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신연의 시대 읽기 – 하느님이냐, 재물이냐

최혜영

하느님이냐, 재물이냐

사행심을 키우는 사회

용산 화상경마장 입점 반대 운동을 하면서

자본주의의 폐해가 극에 달했다고 그 종말을 예고하는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지만, 여전히 자본의 위력을 과시하는 일이 허다하다. 모든 것이 돈과 연결되어 자고 일어나면 돈 때문에 자살도 하고, 사람도 죽이고 칼부림도 난다. 정의니 평등이니 하는 가치는 고상한 명분일 뿐 실질적으로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재물인 것 같다.

예수님 시대에도 재물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것이었겠지만, 요즘처럼 황금만능주의가 판을 치는 시대는 일찍이 없었던 것 같다. 어쩌다 이렇게 인간이 염치없이 돈, 돈 하게 되었을까? 국가가 ‘사행산업’이라는 이름으로 비윤리적인 행위를 합법화하는 것도 배금주의 가치관을 고스란히 드러내 주는 현실이다.

예로부터 도박이 무서운 고질병이라는 소리는 많이 들어왔지만,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로 알고 있었는데, 바로 그것이 나의 일이 되고 바로 우리 아이들의 교육환경을 위협하는 생존권문제가 될지는 몰랐다. 작년 4월, 필자가 속한 성심수녀회와 성심여중고에서 머지않은 곳에 지하 7층, 지상 18층 규모의 대규모 신축 건물이 들어섰다. 그것이 바로 한국마사회 소유의 건물이고 그 안에 최신식 화상경마장이 개장된다는 소식을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다. 학교 정문에서 큰 길 하나만 건너면 되는, 겨우 6분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이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그것도 주택가와 멀지 않은 곳, 초중등학교가 몇 개씩 있는 곳, 당고개 성지와 옛 용산신학교, 새남터 순교지의 가운데 자리에 어떻게 이런 건물을 지을 생각을 했을까. 그 발상 자체가 믿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러나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학교보건법상 학교부지에서 200m 안에는 유흥업소나 숙박시설 등의 업종이 들어올 수 없지만 용산 화상경마장은 학교로부터 230m, 우리 계산으론 215m 떨어진 곳에 있고, 용산역 앞 기존의 마권 장외발매소 영업장을 확장 이전하는 형식을 취한 것이라 합법적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합법적인 것을 전임 용산구청장은 자신의 임기 마지막 날 벼락치기로 승인을 한 것일까? 왜 주민들에게 이전 사실을 알리지 않고 은근슬쩍 들어오려고 했을까? 2011년 서초구 교대역 사거리에 추진되던 경마 도박장 건설은 주민들의 반대로 건축허가 취소 판결을 받은 바 있다.

사행산업인가?

IMF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 정부가 주도하는 사행산업의 규모가 커지면서 2012년 총매출 규모가 무려 19조 4612억 원에 달하고, 영업장 수는 1998년 28개소에서 2012년 92개소로 3배 증가하였다고 한다. 현재 정부가 허가한 사행산업 업종은 7종으로 카지노, 경마, 경륜, 경정, 복권, 체육진흥투표권(스포츠토토), 전통소싸움 등이다. 그 중 경마는 카지노의 3배가 넘는 규모로 국내 사행산업 매출 1위에 해당된다. 그런데 화상경마장(마권 장외발매소)은 직접 승마를 관전하는 것도 아니고 스크린을 통해 도박을 하는 곳이라 도박 중독률이 78%에 이른다고 한다. 이것은 현장 경마공원 이용자 중독률 40%에 비해 거의 두 배 정도의 중독률이다. 이 화상경마장이 전국적으로 무려 30개, 서울 시내에 10개가 있는데 앞으로 마포역 4번 출구 근처 등 큰 규모의 건물을 더 들여오려고 한다니 아무리 세수가 부족해도 정부가 나서서 사행산업을 조장할 일은 아니다 싶다.

우리나라 사행산업이 급격하게 팽창하게 된 데에는 사행산업 관련 정부부처와 지방자치단체들이 조세 및 기금 확보, 지역경제 활성화 등을 내세워 이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육성하는 정책을 펴 왔기 때문이다. 사실 그 누구도 사행산업이 바르다고 생각할 사람은 없을 것 같은데, 이해관계에 따라 아주 그럴 듯하게 사탕발림의 말들을 쏟아놓는다.

경기일보 2014년 2월 16일자 신문을 읽고 깜짝 놀랐다. 2월 13일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이하 사감위) 주최, ‘사행산업 정책 진단과 제2차 사행산업 건전발전 종합계획 수립 방향’에 대한 공청회 소식이었다. 그 자리에서 모 교수가 “합법 사행산업에 대한 규제집중의 결과, 불법도박이 급격히 확산되고 그 폐해가 불법도박의 급속한 확산을 초래했다. 불법도박 근절을 위해선 불법도박 이용자를 제도권 내로 유인할 수 있도록 합법사행산업의 경쟁력 강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한국여성농업인중앙연합회, 한국낙농육우협회 등 42개 단체로 구성된 농축산비상대책위원회도 “사감위는 합법사행산업이 국민경제 활성화 및 서민 일자리 창출을 통해 창조경제의 일익을 담당할 수 있도록 규제정책을 폐기해야 할 것”을 주문했다는 것이다. 누가 들으면 사행산업이 창조경제의 최대 역군이라도 되는 것 같지 않은가?

국내 최대 규모의 강원랜드 카지노가 들어선 고한의 경우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강원랜드에서 360억을 잃고 자살을 기도했던 전국 도박피해자모임 공동대표 정덕 씨에 따르면, 정부가 투자하고 감독하는 대표적인 사행산업 ‘마사회’와 ‘강원랜드 카지노’가 국민들을 도박중독에 빠지게 하고 금기야 자살로 내몰고 있다고 증언한다.

최근 신임 마사회장도 상권을 활성화하여 지역경제를 살리겠다느니, 주말만 개장하고 치안 유지를 확실히 하겠다느니, 주중에는 문화시설과 회의장 등으로 지역주민을 위해 활용하겠다느니, 감언이설로 주민들을 현혹하고 단체별로 시혜를 베풀어 주민들 사이를 갈라놓고 있다. 하지만 최근 화상경마장 확대 저지 운동을 하고 있는 대전 서구 월평동의 경우는 마사회의 약속(?)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를 분명하게 드러내 보여준다. 1997년 당시 지역경제 활성화를 이유로 화상경마장 유치에 앞장서던 이들은 그간 화상경마장이 들어서고 나서 불법유흥업소가 주변을 채우면서 교육환경과 생활환경이 악화되고 사람들이 떠나면서 지역 경제도 악화되는 것을 경험하였다. 이 과정에서 도심에 위치한 월평동 지역 초등학교는 교육환경 악화로 학생 수가 크게 줄고, 학급도 열 개에서 세 개로 줄어 거의 분교수준이 되었다고 한다. 이제 마사회의 화상경마장 확대에 가장 앞장서서 반대하며 화상경마장 폐지를 주장하는 이들이 바로 당시 화상경마장 유치에 앞장섰던 이들이다. 즉, 화상경마장의 폐해를 체험한 이들의 증언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행’은 결코 생산적인 ‘산업(産業)’이 아니라, 올바르지 않고 간사한 ‘사업(邪業)’ 이며, 사람을 죽이는 ‘사업(死業)’인 것이다.

시민의식과 연대의 힘

작년 5월 화상경마장 입점에 반대하여 지역 시민단체, 주민, 학부모, 동문 등을 중심으로 주민대책위가 구성되고 도박경마장 입점 저지 서명운동, 1인 시위, 기도회, 미사, 범시민 촛불문화제 등은 물론, 청와대, 국가권익위원회, 농림축산식품부, 마사회, 용산구청 등에 민원 넣기 운동 등을 전개하면서, ‘공기업’을 상대로 한 이 지난한 싸움을 해오고 있다. 이 과정은 결코, 한 학교, 한 동네의 이익을 위한 님비(NIMBY) 현상이 아니라,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며, 한 가정의 삶을 지키는 일이며 국가 전체의 의식을 바꿔 놓는 정신 운동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무리 세수가 부족해도 국민을 병들게 하는 방법으로, 서민의 주머니를 털어 쪽박을 차게 하는 비정한 수단을 선택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그렇게 얻은 수익으로 지역의 ‘복지사업’을 하고 국가의 재정을 충당해서는 안 될 일이다.

다시 한 번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태 6,24;루카 16,13)”는 말씀을 생각하게 된다. 재물을 탐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가난한 선택하는 삶, 정직하고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는 삶, 눈앞의 이익이 아니라 공공의 이익을 생각하고, 무엇보다 먼 미래 후손에게 올바른 가치를 교육하고 전하는 일의 소중함을 지켜가는 시민의식과 연대의 힘을 높여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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