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톡톡 – 황창희, 『살며 배우는 사회교리』

고은지

황창희, 살며 배우는 사회교리

“이십 년 넘게 장사를 해 오면서, 졸업․입학 대목에 올해처럼 바닥을 친 적이 없어. IMF 때보다 경기가 더 안 좋아.”

“십 년 넘게 공부해서 박사 학위 받으면 뭐 하니? 나이 덜 먹은 박사는 과장급으로 비집고 들어가기도 힘들어. 여성이면 더더욱. 논문을 쓰고 연구를 더 하면서 실적을 올려야지.”

“요즘 이십 대는 사회 진출하기 어려워요. 졸업을 미루고 각종 고시를 준비하거나, 아니면 어학연수를 가니까요. 심도 있게 공부하고 싶어 대학원에 진학하는 경우는 드물어요. 취업이 안 되면 당장 손가락 빨아야 하니까, 학생 신분으로 비비고 있어 보자는 거지.”

꽃가게 사장님도, 올해 박사 학위를 받은 친구도, 대학 졸업반인 사촌 동생도, 퇴직을 앞둔 부모님과 가을께 출산을 앞둔 동생 부부도 모두 ‘먹고 살’ 걱정을 하는 시대인가 보다. 어딜 가든, 누굴 만나든 표정이 밝지 않다. 새 출발에 대한 설렘이나 앞으로 살아갈 삶의 포부와 희망보다 사는 게 너무 힘들다고 하니, 어찌된 노릇일까. 불경기를 보여 주기라도 하듯, 며칠 전 찾은 대학로 거리에는 점심시간인데도 한산하기만 했다.

살기 힘든 이들은 희망을 발견하기 위해 멘토를 찾고, 시대의 어른을 만나고 싶어 한다. 인문학자의 책이 날개 돋친 듯 팔리고, 대중 강연을 위해 승려와 목사가 전국을 돈다. 해답이 고픈 이들은 이들의 말 한 마디에 웃고 운다. 한편에서는 맹렬히 비판하며 ‘힐링’이란 허울일 뿐이라고 외친다. 무엇이 옳은 걸까, 어떻게 결정을 해야 하나 순간순간 보이지 않는 장벽에 턱 막힌 듯 외롭다. 과연 교회에서는 믿는 이와 믿지 않는 이들을 모두 품어 낼 화두를 제시해 주려는지 한동안 의심하던 차에, 황창희 신부의 책을 받아 들었다.

책에서는 병역, 외국인 노동자, 장애인, 어린이, 환경, 전쟁 등 사회의 보편적 문제에 대해 교회에서 어떻게 행동하기를 가르치며 권고하고 있는지 다루면서, 딱딱하고 어렵기만 한 사회 교리를 쉽게 풀어 전달하기 위해 지은이가 직접 실생활에서 체험했던 삶을 들려준다.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할 법한 이야기를 통해 공감을 이끌어 내며 비슷한 경험을 반추하도록 돕는다. 그러고 나서 교회에서는 각각의 문제를 복음적 가치에 비추어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설명한 후, 『간추린 사회 교리』를 인용하여 이해를 돕는다. 단순히 이론을 해석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한 사람이자 신앙인으로서 겪은 어려움과 가치 판단의 문제, 갈등 상황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여러 번의 강의를 듣고 나서도 몸에 와 닿는 느낌을 받지 못했던 사회 교리에 대한 낯설음과 거리감을 줄이면서, 독자가 사회 교리를 더욱 쉽게 받아들이고 실천하도록 하기 위한 고민이 녹아든 듯하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마음 한 구석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TV, SNS, 인터넷 동영상을 통하여 자신의 성공담을 전파하여 희망 고문을 하고 있는 수많은 멘토, 정신적 지주, 성공 전도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들이 성공을 위해 노력하고 굵은 땀방울을 흘렸던 시대와 지금 청․장년층이 맞닥뜨려야 하는 삶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소득 격차와 교육 수준이 달라도 열심히만 일하면 기회를 잡을 수 있었던 7․80년대를 들먹이면서 ‘그러니 당신도 나처럼 살라.’고 강변하는 말은 차라리 폭력에 가깝다. 교회라고 뭐가 다를까. 지은이의 체험도 7․8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사제직에 몸담은 후 한 번이라도 노동자로, 가진 것 없는 외국인으로, 수능을 앞둔 고교생으로 살아 보려 했을까 생각하면 금방 막연한 거리감을 느낀다.

사회가 급변하면서 그에 맞게 변화하여야 할 사회 교리도 똑같은 가르침을 반복한다. 불과 몇 년 사이에도 새로운 이론과 정보, 기술이 물밀 듯 밀려와 변화를 강요하는 현실 앞에서도 교회는 ‘사랑’과 ‘인간’ 타령만 하고 있다. 사랑을 어떻게 변용하여 삶으로 내뿜어야 하는지, 인간이 곧 돈으로 환산되는 사회에서 어떻게 개인의 품위를 지킬 것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이렇게 하라’ 가르칠 뿐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느낌인데. 아, 맞다. 엄마 잔소리. 대학을 졸업하면 취직은 자연스레 되고, 월급은 200만 원 정도는 받아야 하고, 나이 서른이면 결혼하여 아이 둘은 있어야 하고, 일단 낳아 놓으면 아이는 늘 알아서 스스로 큰다는! 이 책에 나온 사회 교리 문항 전부가 내겐 지겹도록 들었던 잔소리 같았다.

7․80년부터 자본주의가 고조될 때, 교회는 어디서 무엇을 했는가. 수많은 불의와 불평등이 자행될 때 교회는 사회에 무엇으로 일갈했는가. 교리를 가르치는 교사가 되기보다, 같은 인간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함께 고민하는 교회의 고민을 기대한다. 치열한 고민 끝에, 함께 살아갈 방법으로서 제안하는 사회 교리가 되기를 염원한다. 결국 교수법만 달리할 뿐, 가르치는 자가 가르침을 받는 중생을 계몽하는 이가 아닌 오늘, 내가 발 딛고 선 세상에서 같은 고민을 하며 살아가는 이로 여기며 다가와 주길.

고은지

참 자아와 일치하기 위해 내면을 여행하는 여행자, 하루하루를 삶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는 생활자, 누구보다 자기 자신과 조화롭게 어울리고 싶어 하는 행동가이다.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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