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Cool 사제 전별금 간소화, 어떻게 생각하세요? – 박홍기

 

박홍기 광주 카톨릭대 교수 신부

 

본당신부로 산 세월은 꼭 3년이 전부입니다. 부족한 경험과 부끄러운 기억이 본당신부 역사의 대부분인 필자에게 이 민감하고 중요한 문제가 껄끄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어떤 신자분과 나눈 메일을 공개하고자 합니다. 본당을 떠나오고 얼마 되지 않아 주고 받은 이 메일 내용이 자칫 오해를 부를 수도 있고 마치 치부처럼 느껴지지만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보다 바람직한 교회공동체를 위한 실천으로 여기 펼쳐놓으니, 부디 너그러운 시선으로 함께 보아주시기를 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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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신부님께,

위력의 태풍이 지나가고, 지금은 다소 잠잠합니다. 제가 떠나가신 박신부님께 굳이 메일을 쓰는 까닭은 박신부님을 비판하는것도 아니고, 한국가톨릭에 대한 사랑도 아니고, 전적으로 저의 신앙적 양심으로 인한 것임을 밝혀둡니다.

제 질문은 이것입니다: 박신부님은 작년 12월 영명축일과 송별식(2012년 8월 26일)에서 신자분들로부터 선물들, 특별히 흰봉투를 주일미사에 이은 공식적인 행사시간에 받으셨습니다. 제가 신부님을 개인적으로 자세히는 모르지만, 평소 강론에서 강한 정치비판과 현실참여적 대응, 사람과 사랑이 빠진 제도를 강하게 비판하신 분으로서, (특별히 2012년 8월 15일 성모대축일 강론에서 신부님은 이부분을 강도있게 비판하셨음) 흰봉투를 공식적인 자리에서 받으시는 부분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물론, 신자분들은 고맙고, 사랑스러운 그리고 열심이셨던 신부님께 뭔들 드리지 않겠습니까? 선물, 즉 마음이 들어간 선물은 감동적입니다. 신부님도 그런 마음을 절실히 아셔서 차마 거절을 못하셨다고 여겨지지만, 그러나, 흰봉투는… 더구나, 주일미사시간에? 독일에서 신학을 하신 박신부님이?

제가 한국가톨릭의 전통이나 한국인의 심성을 몰라서 입니까? 진솔한 답변 기다리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존경받는 귀한 주님의 종이되시기를……

아우구스티누스 축일에 데레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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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 평화

데레사씨, 안녕하세요? 보내주신 메일 잘 받았습니다. 공식적으로 흰봉투를 받는 것이 저도 참 곤혹스러웠습니다. 받으면서 아차 싶었지만 또 지나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지금까지 관례화되어왔던 부분을 제가 그저 받아들인 꼴이 되었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으시고 독일에서 신학을 공부한 사제에게 실망했다면 유감입니다. 흰봉투를 주고 받는 것. 행사를 준비하는 신자분들께 미리 말해서 그런 일이 없도록 해야했는데 저의 성향으로 그저 관례화 되어왔던 일을 받아들이고 말았습니다.

어떤 신부님은 영명축일날 아예 본당을 비우시기도 하고, 화를 내시면서까지 아무런 선물도 받지 않으시지만 마음과 성의를 표하고 싶은 신자들이 주시는 물질적 선물을 완전히 끊기란 쉬운 일이 아닐 듯 합니다.

축하식때 공식적으로 돈을 받는 것이 저 스스로도 참 곤혹스럽고 싫었습니다. 그때의 마음은 ‘드러내지 않고 겸손하게 주시면 참 좋겠는데…’였습니다. 직접 재배하고 만든 농산물들, 반찬을 비롯해서 정말 마음을 다해 적은 돈이라도 담아 주시는 분들이 건네는 봉투는 차마 거절할 수 없는 감사요 기쁨입니다.

아직 저도 고민입니다. 본당신부를 처음해보며 여러가지를 느끼고 배웠지요. 다음에 다시 본당신부로 살게 된다면 공식적인 자리에서 흰봉투, 아니 일체의 물적,영적선물을 받지 않으렵니다. 하지만 이것도 일방적인 모습으로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드러나는 사실보다는 숨겨진 진실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하지마라!는 식으로 가르치고 그 가르침으로 학습된 관행의 폐지보다는 사제가 스스로 신자들과 잘 소통하고, 신자들을 진정 사랑하며, 공동체를 위해 함께 물物.심心 모두를 나누는 기쁨을 키워갈 때, 사제의 돈봉투(선물) 거부가 진심과 진실이 될 것이고, 사제에게는 단순한 삶의 기쁨이, 신자들에게는 사제를 마음으로부터 이해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커지리라고 생각합니다.

또 그런 것이 있습니다. 그 돈을 쓰는 것… 그것은 또다른 문제이지요. 제게 그런 돈이 생기면 개인적으로 필요한 것을 위해 쓰기도 하지만 보다 필요한 곳에 나누려고 애를 씁니다. 예를 드는 것은 좀 그렇습니다만 이왕 돈문제가 나오니 말씀드려도 좋겠습니다. ‘그런 돈을 어떻게 쓰는가?’ 이것도 사제의 커다란 고민이니 말이지요.

정기적인 도움이 필요한 단체나 연구소 등 여섯 군데에 내는 후원금은 제 생활비에서 나가지만, 이번에 받은 봉투 내용물로는 특별히 민영이(항암치료 중인 고등학생)를 위해서 50만원, 3년간 찍었던 신자분들의 사진 인화하여 나누어 드리는데 40여만원, 태풍피해복구기금으로 200만원(익명)을 보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닌, 눈에 드러나진 않지만 나누고자 하는 부족한 사제의 지향도 헤아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많은 기대를 하셔서 이런 메일을 보내신 줄 알지만 저도 참으로 부족함이 많은 신부입니다.

정치비판과 현실참여에 대한 강론 내용을 언급하셨는데, 복음에 비추어서, 묵상의 결과로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을 때만 어렵고 힘들게 그런 말씀을 드렸고 그런 내용의 강론이 사실 몇 번 되지도 않았는데 ‘의식있는 신부(?)’처럼 생각하셔서 좀 당혹스럽습니다만, 제가 강론 때 드리는 말씀은 선포의 사명감으로 드려야 하는 말씀이지요. 사제는 ‘드리는 말씀’과 실천의 사이에 깊은 괴리감을 느끼며 살아야하는 불쌍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선포와 삶을 하나로 살아가기 위해, 선포의 내용을 삶으로 이어가기 위해 몸부림치는, 아니 처절히 몸부림쳐야하는 불쌍한 사제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데레사씨가 원하는 답변이 되었나 모르겠지만, 떠난 신부를 이쯤에서 그저 잘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늘 영육으로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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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신부님께,

보내주신 긴 답변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박신부님의 고뇌에 찬 답변에 인간적으로는 공감을 합니다. (솔직히 한 인간이 짊어지기에는 벅차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한가지 질문이 여전히 남습니다: 그러면 관례화된 관행으로 하는 한국가톨릭 어떻게 할 건지? (여기서는 본당신부 영명축일, 은경축, 송별식 때의 흰봉투를 말합니다)

교회가 교회답지 않는 모습 어떻게 할 것인지?

다시한번, 제가 굳이 떠나가신 박신부님께 메일을 쓴 이유가 소통이 될 것이라는 믿음과 한국가톨릭 특성상 본당신부의 한마디가 더 효과적으로 빠르게 관행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인간적 경험임을 알려드립니다.

바쁜스케줄에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를 드리고, 한국적 관행에 과감한 개혁을 인간적으로 바랍니다. 주님의 은총이 충만한 가을 되십시오. 데레사 드림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 2013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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