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여기 돋보기 – 124위 시복에 앞서 “교황청은 사과해야”

황경훈(아시아 평화 연대 센터장)

124위 시복에 앞서 교황청은 사과해야

얼마 전 교황청은 박해로 순교한 초기 천주교인 124명을 복자로 시복한다고 발표했다. 교황청이 한국 교회의 깊은 신심을 세계에 알리고 이를 본받도록 하는 결정을 내렸으니, 한국 교회의 한 성원으로서 축하할 일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윤지충을 비롯한 이들의 ‘피의 순교’는 교황청의 ‘조상제사 금령’에 기인한 것이다. 사학계가 이 금령을 조선 사회의 전통문화와 질서를 파괴하는 반사회적인 패륜행위로 보고 있음에 생각이 이르면, 시복문제가 단순히 경축하는 것으로 끝날 일이 아니라 더 깊은 자기성찰을 요구한다고 할 수 있다. 차제에 ‘지금여기’의 기사를 통해 순교와 시복, 타문화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되었다고 밖에 볼 수 없는 교황청의 정책이 불러온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생각해본다.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시복 결정

강한 기자

프란치스코 교황이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의 시복을 결정했다고 8일 바티칸 뉴스가 밝혔다. 시복(諡福)은 거룩한 삶을 살았거나 순교한 사람을 교회가 공경할 복자로 교황이 선언하는 일이다.

이번에 시복이 결정된 순교자 124위는 신해박해(1791년)부터 병인박해(1866년)까지 순교한 초기 천주교 신자들이다. 이들 중에는 다산 정약용의 형이며 성 정하상 바오로 · 정정혜 엘리사벳의 아버지인 정약종, 조선에 입국한 첫 성직자이며 중국인인 주문모 신부, 그를 도와 여성 회장으로 활약한 강완숙 등이 포함돼 있다.

시복 결정에 대해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강우일 주교는 “하느님께서 한국 교회에 커다란 은총을 주셨다”며 기도해준 교우들과 시복시성 추진 관계자, 관심을 갖고 격려해준 국민에게 감사를 표했다. 서울대교구는 “우리 신앙 선조들이 죽음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거하신 것처럼 이번 교황청의 시복 결정을 통해 우리나라가 사랑과 나눔과 희생이 흘러넘치는 사회가 되길 기도한다”고 시복 결정을 환영했다.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은 시복 결정 소식을 접하고 “‘하느님의 종’ 124위를 비롯한 한국의 순교자들은 남녀평등, 신분제도를 넘어선 이웃 사랑 등으로 하느님 사랑을 실천하며 인권신장에 기여해 한국의 근대화를 앞당기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하셨다고 평가받고 있다”며 “순교자들의 공동체처럼 우리도 사랑으로 서로를 보듬고 아끼며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갔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한국 천주교는 1997년 주교회의 추계 총회에서 신해박해(1791), 신유박해(1801), 기해박해(1839), 병인박해(1866) 순교자 중 103위 성인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순교 사실이 새롭게 드러나고 지역에서 현양되던 이들을 포함해 시복시성을 통합 추진하기로 했다. 주교회의는 2001년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를 구성해 국내 예비 심사를 진행했고, 2009년 5월 20일 시복 조사 문서를 교황청 시성성에 정식 접수했다.

(후략)

피의 순교와 교황청에 대한 사과 요구

몇 해 전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는 순교와 관련해 규모 있는 국제 심포지엄을 한 적이 있다. 이름난 신학자인 발터 카스퍼 추기경을 비롯해 여러 학자들이 순교와 순교의 현재적 의미를 깊이 있게 살핀 좋은 행사였다. 한국 발표자 가운데 하나인 심상태 신부는 순교와 그 역사를 단순히 자랑스럽게 현양해야 할 것만은 아니라고 지적하고, 순교가 교황청의 ‘부적절한’ 제사금령조치로 일어난 것임을 규명하면서 이에 대해 사과를 요구했다. 다시 말해, 아시아에서 순교 문제는 제사를 어떻게 볼 것이냐를 두고 중국에서 선교회 사이에 벌어진 ‘의례논쟁’(1634-1742)에서 교황청이 보수적 입장을 지지해 마침내 1742년 교황청이 제사를 ‘미신적 우상숭배 행위’로 규정하고 이를 금한다는 교서를 발표한 사실에서 기인했다는 것이다. 초기 교회 창설자들은 윤유일 등을 베이징으로 보내 조선에서 ‘제사가 미신숭배가 아닌 조상에 대한 공경과 효의 표현양식’임을 해명했으나, 당시 베이징의 구베아 주교는 로마 교황청의 ‘조상제사 금지훈령’을 전달해 이를 재확인 하는 것으로 이들의 바람은 허사가 됐다. 이듬해인 1791년 전라도 진산의 윤지충과 권상연이 이 훈령에 따라 제사를 폐지하고 신주를 불사른 ‘진산 사건’이 발생하였으니 천주교는 부모도 나라도 안중에 없는 패악무도의 ‘사교’로 낙인찍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다시 심포지엄으로 돌아오면 심상태 신부가 교황청의 잘못된 정책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고 있음이 두드러진다. 물론 그 전에도 정양모 신부가 1만 명이 넘는 순교자가 나온 원인을 제사를 미신으로 여긴 교황청을 포함한 교회의 신학적 미성숙과 신학의 자기 역할 부재에서 찾거나, 역사학자 조광 교수가 논문을 통해 교황청의 부적절한 선교정책으로 희생된 이들에 대한 사과가 있어야 된다고 지적한 적은 있었다. 그러나 공개적인 심포지엄에서, 그것도 ‘전직’이라는 단서가 붙기는 하지만 교황청에서 ‘교회일치 및 종교간 대화 평의회’ 의장을 맡았던 카스퍼 추기경의 면전에서 교황청의 사과를 요구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고 그만큼 파장도 있었다고 보인다. 더 드라마틱한 것은 한 청중이 카스퍼 추기경에게 심 신부의 사과요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공을 추기경에게 넘긴 대목이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추기경은 한동안 빙긋이 웃기만 할뿐 대답을 하지 못하다가 ‘외교적’ 수사로 얼버무리고 말았던 기억이 난다. 개인적으로 곤혹스러웠으리라 충분히 이해하지만 책임 있는 답변이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순교를 주제로 한 자리에서 그것도 ‘순교로 세워진 교회’의 청중들에게 답변할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실망스러웠다. 답변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말은 식민세력의 비호 아래 아시아에 폭력적으로 들어 온 그리스도교의 ‘타문화, 타종교’에 대한 이해가 여전히 서구 중심적으로 이해하며, 따라서 세계의 절반도 품지 못하는 실력으로 하느님을 말하려고 하니 그 신학적 수준이 얼마나 표피적인가. 그럼에도 그러한 지도력 아래 지역 교회가 ‘지도’와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새삼 서글퍼지는 것이다.

순교 문제는 현재 진행형

이러한 이야기가 일찌감치 나왔더라면 시복시성과 관련해 ‘순교자 현양’ 일색의 교회 문화를 더 깊이 있는 논의로 이끌어 ‘한국 교회와 역사의 대화’라는 장으로 나아가는데 일정한 공헌을 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해본다. 말이 나온 김에, 이야기가 더 복잡하고 길어지더라도 순교와 현재의 제사 문제를 관련지어 파고들어가 보기로 하자. 한국이 일제 식민통치 아래 있었던 20세기 초반까지 제사금령은 계속 되었으나 1932년 도쿄 대교구장 장 밥티스트 대주교가 일본 문부성에 신사참배가 종교행위인지 여부를 묻자 종교행위가 아니라는 답을 듣게 되었다. 이를 근거로 1936년 인류복음화성(옛 포교성)은 일본에 편지를 보내 ‘신사참배는 종교행위가 아니므로 신자들이 참배를 해도 된다.’는 훈령을 전달했다. 당시 신사 참배를 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상황에서 선교를 위한 자구책으로 필요했던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문제는 이 훈령은 신사참배 문제뿐 아니라 중국, 타이완, 조선에서 행해지는 유교식 제사를 한 묶음으로 다루고 있다. 곧, 신사참배나 유교식 제사는 종교행위가 아니라 사회문화적 의식으로 다뤄지고 있는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한국 교회가 타 종교문화 전통을 받아들인다는 포괄주의적 태도로 제사를 ‘선교의 호재’로 활용하고 있는 한편, 일본은 1945년 패망 뒤 신사참배를 우상숭배인 종교행위로 간주해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두 지역 교회에서 제사는 공식적으로 종교적 행위라는 점이다. 따라서 이는 여전히 제사를 문화적 표현 양식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는 바티칸의 입장과 지역 교회가 완전히 상반된 이해와 입장을 유지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어불성설의 상황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교황청이 이를 종교행위로 인정하는 훈령을 낸다면 제사는 우상숭배로 여겨져 지난날 ‘의례논쟁’의 결과처럼 다시 금지되어야 할 판이라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으로 치달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을 듯하다. 그러나 이 문제의 해결 없이 순교 문제는 해결될 수 없으므로, 먼저 바티칸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하는 것이 문제를 푸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실마리가 되리라고 본다.

  지금여기다시 보기

기사는 두 고위 성직자의 말을 인용하고 있는데, 이들에게서 직접 받은 것은 아닌 듯하다. 다른 미디어의 인용을 그대로 쓸 것인가 아니면 직접 코멘트를 받을 것인가하는 문제는기사의 관점과 직결되어 있다. 기사에서는 염수정 추기경이 “(시복될) 순교자들은… 하느님 사랑을 실천하며 인권신장에 기여”했다고 기리는 인용문을 그대로 실음으로써 이를 ‘지금여기’의 순교자에 대한 생각으로 입장정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 본 것처럼, 사학계에서는 여전히 당시의 조상제사 폐지는 돌이킬 수 없는 사회질서 파괴 행위로 보고 있음을 기억한다면, 아무런 조건이나 토를 다는 일 없이 순교자들을 “이웃 사랑 실천이나 인권신장에 기여”한 것으로 단순히 기록하는 것이 ‘지금여기’ 정신에 부합하는 것일까? 적어도 평신도의 관점에서 순교는 어떻게 규정해야 하고 또 오늘날 순교는 어떤 의미로 확장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자신의 관점을 드러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이러한 질문들을 실마리로 삼아 심층취재를 기대해 본다.

제목만으로 한눈에 기사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기 위해서는 매우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기자의 능력은 제목과 리드(첫 문단)를 뽑는 데에서 드러난다는 말이 괜한 소리가 아닌 것이다. 제목은 깔끔하게 잘 잡았으나 부제를 두 개나 달아 기사 처음부터 읽기가 부담스러워 보인다. “주교회의, 한국 교회에 큰 은총”이라는 부제로 충분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기사가 ‘소개’에 중점을 두고 있어서 더 짧게 처리하고 후속 기사에서 다루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인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3월호

%d 블로거가 이것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