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돋보기 – 교황 방한과 한국 교회의 쇄신

황경훈(아시아 평화 연대 센터장)

교황 방한과 한국 교회의 쇄신

설왕설래 말이 많았던 교황 방한이 3월 10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가 기자회견을 열고 이를 공식 발표함으로써 기정사실화 됐다. ‘지금여기’도 같은 날 교황 방한 일정을 중심으로 하는 짧은 기사와 며칠 뒤 “박근혜 정부와 함께 하는 교황 방한, 박수칠 일 아니다.”라는 제목의 데스크 칼럼을 냈다. 알다시피 한국은 최근 교황이 세 번이나 방문한 아시아의 유일한 국가, 교회라고 할 수 있다. 가톨릭 국가라 할 수 있는 필리핀이나 가톨릭 신자가 90퍼센트에 이르는 티모레스테(옛 동티모르)도 아니고 순교자가 10만여 명에 이른다는 일본도 아닌 한국에 현 교황이 방문한다니. 그 속내는 정확히 알 길이 없으나 한국교회가 아시아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책임이 그만큼 크고 무겁다는 것을 실감하게 한다. 시종일관 ‘가난한 이’와 ‘야전병원 교회’ 등을 강조해온 현 교황의 한국 방문이 주는 의미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두 차례에 걸친 교황 방한을 되돌아보면서 짚어보고자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 814~18일 한국 방문 결정

대전교구에서 아시아청년대회 참석, 꽃동네 방문 등 예정돼

한상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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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7월, 세계청년대회가 열린 브라질 방문을 마친 교황 프란치스코가 바티칸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올라 환송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교황청과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의장 강우일 주교)가 10일 오후 8시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방문을 공식 발표했다. 교황은 박근혜 대통령과 한국 주교들의 초청을 받아들여, 대전교구에서 열리는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오는 8월 14일부터 18일까지 4박5일 일정으로 사목방문을 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교황 방한은 “일어나 비추어라”(이사 60,1)라는 주제로 이뤄지며, 8월 13일부터 17일까지 대전교구에서 열리는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AYD, Asian Youth Day)에 참석

해 아시아 젊은이들과 만남의 시간을 갖고, 미사를 봉헌할 예정이다. 또한 청주교구에서 운영하는 ‘꽃동네’를 방문해 장애아동 등을 만날 계획이다.

교황의 한국 방문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1984년 한국 천주교 200주년과 103위 시성식을 거행하고, 1989년 제44차 세계성체대회에 참석한 이후 25년 만에 이뤄진 세 번째 방한이다. (중략)

한국에 대한 교황의 관심은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를 염원하는 의미도 갖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즉위 직후인 지난해 3월 31일 예수 부활 대축일에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우르비 엣 오르비’(Urbi et Orbi, ‘로마와 온 세계에’라는 뜻) 강복 메시지를 통해 “아시아, 특히 한반도의 평화를 빈다”면서 “그곳에서 평화가 회복되고 새로운 화해의 정신이 자라나기를 빈다”고 기원했다. (중략)

그동안 한국 교회는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 때부터 교황 방한을 추진해 왔으며, 한국 정부와 한국 천주교의 방문 요청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응답함으로써 성사되었다. 이번 교황 방한 준비위원장은 주교회의 의장인 강우일 주교가 맡고, 집행위원장은 서울대교구 조규만 주교가 맡는다.

교황 요한바오로 2세 방한과 불편한 기억들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방문은 1984년 5월 요한바오로 2세의 방한과 형식적인 면에서 거의 흡사하다. 전두환 정권과 한국 교회의 초청으로 103위 시성식을 주재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것이나 현 정권과 한국 주교들의 요청으로 이루어진 현 교황의 방한이 모양새가 비슷하다는 말이다. 전임 교황 방한과 다른 점이 있다면 주교회의가 기자회견에서 밝힌 바처럼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시아청년대회의 참석을 주요 방한 이유로 들고 있다는 정도이다. 84년 방한 때도 양국 정상 간 회동을 합의했고, 실제로 방한 기간 중에 전두환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공동성명의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교황의 ‘공동’ 성명 그 자체가 5.18 광주민중 항쟁을 피로 물들이고 정권을 찬탈한 군부독재자와 그 정권을 정당화하는 셈이 되어버렸다고 할 수 있다. 바로 그 점에서 전두환 독재정권은 이미지 세탁 의도를 충족시켰고, 따라서 교황 방문은 지극히 ‘정치적’인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비록 교황이 망월동을 참배하고 이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했다고 하더라도 이런 역사적 사실을 없었던 일로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가톨릭이 적극적으로 퇴진운동을 벌이고 있는 박근혜 정권도 비슷한 바람을 하고 있지 않을까?

당시 교황이 정상회담을 통해 군부독재정권을 정당화하는 것에 반대하는 청년과 학생들은 교황 방한 전과 방한 기간 중에 시위와 성명서 발표 등으로 강하게 항의하기도 했다. 물론 그들 가운데는 가톨릭 청년 학생도 다수 있었다. 그러나 같은 해 9월 경갑룡 담당주교는 전국가톨릭대학생연합회 지도신부단 모임에서 전국연합회의 해체를 결정했다. 경 주교는 1981년 담당주교로 선출된 뒤부터 전국연합회 해체를 요구해 왔으며, 특히 1983년 전국연합회의 주도로 ‘소외당하는 이들과 함께 아픔을 같이 하며 현실을 좀 더 복음화’한다는 취지로 열릴 예정이었던 최초의 전국대회를 반대하였고, 급기야 해체라는 극단적 결정을 내렸다. 이는 103위 시성식을 1년도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 당국과 불화를 원하지 않았던 보수 주교 및 사제들의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이를 신호탄으로 교황의 두 번째 방문이 있었던 1989년까지 한국천주교평신도사도직협의회, 가톨릭농민회 등의 전국조직이 해체되거나 보수적 인물로 물갈이 되는 등 탄압이 이어졌다. 특히 1987년 11월에 열린 추계 주교회의 총회에서는 정의평화위원회 대표직을 평신도에서 주교로 바꾸고, 역시 평신도가 맡았던 사무국장을 총무로 바꿔 사제가 그 자리를 담당하게 하였다. 이 조치는 평신도 중심 체제를 성직자 중심으로 바꿔 버림으로써 실제로 평신도 운동에 커다란 장애요인이 되었고, 활발하게 활동하던 인권, 노동, 농민, 학생, 정의평화 등의 활동은 큰 타격을 입게 된다. 보수적 주교들의 전면 부상과 이어지는 평신도 운동 단체의 탄압이 44차 세계성체대회의 참가를 위한 교황의 두 번째 방한을 사이에 두고 정점에 달했다는 것을 우연으로 보기에는 한국 교회와 권력의 관계가 너무나 긴밀했다.

프란치스코 효과와 평신도 정신

한국에서 열리는 아시아청년대회도 프란치스코 교황의 유명세를 더해줄 하나의 화제거리라고 할 수 있는데, 한편으로는 청년들을 꼭 그런 방식으로 만나야 하는가 하는 얘기도 종종 듣는다. 저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 짐바브웨의 ‘최고령 독재자’로 이름난 무가베가 90살을 맞는 올해 생일을 위해 100만 달러를 모금해 잔치를 벌여 나라 안팎으로 욕을 먹은 것이 하필 이 순간 떠오른다고 해서 불손하다고만 할 것인가. 세계청년대회든 아시아청년대회든 여러 나라 청년이 만나 문화와 종교, 인종의 차이를 넘어 사귐과 나눔을 배우고 평화를 기원하는 것은 의미가 있지만, 이벤트 성격이 다분한 한 번의 행사를 위해 무가베가 썼던 돈을 훨씬 웃도는 비용이 드는 행사를 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더욱이 전임 교황은 그렇다 치더라도 ‘종의 종’이고자 그렇게 행보하는 현 교황이 무개차를 타고 수만, 수십만 명의 환호를 받는 모습에서 평신도와 성직자의 깊은 균열을 읽어낸다면 지나치다 할 것인가. 값비싼 방탄차가 아니라 1천700만 원짜리 소형차이니 그냥 넘어가야 하는 것일까. 프란치스코 교황 자신이 꼽고 있는 가장 주요한 적인 성직주의가 원형질처럼 각인된 한국 교회를 비롯한 아시아에서 ‘프란치스코 효과’는 양면성을 띤다고 할 수 있다. 성직주의와 교회 관리의 관료주의를 질타하고 교회개혁을 실행에 옮겨가고 있다는 점에서 그 성령의 바람이 한국과 아시아에 불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자칫 교회개혁이 무르익기도 전에 그의 인기가 성직자의 이미지를 광내고 이들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하는 방향으로 끝나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완성되지 못한 혁명의 가장 큰 희생자는 늘 민중이요, 교회로 따지자면 평신도일 수 있다. 그러하기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을 바라보는 ‘평신도 정신’은 이번 방한의 빛 아래 드리운 그늘을 동시에 꿰뚫어 보아야 할 것이다.

지금여기다시 보기

교황 방한 공식 발표일 당일에 기사가 나온 순발력이 돋보인다. 정확히 나흘 뒤에 데스크 칼럼이 나온 것도 시기적으로 늦었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교황 방한과 관련해 추측성 기사가 난무했고, 그것에 연연함 없이 기사를 내보내지 않다가 공식 발표가 난 뒤에 나온 기사인 만큼 대서특필은 아니어도 ‘지금여기’만의 시각으로 다양한 꼭지를 준비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조선일보’는 발표 다음날 1면 톱으로 커다란 사진과 함께 방한을 전하면서, 광고를 제외한 3면 전체를 교황기사로 채웠다. 즉위 1년 간의 행보, 가난 지향의 삶, 방한에 대한 주교회의 기자회견 등 내용도 다양하다. 여러 장의 사진과 문구를 활용해 가난을 강조함으로써 ‘조중동’의 이미지를 세탁하고, ‘프란치스코 효과’로 이탈리아 사제들이 60만원하는 실크에서 6만원하는 합성섬유로 된 수단을 입는다는 생생한 변화를 특파원을 동원해 전하고 있다. 이 기사를 ‘지금여기’에 그냥 퍼와도 다른 기사와 구분하기 어렵다. 이쯤 되면 전쟁이다. 기자는 토씨, 제목, 리드 하나로 피 튀기며 싸운다.

위 ‘지금여기’ 기사에서 두 가지가 눈에 뛴다. 먼저 인용을 밝혀야 할 부분에서 기자 스스로 아는 것처럼 전제하면서 칼럼인지 기사인지 구분이 모호해졌다. 다른 하나는 교황방한 날짜 같은 디테일하지만 중요한 부분은 리드로 처리해야지 제목으로 뽑으면 군더더기 같고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기사의 제목은 간결할수록 좋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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