 항해하기도 한 세 명의 여성을 조명한다. 1925년 평양 태생의 김미숙(가명), 1927년 전남 영광 출신의 김복례, 1933년 전북 남원군 보절면 출신의 안완철, 세 어른들은 일제강점기에서 해방 그리고 한국전쟁과 미군정․인공을 지나 독재개발시대를 오롯이 살아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책을 읽으면서 왜 굳이 이 여성 노인들의 말들을 들어봐야 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러나 누구라도 읽은 책 쪽수가 두꺼워질수록 그동안 역사 바깥에서 존재한 사람들의 말을 어떻게 길어 올릴 수 있었고, 또 그 말을 듣는다는 것이 서로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이분들의 삶을 통해 본 한국사회의 모습을 그린다. 그러나 기존의 역사를 서술한 방식과는 거리가 먼 시도를 하고 있다.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위치에서 문헌 중심의 사실관계를 꼼꼼히 따지지 않는다. 대신 ‘흔해빠진 할머니’들의 구구절절한 경험을 구술생애사라는 방식으로 드러낸다. 그렇다면 이것은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 질문은 객관적이고 보편적이라고 여겨진 지식들, 공식화되어 지배적인 위치에 있는 이론들은 사실 사회·문화적인 조건에 따라서 구성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기존의 역사는 남성, 중산층, 서구, 엘리트 입장에서 쓰여 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것은 부분적인 진실이다. 관점을 바꿔서 이 권력과 거리가 먼 약자들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기존에 알고 있던 지식들은 흔들리고 다른 의미가 발생할 수 있다. 지배적인 인식을 해체하면 다양한 층위의 논의들을 할 수 있게 되는데 이것은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과 실천들을 더 넓게 사유할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한다.

저자 최현숙은 요양보호사로 혼자 사는 김미숙 할머니의 집에 방문하게 된 인연으로 생애사 채록을 하게 되었다. 인상적인 점은 객관적으로 불행해 보일 것 같은 할머니의 삶인데도 ‘재밌다’는 말을 여러 번 했던 것, 요즘 말로 패셔니스타라 할 만큼 생애 전반에 걸쳐 옷에 대한 관심과 외모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는 점이다. 또한 숫자나 금액에 대한 언급이 많았는데 밥벌이의 지엄함 속에서 그의 경제관념을 읽을 수 있었다.

난 저자가 김할머니가 제공하는 경험을 일방적으로 착취하지 않으려고 애쓴 흔적을 곳곳에서 느꼈다. 후기를 읽어보면 인터뷰를 한 지 3년쯤 지났을 때 김할머니는 최현숙에게 성매매에 대해, 미군과 몇 번의 살림을 차린 경험에 대해 이야기했다. 김할머니는 당당하다고 말하지만 한편으로는 사회적 낙인으로 인해 상처 받았다. 그럼에도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구술 과정에서 신뢰가 쌓였기 때문이다. 인터뷰 과정에서 청자가 열린 태도로 이해하고 성찰하는 모습을 통해 화자는 무엇을 얼마만큼 이야기할지 결정한 것이다. 구술자는 과거 행위에 대해 다른 사람이나 사회가 수용할 만한 증언을 하다가 그것을 청자가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이해받았다고 느끼면 이야기의 수위를 달리한다. 또한 청자는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화자의 서사에 적극 개입해서 의미 해석을 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이러한 경험의 재구성은 김할머니가 피해자에서 역사의 증언자로 정체성을 재구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보통 이론연구자는 경험제공자(연구참여자)에 대해 해석할 권리를 갖고 우위에 선다. 그러나 생애구술사의 방식은 상호 신뢰와 친밀감을 바탕으로 구술자와 청자가 경계를 넘나들며 말하고 듣고 배운다. 저자와 그녀의 어머니의 예가 그렇다. 저자 최현숙은 가정폭력 때문에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저항감이 깊었다. 하지만 어머니 안완철과 오랜 시간 동안 세대를 잇는 대화를 하던 도중 아버지 또한 가정폭력의 피해자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닫힌 마음이 열렸고, 아버지를 둘러싼 관계와 그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동안 자신이 놓치고 살았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깨달았다. 구술자의 증언이 청자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반성하게 한 것이다. 저자는 가족사를 분석하며 어머니에게 자신의 부족함을 사과하고 아버지와는 화해의 길에 서게 되었다. 이처럼 생애구술사는 단순히 여성 연구가 아니라 여성이 처한 조건과 경험을 역사화 하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통찰을 준다.

육진선

발칙한 사람들 사이에서 어울려 놀고 배우기를 좋아하는 범신론자, 여성학도이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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