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조류 인플루엔자(AI)식탁 – 은샘

은샘

나는 ‘맛있게’ 죽을 권리가 있다!

“엄마! 이 친구가 자라면 백조가 되는 거야?”

나를 손으로 가리킨 채로 꼬마 아이는 엄마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건 동화책에서나 가능한 얘기구.에휴, 아니다. 그래, 이 오리는 이다음에 커서 분명 맛있는 백조가 될 거란다.”

“정말이지? 안녕 귀여운 오리야. 이 다음에 커서 꼭 맛있는 백조가 되렴! 그래서 우리 다시 만나자!”

그렇게 아이는 엄마 손을 꼭 쥔 채로 나에게 손을 흔들며 사라졌고 나는 답례로나마 백조 같은 고귀한 날개짓으로 보답을 하였다.

아, 나를 보고 백조라고 말해주는 인간에게 먹힌다는 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난 그저 태어나자마자 어미의 꽁무니만 쫄래쫄래 따라다녔을 뿐, 태어난 목적은 전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젠 알겠다. 이렇게 가족단위로 농장에 놀러와 나를 친구라고 불러주기도 하고, 때로는 겁도 없이 쓰다듬으며 “귀엽다!” 고 사랑의 눈으로 바라봐주는 생명을 위해 태어나고 존재하다가 죽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죽음이란 받아들여지기 꺼려지는 고통이 분명하다. 하지만 괜찮다. 그건 어디까지나 한 순간 일 뿐 이니까. 차라리 이 견디기 힘들만큼 더럽고 냄새나는 시궁창 같은 현실 속에 사는 것보단 순간의 고통일 뿐인 죽음을 맞고 싶다. 나는 고통 받지만 죽음이란 목적을 달성해 나를 맛있는 즐거움으로 선물하고 싶다. 분명 나를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에 감사하며 맛있게 먹을 인간을 생각하면 이 의미 있는 죽음에 대한 의무감마저 생긴다.

나는 인간의 생명을 존중한다. 서로를 위해 태어나고 죽을 수 있는 생명의 경이로움 또한 ‘사랑’ 이리라. 어차피 인간들을 위해 죽을 운명을 갖고 태어난 우리들의 바람은 오직 딱 하나, 원래 태어난 목적대로 살다가 맛있는 육체를 남기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 나는 어떤 의무감에 시달리는 눈빛과 마주보는 순간 죽음을 직감하게 되었다. 하얀 옷을 입은 저승사자들의 손에는 노란 포대자루와 막대기가 들려 있었고, 갑자기 농장에 있는 모든 오리들을 미리 터놓은 길 밖으로 내몰기 시작했다. 인간이 매일매일 고기를 먹기 때문에 우리가 매일매일 죽는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아니, 갑자기 얼마나 많은 인간들이 우리를 필요로 하기에 이렇게 한꺼번에 다 같이 죽음으로 내몰리게 되는 걸까?

감히 믿기지 않는 죽음의 행렬이 이어지는 동안 따뜻한 빛이 우리를 내리 쬐고 있었다. 그때 주인이 왜 우리가 억울하게 벌을 받아야 하냐며 비참하게 곡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그때야 나는 비로소 우리가 고통을 받으면 인간도 고통을 받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것을 깨달은 순간 흰 옷을 입은 저승사자가 나를 노란 포대자루에 집어넣더니 가스를 살포하였다. 나는 그들의 생명을 존중 했으나 그들은 나의 생명을 전혀 존중하지 않았다.어쨌거나 저쨌거나 죽을 운명으로 태어났던 나는 그래도 필요한 존재로써, 의미 있는 참된 죽음을 맞고 싶었다.

나는 사랑받는 존재다. 더 정확히 말하면 ‘맛있어서’ 사랑 받는 존재다. 이렇듯 필요한 존재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저승사자 입에서 흘러나온 “예방적 살처분”이란 명목 하에 불필요한 존재로 낙인찍혀 억울하게 죽음을 당했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가족들의 살려달라는 “푸드득!” 날개짓 소리와 울부짖음은 하찮은 목숨과 함께 차가운 땅으로 내팽겨 쳐졌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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