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신연의 시대 읽기 – Quo Vadis, Papa Francesco!

김유철

Quo Vadis, Papa Francesco!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사목방문이 오는 8월로 확정 발표됐다. 교황의 방한은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에 참석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으로 보이지만 벌써부터 그의 행보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주교회의는 보도자료를 통해 아시아청년대회가 열리는 대전교구 지역(대전, 충남)과 함께 장애인, 행려인 공동체인 꽃동네 등을 방문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사실 교황을 초청한 박근혜정부와 한국주교회의, 시민단체 등을 비롯한 각계각층은 각기의 관점에 따라 교황의 발걸음이 향하기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모든 것은 조율되고 결정된 듯 보인다.

교황 요한바오로2세는 지금까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국에 온 교황이었다. 그는 1984년 5월 3일 한국천주교회 창립 200주년 기념식과 순교자 103위 시성식에 참석하기 위해 처음으로 방한했다. 교황은 비행기 트랩에서 내리자 공항 바닥에 입을 맞추고 한국어로 “순교자의 땅”이라며 한국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표시해 감동을 선사했다. 또한 인사말 첫머리에서 “벗이 있어 먼 데서 찾아오면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논어의 구절을 한국어로 말해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마무리 역시 한국어로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그리고 한반도의 온 가족에게, 평화와 우의와 사랑을 베푸시는 하느님의 축복이 깃들기를 빕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로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다.

교황 요한바오로2세는 바로 그 다음 날인 5월 4일 광주로 향했다. 1984년 당시는 5·18광주민주화운동를 여전히 ‘광주사태’로 부르던 시절이었고, 서슬 퍼런 군부독재에 쉬쉬하던 때였다. 소수에 지나지 않는 유가족과 5·18관련자들, 재야인사와 일부 대학생들 사이에서나 목소리 낮춰 언급하던 광주학살이었다. 광주를 방문한 교황은 불과 4년 전 피비린내 났던 금남로를 둘러본 뒤 무등 경기장에서 신앙대회를 집전했다. 사복경찰의 삼엄한 경비 속에서 방탄유리로 덮인 차를 타고 금남로를 따라 도청 앞으로 향하던 요한 바오로 2세는 구 한국은행 앞 4거리를 지날 때 차량속도를 줄이고 길가에서 박수로 환영하던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며 답례했다. 그때 길가에서 손을 흔들어 대던 시민들은 아마 5·18이후 처음으로 그처럼 많은 인파가 도청 앞과 금남로에 운집했다고 말했다. 교황의 광주 방문은 당시 정부를 긴장시켰지만 광주시민들에게는 큰 감명을 주었다. 그러나 당시 전두환 정권은 교황의 방한을 신군부의 광주학살과 쿠데타를 용서받고 정권을 용인해준 것으로 악용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작년 3월 취임 이후 교황청 밖의 첫 사목방문지로 북아프리카 불법 이민자들의 밀항지로 잘 알려진 이탈리아 최남단 람페두사 섬을 선택했다. 그리고 7월 8일 그곳의 불법이민자 수용소에서 미사를 집전하면서 강론을 통해 이민자들에 대한 국제적 무관심을 비판하고 양심의 각성과 형제애를 촉구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우리는 예수님께서 착한 사마리아인 이야기에서 언급하신 사제와 레위인의 위선에 빠져버렸다”며 연민의 회복과 연대를 호소했다. 교황은 강론 말미에는 “누가 울고 있습니까? 오늘 이 시간 이 세상에서 누가 울고 있습니까?”라는 깊은 물음을 모두에게 던졌다. 그러나 그런 물음에 앞서 교황의 교회 밖 첫 방문 장소가 주는 의미는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그해 12월 중순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이 된 이후 처음으로 생일을 맞이했다. 그날 교황은 자신의 숙소인 마르타 게스트 하우스에 손님들을 청했다. 그의 생일 아침식사에 초대받은 사람들은 동유럽 출신의 노숙인 3명이었는데 그 중의 한 사람은 반려견까지 안고 왔다. 교황은 자신의 생일에 참석한 세 사람 모두에게 일일이 덕담을 건넸고, 그들과 함께 미사를 드렸고, 아침식사를 함께 나누었다. 노숙인들은 그들을 초대한 교황에게 해바라기 꽃을 선물로 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 사순 담화의 머리말로 “그분께서는 가난하게 되시어 우리가 그 가난으로 부유하게 되도록 하셨습니다.(2코린 8,9)”를 삼았다. 교황은 “여러분이 그 가난으로 부유하게 되도록” 하기 위함이 결코 말장난이나 구호가 아님을 말한 후 그것이 바로 하느님의 논리, 곧 사랑의 논리이며 강생과 십자가의 논리를 담고 있다고 역설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단순한 동정이나 풍족한 가운데 베푸는 자선이 아니라 필요한 이웃들 가운데 있어주는 것, 버려진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주는 방식이며 그것이 바로 자비롭고 온유하며 연대하는 사랑이라 설명했다.

교황은 담화의 마무리에서 교회전체가 물질적, 도덕적, 영적 빈곤 속에서 살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복음 메시지를 증언하라고 요청했다. 이어 우리의 가난으로 다른 사람을 돕고 부유하게 만들기 위하여 우리가 무엇을 포기 할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길 아울러 요청했다. 교황은 진정한 가난은 아프다는 것을 잊지 말라며 자신은 아무런 희생도 따르지 않고 아픔이 없는 자선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방점을 찍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2월 22일 염수정추기경을 비롯한 새로운 추기경들의 서임식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앞에 서서 가고 계셨다.(마르 10,32)”는 복음을 인용하며 그분과 함께 걷자고 말했다. 모두에게 길로 나오라는 간곡한 초대였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철학을, 어떤 이념을 가르치러 오시지 않았다는 것 말입니다. 오히려 그분은 길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분과 함께 수행해야 할 여정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걸음으로써 가는 길을 배웁니다. 형제 여러분, 그렇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걷는 것, 그것이 우리의 기쁨입니다.”

1989년 교황 요한바오로2세가 세계성체대회에 참석하기 위하여 한국을 두 번째로 방문했던 때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젊은이 성찬제’가 진행됐다. 그날 미사의 봉헌물로 최류탄과 화염병, 성경을 부조물로 만들어 올렸다. 젊은이들은 당시의 가장 큰 아픔과 우리의 신앙상징을 봉헌물에 담아 미사에서 교황을 통하여 주님께 전달해 지기를 간절히 원했던 것이다. 미사에 참석한 1만 4천 명의 젊은이들은 미사 후 교황과 손을 잡고 ‘아리랑’을 합창했다.

지금 이 시점에서 한국의 어느 곳이 교황의 발걸음을 가장 간절히 바라고 있는가? 어떤 사람들이 무엇을 교황과 함께 미사를 드리며 하늘에 전하고 싶은 것인가? 그 누가 프란치스코 교황이 말한 ‘길’, 아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앞서서 걷고 있는 ‘길’을 함께 걷고 있는가? 교황님, 어디로 가시렵니까? Quo Vadis, Papa Francesco!

김유철

한국작가회의 시인이며 경남민예총 부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깨물지 못한 혀』, 『그림자숨소리』, 『그대였나요』 등이 있다. 현재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공동선』, 『분도』 등에 글을 쓰고 있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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