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단짝_서로가 없으면 할 수 없어요

이주 노동자 상담실 김영심 수녀, 로미 씨, 임윤정 씨

서로가 없으면 할 수 없어요

이주 노동자 상담실에 들어서니 길게 늘어선 책상 위에 여러 대의 컴퓨터와 전화기가 놓여 있었다. 언어별, 국가별로 상담을 할 수 있도록 마련된 자리라고 했다. 영어부터 중국어, 베트남어, 태국어, 스페인어까지. 그 중 남미공동체는 유난히 가족적인 분위기라고 유쾌하게 말하는 세 파트너-김영심 수녀, 로미 씨, 임윤정 씨를 만났다.

남미공동체는 단지 사무실에 앉아 상담 업무만을 하는 곳은 아니다. 노동자의 직장에서 일어나는 고충을 처리할 뿐 아니라, 결혼생활에서 일어나는 문화 차이, 언어 소통의 어려움 지원, 불법 체류 노동자의 보호소 수감 시 소지품을 챙기고 가족들의 선물을 사는 일까지 필요한 모든 부분에 함께 하고 있었다. 또한 스페인어 미사를 운영하고, 피정과 교리교육도 진행하며, 함께 모일 때에 생일을 챙기는 등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운영하고 있었다. 김영심 수녀는 이렇게 많은 일들을 혼자 처리하기는 어려워서 오랜 시간 함께 해 온 봉사자들이 든든하고 가족 같다며 웃었다.

로미 씨와 임윤정 씨는 남미공동체의 다른 봉사자들을 챙기는 베테랑 봉사자들이다. 로미 씨는 볼리비아 출신으로 한국에 와서 결혼하고 가정을 꾸렸다. 인터뷰 며칠 전 아이의 세례식이 있었는데, 남미공동체 봉사자들이 함께 축하해주었다. 아이의 사진을 보여주며 귀엽지 않느냐고 미소 짓는 김 수녀는 진짜 가족 같았다. 임윤정 씨는 탁월한 스페인어를 구사하면서 인터뷰 내내 로미 씨의 통역을 해주었다. 임산부인 임 씨는 먼저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는 로미 씨가 의지할 수 있는 멘토가 되어 준다고 했다.

이렇게 김 수녀와 로미 씨, 임 씨는 남미 공동체의 다양한 일들을 자연스럽게 나눠서 하고 있는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도 너무 많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세 사람이 남미공동체에 함께 한 지 짧게는 5년 길게는 9년이나 되는 시간이 흘렀다고 한다. 짧지 않은 시간 얼마나 많은 이들과 만나고 헤어졌을까.

“기억에 남는 한 분은 볼리비아 남자 분이신데, 오토바이 사고를 당해서 머리가 들어갈 정도로 크게 다치고 코마 상태에 빠졌었어요. 처음 한국에 온지 얼마 안 되었을 때라 지리도 잘 몰랐는데 마음이 너무 아프고 안타까웠어요. 당시엔 처음이라 찾고 헤매느라 더 어려웠어요.” (로미)

처음이라 충분한 도움을 주지 못한 한 사람을 기억하고 있는 로미 씨. 충분한 도움을 받지 못했을 때 느껴지는 안타까움이 이들 세 사람의 공감대인 듯 보였다. 가족을 따라 한국에 와서 공부하다가 정신분열증에 걸린 청년,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었는데 고용주가 보험을 들지 않아 산재 신청도 어려웠던 여성 노동자의 이야기가 차례로 이어졌다. 한 사람의 입에서 누군가의 이야기가 나오면 그를 떠올리며 다른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그러면서도 외국인 노동자들과 고용주를 동시에 만나는 일이 쉽지 않다는 듯 볼리비아 노동자의 이야기를 꺼내 들려준다.

얼마 전 볼리비아 출신의 노동자 한 분이 사고 나서 많이 다쳤다고 한다. 병원에서 노동 현장에서 일했던 증명서만 있으면 의료 보호를 받을 수 있는데, 고용주가 증명서를 써주기를 꺼려했다고 한다. 불법체류자를 고용하게 되면 범칙금을 내야 하는데, 고용주 입장에서는 그것이 걱정되었던 모양이다. 노동자 분은 수술비와 입원비를 합쳐 6백만 원 이상의 병원비를 내야할 상황에 처했다고 한다. 남미공동체 봉사자들은 증명서는 의료 보호를 위해서만 쓰인다는 설명을 몇 차례 해가며 고용주를 설득했고, 덕분에 의료 보호를 받아 40만원의 병원비만을 감당하게 되었다고 했다.

수술이나 입원 치료의 경우에 언어적인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것이 중요하지만, 동시에 고용주와의 관계를 중재하는 역할도 중요하다고 했다. 그런데 아무리 스페인어를 잘 한다고 해도 남미 출신이 아닌 한국 사람이 나서서 중재하겠다면 의심의 눈초리를 받을 수도 있다며, 그럴 때 로미 씨의 도움이 크다고 했다. 봉사자들마다 각자에게 맞는 역할이 있다는 설명이 이어진다.

“저희는 한국 사람이니까 혹시나 한국 사람 편을 들지 않을까 의심하는데, 로미 씨는 남미 출신이니까 더 믿어줘요. 그러면서도 로미 씨는 우리 상황이나 마음도 알고 이해해주니까 더 편하죠. 양쪽을 다 볼 수 있는 사람이라서 우리에게는 그분들이 오해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코멘트를 해주기도 하고 중재 역할을 많이 해줘요. 대신에 노동자 분들이 산재 처리 같은 부분에서는 한국 사람이면서 스페인어 할 수 있는 사람을 더 신뢰하기도 하고요. 결국 혼자는 안 되고, 같이 팀을 이뤘을 때 가장 좋은 결과를 일궈낼 수 있는 팀이 되는 거 같아요.” (김영심)

이러한 파트너십은 노동자와 고용주, 양쪽이 다 사목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중재현장에서 더 빛을 발한다고도 했다. 김영심 수녀가 봉사자들을 든든하게 여기는 게 느껴졌다. 이 든든한 봉사자들은 어떻게 이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는지 물어보자 그냥 즐겁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로미 씨도 늘 이야기 하지만, 항상 오는 게 기뻐요. 봉사라기보다는 사람들 만나는 것이 기쁘고 즐거워지고. 저도 본당에서는 성서 모임 봉사를 비롯해서 이런 저런 활동을 많이 해봤는데, 그러면서도 이걸 시작할 때는 이렇게 오래 할 거라곤 생각 못 했어요. 아마 잘 맞았나 봐요. 힘든 일도 물론 있지만, 여기 오면 진짜 가족 같고 편안하다고 해야 하나요.” (임윤정)

어쩌면 파트너십이란 이렇게 기쁜 마음으로 긴 시간을 버텨주고 이들 사이에 형성되는 게 아닐까. 만나는 것이 기쁘고, 서로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마음들이 관계의 초기에만 해당된다면 깊이 있는 파트너십으로 나아가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긴 시간동안 봉사를 할 수 있느냐고 물어 본 질문이 참 어리석게 느껴졌다.

‘가족 같다.’는 말을 끊임없이 하는 이들에게선 수도자와 평신도 간의 거리감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처음에는 그저 남미의 분위기가 이 세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쳤을 거라 생각했으나 인터뷰가 진행될수록 이들의 파트너십이란 ‘어떤 일이 일어나든 함께 갈 사람’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데에서 가족 같다는 말이 나오는 게 아닐까 싶었다. 가족이 그렇지 않던가. 싫든 좋든 버릴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는 것을 선택하는 관계가 가족인 것처럼 파트너십에서는 서로에 대한 판단에 앞서 함께 하는 관계를 인정하고 그저 즐기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가 생각하게 된다.

서로가 없으면 할 수 없어서, 봉사자들을 위해 많은 기도를 한다고 말하는 김영심 수녀의 빛나는 표정에서 공동체로 살아가는 기쁨을 엿볼 수 있었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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