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평신도의 관점에서 본 복음의 기쁨 – 김항섭

김항섭

가난한 이들과 경제 문제

서인석 신부는 80년대에 널리 읽힌 『성서의 가난한 사람들』이란 책의 말미에 이렇게 적고 있다. “그러므로 오늘을 살고 있는 크리스챤들이 어두운 이 세대의 인간들에게,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들의 원리, 그들의 외침, 그들의 기쁨을 보장해 줄 때, 우리의 사회는 율법과 예언서 그리고 성문서집의 중심사상을 실천하는 밝은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성서의 중심사상’이라고 칭할 만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배려와 선택은 그리스도교의 오래된 핵심적 화두이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복음 선포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복음화가 그 사회적 차원, 특히 가난한 이들의 문제를 외면할 경우 복음화 사명을 왜곡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가장 가난하고 작은 이를 위한 선택은 신앙적 정통성을 가늠하는 척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복음화’란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을 교회 여정의 중심으로 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너무나 명료한 성서적 가르침이기 때문에 그 해석을 둘러싸고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고, 또한 가난한 이들과 사회정의에 대한 이러한 관심에서 그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

그리스도교 신자라면 누구나 가난한 이들의 울부짖음에 귀 기울여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자선 활동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빈곤의 구조적 원인을 없애고, 나아가 가난한 이들의 온전한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여기서 가난한 이들의 ‘온전한 발전’이란 단순히 양식을 제공하거나 품위 있는 생계를 보장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복지와 번영-교육, 의료, 무엇보다도 고용-을 포함하는 것이다. 이처럼 교황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선택이 신앙적 정통성을 재는 기준이라고 보기 때문에, 교회가 사회 비판이나 정부 비판에 아무리 앞장설지라도 가난한 이들을 위해 노력하거나 협력하지 않는다면 그 교회 공동체는 와해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가난의 구조적 원인에 천착하는 교황은 그러한 원인을 제공하는 경제 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인다.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고삐 풀린 시장 경제와 금융 투기가 문제이다. 따라서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을 맹목적으로 믿는 신자유주의 이념이나 정책을 치유책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독으로 진단한다. 교황은 이 시장경제를 ‘배척의 경제’라고 이름 짓는다. 여기서 배척은 이전에 자본주의 사회를 서술하면서 사용했던 ‘소외’와 다른 개념이다. 소외는 체제로부터 홀대를 받지만 그래도 체제 안에 머문다. 그러나 배척 또는 배제는 아예 체제 밖으로 밀려남을 뜻한다. 왜냐하면 경쟁의 논리와 약육강식의 법칙 아래 힘 센 자가 힘없는 이들을 먹어치우는 경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황은 기성 정치인들이나 경제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주장, 즉 먼저 성장하고 나중에 나누자는 식의 ‘낙수 효과’ 이론을 경계한다. 또한 현실에서 검증된 바 없는 이 이론을 믿고, 가난한 이들에게 무관심한 채, 소비지상주의에 빠져 있는 이들도 질타한다. 교황은 이 모든 문제가 결국 돈에 대한 물신숭배, 우상숭배에서 오는 것이라고 진단한다. 다시 말하면 시장 경제에 절대적 자율성을 부여하는 신자유주의적 경제 이념과 정책이 문제이다. 이는 국가의 통제를 배제하고, 일방적이고 무자비하게 자신의 법과 규칙을 강요하는 시장 독재이다. 이런 식으로 시장은 절대규칙이 되고 신격화된다. 이처럼 신격화된 시장 독재는 무한한 권력욕과 소유욕, 만연한 부패와 이기적인 탈세를 낳는다.

시장 독재는 윤리를 거부하는 것이고, 나아가 하느님을 거부하는 것이다. 교황은 이러한 경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정치지도자들에게 호소한다. 금융 개혁에 윤리적 고려를 반영하고, “사심 없는 연대성을 지니고 경제와 금융에서 인간을 이롭게 하는 윤리”로 복귀하도록 촉구한다.

또한 시장 독재는 걷잡을 수 없는 소비지상주의를 낳는다. 소비지상주의는 불평등과 결합되어 사회 조직을 손상시키며 폭력을 낳는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해결책은 새롭고 더욱 심각한 분쟁을 조장하는 군비 경쟁도 아니고, 가난한 이들을 길들여 그들을 ‘해를 끼치지 않는 존재’로 만드는 교육도 아니라고 못 박는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가난한 이들과 경제 문제에 대한 진단은 이전 사회교리 전통을 계승한다. 그러나 신앙적 정통성을 가늠하는 척도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선택을 명시하고, 배척이나 배제의 상황을 진단하는 어조를 본다면 라틴아메리카의 고유한 사목 경험이 배어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점에서 ‘가난한 이들의 사회적 통합’이라고 번역된 부분에 대한 주의가 필요하다. 자칫 체제에 순치된 통합 정도로 오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황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가난한 이들도 ‘온전한 사회 일원’이 될 수 있도록, 이들의 해방과 진보를 위해 노력하자는 것이다. 또한 204항에서 “경제는 새로운 독이 되고 있”다고 옮김으로써 자칫 경제 일반에 대한 비판으로 오인될 소지가 있다. 그러나 교황이 비판하는 것은 “새로운 독이 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처방”임을 명백히 할 필요가 있다.

김항섭

한신대 종교문화학과 교수이고 우리신학연구소 이사장이다. 주로 종교와 경제, 라틴아메리카 문화와 종교를 중심으로 연구와 교육 활동을 하고 있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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