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교회는 지금 – 일본의 우경화와 가톨릭교회의 대응

전은이

일본의 우경화와 가톨릭교회의 대응

스멀스멀 피어오르던 연기가 이제는 노골적으로 횃불을 당기고 선동한다. 열정적으로 타오르는 모든 것이 늘 정답은 아니듯 활활 타오르고 있는 이 횃불의 심지가 심상치 않다. 무슨 기름을 발랐을까. 원시적인 동백기름인가 최첨단 마술의 ‘청정에너지’ 핵기름인가. 지금 일본 사회에 타오르고 있는 우경화의 불길. 또 다른 의미의 개혁을 위해, 권력은 시계의 태엽을 거꾸로 감으며 역사 속의 부국강병을 끄집어내고 있다. 한국도 다를 바 없겠지만 재화의 소비를 중심으로 한 사회에서 ‘경제적’ 수치는 ‘지상의 평화’로 쉽게 위장한다.

일본 사회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던 이 연기는 어제 오늘 시작된 것이 아니다. 바람 따라 이리저리 춤추는 줄로만 알았던 이 기묘한 연기는 사실 불을 댕길 때만 기다리며 횃대와 심지와 기름 준비를 마친 조직적인 계획이었다. 의도대로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주체는 당연히 권력이다. 사람들은 권력의 주체가 피워대는 연기를 쉽게 내면화하곤 한다. 다행히 일본가톨릭교회는 교회의 영적 직관으로 이 불길한 징후를 알아차렸다. 하지만 예언자들의 외침이 드높아질 때 자비로운 하느님도 한계에 이르셨듯이, 지금 일본 사회에서 활활 타오르는 이 불길도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 같다.

일본가톨릭주교협의회 사회주교위원회가 편찬한 『교회는 왜 사회 문제에 관여하는가』의 내용 일부를 번역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이 책은 예언자적 실천에 앞장서 온 일본 가톨릭 주교회의가 일본 사회의 우경화와 관련된 불온한 움직임을 간파하고, 신자들을 위해 복음적 관점에서 정리한 응답이다. 교회와 주교단이 일치하여 사회문제 참여에 대한 공적인 합의를 도출하고, 그 실천에 앞장서며, 구체적인 응답까지 제시한 것은 매우 획기적인 일이다. 또한 일본가톨릭교회는 말로만 신자들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이 책에 담긴 응답과 관련된 구체적인 사회적 실천을 지속해 왔다.

물론 서문에서도 밝히고 있듯 ‘모든 문제와 해답을 망라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 교회가 정치・사회문제에 관여하며, 이것이 어떻게 교회의 구원 문제와 연결되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1부에서는 교회가 사회문제에 참여하는 이유를 복음적 관점에서 설명하고, 2부에서는 교회가 참여해 온 사회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교회의 입장과 그 이유를 설명한다. 그 중 1부의 두 번째 질문과 2부의 스물 두 번째 질문을 번역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교회는 어떤 기준으로 사회문제에 참여합니까?

‘교회는 왜 사회문제에 대해 발언하는가?’에서 밝힌 것처럼 교회의 역할은 복음에 따라 인간과 모든 사물을 안에서부터 새롭게 하고,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복음을 바탕으로 한 기본 원리를 사회문제에 참여하는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인간 생명에 대한 존엄성

모든 인간은 하느님의 사랑과 뜻을 통해 하느님을 닮은 모습으로 창조되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 인간존엄성이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이 존엄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 사회문제에 참여하는 교회의 기본 정신입니다.

② 공동선의 원리

공동선은 인간 공동체-가족, 지역사회, 국가 등-와 그 구성원이 더 안정된 생활을 하며, 가능한 자신을 온전히 완성시키도록 하는 다양한 사회적 조건을 말합니다. 어떤 공동체라도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공동체의 필요와 정당한 요구, 인류 전체에 해당하는 공동선까지 고려해야 합니다.

③ 세상의 모든 것은 모든 인간을 위한 것

하느님은 세상의 모든 것과 인간을 만드시고, 인간에게 땅을 주시어 이를 경작해 수확을 얻도록 하셨습니다. (이사 45,18; 시편 115,16) 이는 어느 한 사람도 소외되지 않고 살 수 있기 위한 것입니다. 여기에 세상 만물이 모든 인간을 위한 것이라는 원리가 깃들어 있습니다. 하느님은 땅과 그곳에 포함된 모든 것을 모든 인간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랑과 정의로 세상의 모든 이들이 이 모든 것을 공평하게 누리도록 해야 합니다.

④ 보조성의 원리

인간존엄성을 존중한다는 것은 가정을 비롯한 다양한 공동체 및 경제, 사회, 정치, 문화, 스포츠, 오락, 전문직 등의 모든 활동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개인이나 작은 공동체의 창의성, 자유, 책임을 존중하고, 강하고 큰 공동체는 약하고 작은 공동체가 발전하도록 돕고 지원해야 합니다. 여기에 보조성의 원리가 있습니다.

⑤ 참여

보조성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참여입니다. 이 참여는 개인으로든 다른 사람과 연합해서든 직접으로든 대표를 통해서든 자기가 몸담고 있는 시민 공동체의 문화, 경제, 정치, 사회 생활에 이바지하게 하는 일련의 활동들을 통하여 표현됩니다. 참여는 모든 사람이 책임을 가지고 공동선을 위하여 의식적으로 이행하여야 할 의무입니다.

⑥ 연대성의 원리

연대성은 인간존엄성과 평등,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른 이와 더불어 살도록 창조되었다는 사실에 기초한 원리입니다. 이것은 법이나 시장에 관한 제도를 결정하는 사회원리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이는 도덕적 요구로 단순한 동정이 아닌 모든 인간에 대한 책임을 깨닫고 개개인의선과 더불어 사회의 공동선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확고한 결단입니다.

총리의 전쟁희생자 추모를 위한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어떻게 생각해야 합니까?

『고지엔』(일본어 사전)에 참배란 ‘신사나 절에서 신에게 합장하는 일’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야스쿠니 신사나 고고쿠 신사 참배는 종교적인 행위입니다. 또한 행정부의 수장인 총리가 공인의 자격으로 참배하는 일은 헌법 20조에 정해진 정교분리의 원칙에 저촉됩니다.

참배자 명단에 ‘내각총리대신’과 같이 직함을 적는 것, 수행원이 동행하는 것, 공용 승용차를 사용하는 것, 복권이나 공양금에 공적 비용을 사용하는 것, 참배하는데 정치적 의도를 지니는 것 모두 공인의 자격으로 참배하는 것이므로 정교분리의 원칙에 위배됩니다.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에 대한 몇몇 재판이 있었습니다. 오사카 고등법원, 후쿠오카 지방법원에서는 위헌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 밖의 재판에서도 합헌이라는 결론이 내려진 적은 없습니다. 세계대전 이전이나 전쟁 중에 식민지 정책과 전쟁에 국민을 동원하는데 있어, 일본에서는 국가 종교가 큰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과거 역사에 대한 반성의 의미로라도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에서 공인의 자격으로 전쟁희생자를 추모하는 행위를 엄격하게 감시해야 합니다.

전사자나 전쟁 희생자를 위해 기도하는 일은 유족의 종교와 신념에 따라 이루어져야 합니다. 종교단체는 그들의 의사에 따라 기도로 지원해야 합니다.

전사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군인으로 죽어간 사람만이 아니라, 전쟁으로 희생된 민간인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이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희생자, 오키나와 공습으로 사망한 일반 시민들을 의미합니다. 또한 전쟁으로 희생된 아시아 각국의 사람들과 타국의 전사자, 희생자를 위해서도 마땅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정교분리의 원칙을 지키고 유족의 의사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추모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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