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오십시오! 나의 귀한 벗이여!

권순남 가타리나 수녀

그리운 한 벗을 기다리며

몇 년 전, 그 때도 대선이 막 끝나고 어수선하고 힘든 겨울에 한 벗을 만났습니다. 처음엔 그 벗과 함께 있으면서도 그에게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 벗은 화려하지도, 드러나지도 않았고 다른 사람의 눈길을 확 사로잡는 겉모습이 예쁜 벗이 아니었습니다. 함께 한 공간에 있었지만 그냥 바라보기만 했던 그 벗을 어느 날 가까이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벗의 정체를 알게 되었고 내면을 보았고 그 벗의 친구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만남은 나에게 운명적 끌림의 기회였습니다. 그 벗은 내가 모르던 세상의 아픈 얘기, 아이들의 얘기, 삶의 현장의 얘기, 타종교의 얘기, 사회단체의 얘기, 교회 안팎의 얘기, 먼나라 얘기들을 감동으로, 아픔으로, 절망으로, 기쁨으로, 희망으로 전해 주었습니다. 그 벗은 나에게 시가 되어 왔고 동화가 되어 왔고, 삶의 체험으로, 쌍날칼이 되어 오기도 했습니다.

잠자던 나를 흔들어 깨웠고 설레게 만들었습니다. 그 벗이 바로 ‘갈라진 시대의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남북으로, 동서로, 빈부로, 세대로 갈갈이 나누어져 있던 지금 이 시대에 기쁜 소식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에게 그렇게 나타났던 것입니다.

산 속 깊이 숨어 있는 들꽃처럼 소박하며 그저 일주일에 한 번씩 소리 없이 내 곁에 다가와 수줍은 얼굴로 세상의 진솔한 얘기를 들이밀며 조용히 날 쳐다보던 정겨운 벗이었습니다.

이 벗에 대한 나의 사랑이 시작 되었습니다. 혼자서 만나기엔 너무 많은 귀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기에 그 얘기들을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솔직히 나의 주변엔 이 벗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적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벗을 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명 두 명 이 벗을 만나는 이들이 늘어 갈수록 벗에 대한 내 사랑도 깊어 갔습니다.

그 얇고 작디 작은 책 안에서 나의 스승 예수가 우리에게 살아 내길 원하는 길이 보였고 그 길을 씩씩하게 가고 있는 도반들이 거기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렇게도 다양한 이야기, 다양한 사람들, 다양한 사건들을 담고 왔을까요? 일주일에 한 번씩 나에게 달려오는 그 벗을 받아 드는 기쁨이란 어릴 적 기다리던 산타 할아버지 선물을 받아 들고 벙글 벙글 입이 벌어졌던 그 모습이었습니다.

외출 할 때에 작은 가방에 쏙 넣어 다니면서 기다려야한 했던 지루한 시간들을 메꾸어 주었고 어디서든 쉽게 꺼내 들 수 있었던 나의 벗 갈기…. 겉장부터 마지막 장 표지까지 다 읽고도 금방 읽어버린 아쉬움에 안타깝기도 했지만 그 주간에 새롭게 만난 이웃들의 삶이 설레임으로 퍼지기도 하고 후원계좌로 적은 성금을 보태기도 하면서 그들의 삶이 나의 삶의 일부가 되어 금방 “우리”가 되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 벗을 통해 만났던 사람들을 제주 강정에서,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에서, 4대강가에서, 전국 활동가 연수모임에서, SKY ACT에서, 탈핵 연대미사에서, 특강에서 실제로 얼굴을 맞대고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같은 길을 함께 가는 사람’들임을 확인시켜 주었고 “희망하는 우리”가 되게 해 주었습니다.

이 작고 멋진 벗이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 곁에 오느라 잠시 우리를 떠나 있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던 이 정겨운 벗을 보지 못한 지난 몇 개월이 얼마나 길고 허전 했는지 모릅니다. 이제는 한 달에 한 번 우리를 만나러 온다 합니다. 어떤 모습으로 바뀌었을까? 이번에는 어떤 사연을 담아 가지고 올까? 어떤 사람들을 또 연결하여 올까? 궁금하여 조바심을 내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그 벗이 다시 돌아 온다합니다. 버선발로 뛰어 나가 님을 반겼던 그 심정으로 나의 멋진 벗을 반깁니다. 두 팔을 활짝 벌린 채 그 벗을 기다립니다. 어서 오십시오! 나의 귀한 벗이여!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 2013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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