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하는 복음 – 욕심 없는 자유

김의열

“공중에 나는 새들을 보세요. 그들은 씨를 뿌리거나 거두거나 곳간에 모아들이지 않아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먹여주십니다. 또 들꽃이 어떻게 자라는가 살펴보세요. 그들은 수고도 하지 않고 길쌈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온갖 영화를 누린 솔로몬도 이 꽃 한 송이만큼 화려하게 차려 입지 못했습니다. 오늘 피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들꽃도 하느님께서 이처럼 잘 입히시는데 하물며 우리야 얼마나 더 잘 입히시겠습니까? 그러니 무얼 먹을까 무얼 마실까, 또 무얼 입을까 걱정하지 마세요.”(마태 6.26-31) 예수님의 이 말씀은 늘 내 안에 살아 움직이며 나에게 많은 위안과 평화를 주는 말씀이다.

20여 년 전 유기농 농사를 짓겠다고 결혼하자마자 농촌에 내려와 유정란과 비닐하우스 토마토와 고추 등 여러 가지 농사를 지었지만 짓는 농사마다 제대로 수확을 거두지 못해 버는 것보다 손해 보는 때가 많았고 그 때마다 빚이 쌓여갔다. 그래도 다섯 아이들과 함께 일곱 식구가 그럭저럭 큰 탈 없이 지금껏 살아온 게 큰 은총이라 하겠다.

지난 2009년 늦가을에 아내가 여섯째 아이를 낳다 겪은 일은 나에게 큰 깨달음을 가져다주었다. 당시 아내는 아이를 낳다 자궁 파열이 일어나 아이를 사산하고 본인도 과다출혈로 죽음 직전까지 갔다. 큰 수술을 두 번 받고 중환자실에 보름동안 있다가 가까스로 살아났다. 아내가 살아난 것은 큰 기쁨이었지만 모아놓은 돈이 없는 형편에서 수술비와 입원료 등을 감당하기가 어려웠고 또다시 빚을 내야 하는 지경이 됐다.

내 어려움을 전해들은 분들이 팔을 걷어 부치고 돈을 모았다. 나의 일터인 솔뫼농장 회원들, 그리고 우리와 함께 유기농 먹을거리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한살림 생산자와 소비자들이 형편닿는 대로 돈을 내놓았고 나중에는 병원비를 내고도 한참 남는 많은 돈이 내 수중에 전해졌다. 나와 아내는 많은 사람들의 은혜를 입어 무사히 퇴원을 하고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 때 난 비로소 깨달았다. 무얼 먹고 무얼 마시고 무얼 입을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걸.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해도 충분하다는 걸. 세상은 온통 사랑의 에너지로 충만하기 때문에 세상과 사람과 우주의 온 생명을 향해 나를 열면 공중의 새와 들판의 꽃처럼 자유롭고 아름다운 존재가 된다는 걸. 내가 받은 은혜를 온 생명과 나누고 서로 돕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그 이후 지금까지 통장의 잔고는 늘 빈약하고 모아놓은 재산은 없지만 한 번도 먹고 마시고 살아가는 문제로 고민하거나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다행히 아이들도 큰 탈 없이 잘 자라주고 있고 아내도 완전하진 않지만 건강을 많이 회복했다. 매일매일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밝은 사랑의 기운을 주고받으니 내 삶도 늘 평화롭고 행복하다.

올 해부터는 아침을 생식가루와 간단한 야채 만으로만 먹고 있다. 그 동안 너무 많이, 너무 맛을 쫓아다니며 먹었다는 반성 때문이다. 더 없이 간결한 아침밥상이지만 그 안에서 무한한 은혜를 체험한다. 내 앞의 쌀알 한 톨과 푸성귀 한 잎이 나를 온전히 사랑하기 위해 먼 우주저 편에서 찾아온 천사이자 하느님임을 느낀다. 마치 우리를 온전히 사랑한 나머지 사람의 옷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끝내 우리의 밥으로 자신을 던져주신 예수님처럼.

밥을 먹으며 내 존재가 온 생명의 기운과 하느님의 숨결이 한 데 어우러진 위대한 사랑의 합작품이고, 나 또한 쌀알 한 톨, 푸성귀 한 잎, 된장 한 숟갈처럼 우주생명을 향해 나를 밥으로 내놓아야 서로 오고가는 사랑으로 완성될 것임을 깨닫는다.

들꽃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이들은 행복하다.

그들은 꾸밈없는 신비로움에서 하늘나라를 찾는다.

새의 날개 짓을 원하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그들은 욕심 없는 자유를 향해 날아오르는 법을 안다.

김의열

1966년 전남장성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청주로 이사와 줄곧 거기서 자랐다. 88년에 괴산 청천면 삼송리로 들어와 농사를 배우고 다시 청주에 나가 가톨릭농민회 실무자 일을 하다가 92년 결혼해서 다시 청천면 삼송리로 들어와서 현재까지 살고 있다. 94년 유기농업 생산영농조합인 ‘솔뫼농장’을 지역의 농부들과 시작해서 지금까지 함께 해오고 있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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